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3 - 노무현 시대의 명암 한국 현대사 산책 2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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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3 : 노무현 시대의 명암>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11)

[My Review MMCCCXXXVI / 인물과사상사 4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다섯 번째 리뷰는 2004년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파동, 그리고 2005년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을 주제로 한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3>이다. 솔직히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루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을 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은 내려놓은 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IMF를 극복하고 민주당 정권이 연임을 해서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이제 '독재시절'은 끝이 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영원히 안정적으로 이어나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이 후임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단단히 착각에 빠져 살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촛불집회와 명박산성, 물대포가 연일 뜨겁게 달구던 그때, 나는 '정치 무관심'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뉴스를 안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뉴스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도 잘 보지 않았다. 왜냐면 그즈음에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나이는 서른이 넘었고 비정규직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며 '자영업'으로 논술시장에 뛰어 들려고 한창 준비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논술에 '논'자도 모르던 내가 급히 자격증을 취득하고 여러 학원을 전전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저 책을 좋아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시작한 사업은 밑천을 탈탈 털고 나서야 겨우 기반을 잡았고, 한때 논술쌤으로 유명세를 떨치다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사이 지나간 대통령이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얘는 당선무효지)이었다. 그러다 뉴스를 다시 챙겨보기 시작한 사건이 다름 아닌 12·3 비상계엄이다. 한밤중에 막 잠을 자려 침대에 올라가 눕자마자 울리던 카톡 소리에 유튜브를 켰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뉴스를 닥치는대로 보고 있다. 헌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거의 보지 못했다. 아니 '안 봤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3> 관점 포인트 :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여당은 '열린우리당'이었다. 대통령 탄핵에 민주당 국회의원도 '찬성했다'는 소식에 다수의 국민들은 기겁을 했고, 그런 국민들의 열의가 '열린우리당'을 탄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헌재에서 탄핵 사유가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리자 국민들은 환호했고 '열린우리당'을 적극 지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간신히 '여대야소'를 만들었을 뿐, 열린우리당이 '개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압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고작 9석으로 쪼그라들어 원내구성도 하지 못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진보와 보수 세력을 모두 아우르는 전국구 정당으로 자리를 잡는 듯 싶었다. 하지만 당시 거대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공세는 거셌고, 과거 '한 집안'이었던 민주당의 딴죽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정치에 점점 무관심해진 나는 '정치판'에 관심을 끊어버렸다. 물론 가끔 들리는 정치이야기는 드문드문 걸러서 듣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드문드문 들었던 정치이슈가 바로 '행정수도 이전 문제'였다. 솔직히 뭐 그런 갑다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었고, 노무현의 정부정책에 어깃장을 놓는 야당과 딴죽을 거는 보수언론의 공세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을 한 직후에 '서거'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심지어 정부여당까지 '노무현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에 쌍심지를 켜서 '내편네편'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을 물어 뜯고 있었다. 그나마 '이유를 밝힌 비판'은 들어줄 법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비판 아닌 비난'이었다. 그것도 아주 원색적인 '노무현 대통령의 자격 없음'을 밑바닥에 깔고서 개무시를 하는 맹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대졸도 아닌 '고졸 출신' 대통령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로 몰고 간 것이다. 도대체 '행정수도 이전''고졸 출신'인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학력 미달 대통령이 내놓은 정책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여기에 열린우리당의 뻘짓은 더욱 가관이었다. 똘똘 뭉쳐서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긍정적 여론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자기들끼리 팀킬을 하는 것은 무슨 행태란 말인가? 이런 팀킬에 가장 앞장 섰던 인사가 '유시민'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최근에도 '이재명 대통령 저격(?)'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시민도 은근 '서울대 출신', '운동권 출신'이라는 자부심(?)으로 그 밑으로는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그릇된 신념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패악질(!)을 일삼더니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똑같이 그런 것을 보면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유시민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 눈시울을 붉히면서 '노사모 우수회원'처럼 굴었던 것도 자신이 저질렀던 패악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난 '유시민의 눈물'에 무한 신뢰를 보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비단 유시민만 문제가 아니었다. 열린우리당이 '행정수도 이전' 이후에 벌인 행태도 정말 꼴불견이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지역주의'를 타파한 정당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선거 승리'에만 목숨을 거는 모습은 정말 못 봐줄 정도였다. 그렇게 선거에 승리를 해서 무엇하려고 했던가? 절대다수당이 되어 '독재'라도 펼치려고 했던가?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국민들의 뜻을 경청하고,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초심은 어디가고, 고작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꼼수'나 부리는 못난 짓을 한단 말인가? 국민들은 이런 열린우리당에 단단히 실망하고 말았던 모양이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부끄러운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랬으면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열린우리당은 끝내 재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래선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나가는 글 : 한편 영남 민주화 세력은 모처럼 불어닥친 '지역주의 타파' 분위기를 타고 대구경북 지역까지 세를 불리려 안간힘을 썼던 모양인데, 결론적으로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영남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이 선거에 승리하는 이변을 보여줬지만 오래 가지 않았고, 도로 '한나라당'에게 모두 헌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나라당이 잘나서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이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당시 열린우리당의 별명은 '열린철새당'이었다. 철새정치인이 대거 입당하면서 공천권을 독식하고도 선거에서 패배를 했기 때문에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이다. 이런 모습을 국민들이 바랐던 것이 아니다. 특히나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의 이런 못난 행태에 날선 비판을 보냈다.

여기다 안 좋은 일만 연이어 터지고 말았다. 진보 정당의 '부동산 정책'은 망할 때까지 어깃장을 놓았고, 일본의 패권주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소신 발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환호'는 안 보낼지언정, '일본 편'을 드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선진국인 일본을 이길 수는 없다는 둥, 이웃나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둥, 일본의 도움 없이는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조차 없다는 둥, 입에 담아서도 안 되는 망발을 야당 국회의원의 입에서 뱉어내기 일쑤였다. 여기에 '황우석 사태'까지 겹치며 노무현 정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여기에 보수언론은 연일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솔직히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읽으면서 가장 읽기 힘든 책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 책이었다. 당시 정치에 무관심했기에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몰랐던 내용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 진보 대통령은 정말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정치가 정말 후지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리뷰 #에세이 #한국현대사산책 #2000년대편 #노무현대통령 #대통령탄핵 #열린우리당 #행정수도이전 #황우석사태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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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10 - 영웅들, 별 끝에 지다 이희재 삼국지 10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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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10 : 영웅들, 별 끝에 지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7)

[My Review MMCCCXXXV / 휴머니스트 5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네 번째 리뷰는 사마의와 제갈량의 지략 대결이 펼쳐지는 <이희재 삼국지 10>이다. 드디어 오장원이다. 천재적 전략가인 제갈량이 '유비의 꿈'을 다 이루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둔 장소이다. 보통 '소설 삼국지'의 줄거리는 여기서 마무리를 짓곤 하는데, 사실은 제갈량이 죽고 난 뒤에도 유선은 촉한의 재위를 이어 간다. 유비는 황제에 오른 지 2년만에 죽고 말지만, 유선은 재위 기간이 무려 40년이다. 그러고도 8년을 더 산다. 그런데 우리는 <삼국지>를 읽으며 그 뒷이야기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소설 삼국지는 '소설'로 읽어야지 '역사'로 읽어서는 수많은 오류와 왜곡만 낳을 뿐이니, '구분'해서 읽을 필요성이 있다. 이 책 <이희재 삼국지>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소설 삼국지'를 바탕으로 핵심적인 줄거리만 짧게 축약해서 정리한 책이기 때문에 소설 삼국지를 '읽기 전'에 읽으면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하며 읽을 수 있고, '읽은 후'에 읽으면 소설을 읽는 목적과 맥락을 차분히 음미할 수 있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10> 관점 포인트 : '출사표'를 던진 제갈량은 촉한의 국력을 총동원하여 위나라 정벌을 하려 든다. 무려 여섯 차례다. 하지만 제갈량의 출정은 번번히 사마의에게 막혀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 출정에서 제갈량은 명을 다하고 만다. 실제 역사에서는 제갈량과 사마의 간의 대결은 딱 2번 뿐이었지만, 소설에서는 여섯 번 모두 제갈량의 계략으로 위나라 장수들을 위기에 빠지게 만들지만, 사마의가 출정하면 제갈량이 허점을 드러내고 패배하는 방식으로 묘사하였다. 대부분 '병력과 병량 부족'으로 그랬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서에는 제갈량이 그리 치밀한 전략을 짜지 못했고, 병력 규모면에서 위나라는 늘 앞서 있었던 탓에 제갈량은 번번히 막혀서 물러나야 했다.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정말 치밀한 전략싸움이 벌어지며, 두 나라의 장수들 간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번갈아 펼쳐지며 손에 땀이 찰 정도로 긴박한 묘사가 펼쳐진다. 심지어 사마의는 제갈량의 진법과 매복에 걸려 목숨까지 잃을 뻔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적처럼 살아난다. 바로 '호로곡'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때 제갈량은 자신이 세운 완벽한 계책이 하늘의 도움으로 사마의는 살아나고 제갈량은 실패한 것을 두고,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며 한탄했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없고 소설에서 지어낸 이야기다. 호로곡 전투 당시에 사마의는 전장에 없었고 후방에 남아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관중은 제갈량의 지략이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마의를 죽다 살아아는 것으로 서사를 꾸며냈다. 이렇게 꾸며낸 이야기는 또 있다. 바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다'는 고사다. 이는 오장원에서 명을 달리한 제갈량이 '자신의 죽음'을 알아챈 사마의가 반드시 공격을 해올 것이라며 자신의 모습을 본뜬 인형을 앞세워서 사마의를 후퇴하게 만들고 온전하게 병력을 후퇴를 성사시켰다는 이야기인데, 이 역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사마의가 후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소설을 읽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럼 '정사 삼국지'에서는 제갈량과 사마의를 어떻게 적고 있을까? 역사서 <삼국지>를 쓴 진수는 원래 촉한의 신하였다. 하지만 제갈량과 사이가 좋지 못했고 촉한이 멸망하자 위나라에 항복을 한 뒤, 사마염이 통일을 완수하자 진나라 신하가 된다. 그리고서 '정사 삼국지'를 쓰게 되는데, 제갈량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남은 탓인지 제갈량의 능력이 사마의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고 적었다. 그럼 사마의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없다. 진나라의 신하가 감히 진나라의 기틀을 세운 사마의를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마의는 '추대왕'으로 우리의 <실록>처럼 사관들이 제왕의 업적을 기록할 것이기에 <삼국지>에는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진수가 살짝 제갈량의 위업을 낮췄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 역사가들의 평가도 제갈량의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는데 크게 동의하는 편이다. 다만 '군사'로서 전장에서 활약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을 비춰 군사적 업적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정평이다. 그래서 실제로 사마의와 대결한 것도 두 차례 뿐이었지만, 모두 제갈량이 패배한 것으로 결론이 나온다. 다만 사마의가 아닌 다른 장수들과 벌인 대결에서는 크게 승리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니 제갈량의 실력이 전혀 근거 없는 평가는 아니며, '소설 삼국지'에서 보여주는 천재적인 능력은 모두 사실을 기반으로 '과장'되었긴 하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그런 서사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역사적 진실에 비춰 본다면 소설에 나오는 '제갈량의 업적'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했던 업적인데,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제갈량의 업적으로 둔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이 책에서도 제갈량이 '진법'으로 사마의의 기세를 억누르고, '공성계'로 사마의를 골탕먹이며, '호로곡'에서 사마의가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거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일화는 애초에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다. 다만 마지막 오장원에서 사마의가 수비만 하고 성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여자옷과 장신구'를 선물한 것은 정사에 나오는 진실이다. 사내대장부답게 성밖에 나와서 일전을 겨루지 않고 성안에 틀어박혀 전투를 일체 하지 않는 것을 빗대어 사마의를 도발하려는 목적에서 벌인 일이다. 허나 이마저도 사마의는 제갈량의 '얕은 계책'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여기서 사마의가 제갈량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간파할수 있다.

나가는 글 : 이렇게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죽는 것을 끝으로 <이희재 삼국지>는 일단락이 된다. 전 10권으로 이뤄진 '만화 삼국지'로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의 핵심주제를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는 수작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희재 작가의 책을 믿고 보는 독자이기도 하다. 왜냐면 어려운 고전도 읽기 쉬운 만화책으로 그려 놓치기 쉬운 '핵심주제'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사실 만화책은 '재미'를 추구하다보니 원래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엉뚱한 개그적 발상으로 새기 십상인데, 이희재 작가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담백한 서사'로 통일하였기에 '고전의 내용'을 크게 해치고 내용을 왜곡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뺄 것은 과감히 빼고 넣을 것은 확실히 넣어 '고전의 맛'을 최고로 살려낸다. 그런 까닭에 솔직한 마음으로는 시리즈를 더욱 늘려서 2~30권 분량으로 더 자세히 서사를 이어갔어도 좋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 삼국지>도 전 60권으로 출간이 되었지 않은가 말이다. 솔직히 <전략 삼국지>보다는 <이희재 삼국지>가 더 재밌다.

이전에 리뷰했던 <고우영 삼국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고 고우영 화백은 유머와 위트가 가득한 '세태풍자만화'의 경향이 강하지만, <이희재 삼국지>는 '원작' 그대로의 느낌을 더욱 잘 살려냈기 때문에 두 작품은 완연히 다른 작품이다. 그러니 <전략 삼국지>나 <고우영 삼국지>를 읽었더라도 <이희재 삼국지>도 반드시 읽어야 할 '만화 삼국지'다. 한편, '소설 삼국지'를 읽은 분이라도 일독을 권한다. 길고 긴 장편소설을 읽다보면 주요한 장면을 놓치기 마련인데, <이희재 삼국지>를 읽으면 그렇게 놓친 중요 장면을 빼놓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를 읽은 분이라면 강추다. <평역 삼국지>의 가장 큰 단점이 줄거리 중간중간에 '작가의 평역'이 들어가 있어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황석영의 <정역 삼국지>를 읽으신 분이라면 '글(텍스트)'로 상상하던 대목에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것이다. 다만 요시카와 에이지의 <원전 삼국지>를 읽으신 분이라면 이야기가 사뭇 다르게 전개되는 어색한 느낌을 얻을 수도 있겠다. <원전 삼국지>와 잘 어울리는 것은 <전략 삼국지>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박상률의 <완역 삼국지>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읽고 비교해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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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9 - 출사표를 올리다 이희재 삼국지 9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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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9 : 출사표를 올리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7)

[My Review MMCCCXXXIV / 휴머니스트 5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세 번째 리뷰는 이릉대전에서 크게 패배한 유비는 제갈량에게 뒷일을 맡기고, 제갈량은 유비에게 충심을 보이며 출사표를 내미는 <이희재 삼국지 9>이다. 관우가 죽자 유비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사실 곧바로 동오의 손권을 상대로 복수전을 펼친 것은 아니다. 한중왕에 오른 유비는 아직 조조를 상대해야 하는 바쁜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유비도 '촉한의 황제'에 즉위한 뒤에야 비로소 '복수전'을 떠날 차비를 마친다. 물론 제갈량은 동오는 동맹으로 손을 잡아야 할 대상이지, 사사로운 감정으로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며 만류하지만, 유비는 때마침 찾아온 장비의 통곡 소리에 관우의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허나 얼마 되지 않아 또 하나의 비극이 펼쳐진다. 관우형님의 복수를 하려 군사를 정비하던 장비가 부하 장수의 배신으로 인해 전투도 치루기 전에 비명횡사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비는 이 소식을 듣고 졸도를 할 지경이었지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만은 꺾지 않았다. 그렇게 삼국지 3대 대전 가운데 하나인 '이릉대전'이 펼쳐진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9> 관점 포인트 : 소설 삼국지에서는 '이릉대전'에서 초반에 유비군이 연전연승을 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 승리의 주역이 죽은 관우와 장비의 아들들인 '관흥과 장포'가 대활약을 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릉대전이 한창일 때 관우의 혼령이 이끌어 자신을 죽인 오나라 장수 반장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관흥과 마주치게 한 뒤에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유비군을 달래기 위해 장비의 목을 가지고 항복했던 범강과 장달을 유비에게 보내며 화친을 꾀하지만, 유비는 분노를 참지 않고 두 사람을 장포에게 맡기자 장포 역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하여 두 사람의 목을 베어 장비의 영전에 제물로 바친다. 이때 마량이 유비에게 복수는 이쯤에서 멈추고 동오와 손을 잡고 함께 조비를 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건의했으나 유비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결국 손권을 멸하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에 손권은 육손을 총사령관으로 내세워 유비의 100만 대군을 막으라고 명하자, 육손은 '이릉'을 목전에 두고 성안에 틀어박힌 채 수비만 할 뿐 도통 나가서 싸우려 들지 않는다. 때는 한여름으로 뙤약볕을 막지 못하는 평지에 진채를 세웠는데 육손이 맞서 싸우지를 않자 더위와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유비는 진채를 길게 이어진 강가 숲속으로 옮겨 해결하고자 했는데, 육손이 이때를 노려 '화공' 작전을 펼치며 유비의 '장사진'을 단박에 무너뜨리고 만다. 이에 깜짝 놀란 유비는 진채에 불이 옮겨 붙고 육손의 대군을 막지 못하고 괴멸되자 겨우 몸만 빼내어 '백제성'으로 숨어들고, 때마침 달려온 제갈량에게 유언을 남기며 숨을 거둔다.

하지만 이 역시 정사 삼국지에서는 완전 다른 내용으로 전한다. 애초에 유비의 100만 대군은 많아야 10만이 채 안 되는 8만이라 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육손군도 최소 6만에서 많게는 10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비가 초반에 파죽지세로 손권군을 밀어붙이며 멸망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은 거짓이다. 그리고 관흥과 장포도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 심지어 황충조차 이 전쟁에 참전한 기록이 없다고 할 정도니, 소설 삼국지의 내용은 시작부터 끝까지 '허구적 창작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릉대전 자체가 허구라는 얘기는 아니다. 유비의 공격에 손권은 초반에 허둥거리다 육손을 내세워 '장기전'으로 유비군을 지치게 만들고 난 뒤에 빈틈을 노려 대반격을 가해서 유비를 패배시키고 비통한 마음에 불귀의 객이 되게 만든 사실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나관중의 스펙타클한 서사는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관도대전''적벽대전'도 모두 나관중의 손을 거쳐 화려하게 둔갑(?)한 작품인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 역사서에는 모두 짤막한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 담백한 역사서술을 화려하고 생생한 묘사와 인물 간의 심리전을 극적인 서사로 펼쳐냈으니 정녕 천재 작가라고 해도 물색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바로 그 재미로 소설 삼국지를 읽는 것이고 말이다.

한편, 유비가 세상을 뜨면서 제갈량에게 중임을 맡기니 촉한은 전쟁을 멈추고 동오와 손을 잡고 조비를 상대하려 한다. 왜냐면 이릉대전으로 촉한과 동오가 모두 지쳐있는 빈틈을 노려 조비가 다섯 갈래로 촉한을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제갈량은 조운과 마초, 위연 등을 몰래 보내 네 갈래 공격은 막아내지만, 조비의 부추김을 받아 동오의 손권이 쳐들어오는 길목은 아직 막지 못했다. 이에 제갈량은 등지를 보내 손권과 다시 손을 잡고 조비를 공략하자고 약조를 받아낸다. 이렇게 한 차례 조비의 공격을 막아낸 제갈량은 느닷없이 '남만 정벌'을 공표한다.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풀어주길 반복하여 정벌에 성공하자, 이번에는 대대적인 조비 공략을 위해서 '출사표'를 내놓았다. 무려 여섯 번이나 말이다.

나가는 글 : 오늘날에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단단한 각오'를 내비칠 때 '출사표를 던지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많이 퇴색된 표현이 되고 말았다. 왜냐면 제갈량이 여섯 번이나 출정했다고 모두 실패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제갈량이 쓴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다고 전하지만, 나는 한 번도 눈물이 난 적이 없다. 아마도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제갈량이 보잘 것 없던 처지일 때 유비가 몸소 세 번이나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유비의 꿈'을 충직한 신하인 제갈량 자신이 '대신' 이루겠다는 다짐이 주요 골자이긴 하지만, 그 내용 말고도 차고 넘치는 '한자말'로 구구절절 읊조리고 있기에 뭘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나불거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용이 '격식'을 따지고 '품위'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기에 눈물 따위를 흘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제갈량의 첫 출정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아직 사마의가 조비의 의심을 사서 군권을 갖지 못한 상태였고, 제갈량보다 한참 모자란 조진 장군이 총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제갈량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허나 병참보급을 위해서 필히 막아내야 할 '가정'이란 요충지를 마속이 시건방을 떨다가 빼앗겨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자 제갈량은 모든 병력이 굶어죽기 전에 퇴각을 해야 하는 불운을 겪는다. 이렇게 1차 출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보급 문제'는 제갈량을 끝까지 발목 잡게 되고, 결국 출정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하는 꼴을 면치 못하게 된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읍참마속'인데, 사실은 마속을 죽이긴 하지만 목을 참해서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둬두고 천천히 죽어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가솔을 보살펴 달라고 간청하였고, 마속을 아들처럼 여겼던 제갈량도 이 간청을 받아들여 마속의 아들들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다만 막속이 저지른 죄에 대한 감형은 없었다. 심지어 제갈량 스스로도 패배한 과실을 엄중히 물어서 '승상'직을 내려놓고 '우장군'으로 지위를 격하시켜 패배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출정 당시에 다른 장수들은 마속이 실전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가정'을 지키는데 적임이 아니라고 충고했지만, 제갈량이 이를 묵살하고 마속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며 중임을 맡겼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제갈량이 아들처럼 여긴 마속을 '자신의 후임자'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큰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비리'를 일삼은 셈이다. 이렇게 보면 제갈량도 사리사욕을 챙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도 있지만, 제갈량이 '내정'에서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에 반해서 '실전'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제갈량의 업적은 '정사 삼국지'에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실 '박망파 전투'를 비롯해서 '적벽대전', '한중공략' 등등 제갈량이 참전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박망파 전투는 유비의 작품이며, 심지어 삼고초려를 하기 전에 벌어진 전투였다. 그러니 제갈량이 활약할 수조차 없는 전투였고, 적벽대전의 성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노숙과 주유의 공이 크다. 노숙은 손권과 유비의 동맹을 이끌었던 주인공이고, 주유는 조조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이끈 주인공이었다. 소설 삼국지에서 보여준 제갈량의 활약은 모두 소설 속의 허구적 묘사일 뿐이다. 그리고 유비가 서촉을 차지하고 조조와 '한중공략'에 맞서 싸울 때에 제갈량은 '성도'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정작 조조와 대면하고 맞서 싸운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비였단다. 역사상 조조와 제갈량이 서로 대면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한 것이 무엇인가? 촉한의 내정을 빠른 시일내에 초과달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반면에 전쟁에서는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했고, 큰 활약을 한 적도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천재적인 전략'을 펼치며 모든 전장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으며 무조건 승리로 이끌어내고, 심지어 천변의 재주까지 가지고 있어서 '하늘의 운수'에 통달하고 '동남풍'까지 맘대로 부리는 귀재로 묘사하는데, 이는 나관중의 '허구적 장치'로 소설을 읽는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탁월함을 나타낸 것일 뿐, 실제 제갈량의 재주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기에 소설 삼국지를 '역사'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앞서도 강조했다. 그럼 소설 삼국지를 왜 읽어야만 하는 걸까? 다름 아닌 수많은 영웅들의 다채로운 인생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남을 속이고 이득을 챙기는 모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모략적 처세술'에 어릴 적부터 노출되어 있어서 남을 속이고 이득을 챙기는 것도 훌륭한 지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그런 지혜도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 할 지혜임에는 틀림 없다. 그렇지만 '절박한 생존'을 다투는 일이 없을 때에는 그런 저급한 지혜를 사용해서는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삼국지>는 온통 전쟁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에 매 순간이 '절박한 생존'을 요구하는 혼란한 시대를 담았다. 그렇기에 그런 저급한 지혜마저 엄청 화려하고 멋지게 포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 평화로운 시대에는 어떤 지혜를 써야 할까? 그래서 우리가 소설 삼국지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유비'다. 그는 절박한 순간에도 저급한 지혜로 위기를 모면하기보다는 '신의''인'을 내세우며 기다릴 줄 아는 처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역사속 유비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그도 당시 다른 영웅과 마찬가지로 '저급한 처세술'을 사용하며 촉한의 황제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나관중이 묘사한 유비는 다르다. 소설 속의 유비는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 결국 '올바름'으로 '그름'을 이기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모습과는 많이 왜곡된 모습이지만, 차라리 이렇게 왜곡된 유비의 모습을 통해 배우는 지혜가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이제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10권이 남았다. 기대해주신다면 감사하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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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8 - 중원이 셋으로 나뉘다 이희재 삼국지 8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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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8 : 중원이 셋으로 나뉘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XIII / 휴머니스트 5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두 번째 리뷰는 비로소 삼국정립은 완성했지만 익숙한 주인공들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는 <이희재 삼국지 8>이다. 소설 삼국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도 '유관장 삼형제'가 빠진 대목에 이르면 책을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급기야 책에서 손을 놓는 독자들도 꽤 많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학창시절에 <삼국지>를 읽을 때면 늘 유비가 '입촉'을 하는 대목에서 멈추곤 했다. 그 뒷내용에 제갈량이 대활약을 하는 대목이 나오는 걸 알고 있지만, '팥소가 없는 찐빵'을 먹는 듯 읽는 맛이 시들하기 때문에 점점 읽기가 싫어지곤 했다. 그래서 소설 삼국지를 '완독'한 것은 놀랍게도 20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역시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이희재 삼국지 8>에서 비록 관우는 생을 마감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관우가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우'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8> 관점 포인트 : 지난 편에서 유비가 드디어 서촉을 정복하고 '한중왕'에 오른다. 이에 조조는 대노하며 유비를 공략하는데, 먼저 관우가 버티고 있는 형주를 공략하기 위해서 '번성'에 집중한다. 하지만 천하의 관우가 버티고 있는 형주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조조는 관우를 상대하며 우금과 방덕을 보냈지만, 둘 다 관우의 상대가 못되어 우금은 포로가 되고, 방덕은 패배한 장수라는 이유로 죽음을 바란다. 이렇게 쓰디쓴 패배를 당한 조조는 '형주 공략'을 위해 손권에게 손을 내미는데, 이게 관우의 목숨줄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손권도 이미 유비와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조조와 손을 잡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유비와 잡고 있는 손을 꼭 잡을 까닭도 딱히 없었기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관우의 딸'이 혼기가 꽉 찼으니 '손권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하여 함께 조조와 맞선다면 큰 이득이 될 거라는 제갈근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허나 관우는 이를 단 한 마디로 거절한다.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보낸단 말이냐. 그대가 군사(제갈량)의 형만 아니었어도 당장 목을 베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 말로 인해 관우는 자신의 목숨줄을 끊어 짧아지게 만들 줄이야.

사실 손권의 혼인 제안은 관우에게 있어서 손해볼 일이 아니다. 손권은 대대로 '동오의 제후'였고, 관우는 '한중왕 유비의 신하'였지 않은가. 아무리 관우가 한중왕에 오른 유비와 '호형호제'하는 막연한 사이였다고 하더라도 손권은 관우보다 급이 높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다면 관우는 거절을 하더라도 '완곡'히 했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조조가 군사를 보내 형주를 넘보고 있는 실정이 아니었던가. 일찍이 제갈량도 조조와는 험악하더라도 손권과는 막역하게 지내라 충고했었는데, 관우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양쪽의 적국 모두를 '적대시'하는 만용을 부리고 만 셈이다. 결과적으로 관우는 이렇게 만용을 부리다 죽음을 면치 못하고 말았다.

손권도 불같이 화를 냈다. 모처럼 내민 화해의 손을 야멸치게 거절한 것으로도 모자라 '모욕'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손권은 여몽을 총대장으로 삼아 '형주 공략'의 선봉으로 보낸다. 졸지에 관우는 양쪽 모두와 전쟁을 벌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허나 관우도 지략이 뛰어난 장수였다. 말을 타고 싸우는 전장에서도 늘 품에 <춘추좌씨전>을 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서 읽었을 만큼 똑똑한 면모도 있었다. 그래서 관우는 조조를 상대로는 '강공'을 펴며 형주로 쉬이 내려오지 못하게 했고, 손권을 상대로는 '길목'을 막고 대군을 진입조차 하지 못하게 꽉 틀어막는 전략을 펼쳤다. 그래서 소수의 병력으로도 양쪽의 전장을 모두 막아내는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 셈이다. 여기에 '봉화대'라는 연락망을 깔아서 손권의 기습에 철저히 대비하는 지혜로 발휘했던 것이다. 손권군 총사령관인 여몽이 이것이 골치였다. 대규모 수군을 빠르게 접안시키고 형주의 길목인 '육구'를 통해 대병력으로 밀어붙이려 했는데, 봉화대로 침략의 소식이 전해지면 관우도 '수비병력'을 급파해서 여몽의 기습을 차단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관우도 여몽의 실력을 인정했기에 적극적인 수비대책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생긴다. 여몽이 병으로 총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육손'이라는 젊은 장수가 총사령관이 되었다는 첩보를 관우가 받게 된다. 관우는 여기서 엄청난 실책을 하고 만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고 새파랗게 어린애가 총사령관이 되었다면 더욱 신중하게 더 많은 첩보를 얻어 조심성을 높였어야 하는데, 관우는 '방심'한 것으로도 모자라 '개무시'하는 전략을 짰고, '봉화대' 하나만 믿고 대다수의 병력을 조조군 공격에 나서게 만들었다. 영특한 육손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감시망'을 뚫어 봉화대를 하나둘 무너뜨린 뒤에 형주성을 차레차례 점령해버린다. 이렇게 관우는 '본진이 털렸다'는 소식을 전하고 뒤늦게 철군하지만, 이미 형주성을 굳게 지키고 있는 육손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형주성 안에 있던 식솔들의 안부가 걱정이었던 관우의 병사들은 육손에게 점령 당했지만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 탈영을 하고 만다. 이렇게 육손에게 눈 뜨고 코 베인 관우는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맥성'에서 버티면서 서촉에서 구원병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지만, 이때를 놓치지 않고 손권군이 사방에서 공격을 해오니 관우는 더 버티지 못하고 맥성에서 나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고 만다.

이렇게 손권 앞에 끌려온 관우는 패장이 되었으니 죽이라고 말하지만, 손권도 조조와 마찬가지로 관우와 같은 '만인지적의 영웅'을 탐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항복을 하고 충성을 다짐하면 살려주겠다고 꾀어 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거기에 덧붙여서 관우는 손권을 또 모욕하기 시작한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손권은 어차피 관우는 순순히 항복할 인사가 아니라는 신하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참수'하고 만다. 당장의 분을 풀긴 했지만 손권은 뒷일이 걱정이었다. 관우를 죽였으니 유비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권은 그 화를 조조에게 떠넘기고자 '관우의 수급(목)'을 소금에 절여 조조에게 보낸다. 조조는 관우의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바라보았지만, 관우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무섭게 노려보자 조조는 그 자리에서 졸도를 했다나...암튼, 조조는 관우의 몸을 대신해서 '나무 몸통'을 만들어 관우의 시신을 정중히 모시고 장례를 성대히 치뤄 관우의 넋을 보냈다. 그러자 관우의 넋은 여몽에게로 달려가 여몽을 급사하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뒤 조조도 관우의 혼령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앓다가 220년에 죽는다.

나가는 글 : 소설 삼국지에서는 '관우의 죽음'으로 여몽도 죽고, 조조도 죽고, 뒤이어 장비도 죽고, 황충도 죽고, 유비도 죽는 비운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정말 '관우의 원혼'이 이들을 하나하나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일까? 사실 '정사 삼국지'에 전해지는 관우에 대한 사료는 빈약하다 못해 1천 자 정도라고 한다. 200자 원고지 5매 정도, A4 용지 1장 정도의 적은 분량이 전부라는 말이다. 이를 나관중은 '소설 삼국지'에서 관우를 스타급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관우 숭배'를 하며 신으로 모실 정도고, 지식인들도 관우의 충성과 의리가 남다르다며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낼 정도다. 심지어 국가차원에서는 '관성 대제'라고 불리며 거의 황제급으로 대우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도대체 관우에게는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관우가 유비, 장비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 토벌을 위해 의병을 일으키기 전에는 고향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을 친 살인자였다. 그렇다고 관우가 죄 없는 사람을 살인강도한 전과자였다는 얘기는 아니고, 의롭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악인'을 보고 참지 못하고 단칼에 베어버렸던 의로운 살인자(?)였던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관우에게서 첫 번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관우가 '정의로움' 하나만큼은 끝내준다는 사실이다. 불의를 보고 참지 않는 성격을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진리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결코 있을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범죄자'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도 관우의 '정의로운 모습'은 참을 수 없는 매력포인트가 분명하다. 살인을 용납할 수는 없으니 '폭행' 정도에서 그치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그럼 두 번째 매력은 무엇일까? 곤궁한 처지에 빠졌어도 '의리' 하나는 끝내주게 지키는 지고지순한 매력이다. 물론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집불통'에, 앞뒤 꽉 막힌 '꼰대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바른말만 하는 '바른생활의 싸나이'가 고집을 부리니, 이게 또 매력적으로 보인다. 제 잇속만 챙기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바쳐 국가에 충성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더 챙기며, 한 번 맺은 '의리'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변치 않고, 아무리 더 좋은 조건으로 회유를 해도 굴하지 않고 꺾이지 않으니, 그게 또 매력적인 것이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조폭 냄새'가 풀풀 나지 않은가? 의리 지키는 건 좋은데 오직 '자기집단의 이익'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혹여라도 '자기집단'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으면 냉혈동물보다 더 차갑게 외면하는 일면도 보이기 때문이다. 손권의 아들과 혼사를 논할 때도 그렇다. 때와 상황에 맞춰서 때때로 유연하고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최선일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조차 의리 따지고, 의리 따지고, 또 따지는 꽉 막힌 모습은 그야말로 꼰대, 꼴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더 많겠지만 마지막 세 번째 매력은 무엇일까? 그건 '만인지적'이라 불릴 정도의 용맹함이다. 말 그대로 만 명의 적을 상대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지략과 용맹을 갖춘 장수를 일컫는 말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도 관우와 장비를 일컫어 '만인지적'이라면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장(날으는 장수)'이라 불렸던 여포와 비교하면 어떨까? 소설 삼국지에서는 호뢰관 전투에서 여포와 유비 삼형제의 대결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포가 방천화극을 꼬나들고 연합군의 장수를 일격에 죽이고 있자 장비가 앞장서서 나가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싸우니, 이를 지켜보는 관우가 불리하다 여겨 청룡언월도를 옆구리에 끼고 부리나케 달려가 싸움에 합류했으며, 곧이어 유비도 쌍고검을 들고 싸움에 합류하니, 그때서야 버거움을 느낀 여포가 빈틈을 엿보다 몸을 빼내어 달아났다. 유관장 삼형제는 그 뒤를 바투 쫓았으나 여포가 탄 말이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적토마였던지라 끝내 놓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인중여포 마중적토'라는 고사를 남겼으니, 사람 중에는 여포가 최고이고, 말 중에는 적토마가 최고라는 뜻이다. 이런 서사를 참고한다면 '만인지적''비장'에 비해 한 단계 낮은 급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포는 지략이 부족하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해서 대중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관우는 다르다. 그의 용맹은 정의로움과 의리와 함께 하니 더욱 찬란히 빛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관우를 살펴봤는데 어떤가? 오늘날의 여러분 시선에서도 관우는 충분히 매력적이라 느껴지는가? 아니면, 대부분 꾸며낸 허구 속 설정이라는 '팩트'에 기반해서 실망감이 앞서는가? 그도 그럴 것이 관우의 업적이라 불리는 술잔이 식기 전에 '화웅을 죽인 업적'은 손견이 죽인 것이 정설이고, 안량과 문추를 베었다는 이야기도 '문추를 죽였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유비 형님을 찾아 '오관육참장 했다'는 이야기는 소설에만 나오는 뻥이며, 관우가 독화살에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화타'가 치료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다. 관우가 독화살에 맞아 치료한 시기는 이미 화타가 조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우가 엄청 멋있게 묘사된 내용은 거의 전부 '소설 속 허구적 묘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설 삼국지를 읽으며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 재미난 이야기를 읽고 '역사적 호기심'이 생긴 것이라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관우의 모습은 '실제로 있을 법한' 허구적 묘사에 불과하지만, 너무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관우의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정의로움', '의리', 그리고 '용맹함' 정도는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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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라고 말하지? : 제대로 알고 부르는 가족 호칭 우리말 표현력 사전 8
이윤진 지음, 임광희 그림 / 한솔수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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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수북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도대체 뭐라고 말하지? : 제대로 알고 부르는 가족 호칭> 이윤진 / 한솔수북 (2026)

[My Review MMCCCXXXII / 한솔수북 2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한 번째 리뷰는 가족 간에 가장 기본이지만 요즘엔 정말 부르기 힘든 '가족 호칭'을 알려주는 <도대체 뭐라고 말하지?>다. 이 책은 한솔수북에서 나온 '우리말 표현력 사전' 시리즈 가운데 여덟 번째 책으로 고모와 이모처럼 '가족끼리 부르는 호칭'에 대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과거에는 우리 민족의 가족 형태가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가족을 부르는 호칭을 꼭 알아야 했고 제대로 불러야 했다. 하지만 우리 나라가 산업사회가 되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게 되자 가족의 형태도 '핵가족'이 되었다. 핵가족이란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명의 자녀가 있는 4인 기준의 소규모 가족 형태를 말한다. 하지만 핵가족 형태가 되었어도 명절이 되면 '민족 대이동'을 하며 부모님(할머니, 할아버지)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떠나는 '귀경길'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가족 호칭'은 꼭 알아야 하고 제대로 불러야 했다. 그럼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도대체 뭐라고 말하지?> 관점 포인트 : 요즘에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졌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다문화가정'이 많아졌고, 이혼이나 맞벌이 등과 같은 다양한 사정으로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도 점점 증가 추세다. 그러다보니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 '가족 호칭'을 부를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저출생''결혼 기피 현상'과 같은 사회문제가 두각되면서 '가족 호칭'을 아예 불러볼 기회조차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인구수가 점점 줄어드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가족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일은 단순히 '가정 교육'이나 '공교육'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멸종(?)을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중대한 사회문제로 인식할 수도 있다.

시작부터 엄청 무거운 주제로 시작했는데 어쩔 수가 없다. 최근에는 늦은 결혼으로 인한 '불임', '난임'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자녀를 하나만 두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고,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는 '1인 가정'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걱정스럽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족 호칭' 따위는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왜냐면 '가족 호칭'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 표현력 사전'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소중한 우리네 전통문화를 지키고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다. 1권 '나이와 시간'을 나타내는 말, 2권 '비슷한 말, 높임말', 3권 '관용 표현', 4권 '맞춤법', 5권 '의성어, 의태어', 6권 '이것 저것 세고 재는 말', 7권 '우리 속담' 등.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빼거나 없애버릴 것이 있느냔 말이다.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절대 잊혀져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가족 호칭'은 제대로 알고 불러줘야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제대로 부를 줄 알고 있어도 '부를 일'이 없는 것이 문제다. 한 자녀 가정에게는 형제/자매가 없으니 훗날 그 자녀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둘셋 낳아도 '삼촌'이 없다. '촌수'로 삼촌에 해당하는 호칭은 친족으로는 '삼촌', '고모'가 없는 셈이고, 외족으로는 '외삼촌', '이모'가 없다. 삼촌이 없으니 당연히 '사촌'도 없다. 오촌 당숙(아저씨)이란 호칭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 뿐만 아니라 '동서'가 사라지기 때문에 '형수/제수', '매형/매제', '처형/처제' 같은 호칭도 자연스럽게 없는 셈 쳐야 한다. 그러니 '가족 호칭'을 부를 일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와 동시에 한민족의 멸종(!)까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그렇다고 그런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조건 결혼을 강요하고,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족 호칭'을 자주 불러 주는 방법이 있다. 아니 '없는 사람(존재)'을 불러..부를.. 그럴 수 있을까?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 귀띔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비록 나의 '친삼촌'은 아닐지라도 삼촌이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친근하게 부르는 방법이 있다. 친족 관계는 아니어도 좋다. 이미 우리는 '식당 이모'라고 부르지 않은가. 이렇게 삼촌과 이모라는 호칭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호칭'이 되는 것이다.

나가는 글 : '가족 호칭'을 살려내면 앞서 말했듯이 한민족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다. 그만큼 위대한 일이란 말이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중대한 죄를 지은 죄인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렸는데, 이때 '삼족을 멸하라'는 형벌이었다. 여기서 '삼족'은 할아버지, 아버지, 나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이는 '삼대'라고 부른다. 그럼 '삼족'은 무엇일까? 바로 나의 아버지 가족을 통틀어 이르는 '친족', 나의 어머니 가족을 통틀어 이르는 '외족', 그리고 나의 아내쪽 가족을 통틀어 이르는 '처족'을 모조리 처형하는 형벌이었다. 그야말로 온가족이 풍비박산 나고 '사돈''팔촌'까지 쑥대밭이 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요즘에는 팔촌까지 갈 것도 없이 사촌간에도 데면데면해서 왕래가 없는 집안도 많은 형편이다. 가뜩이나 자주 불러줘야 할 '가족 호칭'인데 말이다.

이 책에는 '친족''외족'은 물론 '처족'에 대한 호칭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하지만 딱 '사촌 사이'까지만 나와 있다. 오촌, 그 이상의 촌수에 대한 호칭은 벌써 오래전부터 '부를 일'도 없고, '가르칠 일'도 없는 셈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촌 이내마저 '그럴 일'은 없어야겠다. 누차 강조하지만 누구라도 불러주기만 하면 '꽃'이 되는 법이다. 나도 누구에게라도 기꺼이 '꽃'이 되어 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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