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 2032~2033 AI가 채점하는 서·논술형 입시가 온다
오주연.김지예.김현아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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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 2032~2033 AI가 채점하는 서·논술형 입시가 온다> 오주연, 김현아, 김지예 / 한빛비즈 (2026)

[My Review MMCCXLVII / 한빛비즈 18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여섯 번째 리뷰는 AI 시대 초중고 입시교육대비가 궁금한 모든 이들을 위한 <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이다. 책제목에 '엄마'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학부모가 읽어도 좋을 책이고, 선생님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AI 시대에 걸맞는 '자기주도학습'을 위해서 읽어도 좋을 책이다. 각설하고, 대한민국 교육트랜드는 뭐니뭐니해도 '대학입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훌륭한 학생이고,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야 훌륭한 학교, 훌륭한 학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이런 대한민국 교육트랜드는 계속 유지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럴 것 같다. 적어도 AI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진입 초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분명 달라질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지만,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예측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대학입시제도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은 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관점 포인트 : 먼저 가장 확실한 것은 '객관식 평가의 종말'이다. AI 시대가 되면 '정답'을 맞추는 공부는 전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유능한 도구인 AI를 누구나 간단히 쓸 수 있게 될텐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정답맞추기 학습을 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 그래서 '있다/없다', '맞다/틀리다'와 같은 단순지식을 외우는 학습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서술/논술형 평가'가 다시 주목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 평가방식이지만, 조금 달라지는 것이 있다. 바로 'AI 채점의 도입'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술/논술형 평가에서 골머리를 썩히던 것이 '평가의 공정성'이었다. 운동경기에서도 '심판의 판정 시비'가 많아지면서 'AI 판정'이 일부 도입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학교현장에서도 이를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써 '평가의 공정성 시비'에서 작게 나마 벗어날 수 있고, '교사의 평가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도입/확대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럼에도 문제는 있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AI가 평가한 점수를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또는 AI의 채점결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는가?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채점을 하는데 있어서 '공정성'을 높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100% 완벽하지 않은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그 유명한 '세종대왕 맥북 던짐 사건'은 AI가 얼마나 거짓말에 능숙한지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현재도 많이 개선되었고, 앞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AI가 감쪽같이 인간을 속이지 않고 항상 '참'말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AI 채점을 도입했을 때, 아이들은 '어떤 방식의 학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채점'만 AI가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습을 할 때에도 AI를 '학습도구'로 활용해서 학습을 할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수행평가의 경우에 아이들이 AI에게 '문제'를 묻고 AI가 풀어낸 '답변'을 정리해서 내놓은 '과제'를 선생님은 거둬서 AI에게 '채점'을 의뢰하고, AI는 'AI가 푼 과제'를 채점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뭔가 괴리가 생기고 만다. AI 시대에 AI는 유용한 '학습도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숙제와 과제 뿐만 아니라 시험을 치룰 때에도 학생들은 AI를 유용하게 '학습도구'로 사용해서 제출하고, 평가를 위한 답안도 제출하게 될 것이다. 그걸 AI에게 다시 채점을 받는 것이 과연 학습에 도움이 될 것인가 말이다.

분명 초기에는 이런 문제점들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학생들이 학습방법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능한 학습도구인 AI를 아주 잘 사용하는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AI 시대 대입수능은 어떻게 정착될 것이냐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객관식 평가'는 무의미해지게 되고,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보다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논술형 평가'가 정착하게 될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도 '즉문즉답 형식'으로 바로 묻고 바로 답하는 평가를 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즉문즉답의 평가'의 끝판왕은 다름 아닌 '면담/토론하기'가 될 것이고 말이다. 과연 우리 학생들이 이런 평가 방식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학습을 해야 할까?

그 해답은 바로 '문해력 학습법'이다. 문해력은 말 그대로 '글을 이해하는 힘'이다. 물론 글 뿐만 아니라 '그림', '도표', '사진', '영상' 등이 주어져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문해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배경지식'을 풍성하게 해야 문해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배경지식을 넓고 깊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다름 아닌 '독서'고 말이다. 이래저래 독서 열풍이 다시 불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단순히 '다독'만이 정답은 아니다. 많이 읽는다고 문해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읽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깊이 읽기'를 해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배경지식도 넓히고 자기 주장도 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읽고 '다른 생각'도 곰곰이 따져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사고력이 확장되어 여러 가지 생각을 요모조모 따져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기'까지 활동이 이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점이 생긴다. 현행 우리 나라 교육현장에서 '독서교육'과 '토론수업'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각 학교와 학급을 맡은 선생님들이 이런 방식의 학습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 있으며, 대한민국 교육당국이 '독서교육'과 '토론수업'을 실시하고 공정한 평가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지침'을 내릴 만한 로드맵이 있느냐는 것이다. 2032년이면 불과 6년 뒤다. 현재 초등학생들은 이미 이런 학습을 시행하고 있어야 '달라진 대학입시'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래 저래 AI 시대를 맞이할 대비가 시급하기도 하고 철저해야 하는 어려움이 산적해 있는 현실이다.

나가는 글 :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말한 '대안'으로 나온 '밥상머리토론', 'NIE글쓰기', '역지사지토론', '대입논술글쓰기' 등을 이미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실행해보았기에 더 크게 공감했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학습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조차 이런 수업을 다양한 학생들에게 적용하여 효율적인 학습을 시키기 위해서 지난 20여 년간 '다독'을 몸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재교육의 시작도 다름 아닌 '독서'였다. 평소 독서습관이 몸에 밴 아이들만이 '영재반'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왔다. 이는 AI 시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국제 바칼로레아(IB)' 학습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에도 오래 전부터 찬성하는 쪽이었다. 서술과 논술을 기본으로 올바른 독서습관을 길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밑바탕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뿌리깊은 학습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IB 학습법이 그렇게나 많은 '로열티'를 내야하는 것인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학습법이라도 '국부'가 줄줄 새는 방식이라면 당연히 바꿔야 한다. 애초에 대한민국 교육부가 능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늘 그랬듯이 '차고 넘치는 실력'을 갖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형 바칼로레아(KB)' 학습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오히려 전세계에 'K-논술프로그램'을 선택하게 만들면 될 것이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끝으로 공감하는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문과형 영재 프로그램'을 확충해서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는 '인문학 붐'을 되살리고, 전세계에서 '한글공부 열풍'에 발맞춰서 '한국어로 풀어낸 인문학'도 영재교육 지원을 늘려나가 더욱 번창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데 크게 공감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세계가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시대적 조류에 흐름을 타야하는 것이 백 번 옳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이 해마다 엄청난 자원을 뿌려가며(?)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세계에 알리려 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한국어 지원에 상대적으로 인색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전세계인들이 아무런 지원도 없는데, 그저 좋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어 공부'를 선택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옛말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다. '문과형 영재'를 길러내는 프로그램을 AI 시대에 발맞춰서 확충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순간, 전세계인들이 '한국어와 한글'로 된 빅데이터를 알아서 제공하는 덤까지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서 후회하면 정말 안 될 일이다.

이제 AI 시대로 접어드는 것은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 끝이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그 시작만큼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 시대로 변모할 준비를 하는 나라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반드시 AI 강국으로 발돋움 할 것이다. 그 시대에 걸맞게 어릴 적부터 독서습관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른 인재를 만드는 것, 그것이 새로운 K-컬쳐로 전세계의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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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금지! - 2026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라가치상 CrossMedia 스페셜 멘션 수상 함께 그린 책
이경국 지음, 이경국과 아이들 그림 / 로이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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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금지! : 2026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라가치상 CrossMedia 스페셜 멘션 수상> 이경국 / 로이북스 (2025)

[My Review MMCCXLVI / 로이북스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다섯 번째 리뷰는 그림책 작가와 아이들이 함께 그려 국제도서전에서 수상을 한 그림책 <상상 금지!>다. '스페셜 멘션'의 뜻을 몰라 검색을 좀 해봤다. 정식 수상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작품에 대해 '특별 언급'을 한다는 의미에서 수여하는 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특별상'인 셈이다. 거기에 '크로스미디어'라는 것도 함께 검색을 해보니,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다는 의미로, 이 그림책에서는 한 명의 작가와 600명의 어린이가 힘을 합쳐서 그려냈다고 한다. 그 아이디어가 참신해서 특별상을 수상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상상 금지!> 관점 포인트 : 아이들의 상상력이 무한하다는 것은 너무 잘 압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의 상상력을 꺼내려 들면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아이들은 '표현력'이 상상하는 것만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켜서 표현을 잘 할 수 있게 교육을 시키고 나면 어떨까? 그때는 '상상력'이 능숙한 표현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게 된다.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릴 적에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때, 그 상상력이 위축되지 않도록 어른들이 잘 이끌어줘야 한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떤가요? 아이들이 상상력을 무한하게 발휘할 때 어떤 말과 행동을 했나요? 예의범절에 어긋나니 그런 상상은 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 있는 상상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너무 이기적인 상상이니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아이들을 훈육시키기에도 벅차서 아이들이 상상을 하는데 '제약'을 주곤 한다. 물론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예절이고 도덕이고 규율이니 반드시 '훈육'해야 할 내용이긴 하다. 그런데 아이가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는 묻질 않는다. 그저 '어른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아이들의 기준'은 무시한 채 그저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이게 바로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되바라진 말과 행동을 해도 냅두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방치'하라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왜 그런 상상을 했느냐고 말이다. 어른들이 보고 듣기에 썩 바람직하지 않은 '상상력'을 아이가 발휘한 것 같다면 차분하고 궁금하다는 말투로 아이에게 되물어 보라. 그러면 아이들은 '나름의 표현력'으로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그걸 충분히 들은 뒤에 혼낼 일이면 혼내도 늦지 않고, 가르칠 일이면 옳게 가르쳐도 절대 늦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표현력'이 함께 발휘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어릴 적에는 자녀가 조금만 잘못을 해도 윽박을 지르고 큰소리로 꾸중부터 하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세 살'이 될 때까지 그 흔한 "엄마"라는 옹알이도 하지 않아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엄격한 잣대는 아무런 부작용도 없는 것으로 철떡같이 믿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세 살'이 넘자 옹알이 수준을 바로 뛰어넘어 입에서 봇물 터지듯이 '문장'을 쏟아내자 한 시름 덜었다고 말씀하셨단다. 그래도 일곱 살까지는 철딱서니 없이 굴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는데, 일곱 살에 크게 혼난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때부터 입을 닫고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에 심한 '말더듬이'가 되었고, 50살이 넘은 지금도 살짝 그런 증세가 남아 있을 정도다.

이런 내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할 적에 되도록 차분한 분위기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려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남자선생님'이라는 제약 때문에 아이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뭐, 나중에는 '종이호랑이 선생'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머리꼭대기에 기어올라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건 나중 문제다. 암튼,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걸 아무런 부담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회와 가정 환경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 <상상 금지!>를 읽고 있으니 흐믓했다. 처음에는 '한 작가의 그림'치고 너무 이상야릇한 그림들이 등장을 해서 의아해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이상야릇한 그림들의 정체가 순수한 아이들이 직접 그린 작품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들의 '표현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무려 600명의 어린이가 함께 참가해서 이경국 작가와 협업을 해서 펴낸 그림책이었던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텐데 대단하다.

나가는 글 : 아이들의 상상에 '어른들의 잣대'를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상상을 하기 때문에 섣불리 '그 기준'에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독창성'은 단번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에덴 동산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세상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고 부끄러움을 배우고 누리던 자유를 누리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난 뒤에 '자기만의 기준'이 세상의 잣대에 비해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우고 난 뒤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그런 '자아정체성'이 완성되기도 전에 어른들의 개입과 강압이 작용하면, 상상력은 '표현력'이란 날개를 달기도 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상상력을 감상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순수하고 연약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의 잣대로 보면 아이들의 그림이 매우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좀더 예쁘게 그렸으면 좋겠고, 좀더 구도와 비율이 맞게 그리면 좋겠고, 알록달록한 강렬한 색감보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표현했으면 더욱 생동감과 사실감이 살아나서 '실재'와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그림을 그렸을 거라는 '욕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그런 어른들의 욕심을 완벽하게 살려냈다면 이 책 <상상 금지!>가 수상작이 되었을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들고 하얀 도화지에 자신만의 그림을 표현한 노력에 어른들은 먼저 감동해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라. 아이가 그린 그림이 '무엇'을 그린 그림이고, '무슨 상상'으로,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아이들의 목소리(표현력)에 귀를 기울여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옹알이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상상력에 미치지 못한 표현력 부족 때문이다. 아쉬워 할 것은 전혀 없다. 적당한 '표현방법'을 부모님이 가르치면 되기 때문이다. "이건 아빠가 보기에 호랑이 무늬처럼 보이는구나. 그런데 잠자리 날개가 달렸네. 그럼 하늘을 나는 호랑이구나. 맞니? 그럼 이름은 뭘로 지으면 좋을까? 호랑이와 잠자리니까 '호랑잠자리'라고 지어볼까? 아니면 호랑이는 영어로 '타이거', 잠자리는 '드래곤플라이'니까 '타이곤플라이'라고 지어볼까?" 아이의 상상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른들도 이해할 수 있는 '표현력'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그 나름의 방식과 기준으로 '표현력'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다음에 상상했을 때에는 '아이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상을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책은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아주 훌륭한 교재다. 그러니 많이 읽히고 스스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늘 가까이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교육법이다. 엄마아빠가 먼저 읽고 '좋은 그림책'이라 생각되면 자녀에게 '권해줘도' 좋고 말이다. <상상 금지!>는 어떻게 읽혀주는 것이 좋은지도 한 번 고민해보는 것도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이라면 꼭 해봐야 할 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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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7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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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7>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XLV / 문학동네 3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네 번째 리뷰는 읽어도 읽어도 재미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고우영 삼국지 7>이다. <삼국지> 초반에는 용맹한 장수들이 등장해서 신나게 한 판 승부를 벌이지만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날고 기는 용맹한 장수들 위에 '지략'을 뽐내는 책사들의 한 판 승부가 펼쳐지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게 된다. 특히 제갈량이 등장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귀신 같은 솜씨로 적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장면이 펼쳐지면서 <삼국지>를 읽는 재미를 더하게 된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 vs 주유'가 그런 재미를 주었다면, 적벽대전 이후 바야흐로 '천하삼분지계'가 완성되기 직전에 방통이 대활약하는 장면이 펼쳐지게 된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고우영 삼국지 7> 관점 포인트 : 적벽대전에서 제갈량과 주유가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면, 그 준비에 걸맞게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게 해준 결정적 조력자를 꼽으라면 단연 '방통의 연환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황개가 용맹하게 화공작전을 펼치고,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어재꼈다고 하더라도, 조조의 대선단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꽁꽁 묶어두는 계략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결코 대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방통의 활약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을 손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방통이 일찌감치 조조의 책사가 되길 거부했고, 손권의 책사도 거절했다. 그리고 남은 한 세력, 유비와 손을 잡고자 한다. 일찍이 유비가 유표의 품에서 '책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낮출 시기에 양양 일대의 현자 사마휘가 일러준 말이 있다.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하나만 얻을 수 있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복룡은 공명 제갈량을 이르는 말이었고, 봉추는 사원 방통을 이르는 말이었다. 엎드린 용을 '복룡'이라 부르고 어린 새끼 봉(수컷이 봉, 암컷이 황, 합쳐서 봉황)을 '봉추'라 불렀던 것이다. 책사들 가운데에도 젊은 축에 들었기에 그런 별명이 붙었으나 아직 정식 '출사'를 하지 않은 인재이기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런 용과 봉이 한꺼번에 유비세려게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유비는 천하를 얻게 되는 것일까?

초기에는 순탄하게 진행이 된다. 유기 공자의 사후에도 유비는 계속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형주 땅'에 머물러 있었고, 유비만의 영지를 마련하면 기꺼이 형주 땅을 손권에게 건내주겠다는 약조까지 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유비는 제갈량의 권유대로 '형주의 남쪽 지역'을 차지하러 원정을 떠난다. 궁극적으로 익주를 다스리는 유장에게서 파촉 땅을 얻어야 비로소 '천하삼분'이 이루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 밑천으로 삼기 위해 형주의 나머지 지역을 공략에 나서게 되는데, 유비는 이곳에서 황충과 위연, 마량과 공지 등 여러 인재를 얻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서촉을 향해 진출을 노린다.

여기서 유비는 빈약한 세력이나마 둘로 나누게 된다. 제갈량과 관우, 장비가 형주에 남고, 방통과 조운, 황충 등이 서촉으로 원정을 떠나게 된다. 유비는 새로 얻은 인재들을 이끌고 '자기만의 영지'를 얻으러 떠난 것이다. 하지만 일이 순탄지 못했다. 출정 직전에 손권은 유비에게서 손상향을 데리고 옴과 동시에 유비의 하나 뿐인 아들인 '아두(훗날 유선)'를 꾀어내 납치하여 형주 땅을 뺏으려 들었고, 빈약한 원정대를 이끌던 부군사 방통은 위업을 서두르려다 그만 '낙봉파'에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비는 '천하삼분'의 한 축으로 홀로서기를 하려 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나가는 글 : 그럼 방통은 왜 조조나 손권이 아닌 유비를 택했던 것일까? 능력면에서 본다면 '제갈량'보다 못하지 않은 실력자였으니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실력을 뽐내며 출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연의'에서 그 이유를 찾자면 방통이 엄청난 '추남'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못 생겨서 실력을 뽐내기도 전에 퇴자를 맞았던 것이다. 영화 <관상>을 봐도 얼굴 생김새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던 듯 싶다. 간추리면 '잘 생겨야' 출세에도 유리했고, '잘 생겨야' 실력을 뽐낼 기회를 주었던 모양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면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옛날에는 오죽했을까?

더구나 조조는 못난 유장을 대신해서 서촉을 갖다 바치려 찾아간 '장송'을 방자한 행동거지 탓을 하며 쫓아내지만, 결국엔 '못 생겨서' 푸대접을 하였다. 그러나 추남이었던 방통도 일찌감치 그런 푸대접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손권도 적벽대전에서 큰 공을 세운 방통에게 후한 대접을 해줘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왠일인지 손권은 방통을 마뜩찮아 했다고 한다. '겉모습'만 보고서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핑계를 댔다는데, 암튼 방통은 이래저래 추한 외모 때문에 서러움을 당한다. 그렇다고 유비도 방통을 제대로 대접한 것은 아니었다. 손권에게 퇴자를 맞았을 때 노숙이 이를 안타까워하며 방통에게 유비에게 가보라며 '소개장'을 써주었고, 제갈량도 적벽대전 이후 순시를 떠나기 전에 방통을 만나 '추천서'를 건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방통이 첫 대면에서 유비에게 그것들을 보여주었다면 서운한 대접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통은 그것을 내놓지 않고서 유비를 시험에 들게 했다.

유비는 방통을 아주 내치지는 않았지만 아주 작은 고을(계양군 뇌양현)의 현령으로 삼았다. 방통도 서운했을 법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현령으로 부임을 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친구(?)인 제갈량에 못지 않은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 것 같다. 명성이야 이미 날릴 정도였고, 적벽대전에서는 이미 그 실력을 보여줬지만, 유비와는 첫 대면이었기 때문에 유비도 내심 '외모' 때문에 놀란 듯 싶다. 그래서 마뜩찮지만 명성이 높으니 '실력 검증'에 나선 것일테다. 방통은 실망을 감추고 유비에게 본때를 보여주게 된다. 작은 고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치가 한정되었겠지만, 아주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유비는 그런 방통의 실력을 보고 제갈량과 '동급 대우'를 약속하며 서촉 정벌에 함께 나선 것이다.

헌데 삼고초려까지 하면서 모셔온 제갈량과 실력 검증을 마치고 발탁한 방통은 '유비가 지닌 신뢰도' 면에서 차원을 달리하게 되었다. 유비와 방통이 사사건건 의견이 맞지 않은 것이다. 유비가 서촉에 도착해서 곧바로 유장을 밀어내고 서촉을 차지하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 것에 방통은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비는 서주를 얻을 때도, 형주를 얻을 때도, 도덕을 따지고 명분을 내세우며 극구 사양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갈량은 이런 유비를 답답하게 여겼지만 그런 주군의 방식에 따라서 '그에 걸맞는 계책'을 내어 유비와 타협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방통은 제갈량보다 불같은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달리 말하자면 화끈한 성격이었다. 목적이 분명하면 달성을 위한 지름길을 찾아내고도 질주를 하는 급한 성격처럼 말이다. 그 때문에 못난 유장의 곁을 맴돌면서 느긋하게 '서촉을 공략하는 유비'를 답답하게 여긴다.

딴에는 제갈량과 '동급 대우'를 해준 주군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성과를 서둘렀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조조에게도, 손권에게도 내쳐지고 출세길이 꽉 막힌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만 보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고마움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공을 세우길 서둘렀던 것이다. 그 탓에 '완벽한 계책'을 내어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방법이 아니라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더 큰 이익'을 내어 손실을 만회하는 모험적인 방법을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런 작은 욕심이 방통의 명을 재촉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만일, 서촉 공략에서 유비가 방통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제갈량은 형주에서 손권을 상대하고, 방통은 한중에서 조조를 상대하며 '양동작전'도 써가면서 천하통일을 노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방통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는 불운 때문에 형주를 지키던 관우를 어이없게 잃어버리고, 곧이어 장비도 따라가고, 유비마저 명을 재촉하는 불운이 잇따른 탓에 '천하삼분지계'는 실속 없는 빈 강정마냥 스러지고 말았다. 천하를 도모하기에는 인재와 물자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매번 읽을 때마다 안타까운 까닭이 바로 이 대목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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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6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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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6>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XLIV / 문학동네 3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세 번째 리뷰는 구태한 세태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에로티시즘을 더한 수작 <고우영 삼국지 6>다. 1980년대는 그야말로 '애로영화의 전성시대'였다. 해방 직후 사회고위층의 불륜을 소재로 한 <자유부인>(정비석)에서 사교댄스에 빠져 외갓남자와 포옹하는 장면만으로도 '외설'을 논하던 때에 비하면 1980년대에는 '여배우의 노출'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두고 벌이던 외설논란은 차치하고 '미성년자(여고생, 여중생)'를 신인여배우로 등장시켜서 배드신과 키스신을 강요(?)하던 시기였기에 그랬다. 이는 '군사독재정권의 3S 정책'의 일환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회에 불만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시선돌리기' 용도로 스포츠, 스크린, 섹스를 일반 대중에게 무한제공한 것이다. 그리하야 80년대에 프로야구 출범, 애로영화 개봉허용, 성풍속 개방이 가능해졌고, 이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함을 만끽한 국민들은 새삼스레 '자유대한민국'을 즐겼으나 이러한 '국민을 우롱하는' 우매화 정책을 간파한 지식인들은 이를 역으로 찌르는 통쾌한 비판과 비평을 마음껏 누렸다. 바로 '3S 정책'을 역이용해서 정권비판에 앞장선 것이다. <고우영 삼국지>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놓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고우영 삼국지 6> 관점 포인트 : 적벽대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둔 손권군과 유비군은 각자 논공행상을 실시해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손권군은 딱히 얻은 것이 없었다. 왜냐면 손권측이 가장 원했던 '형주 땅'을 유비가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적벽대전에서 가장 큰 결전을 치룬 쪽은 '조조군과 손권군'이 수상에서 격돌한 것이다. 유비군은 마땅한 수상전력이 없는 형편이라 조조가 후퇴하는 길목에서 퇴각하는 조조군을 토벌하는 육상병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래가지고는 논공행상을 따질 계재조차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유비는 '형주 땅'을 넙죽 차지했다. 그 까닭으로 유표가 살아있을 때 자신에게 후사를 맡기고자 했던 것을 내세웠다. 물론 손권측도 따졌다. 그때 유표의 호의를 거절한 것은 유비 당신이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유표의 친아들 유기가 살아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마땅히 형주 땅은 '유기의 것'이고, 유비 자신은 유기의 후견인으로 보필할 따름이었던 것이라 변명을 한 것이다.

손권측으로서는 따질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애초에 유비, 손권 동맹으로 조조군과 맞서 싸웠으니 '동맹'을 깰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애초의 형주의 주인이 유표였기 때문에 유기가 뒤를 이은 것이 자연스러웠으며, 당장 조조와 결판을 낸 직후라 형주를 힘으로 차지할 병력 또한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건재했다. 신묘한 재주로 '바람의 방향'마저 바꾸는 신통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결전을 벌였을 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권측은 유기가 죽은 뒤에는 '형주 땅'은 손권측으로 귀속된다는 약조를 받아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손권은 만족할 수 없었다. 아직 젊은 유기가 언제 죽을 지 아느냔 말이다. 비록 유기가 현재 강건하지 못하고 비실대고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유가 꾀를 낸다.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을 베필로 삼을 테니 유비가 직접 신랑이 되어 강동으로 넘어오라고 말이다. 물론 화촉을 밝힐 경사스러운 일이니 불경스런 군사와 무기는 일체 내려놓고 '알몸'으로 오라고 말이다. 그런 뒤에 유비를 포박한 뒤에 '형주 땅'과 맞바꾸자는 계책은 누가 보더라도 훌륭했다. 허나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다. 제갈량은 유비가 손권의 혼사 권유에 목숨줄이 날아갈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흔쾌히 혼사를 치르라고 등을 떠민다. 그리고서는 강동 땅에 도착하는 즉시 교국로를 찾아가 자신이 손권의 여동생과 혼사를 치루러 왔다고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혜를 빌려준다. 그렇게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를 만들고 나면 혼사도 무사히 치르고 새신부도 얻을 수 있으며 형주 땅도 굳건히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제갈량이 이른대로 계획은 순순히 진행되는데...문제는 강동 땅에서 무사히 벗어날 뾰족한 수가 안 보이는 것이다. 과연 유비는 살아서 형주 땅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애써 혼인에 성공한 새 신부도 데리고서 말이다. 두둥~

나가는 글 : 이 대목은 <삼국지>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다름 아닌 '주인공'이 치른 혼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대목만큼 찐하게 묘사한 러브스토리도 <삼국지>에서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 역사책에서는 사랑을 '치정극(불륜)'으로 묘사하고 있고, 이는 <삼국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유비와 손상향의 혼인식은 목숨줄이 오가는 순간에도 남녀간의 화기애애한 러브스토리가 찐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몰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손상향의 나이가 18세였고, 유비는 자그마치 48세였기 때문이다. 대충 반올림해도 20대 처녀가 50대 할애비와 신방을 꾸미는 셈이다. 다행히 불륜은 아니고 정식 혼인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욕을 바가지로 먹기 딱 좋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무려 30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물론 지금 시대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요즘 50대는 젊은 축에 끼고 아직 청춘이라 부른다지만, 2000여 년에는 10대에 혼인을 하고 20대에 자수성가해서 30대에 노후를 준비하던 시절이라 40대만 넘어도 손주의 재롱을 보며 노년의 삶을 살기 일쑤였는데, 50대 새신랑이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이냔 말이다.

허나 여기에는 유비가 '영웅의 반열'에 오른 덕을 크게 봤다. 한마디로 '능력자'였기에 괜찮다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부 당사자인 손상향도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서른 살의 차이를 넘어 유비와의 신혼살림에 대만족을 했고, 그 증거로 유비가 강동 땅을 떠날 때에 손상향도 '같이' 떠날 것으로 그 사랑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만족한 것이 있었다면 고향을 등지고, 자신의 친족과 영영 이별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신랑을 도울 수 있었을까? 정녕 찐 사랑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에 무슨 날카로운 비평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당시 세태가 말초신경의 만족...다시 말해, '쾌락의 절정'을 맞이한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숨막힐 듯한 억압을 경험했는데, 또 다른 군사정권에서는 하염없이 풀어재끼며 '자유'를 만끽했던 것이다. 물론 진정한 자유는 아니었다. 여전히 민주화운동은 억압받았고 정권비판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암울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억압속에서 '탈출구'가 보인 것이다. '섹스의 자유'가 해금된 것이다. 그렇다고 '성풍속'이 하루 아침에 바뀔 리는 없으니 대놓고 '성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성욕을 풀 수 있는 해방구'가 생겼으니 다름 아닌 '매춘(윤락)업의 성행'이었다. 여기에 불을 지를 것이 흔히 '호스티스(hostess)'라고 불리던 '술집여자'가 생겼던 것이다. 술집여자는 먼 옛날에도 '기생'이란 이름으로 있긴 했지만 기생은 차원이 더 높았다. 오늘날로 치면 '아이돌 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술시중'을 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과 예능 전문인'으로 기생은 높은 인기를 끌었던데 비해서 '호스티스'는 그야말로 천한 신분으로 취급받으며 '함부로 해도 되는 여자' 취급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젊은 여성이 술시중을 드는 것을 선호했고, 자연스레 '성욕을 풀어버리는 해방구' 역할을 도맡게 되어 버렸다.

이게 사실상 도덕윤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군사정권의 독재로 사회는 어두운 시절을 겪어야 했는데, 그로 인한 억압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젊은 여성'을 해소용으로 취급하다니 말이다. 이는 과거 일본제국이 '여성 성노예'를 유린할 때 써먹던 방법이었고, 패망한 뒤에도 일본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 자국의 여성을 '미군의 성욕 해소'를 위해 매춘부로 만들어놓고 '애국자' 운운했던 것을 따라하는 것이었다. 당시 전두환이 독재를 하려는데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민적 저항이 너무 강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일본의 방식에서 해결법을 차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딱히 틀린 소문 같지는 않다.

암튼, 유비와 손상향의 세대를 초월한 사랑이야기는 감동을 주지만, 48세의 노땅들이 18살의 젊은 몸을 탐하는 추태를 비판한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런 기본적인 도덕윤리와 인권인식을 갖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유비는 목숨을 걸고 장가 들러 갔고, 유비나 되는 '영웅'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라는 예외사항을 강조 또 강조해야 할 대목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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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5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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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5>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XLIII / 문학동네 3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두 번째 리뷰는 유머와 위트가 살아있는 <고우영 삼국지 5>다. 물론 이 만화를 신문에 연재하던 1980년대의 흘러간 유머다. 그래서 21세기 최첨단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닥 유쾌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그저 그런 '옛날 개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절대적 진리를 앞세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냐면 오늘날에도 그 시절의 '독재정권'을 흉내낸 나쁜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대통령 임기 내내 정적 암살밖에 하지 않다가 여의치 않자 비상계엄을 저지른 윤석열 말이다. 80년대에는 윤석열이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다던 '전두환'이 있었다. 이 두 명은 '비상계엄'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각각 '군사세력'과 '검사세력'을 사적으로 키워서 저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영원히 집권하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점에서 그야말로 빼다 박았다. 이런 엄혹한 시국에 '유머와 위트'는 자칫 정권 비판으로 오해를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작두를 타는 듯한' 위험천만함을 감수한 것이었다. 윤석열 때도 '정치비판' 성격의 유머는 금기시 되었고, 감히 정권을 풍자를 하면 '검사세력'이 가만 있질 않던 걸 기억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윤석열차'(2022)라는 풍자그림이 수상되었는데, 바로 정치권력이 움직여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활동제약까지 받은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고우영 삼국지>는 바로 그런 시대에 나온 수작이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고우영 삼국지 5> 관점 포인트 : 지난 4권에서 유비가 '삼고초려'를 해서 제갈량을 모셔왔다. 그리고 이번 5권에서는 조조가 드디어 '관도대전'에서 큰 승리로 승기를 잡은 조조가 원소 세력을 물리치고 북쪽을 평정한 것으로 시작한다. 등 뒤를 깔끔하게 정리한 조조가 눈을 돌린 것은 바로 남쪽에 도사리고 있는 '동오 세력'이었다. 그리고 장강(양쯔강)을 넘어 강동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최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세력이 하나 남았다. 바로 '형주 땅'이고, 그 땅에 바로 '유비'가 머물고 있었다. 조조는 곧바로 유비를 치고, 손권까지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려 한다.

하지만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다. 가히 '천재'라고 불릴만한 책사가 유비에게 있는 한 호락할 순 없었다. 그래서 조조의 초반 공격을 제갈량은 가뿐하게 물리친다. 바로 '박망파 전투'다. 그러나 세력의 차이가 너무 큰 까닭에 유비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비는 홀몸이 아니다. 유비가 잠시 다스리던 '신야 백성들'이 조조의 침략에 벌벌 떨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비와 함께 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는 행진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얼마 있지 않은 유비군은 뒤쫓는 조조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조조군의 야만적인 폭력에 의해 무고한 백성들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제갈량의 계책으로 유비 일행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고, 제갈량은 동오의 세력과 손을 잡고 조조군에 맞서고자 손권 진영으로 넘어간다. 이른바 '적벽대전'의 시작이다.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늘 하이라이트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그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주연급'이기 때문이다. 유비, 조조, 손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군대를 지휘하는 책사들인 제갈량과 주유가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조조측에는 곽가의 사후에 별다른 책사가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조조측에 신통치 못한 책사들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가 '북방 출신'이라 물 위에서 싸우는 수전에 별다른 계책을 내세우지 못했고, 머나먼 남쪽의 지리에도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조측에서는 그나마 서서와 방통이 나서서 지략을 뽐내지만, 서서는 애초에 조조에게 속아 어머니가 죽임을 당한 것과 다를 바 없어서 돕지 않으려 했고, 방통은 오히려 '스파이'로 연환계를 꾸미는 활약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 바람에 조조군은 궤멸 당할 수밖에 없었고, 사실상 '적벽대전'은 제갈량과 주유의 지략 대결로 봐야 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흘러 간다.

물론, 적벽대전의 승리에는 손권군의 장수 '황개의 고육계'가 한 몫 단단히 했다. 조조군의 100만 대군을 싣고 있는 대선단을 '화공'으로 격파하려 했던 아이디어도 황개의 작품이었으며, 이를 몸소 실행에 옮긴 용장도 다름 아닌 늙은 황개였던 것이다. 꾀 많은 조조를 속이기 위해서 늙은 몸에 채찍질을 가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여기저기 튀기는 잔혹한 형벌의 고통도 오직 '조조'를 속이겠다는 계략의 일부였던 것이다. 거기다 마지막 화룡점정조차 황개가 타고 간 배의 앞에 엄청난 '유황불'을 짊어지고 조조의 대선단에 꼬라 박아버리는 선봉을 선 것도 황개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개는 '적벽대전'에서만큼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대활약을 벌인다.

나가는 글 : 그럼 <고우영 삼국지>에서 눈여겨 볼 것은 무엇일까? 만화의 성격상 '세세한 심리묘사나 정황설명'을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줄거리도 대략 띄엄띄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만화답지 않게 '사건 하나하나'는 대체로 세세하게 진행하며 '사건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개하였다. 거기다 앞서 이야기한 '유머와 위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 '말풍선' 하나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사람의 인지 집중력은 고작해야 5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를 뛰어넘어 10분, 20분도 지치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에로티시즘'이다. 한마디로 '야한 장면'이 독자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비록 대놓고 야하지는 않지만 원래 홀딱 다 벗은 알몸보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야함을 자극하는 법이다.

한편, 신야의 백성들은 원래 주인도 아니고 잠시 머물며 다스렸을 뿐인 유비가 조조군을 피해 퇴각하는데 따라 나선 것일까?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를 유비가 백성들에게 '선정(좋은 정치)'을 베풀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감흥을 받은 백성들이 유비를 자발적으로 따라나선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정답'이다. 유비는 유표의 죽음으로 형주를 낼름할 수 있었는데도 그리하지 않는 도덕군자처럼 행동하지만, 그것이 백성들이 자신이 살던 고향과 터전을 모두 팽개치고 유비를 따라나서게 만든 원인으로 보기에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원인은 바로 '공포심'이다. 유비군을 따라가지 않으면 싹다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공포심 말이다.

어디에서 기인하는 공포심이었을까? 조조는 앞서 서주자사였던 도겸을 공격했다가 유비에게 가로막혀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러자 조조는 서주에 남아있던 백성들을 싸그리 죽여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른바 '서주대학살'이다. 조조의 아버지를 죽인 '황건적 출신 장개'에게 복수를 해야 옳을텐데, 도겸에게 책임을 물었고, 그 도겸을 직접 죽일 수 없게 되자 서주의 백성을 학살하며 분풀이를 한 것이다. 이런 조조였다는 걸 전해 들었던 '신야의 백성들'은 조조군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를 직접 경험한 유비도 조조군으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야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조조의 대군 앞에서 '중과부적'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던 유비는 어쩔 수 없이 퇴각을 하지만, 차마 백성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갈량 vs 주유'의 지략 대결이다. 이 대결에서 진 주유는 "하늘은 주유를 낳고 어찌하여 제갈량을 두었느냐"면서 한탄을 했다지만, 이는 그야말로 '패배선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은 세상을 놀라게 할 천재인데, 나보다 더 뛰어난 천재의 등장을 시기하는 듯한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 주유는 단 한 번도 제갈량을 이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완벽한 패배를 당하고도 담담히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주유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는 그가 진정한 영웅이 될 그릇이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주유는 이처럼 용렬하고 불운한 천재였을까? 그건 아닌 듯 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유의 활약이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정사 삼국지>에서는 손권의 형 '손책의 의형제'로 나서서 손책이 원술의 휘하에서 벗어나 '강동 땅'에서 화려한 성공을 거두며 '소패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게 혁혁한 공을 세우는데 주유의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를 휘뚜루마뚜루 넘겨버리고 만다. 왜 그랬을까? 애초에 '동오 세력'은 <삼국지연의>에서 주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인 유비와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의 한 축을 담당하기 위해서 '조연'으로 구색을 맞춘 덕분이다. 그런 까닭에 희대의 천재였던 '주유'조차 엑스트라 취급을 하고만 셈이다. 다음 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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