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로매니악 1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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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매니악 1> 이우혁 / 반타 (2026)

[My Review MMCCLXVII / 반타 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여섯 번째 리뷰는 정확하게는 27년 만에 새롭게 돌아온 <파이로매니악 1>이다. '미컴' 출판사에서 98년에 1권이 나오고 99년에 3권까지 출간되었다가 연재 중단이 된 <파이로매니악>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이다. 그나마 나는 작년에 '구판'으로 나온 <파이로매니악>을 읽고 리뷰까지 작성했기에 기억이라도 생생하지, 전작을 읽고 감동했다가 27년 만에 다시 만난 오랜 팬들은 정말이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할 지경일 것이다. 암튼 '이우혁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만족할 따름이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본 뒤에 다루도록 한다.

<파이로매니악 1> 관점 포인트 :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구판'의 내용과 '개정판'의 내용이 완전 딴판이라 놀라는 팬들도 많을 것 같다. 구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동훈과 영, 희수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을 '폭탄 한 발당 나쁜놈 한 개씩' 처단하는 방식으로 진행시켰는데,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시작부터 '원샷 원킬'을 하면서 속도감이 엄청 빨라졌다. 그래서 전체적인 줄거리 진행까지 덩달아 빨라져서 짜릿함이 미친듯이 상승했다. 사실 <파이로매니악>의 매력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엄청난 폭발감이다. 화약이 빵빵 터지는 장면이니 폭발 장면이 당연한 것이지만, 단순히 폭발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딱 원하는 곳에, 딱 알맞게 빵빵 터지기 때문에 더욱 짜릿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집 한 채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시원한 폭발감이 아니라 집 안에서도 '안방', 안방 중에서도 '침대밑', 침대밑에서도 '남편이 잠자는 쪽, 남편이 잠자는 쪽에서도 '허리'가 놓인 곳만 딱 골라서, 그곳만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한 남자의 허리'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상반신과 하반신은 멀쩡한 상태 그대로 남겨 둘 수 있고, 같이 잠이 든 여자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멀쩡할 수 있도록 아주 정밀하게 폭발을 시키는 방식으로 깔끔한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복수'다. <파이로매니악>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다름 아닌 '복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죽여서 공포심을 자아내는 '테러'와는 다르다. 아주 치밀하고 정밀한 '살인'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절한 복수를 명분으로 삼은 살인자들이 주인공인 탓에 독자들은 살인범인 주인공들에게 동정을 하고, 그들이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비극을 겪었기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파이로매니악>의 매력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사사로운 복수'가 허용되는 사회를 사는 것이 너무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공권력'을 국가에게 맡기고, 국가는 사법부에 죄를 지은 사람을 벌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고, 죄인에게 벌을 줄 수 있는 근거인 '법'에 따라 만인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판결을 받게 한 것이다. 그렇게 판사, 검사, 경찰에게 죄인을 벌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피해자가 억울한 일이 없게끔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법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것일까? '피해자'에게 유리한 것일까? 범죄자의 인권은 그토록 꼼꼼하게 지켜보려 애쓰면서, 범죄자에게 피해를 본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배상'은커녕, 피해를 받은 만큼의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히려 죄 지은 '가해자'가 떵떵거리고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남에게 피해를 줄 생각도 하지 않던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가해자'가 감옥에 수감되면 '피해자'는 배상을 포기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가해자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보상'을 하면 가해자는 감옥에 가지 않고 풀려나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버젓이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부유한 가해자는 죄를 지어도 돈으로 풀려나고 가난한 피해자는 그렇게 풀려난 가해자가 두려워서 일상을 포기하고 숨어 지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 과연 '사법정의'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땅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는 떵떵거리고 플렉스하며 잘 사는데 반해서,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내놓고 지키는데 앞장선 '애국자'는 팔다리 잃고 병신으로 살거나, 가진 재산 다 빼앗기고 거지로 살아야 한다. 더 기가 차는 일은 '매국노의 후손'은 나라 팔아먹은 돈으로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다가 명문가도 거듭나서 '사회지도자'를 배출하는 상류사회를 살아가는 반면에, '애국자의 후손'은 부모가 병신이고 거지가 되는 바람에 덩달아서 굶주리며 살며 '기초수급자'가 되어 사회 밑바닥을 기어다니며 살아가게 된다. 대한민국이 먹고 살기 급급하던 시절에는 이런 '애국자의 후손'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못해 더욱더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생을 포기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과연 대한민국 '사회정의'는 살아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구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그런 '매국노 같은 새끼'들만 골라서 처단을 일삼는 동훈, 영, 희수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던 것이다. 때는 90년대 후반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억눌려 왔던 매국노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군사독재시절의 참고 견뎌야 했던 울분을 막 토해낼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파이로매니악>을 읽는 독자들은 간접적이나마 소설을 읽으며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3권을 끝으로 세 명의 주인공들이 '윤영대 검사'의 수사망이 좁혀오는 와중에 연재가 중단되어서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뒷이야기도 궁금했지만, 사무쳤던 원한을 풀지 못하고 '원귀'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개정판'이 나왔으니 그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나가는 글 :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은 구판에서 멈춘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다. 비슷한 설정이라고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내용을 새로 펴냈다. 이는 대한민국의 90년대와 26년인 오늘날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우혁 작가도 변을 늘어놓았지만, 그 시절에는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던 시절이라 단독으로 몰래 움직이는 범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거리거리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고, 한밤중에도 대낮만큼 환하게 밝은 곳 투성이라 과거와 같은 방식의 범행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약기술'도 첨단화가 진척되어서 그 당시에는 최고의 전문기술자만이 겨우 만들 수 있던 폭탄도, 오늘날에는 웬만한 기술자도 레시피만 있다면 척척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기에 <파이로매니악>에도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야기 진행 속도가 구판에서는 너무 느렸다. 개인적인 서사는 둘째치고 '매국노 처단'을 하기까지 다짐하고 결심하고 결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지루할 정도로 장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국노를 한놈 한놈 처단할 때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보다는 '연민'이 앞서곤 했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캐릭터라면 그냥 '살인마'를 내세운 스릴러 소설에 불과했을 테지만, 매국노와 악질중대범죄자를 처단하는 '영웅들'인데 그토록 괴로워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판'에서는 그런 고민을 싹 날려버린 듯 싶다. 죽이는 게 더 낫다 싶을 정도로 악질들은 폭탄 한 방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려 영원한 '격리조치'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빠르게 해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감 쩔어서 읽는 맛이 아주 좋을 정도였다.

단, 범죄는 명백하기 때문에 '공권력'이 발동되면 우리의 주인공들의 활동에는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구판에서는 '윤영대 검사'가 등장했는데, 철두철미한 성격에 냉혈한 기질까지 보이며 주인공들을 점차 궁지로 몰아가는 수사를 보여줬지만, 개정판에 등장하는 '구일문 검사'는 꼼꼼하고 냉철한 기질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인간미'가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앞으로 2권, 3권에서 어떤 모습과 활약을 보일지 살펴봐야겠지만, '파이로매니악(일명 '피엠')'을 뒤쫓는 모습은 확연히 달라 보였다.

이는 '사적인 복수'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인식 변화에서 비롯된 것 같다. 과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준수해야 하고,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하며, 법 집행에 있어서 사사로운 감정은 불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오늘날에는 '사법부의 무능'을 넘어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조차 없는 불공정한 권력의 산실로 인식하고 있음을 감안한 듯 싶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사법부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바로 설 길은 오직 '사법부 개혁'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혁의 핵심은 '인사개편'이다. 썩은 부위는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힘겹겠지만 '사법부의 정상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공정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란범들이 내란을 저지르고도 최대 '사형', 최소 '무기'를 판결받지 아니하고 '20년형 이상'도 아닌 '5년형 이하'를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암담할 따름이다. 누구 말마따나 "내란을 저질러도 꼴랑 5년만 깜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되니, 저지를만 하구나! 내란에 성공하면 영웅으로 둔갑해서 평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꼴랑 5년형이 무서워서 내란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겁쟁이가 따로 없는 셈일테니 말이다" 이런 걸 '사법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거대한 범죄브로커가 '내부자'와 손을 잡고 '대한민국 방산업체'에서 기밀을 빼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군용 시제품'이나 '현물'까지 빼돌려서 엄청난 이익을 차지하려고 한다. 동훈과 영, 토끼928(희수)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이 사건에 '이용' 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세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말이다. 그러다 모종의 '루트'를 통해서 되살아나 '파이로매니악'으로 변신한 이들이 앞선 범죄브로커와 연관된 일당들을 하나하나 처단해 나가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그러면서 항변한다. "착한 네가 참아"라고 말하는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이다. 착하면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고, 착하면 '피해'를 당해도 꾹 참아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가? 다행히 대한민국 법에는 그런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착한 '파이로매니악'이 결의를 하고 '사적 복수'를 감행하게 되었다. 나쁜 놈들을 벌주러 말이다. 다행히 대한민국 법에는 나쁜 놈들 벌주라고 적혀 있다. 물론 '공적인 판결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단서조항을 달아놓긴 했지만, 마침맞게 사법정의가 무너졌으니 '사적 정의'를 빵빵 불태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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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1 삼국지톡 11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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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1>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5)

[My Review MMCCLXVI / 문학동네 4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다섯 번째 리뷰는 흩어졌던 유비 삼형제가 다시 만나는 극적인 이야기가 감동을 수놓는 <삼국지톡 11>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의 떠돌이 생활은 현재 중국 대륙의 하북성(허베이성)에서 시작해서 '공손찬', '도겸', '여포', '조조', '원소', '유벽', '유표', '손권'을 거쳐 '유장'이 머물던 익주(오늘날의 사천성(쓰촨성) 일대)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대유람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위촉오' 삼국이 존재한 진정한 <삼국지>는 유비가 촉나라 황제에 오르고 동오의 손권이 황제를 표방한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인정하는 <삼국지>는 유비가 떠돌이하던 시절을 포함하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 정도다. 허나 유비의 떠돌이 생활은 정말이지 너무 오래 걸렸다. 그 가운데 <삼국지톡 11>에는 하일라이트가 전개되는데, 헌제의 혈서를 받잡고 난 뒤의 유비가 원술 토벌을 빌미로 '조조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시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조조에게 발각되어 유비 삼형제는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데, 여기서 관우의 진면목이 등장하게 된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톡 11> 관점 포인트 : 이 책이 흥미로운 까닭을 먼저 말하자면, 기존의 <삼국지연의>와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공유하면서도 '컨셉'과 '사건전개'는 완전히 새로 구성한 듯한 신선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풀어내는 색다름만이 전부가 아니다. 다시 말해, 여포가 반바지에 하와이안 남방을 입고 풍선껌을 불면서 방천화극을 휘두르고, 명마로 유명한 '적토'가 자동차 브랜드 가운에 '말'이 등장하는 페라리를 새빨강으로 칠해놓았기 때문에 신선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이 장면, 장면마다 깊이 고뇌하고 골머리를 쥐어짜며 생사를 거는 한판 승부를 벌이며 온갖 지략 대결과 근육 대결이 끊이지 않으며 불꽃 튀기며 빠르게 전개되어 독자들에게 아드레날린을 뿜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분명 이 장면에서 등장할 인물과 사건이 뻔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내 예상과 짐작을 넘어선 기상천외한 '액션'이 화려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게 만드는 점은 바로 '주요 등장인물 간의 대화'다. 이 대화에서 터지는 '촌철살인'이 아주 압권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헌제의 혈서 사건'이 들통이 나면서 의원 길평이 조조의 고문 끝에 죽어나가고, 동승의 일가족도 무려 700명 넘게 끔살을 벌이면서 조조가 일갈하는 대목이다. "나, 조조가 아니었으면 어찌 황제의 안위를 알뜰살뜰이 보살필 수 있었겠소. 그런데 어찌 고새를 못 참고, 이 조조를 죽이려 드는 것이오."라고 화를 내자, 헌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하..참으로 슬픈 거짓말이 아니오이까. 조조, 그대 같은 욕심쟁이가 하늘을 꿈꾸지 않을리가 있겠소."라고 말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대목에 이런 대사는 없다. 이런 뉘앙스만 풍길 뿐, 애초에 조조와 헌제는 서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힘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에, 그저 '충의지사' 들이 자발적으로 역적 조조를 암살하려는 시도만 거듭할 뿐, 그마저도 '귀비'나 '황후'의 친척들이 주도를 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던 충신들이 조조 암살에 가담했다가 의도치 않은 '밀고사건'으로 인해 매번 사전에 발각되어 끔살을 당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헌제의 역할은 대부분 '수동적인 역할'밖에 없었다. 그나마 첫 암살시도였던 '옥대에 혈서를 담은 사건'만이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었으나, 이조차 조조측에 발각이 되자 발뺌하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는데 급급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대담한 '헌제의 대사'라니 놀랍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깜놀했다. 어디 이뿐인가? 관도대전이 한창 벌어지는 찰나 드러나는 '원소세력의 실체'로 인해서, 왜 조조보다 10배나 많은 병력을 갖고도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납득이 갈 만큼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원소가 반드시 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다름 아닌 '프린스 원소'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결정적 한 방으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대세'를 만들어내는 힘은 강력했으나, 지저분하게 치고 빠지며 진흙탕 싸움, 또는 개 싸움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탓이다. 왜냐면 '프린스 원소'는 이기더라도 깔끔하고 우아하게 이겨야지, 더럽고 지저분하게 이기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조조가 '기만 작전'을 펼치고, '매복'과 '기습'을 하면 원소군은 제대로 상대도 하지 않고 지리멸렬하게 우왕좌왕하다가 퇴각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도대전' 초반에 원소군은 조조군에게 호되게 당하고 만다. 차라리 그냥 압도적인 군세로 조조의 근거지인 '허도'로 물 밀듯이 밀어붙였으면 조조는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전쟁이었기에 버티지 못하고 그냥 패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의 적'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서량의 마등, 한수, 강동의 손책, 그리고 형주의 유표만이 원소를 도와 앞뒤로 협공을 했어도 그야말로 필패였을 것이다. 거기다 '황건적 잔당의 반란(유벽 등)'도 관대대전이 한창일 때 심심찮게 일어났기 때문에 조조는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셈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원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들이 바로 '원소의 책사들'이었다. 전풍, 저수, 순심, 곽도, 심배, 허유 등 내노라하는 일류 책사들이 우글우글 했는데, 이들은 '일치단결'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합심'이라는 말만 알았더라도 막강한 원소세력을 앞세워서 어떤 적이라도 압도할 수 있었을텐데, 만만치 않은 적 '조조'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전풍과 저수의 '전쟁 불가론'이었고, 이에 맞서 곽도와 심배는 '전쟁 필승론'을 내놓으며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극심한 논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들 앞에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모습'만 보이던 원소가 지리멸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삼국지톡>에서 원소는 '프린스 원소'라는 별명답게 무섭도록 냉철하고 깔끔한 명령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 카리스마의 결정체가 바로 '제 발로 굴러들어온 유비'였다는 것이 원소의 패착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실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조조를 상대로 10배 이상의 세력 차이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냥 아무렇게나 싸워도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였다. 그런데 원소를 유비를 이용해서 조조를 '황제를 볼모로 삼은 역적 이미지'를 내세웠고, 이를 명분 삼아 대군을 남하하여 조조를 토벌하고자 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좋았는데, 이때 조조군에 유비의 둘째 동생이었던 '관우'가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 원소의 패착 원인이었다. 바로 원소가 아끼던 두 장수 '안량'과 '문추'가 관우에 의해서 한순간에 모가지가 날라가는 참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초전은 조조군의 사기만 북돋아주는 격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이 일로 유비는 '조조군의 첩자'로 오해를 받고 죽임을 당할 위기에 봉착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원소군 내부의 분란으로 인해 유비는 살궁리를 끝마쳤고, 원소와 조조가 대결을 이어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유표'를 원소의 동맹군으로 삼고자 약조를 받겠다며 '원소의 품'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나가는 글 : 이렇게 유비는 또다시 '원소의 품'에서 벗어나 유표를 향해서 간다. 이에 관우도 '형님'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조의 품'에서 두 형수님을 모시고 떠나려 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오관육참'의 고사가 펼쳐진다. 비록 조조는 관우를 환송하며 쿨하게 보내줬지만, 조조의 부하들은 관우를 곱게 보내주려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관우는 부득이 '청룡언월도'를 높이 들고 자신이 가는 앞길을 막는 이들을 하나하나 격파하며 나아갔는데, 그렇게 다섯 개의 관문을 넘어 여섯 명의 장수의 목을 베어나가는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던 것이다. 한날 한시에 죽기로 맹세했던 '도원결의'를 지키고자 한 사람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강행군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홀몸도 아니고 두 분 형수님까지 대동하고서 나아가는 '남자의 모습'에서 어찌 짜릿함과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렇게 '오관육참'을 강행하고 황하 이북으로 뱃머리를 돌려 어렵사리 원소군 진영에 닿아 유비 형님을 찾았지만, 그 사이 유비도 '원소의 품'을 떠나 조조세력의 심장부인 '허도 부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관우가 두 분 형수님을 모시고 '오관육참'을 떠난 장소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관우는 다시 강을 건너 유비 형님을 만나러 남으로, 남으로 행군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맞닥뜨린 인물이 있었으니, 항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괴생명체'였다. 과연 괴생명체의 정체는?

<삼국지톡 11>은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관도대전'도 막바지에 다달았고, 유비 삼형제는 재회를 한 뒤에 조자룡이 합류하고, '유표의 품'에서 또다시 기약없이 세월을 낚으며 지내게 된다. 하지만 관도대전에서 뜻밖에도 조조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비는 수경선생에게 '복룡봉추' 이야기를 들으며, 드디어 유비와 서서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적벽대전의 시작'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바로 '유표'와 '손책' 이야기다. 이제 겨우 맛보기 정도의 짤막한 이야기만 나와 있지만, 유표의 '카리스마'가 아주 장난 아니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젠틀맨'이라고 별명을 붙이긴 했으나 굉장히 야심차고 강단 있으며, 특히나 스스로 황제라고 뻥(?)을 칠 정도로 욕망이 가득한 인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늙고 병들기 시작하면서 그 욕망의 이빨이 후드득 다 빠져버리는 모습으로 비춰질게 뻔하지만 말이다. 반면에 손책은 아직 젊었다. 그리고 여전히 '인재모집'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그 가운데 가장 눈독 들인 인물이 바로 '감녕(감흥패)'이다. 해적 출신의 능력자인데 '유표'에게 한껏 이용만 당하고 팽 당한 위인인데, 손책군에 합류하면서 크게 활약할 인물이다. 그런데 유표에게 이용 당할 적에 손책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그때 그만 '능조(능통의 아빠)'를 전사하게 만든 장본인이었기에 훗날 '능통'과 불구대천 원수사이가 되고 만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도 빼놓지 않고 서사에 넣어놨기 때문에 나중에 전개될 이야기를 짐작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해줘서 심심치 않았다. 앞으로 유표와 손책 세력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다 '적벽대전'에 포함될 것이니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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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0 삼국지톡 10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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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0>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5)

[My Review MMCCLXV / 문학동네 4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네 번째 리뷰는 글로만 접했던 교국로의 두 딸 대교와 소교의 미모를 확인하고 수경선생 사마휘 휘하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서서와 방통, 그리고 제갈량을 만날 수 있는 <삼국지톡 10>이다. 손책과 주유가 각각 대교와 소교 자매의 짝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미인인지 <삼국지연의>에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랬다니까 그런갑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화 삼국지'를 뒤져봐도 대교와 소교를 그린 화백이 거의 없다. 왜냐면 그녀들의 활약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손책의 아내, 주유의 아내 정도로만 묘사할 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지톡>에서는 이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원소, 공손찬, 조조, 유비, 손견 등등의 안주인들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끌어왔는데, 손견의 아내 '오국태(본명은 모름)'마저 중요 등장인물로 소개한 마당에 그녀의 아들인 손책과 손책의 절친인 주유의 아내가 되는 '대교와 소교'가 등장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등장시키니...웃겨 죽겠다. 직접 책으로 확인해보시길. 한편, 조조의 품에서 달아난 유비가 '관도대전' 이후에 만나게 될 책사들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톡 10> 관점 포인트 : 원술이 드디어 황제에 오르고 '중(仲)나라'를 건국하니 조조는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손책에게 직책을 하사하고, 강동땅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도록 한다. 그리고 그 댓가로 원술을 공격하라 하는데, '소패왕'이란 별명에 어울리게 연전연승을 하며 원술에게 우호적인 세력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낸다. 그러다 만난 인연이 바로 '교국로의 딸'인 대교와 소교였다. 적진 한복판에서 만난 인연치고는 엄청난 우연이었고 손책으로서는 '혼인'을 통해서 자기 세력을 넓혀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었기에 교국로를 혼인으로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대교와 소교는 훗날 오나라 명문가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강동을 석권하는데 큰 힘을 보탠 것으로 정리가 된다.

이런 결혼정책은 오랜 옛날부터 유용하게 써먹던 방법이다. 신석기시대 한 곳에 정착한 씨족사회가 부족사회로 세력을 키울 때부터 써먹었던 정책이니 정말 오래되었고, 오늘날까지 '두 집안'이 '한 가족'으로 묶이게 되는 유용함을 잘 이용해서 재벌가문끼리 서로의 재산을 불리고 늘리는데 아주 잘 써먹는다. 우리 나라도 고려 태조 왕건이 여러 호족의 딸과 혼인을 거듭하면서 싸우지 않고 통일하는 방법을 써먹을 정도로 오래되고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삼국지>에서도 손책만 써먹던 독특한 방식은 아니었으며, 유비도 서주를 얻게 되면서 '미축의 여동생'과 혼인을 하며 서주의 대명문가와 인연을 맺고, 서주 최고 부자의 덕을 톡톡히 보았던 셈이다. 이 때문에 혼인은 '인륜지대사'라고 불리며 두 가문의 결속을 다지고 재산과 세력을 늘리는 유용한 점을 적극 활용했던 것이다. 그러니 원소와 공손찬처럼 어머니쪽이 '천한 신분'이었던 것이 얼마나 불리하게 작용했고, 그 때문에 어린 시절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험과 고난을 감수해야 했었느냔 말이다. 이는 한미한 가문이었던 '손책'도 마찬가지였다. 소패왕으로 실력은 검증 받았으나 전쟁을 거듭할수록 딸리는 것은 '군자금'과 징병과 물자를 원활히 보충할 수 있는 '명분(고귀한 신분)'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손책이 비록 적국이지만 대명문가 교국로의 딸과 혼인한 것은 단순히 '미모에 반했기' 때문만은 아닌 셈이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영토를 넓히고 군자금 융통까지 원활히 하기 위한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한편, 조조는 헌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황제랍시고 조조가 명하는 것에만 순순히 따를 수는 없었는지, 조조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은 까맣게 잊고서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조조를 '역적'으로 몰아서 내치고자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조조의 관점'이다. 왕조 국가에서 천하만물의 주인은 오직 황제 한 명 뿐이다. 그러나 한나라 황제인 헌제가 '주인행세'를 해야 마땅한데, 조조가 승상의 자리에 올라서 모든 일을 황제를 대신해서 처리하고, 황제마저 '허수아비'처럼 세워놓기만 하고 조조의 뜻에 거역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일삼고 있으니, 조조는 만고의 역적이 분명했다. 더구나 사냥대회에 나가서 감히 황제의 활을 빼앗아 대신 사슴을 잡으며 신하들의 만세소리를 자신이 대신 받는 것만으로도 '역적'으로 몰아 죽여버린다해도 누구 하나 문제삼지 않을 죄인인 셈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그런 천인공노할 대역죄에도 끽소리를 못한다. 딱 하나 유비의 둘째 아우 '관우'만 빼고 말이다. 관우는 황제 앞에서 오만불손한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해버리는 조조를 들고 있던 언월도로 단박에 썰어버리려 했다. 허나 조조의 호위무사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천하의 관우라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비는 급히 관우의 행동을 저지하고 조조에게 엎드려 사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 때문에 조조는 관우를 더욱 주시했던 것일까? 더구나 관우는 <춘추>에서 '신하의 도리'를 주워섬기며 조조를 준엄하게 꾸짓는데 조조 또한 '먹물' 좀 많이 먹은 탓에 이러한 관우에게 더욱 호감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를 훈장선생으로 묘사하고, 장비를 돼지고기 장수쯤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실제로 공부는 장비가 더 잘했다고 한다. 관우가 줄줄 외고 있는 것은 <춘추>가 유일했다고. 암튼 조조는 묘하게도 관우에게 호감을 보이며 자기 부하로 삼으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물론 그건 나중 일이지만 말이다.

암튼, 유비는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황제 알현도 하지 않고 일체의 정사에도 관여하지 않으면서 '농사일'에만 집중하고 두문불출하며 몸을 낮춘다. 그런 유비를 끌어들여서 '조조 처단'에 이용하려 드는 헌제와 행여라도 유비가 '조조 암살'에 가담할지 불안에 떠는 조조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도, 유비는 태연자약하게 농사일에만 전념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농사를 짓고 있는 유비를 초대해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영웅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이름하야 '논영회'라고 붙였는데, 그 자리에서 조조는 온 세상에 영웅은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이 자리에 조조와 유비, 딱 두 사람 뿐이라고 단언을 한다. 이 역시 조조는 유비를 떠보려는 속셈일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 조조'를 죽이고 영웅이 되고 싶은 거 맞잖아. 그러니 죽이고 싶으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라면서 유혹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유비는 자중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벼락과 천둥이 치고 유비는 깜짝 놀라 탁자 밑으로 몸을 숨기며 벌벌 떨며 겁쟁이처럼 행동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장면이 전혀 없다. 그 대신 장면이 전환되면서 헌제가 동승에게 '옥대'를 건내주며 '조조를 죽이라는 혈서'를 동봉해서 건내준다. 그리고 다시 장면전환이 되면서 유비가 조조에게서 멀리 달아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나게 되는데...

나가는 글 : 유비가 조조의 품에서 벗어나 서주로 달아났지만, 서주에서 재기를 노린 것이 애써 헛수고로 끝나고 오히려 유비 삼형제만 뿔뿔이 흩어져서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하비성을 지키던 관우가 두 분 형수를 지키기 위해서 조조에게 항복을 하면서 일단락이 되고, 본격적인 관도대전이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11권의 핵심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톡>은 늘 예측불가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때문에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궁금하다.

한편, 관도대전 이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제갈량'은 형주 양양에서 수경선생 사마휘 휘하에서 한창 공부중이다. 허나 천재 중의 천재로 이미 사마휘의 인정을 받은 상태였기에 '엎드린 용'이라는 뜻의 '복룡'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허나 우리에게 더 익숙한 별명은 '와룡'일 것이다. 복룡이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서 엎드린 용'이라면 와룡은 무슨 뜻일까? 제갈량은 소싯적에 선생을 골려주고 놀려먹는 것을 즐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종종 선생들이 그를 '발라당 까진 방자한 녀석'이란 뜻으로 '배를 훤하게 드러내고 발라당 드러누운 용'이라는 와룡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복룡이란 별명 대신 와룡이란 별명으로 그간 불러왔던 걸까? 사실 '엎드린 용'과 '누운 용'의 차이는 그닥 없다. 당시 선비들은 베개를 높이 베고서 모로 누워 있는 자세를 즐겼고, 불상 가운데 누워있는 부처이라는 뜻으로 '와불'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대부분 '모로 누운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엎드린 용이나 누운 용이나 아직 하늘로 승천할 때를 만나지 못해서 '잠을 자고 있는 용'이란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서로 같은 뜻이었던 것이다. 헌데 이 책에서는 제갈량의 어린 시절을 똑똑하다 못해 버르장머리 없는 뜻으로 '발라당 까진 놈'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제갈량의 '천재성'을 은유적으로 빗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제갈량은 그리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범한 재주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삼국지연의>에서처럼 '신출귀몰'한 재주를 발휘하는 신통방통한 능력자는 아니었고, 제갈량이 내놓은 계책이라고 했던 것들은 사실 '다른 인물들'이 먼저 했거나 '다른 인물들'이 한 일을 제갈량이 한 것 마냥 바꿔치기 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나마도 대부분 '과장'된 점이 없지 않아서 <삼국지연의>만 보고 제갈량을 천재라고 인지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역사가들이 많다. 그렇지만 제갈량을 만나고 난 뒤에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고 '익주'까지 세력에 포함시킨 것은 사실이기에 유비로서는 날개를 단 것일테다. 앞으로 <삼국지톡>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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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9 삼국지톡 9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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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9>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4)

[My Review MMCCLXIV / 문학동네 4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세 번째 리뷰는 영웅 중의 영웅인 여포의 최후를 그린 <삼국지톡 9>다. <삼국지톡>에서는 '초선'이 죽지 않는다. 사실 초선이 실존인물인지 가상인물인지 논란은 있지만, 이 책에서는 고위 관료들이 쓰는 관을 '초선'이라고 부르고, 그 관을 관리하는 궁녀를 '초선'이라 불렀는데,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하는 여포의 연인을 바로 그 궁녀 가운데 한 명으로 부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동탁이 궁녀 가운데 절세 미인이었던 궁녀를 탐했는데, 그 궁녀가 동탁이 보는 가운데 여포를 유혹하는 바람에 여포와 동탁이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 것이다. 그래서 초선은 동탁이 죽은 뒤에도 늘 여포와 함께 했고 심지어 여포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뒤에도 딸(여금)과 함께 살아간다는 설정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 속으로 풍덩 빠진 다음에 해보자.

<삼국지톡 9> 관점 포인트 : 이 책의 부제는 '관도대전 2부'다. 사실상 <삼국지연의>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큰 전투로 향하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원소와 조조가 대결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 싸움으로 간다. 그러기 위해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져야만 한다. 공손찬이 그렇고, 원술이 그렇고, 바로 여포가 그렇다. 그런데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공손찬이 허무하게 패배하는 것이다. 원소가 이렇다 할 공격도 하지 않았는데 공손찬이 지레 겁을 먹고 '자결'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물론 원소 세력이 공손찬에 비해서 압도적인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최후의 결전이라는 것도 해봄직한데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지는 '역경'에 틀어박혀서 '북방의 귀신'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무력하게 포위 당하다가 온가족을 몰살하고 자신도 허무하게 자결하고 만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한 것은 공손찬을 따르던 부하장수들은 주군과는 다르게 원소와의 결전을 당당히 치루며 전장에서 스러져갔던 것이다. 대표적인 장수가 '전해'다. 이렇게 원소는 하북(황하의 이북) 지역을 전부를 석권하고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게 된다. 이로써 원소는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췄다. 그럼 조조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조조는 아직 이렇다 할 대비를 못한 상태다. 아직 서주의 여포, 남양의 원술, 형주의 유표 등 조조를 둘러싼 적들이 사방에서 옥죄여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조는 사기충천했다. 천자를 볼모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황명'을 앞세워서 역적을 토벌한다는 구실로 자신이 유리한 구도로 싸움판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유비였다. 일찌감치 유비는 여포에게 서주를 내어주고 내쫓기던 상황이었는데 '언변'이 좋은 것인지, '운'이 따르는 것인지 당장 자기를 잡아 죽이려던 '조조의 품'으로 뛰어들어서 목숨줄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유비는 헌제를 알현할 기회를 잡게 되는데, 거기서 유비는 '동아줄' 하나를 잡게 된다. 바로 헌제가 유비를 '황숙'이라고 부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바로 유비가 '전한' 경제의 자손인 중산정왕의 후손이었기에 '후한' 헌제와는 먼 친척관계였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유비는 조조의 위협을 그나마 막아줄 '동아줄'을 잡은 셈이다. 수많은 대소신료들 앞에서 당당히 '황실의 핏줄'임을 공인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헌제 스스로 '황숙'이라 불렀으니 이제 수많은 백성들은 유비를 '유황숙'이라 부르며 공경의 대상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런 방패막이가 조조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었을까? 황제조차 언제든 맘만 먹으면 죽이려 드는 조조인데, 황제의 숙부쯤 되는 사람이라고 별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맞다. 유비는 '썩은 동아줄'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는 헌제 입장에서는 살짝 다른 의미를 가진다. 바로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기 때문이다. 맞다. 조조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조조를 둘러싼 수많은 군웅들이 아니라 바로 조조가 볼모로 잡고 있는 '헌제, 그 자체'였다. 이제 헌제가 조조의 숨통을 조이고자 했던 것이다. 조조는 이것이 가장 신경 쓰였다.

하지만 당장 '황제'를 갈아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조조는 큰 세력을 이루지 못했고 늘 간당간당하게 살얼음판을 걷는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의 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려 든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서주의 여포'다. 허나 조조가 눈독을 들인 것이 '여포'인지, '서주'인지 살짝 헷갈린다. 솔직히 '둘 다'라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손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포에게는 '진궁'이라는 유능한 책사가 도사리고 있다. 여포가 헛손질, 헛발질을 할 때마다 뒷수습을 해주고 철통같은 방어를 하는 것은 언제나 진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궁에게도 약점은 있다. 다름 아닌 '여포, 그 자체'가 진궁에게 최대 약점이었던 것이다.

사실 조조는 두 갈래로 공략을 해왔다. 군사력으로 나설 때에는 '여포'로 막고, 지략으로 공격해올 땐 '진궁'이 막는 수법으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그런데 조조는 '한 몸'이었지만, 여포와 진궁은 '한 몸'이 아니었던 관계로 조조의 발빠른 공략 전환에 여포와 진궁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서주성'이 든든하게 막아주었기에 사태를 질질 끌 수 있었고, 조조를 지치게 만들 수 있었는데, 서주성 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진규, 진등 부자'다. 이들은 서주의 민심을 대변하는 인물들로 사실상 '유비측 사람'이었다. 그러나 조조와 여포가 서주를 유린하는 바람에 유비는 세력을 잃고 서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서주를 지키는 '여포'도, 서주를 차지하려는 '조조'도 미운 진규, 진등 부자는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조조에게 협력하기로 약속한다. 왜 그랬을까? 서주대학살을 감행한 조조에게 사무친 원한이 아직 남아 있을텐데 말이다. 사실 여포라고 서주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것이 절대 아니었다. 여포는 동탁의 군대이기도 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약탈과 수탈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니 조조가 대학살을 자행한 장본인이지만, 여포도 그에 못지 않게 서주 백성들을 약탈하고 살인을 함부로 저지르는 나쁜 놈인 것은 당연했던 것이다. 그나마 조조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여포는 서주성을 지키는 입장인데도 자기 백성들을 상대로 겁박을 하고 있었으니 '민심'이 돌아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책사 진궁'에게로 돌아간다. 무릇 책사란 무엇인가? 자기 '주군을 위해서' 지혜를 내놓고 보필해야 할 위치에 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할 때 '혼자'했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덕수가 돕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불법을 저지르려고 했는데 막지는 못할망정 '협조'하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돕고 '불법'에 가담했으니 똑같이 처벌받아 마땅한 것이다. 여포와 진궁이 바로 그런 관계였다는 얘기다. 여포가 서주 백성들에게 가하는 불법적인 일들을 진궁이 눈 감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진궁은 여포를 몰락의 길로 인도하고 있던 셈이란 말이다. 그런데 진궁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여포가 '자기 말'을 따르지 않았기에 끝내 '패배'했노라고 말이다. 이는 '자신의 책임'을 망각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주군이 옳은 길로 가지 않고 있다면 책사는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막았어야 했다. 그런데 진궁은 여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도 막기는커녕 '이용'하려 들었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주군'을 죽음의 길로 내몰고 말았다. 마치 조조가 자신의 주군인 '헌제'를 볼모로 삼고 '자기 뜻대로' 이용해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나쁜 행보를 저지른 것이다. 조조와 진궁은 그런 의미에서 '같은 부류'다. 그래서 조조는 여포 따위보다 '진궁'에게 더 정성(?)을 쏟았고 마지막 처형대에서 '누가 이겼는지'나 따지는 촌극을 벌인다. 애초에 나쁜놈들이니 누가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기고 졌는지'만 따진 것이다.

그런데 진궁은 마지막 처형대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조조에게 한 방 먹이게 된다. 너와 나, 누가 더 '나쁜지' 따지는 것이라면 '조조, 니가 더 나쁜놈'인 것은 분명하니, 이 승패에서 진 나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조조는 결국 진궁에게 한 방 제대로 먹고 스스로 각성한다. 여기서 '착한놈' 행세를 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조조는 진궁에게 결국 졌다. 여백사 사건이후부터 갈라섰던 두 사람은 결국 '누가 옳은지' 나름의 승부를 벌였으나, 결국 '같은 부류'였다는 것만 재확인했을 뿐이고, 둘 다 나쁜놈이라는 사실만 부각시켰던 것이다. 오직 힘으로만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패왕의 길'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던 것이다. 그런 패왕에게 준엄한 꾸지람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온전하게 선한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위엄을 가진 도덕군자만이 가능할 것이다. 과연 '유비'에게 그런 위엄이 깃들 수 있을 것인가?

나가는 글 : 이제 여포의 최후를 보자. 여포는 조조의 꾀에 속아 서주성을 버리고 하비성에 틀어박힌다. 하지만 하비성은 난공불락의 성이 아니었다. 하비성을 휘감아 돌고 있는 두 개의 강줄기로 인해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안의 백성들이 큰 피해를 본 뒤에 결국 함락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1~2년동안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여포라는 인물의 영웅적인 위력 덕분이었다. 한마디로 여포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장에 나섰을 때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여포의 괴력 앞에서 내노라하는 조조군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여포가 항복하지 않는 이상 전쟁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여포의 부하'들이 오랜 전쟁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배신'을 하였기에 여포는 산 채로 질질 끌려와 조조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적들에게는 '무적'이었는데, 적이 아닌 이들에게까지 '무적'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게 조조 앞에 끌려나온 여포는 궁색하게 목숨을 구걸한다. 아니 살려달라 애원을 하는 것이지만 아주 '달콤한 유혹'이었던 셈이다. 바로 '여포, 자기 자신'을 조조에게 바치겠다는 유혹 말이다. 조조로서는 솔직히 솔깃했을 것이다. 전장에 풀어놓으면 그야말로 '무적의 용사'가 되는 장수를 내 부하로 쓸 수 있다는데 어찌 솔깃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포에게 '신의'따윈 없다. '배신'을 밥 먹듯 하고, '아비'를 수시로 바꾸는 불의한 자식에게 어찌 의리를 기댈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여포의 처우를 은근슬쩍 유비에게 되묻는다. 이는 유비라는 또 다른 적을 떠보기 위함이다. 만약 유비가 여포를 살리라고 한다면 이는 조조에게 '폭탄'을 떠안기는 셈이니, 유비의 속셈이 자신을 해코지 하려는 명백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여포를 죽이라고 한다면 이 역시 조조에게 '여포'라는 신무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니, 유비의 속셈은 자신에게 해를 가하자는 것이 명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도 저래도 조조는 '유비'조차 여포에 셋트로 묶어서 처리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비는 짐짓 그런 속마음을 감추고, '여포의 의리 없음'을 강조하며 조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득이 무엇인지 깨우쳐준다. 대단히 현명한 대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조에게 '유비는 조조편입니다요'라고 대놓고 아부를 하는 꼴이었고 말이다. 여포를 죽이든 살리든 조조의 마음이고 선택이니, 유비는 그저 따를 뿐입니다. 허나 여포는 의리가 없는 놈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라고 철저히 자기 몸을 낮추는 겸손이었던 것이다. 이에 조조는 흡족해 했다. 여포도 죽이고, 유비의 아부도 받고 꿩 먹고 알 먹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여포는 그렇게 죽었다. '인중여포'라는 네 글자를 받으며 영웅 중의 영웅으로 살았지만, '신의'라는 두 글자를 얻지 못해서 결국 개죽음을 당하고 만 셈이다. 흔히 여포는 무력만 넘쳐나고 지혜가 없다고 평을 하지만, 전장에 나서서 용감무쌍하게 승리하는 것을 봤을 때 지혜가 없었다면 불가한 일이었다. 그러니 '전장의 신'으로 활약하는 것으로 짐작컨대 지혜가 아주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멍청하면 어떻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오히려 여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신의'였다. 스스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기 부하조차 믿지 못했고, 늘 의심했다. 그러니 부하라고 하더라도 믿고 쓸 수 없었고 '배신'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니,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법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여포는 그게 가능했다. 너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해왔던 것이다. 바로 영웅 중의 영웅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만약 여포에게 조금 힘이 부족했더라면 '신의'라는 두 글자를 조금이나마 곁눈질이라도 했을까? 조금만 힘이 부족했더라면 '진궁의 조언'에 조금은 귀를 기울였을지 모른다. 허나 영웅 중의 영웅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배울 틈이 없었던 것이 여포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영웅이 또 나타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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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지만 사랑받고 싶어 - 초등 1학년 국어교과서 수록 도서 키다리 그림책 62
별다름.달다름 지음, 서영 그림 / 키다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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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지만 사랑받고 싶어 : 초등1학년 국어교과서 수록 도서> 별다름, 달다름 / 키다리 (2021)

[My Review MMCCLXIII / 키다리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두 번째 리뷰는 초등1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도서 <브로콜리지만 사랑받고 싶어>다. 나 어릴 적만해도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채소는 '당근'이었다. 그래서 각 가정의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당근을 먹이기 위해서 '김밥'과 '볶음밥'을 거의 매일 싸주다시피 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바뀐 모양이다. '브로콜리'로 말이다. 나 어릴 적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채소였는데 말이다. 그럼 '브로콜리의 매력'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브로콜리지만 사랑받고 싶어> 관점 포인트 : 그림책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브로콜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아주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된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채소 1위에 올랐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난 것이다. 이를 본 브로콜리는 울상이 되었다. 그래서 브로콜리는 노력을 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으로 분장도 해보고, '변신'도 해보고, 심지어 '이름'까지 바꿔보려 애쓴다. 하지만 브로콜리이기 때문에 사랑받지는 못했다. 그렇게 모든 노력이 실패로 끝나고 생을 마감할 각오를 하고 '브로콜리다운 음식'을 마지막으로 남기려고 사라지려던 찰나, '그 음식'을 맛본 아이가 "맛있다!"는 한마디에 브로콜리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은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그림책이다보니 복잡한 플롯이나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채소'에서 '아이들도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 재료'가 된 것으로 충분히 행복을 느낀다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이야기가 묘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나다운 것이 가장 멋지다'라는 주제도 분명하게 전달되어서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릴 만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초등 저학년은 사회교과를 따로 배우지 않는다. 왜냐면 아직 '인지발달과정' 상 3인칭 다수에 대한 사고력 확장이 힘겨운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것이 쉬운 듯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개념이다. 왜냐면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자아형성'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흔히 어린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존재로 인식하곤 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만 대개는 아직 '자아'를 구분하지 못한다. 쉽게 말해서 '나'와 '너'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냥 뭉뚱그려서 '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내맘'을 몰라주는 사람에게 징징거리면서 투정을 부리기 일쑤다. '나와' '너'의 구분이 명확하게 가능했다면 그런 투정을 부릴 것도 없이 쿨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와 '너'의 차이점이 눈에 띄면서 서로서로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깨치면서 '다른 사람과 다른 나'라는 존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다움'이다. 나는 이런 존재야. 나는 이런 성향이야.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저런 건 싫어해. 그게 바로 나야...바로 이런 깨달음이 생기면서 비로소 '사회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드는 것이다. 그때가 대개 초등 3학년 시절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사회교과'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초등 1학년에 '나다움'을 깨우칠 수 있다면 대단한 거다. 왜냐면 이때쯤에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심한 '따라쟁이'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자기만의 취향이 뭔지 잘 몰라서, 그저 남이 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하기 바쁘다. 그래서 종종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장난감을 스르륵 내려놓고 다른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다 막상 그 장난감을 손에 넣었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다른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탐내며 울먹이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나다움'을 깨우치지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취향이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남 흉내만 잔뜩 부리는 시기가 바로 초등 1학년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전혀 문제가 없는 행동들이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깨우치고 올바른 훈육을 거쳐 또래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고, 어른들 말씀 잘 들으라는 예의범절을 가르치면 자연스럽게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나다움'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 또는 그런 장점을 뽐낼 수 있는 것, 자기만의 특기를 사랑하는 것 등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점점 나이가 들어서도 '정체성 혼란'까지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는 글 : 그런데 바로 이 책 <브로콜리지만 사랑 받고 싶어>가 그런 '나다움'의 가르침을 아주 잘 전달하고 있다. 브로콜리가 가지고 있는 효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세계 10대 푸드에 속해 있으면서 온갖 영양소가 고르게 갖춰져 있어서 충분히 섭취하면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항암 성분'까지 갖추고 있어서 그야말로 필수섭취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재료가 아이들 입에는 잘 맞지 않아서 '어린이 기피대상 1위'가 되는 불명예를 받고 있다. 비단 브로콜리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1위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브로콜리'가 우리 밥상에서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음식재료인지 반대급부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우리 밥상에 자주 올라오지 않는 음식재료였다면 아이들이 '브로콜리'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 1위였던 '당근'은 아주 잘게 썰어서 당근인줄 모르고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브로콜리'는 아주 잘게 썰어도 브로콜리인 것이 딱 티가 나기 때문에 그 방법으로는 힘들 것이다. 대신에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맛있다!"라는 음식에는 브로콜리가 정말 딱이다. 정확하게 브로콜리 맛이 나지만 맛있게 맛이 어우러져서 최고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암튼 이 책의 주제인 '나다움'과 함께 '세계10대푸드'라는 명성에 걸맞는 브로콜리의 뛰어난 효능도 함께 알아나가면 아주 훌륭한 독서지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편식이 심한 어린이들에게 '브로콜리'처럼 사랑받는 존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면서 '경쟁의식'을 살짝 토핑으로 얹으면 아이들의 편식 습관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만화영화 <뽀빠이>에서 어린이들이 먹기 싫어하던 '시금치'를 먹고 힘센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나도 <뽀빠이> 덕분에 맛없는 시금치를 원 없이 먹어 봤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브로콜리' 먹고 사랑을 원 없이 받길 바라는 깜찍한 소원을 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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