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톡 10 삼국지톡 10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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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0>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5)

[My Review MMCCLXV / 문학동네 4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네 번째 리뷰는 글로만 접했던 교국로의 두 딸 대교와 소교의 미모를 확인하고 수경선생 사마휘 휘하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서서와 방통, 그리고 제갈량을 만날 수 있는 <삼국지톡 10>이다. 손책과 주유가 각각 대교와 소교 자매의 짝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미인인지 <삼국지연의>에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랬다니까 그런갑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화 삼국지'를 뒤져봐도 대교와 소교를 그린 화백이 거의 없다. 왜냐면 그녀들의 활약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손책의 아내, 주유의 아내 정도로만 묘사할 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지톡>에서는 이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원소, 공손찬, 조조, 유비, 손견 등등의 안주인들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끌어왔는데, 손견의 아내 '오국태(본명은 모름)'마저 중요 등장인물로 소개한 마당에 그녀의 아들인 손책과 손책의 절친인 주유의 아내가 되는 '대교와 소교'가 등장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등장시키니...웃겨 죽겠다. 직접 책으로 확인해보시길. 한편, 조조의 품에서 달아난 유비가 '관도대전' 이후에 만나게 될 책사들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톡 10> 관점 포인트 : 원술이 드디어 황제에 오르고 '중(仲)나라'를 건국하니 조조는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손책에게 직책을 하사하고, 강동땅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도록 한다. 그리고 그 댓가로 원술을 공격하라 하는데, '소패왕'이란 별명에 어울리게 연전연승을 하며 원술에게 우호적인 세력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낸다. 그러다 만난 인연이 바로 '교국로의 딸'인 대교와 소교였다. 적진 한복판에서 만난 인연치고는 엄청난 우연이었고 손책으로서는 '혼인'을 통해서 자기 세력을 넓혀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었기에 교국로를 혼인으로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대교와 소교는 훗날 오나라 명문가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강동을 석권하는데 큰 힘을 보탠 것으로 정리가 된다.

이런 결혼정책은 오랜 옛날부터 유용하게 써먹던 방법이다. 신석기시대 한 곳에 정착한 씨족사회가 부족사회로 세력을 키울 때부터 써먹었던 정책이니 정말 오래되었고, 오늘날까지 '두 집안'이 '한 가족'으로 묶이게 되는 유용함을 잘 이용해서 재벌가문끼리 서로의 재산을 불리고 늘리는데 아주 잘 써먹는다. 우리 나라도 고려 태조 왕건이 여러 호족의 딸과 혼인을 거듭하면서 싸우지 않고 통일하는 방법을 써먹을 정도로 오래되고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삼국지>에서도 손책만 써먹던 독특한 방식은 아니었으며, 유비도 서주를 얻게 되면서 '미축의 여동생'과 혼인을 하며 서주의 대명문가와 인연을 맺고, 서주 최고 부자의 덕을 톡톡히 보았던 셈이다. 이 때문에 혼인은 '인륜지대사'라고 불리며 두 가문의 결속을 다지고 재산과 세력을 늘리는 유용한 점을 적극 활용했던 것이다. 그러니 원소와 공손찬처럼 어머니쪽이 '천한 신분'이었던 것이 얼마나 불리하게 작용했고, 그 때문에 어린 시절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험과 고난을 감수해야 했었느냔 말이다. 이는 한미한 가문이었던 '손책'도 마찬가지였다. 소패왕으로 실력은 검증 받았으나 전쟁을 거듭할수록 딸리는 것은 '군자금'과 징병과 물자를 원활히 보충할 수 있는 '명분(고귀한 신분)'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손책이 비록 적국이지만 대명문가 교국로의 딸과 혼인한 것은 단순히 '미모에 반했기' 때문만은 아닌 셈이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영토를 넓히고 군자금 융통까지 원활히 하기 위한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한편, 조조는 헌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황제랍시고 조조가 명하는 것에만 순순히 따를 수는 없었는지, 조조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은 까맣게 잊고서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조조를 '역적'으로 몰아서 내치고자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조조의 관점'이다. 왕조 국가에서 천하만물의 주인은 오직 황제 한 명 뿐이다. 그러나 한나라 황제인 헌제가 '주인행세'를 해야 마땅한데, 조조가 승상의 자리에 올라서 모든 일을 황제를 대신해서 처리하고, 황제마저 '허수아비'처럼 세워놓기만 하고 조조의 뜻에 거역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일삼고 있으니, 조조는 만고의 역적이 분명했다. 더구나 사냥대회에 나가서 감히 황제의 활을 빼앗아 대신 사슴을 잡으며 신하들의 만세소리를 자신이 대신 받는 것만으로도 '역적'으로 몰아 죽여버린다해도 누구 하나 문제삼지 않을 죄인인 셈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그런 천인공노할 대역죄에도 끽소리를 못한다. 딱 하나 유비의 둘째 아우 '관우'만 빼고 말이다. 관우는 황제 앞에서 오만불손한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해버리는 조조를 들고 있던 언월도로 단박에 썰어버리려 했다. 허나 조조의 호위무사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천하의 관우라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비는 급히 관우의 행동을 저지하고 조조에게 엎드려 사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 때문에 조조는 관우를 더욱 주시했던 것일까? 더구나 관우는 <춘추>에서 '신하의 도리'를 주워섬기며 조조를 준엄하게 꾸짓는데 조조 또한 '먹물' 좀 많이 먹은 탓에 이러한 관우에게 더욱 호감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를 훈장선생으로 묘사하고, 장비를 돼지고기 장수쯤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실제로 공부는 장비가 더 잘했다고 한다. 관우가 줄줄 외고 있는 것은 <춘추>가 유일했다고. 암튼 조조는 묘하게도 관우에게 호감을 보이며 자기 부하로 삼으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물론 그건 나중 일이지만 말이다.

암튼, 유비는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황제 알현도 하지 않고 일체의 정사에도 관여하지 않으면서 '농사일'에만 집중하고 두문불출하며 몸을 낮춘다. 그런 유비를 끌어들여서 '조조 처단'에 이용하려 드는 헌제와 행여라도 유비가 '조조 암살'에 가담할지 불안에 떠는 조조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도, 유비는 태연자약하게 농사일에만 전념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농사를 짓고 있는 유비를 초대해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영웅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이름하야 '논영회'라고 붙였는데, 그 자리에서 조조는 온 세상에 영웅은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이 자리에 조조와 유비, 딱 두 사람 뿐이라고 단언을 한다. 이 역시 조조는 유비를 떠보려는 속셈일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 조조'를 죽이고 영웅이 되고 싶은 거 맞잖아. 그러니 죽이고 싶으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라면서 유혹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유비는 자중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벼락과 천둥이 치고 유비는 깜짝 놀라 탁자 밑으로 몸을 숨기며 벌벌 떨며 겁쟁이처럼 행동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장면이 전혀 없다. 그 대신 장면이 전환되면서 헌제가 동승에게 '옥대'를 건내주며 '조조를 죽이라는 혈서'를 동봉해서 건내준다. 그리고 다시 장면전환이 되면서 유비가 조조에게서 멀리 달아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나게 되는데...

나가는 글 : 유비가 조조의 품에서 벗어나 서주로 달아났지만, 서주에서 재기를 노린 것이 애써 헛수고로 끝나고 오히려 유비 삼형제만 뿔뿔이 흩어져서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하비성을 지키던 관우가 두 분 형수를 지키기 위해서 조조에게 항복을 하면서 일단락이 되고, 본격적인 관도대전이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11권의 핵심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톡>은 늘 예측불가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때문에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궁금하다.

한편, 관도대전 이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제갈량'은 형주 양양에서 수경선생 사마휘 휘하에서 한창 공부중이다. 허나 천재 중의 천재로 이미 사마휘의 인정을 받은 상태였기에 '엎드린 용'이라는 뜻의 '복룡'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허나 우리에게 더 익숙한 별명은 '와룡'일 것이다. 복룡이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서 엎드린 용'이라면 와룡은 무슨 뜻일까? 제갈량은 소싯적에 선생을 골려주고 놀려먹는 것을 즐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종종 선생들이 그를 '발라당 까진 방자한 녀석'이란 뜻으로 '배를 훤하게 드러내고 발라당 드러누운 용'이라는 와룡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복룡이란 별명 대신 와룡이란 별명으로 그간 불러왔던 걸까? 사실 '엎드린 용'과 '누운 용'의 차이는 그닥 없다. 당시 선비들은 베개를 높이 베고서 모로 누워 있는 자세를 즐겼고, 불상 가운데 누워있는 부처이라는 뜻으로 '와불'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대부분 '모로 누운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엎드린 용이나 누운 용이나 아직 하늘로 승천할 때를 만나지 못해서 '잠을 자고 있는 용'이란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서로 같은 뜻이었던 것이다. 헌데 이 책에서는 제갈량의 어린 시절을 똑똑하다 못해 버르장머리 없는 뜻으로 '발라당 까진 놈'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제갈량의 '천재성'을 은유적으로 빗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제갈량은 그리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범한 재주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삼국지연의>에서처럼 '신출귀몰'한 재주를 발휘하는 신통방통한 능력자는 아니었고, 제갈량이 내놓은 계책이라고 했던 것들은 사실 '다른 인물들'이 먼저 했거나 '다른 인물들'이 한 일을 제갈량이 한 것 마냥 바꿔치기 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나마도 대부분 '과장'된 점이 없지 않아서 <삼국지연의>만 보고 제갈량을 천재라고 인지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역사가들이 많다. 그렇지만 제갈량을 만나고 난 뒤에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고 '익주'까지 세력에 포함시킨 것은 사실이기에 유비로서는 날개를 단 것일테다. 앞으로 <삼국지톡>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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