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 세상의 기준에 좌절하지 않는 어른의 생활법
양승렬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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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IV / 한빛비즈 159번째 리뷰]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명심보감>을 시작으로 어릴 적부터 적지 않은 유교경전을 읽었더랬다. 하지만 스승님께 사사받는 수업이 아닌 '독학'으로 읽었기 때문에 뜻풀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되는대로 주워 섬기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읽은 셈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좋은 말씀'에 대한 기준만큼은 명확히 새기고 있던 터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 부끄러운 일은 결코 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왔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사람을 보는 기준이 '인성(人性)'의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갈리는 편이다. 다시 말해, 내가 고개 숙여 존경하고 우러르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마음이 고운 사람'뿐이다. 그렇게 착한 사람에게는 진심을 다해서 예를 다하려고 노력한다. 허나 심성이 고약하거나 품행이 방정맞지 못하거나, 특히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사람은 딱 질색이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은 절로 '호감'을 사게 되고, 반대로 부정적인 사람은 '반감'을 띠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마찬가지로 예를 알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내것을 아끼지 않고 가깝게 지내고 싶은 반면, 하는 일마다 투덜거리고 제 일마저 남에게 떠넘기는 몰상식한 사람과는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이런 당연한 소리가 바로 <논어>에 다 적혀 있다.

그렇지만 정작 <논어>를 읽어본 사람은 내 주변을 보아도 그리 많지 않다. 행여 드물게도 읽어본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서 소감을 물으면 "너무 지루하고, 어렵고 딱딱한 말투 때문에 다 읽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하긴 나도 처음에 읽을 땐 딱 그랬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친절한(?) 해석'이 달려 있는 책들을 읽으면 그나마 읽을 만하다는 소극적인 권유를 하지만, 고루한 옛말투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논어>를 '현대어'로 풀어낸 책이 절실했는데, 이 책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가 딱 그랬다.

물론, 이 책의 글쓴이가 지적하듯이 <논어>를 '완역본'으로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데 동의하는 편이지만, 한자어휘를 남발한 책을 완독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기에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다. 더구나 요즘 세대들은 '고사성어'에 담겨 있는 지혜를 읽으면서도 "어쩔 TV~"로 대꾸하곤 하는데 말이다. 뭔가 '가르치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엿보이면 반감부터 생겨 어깃장을 놓곤 하니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연구하는 것도 필요할 지경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쉬운 풀이'가 절실한 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논어>의 전체를 실은 것이 아니라 '64개의 문장'만을 꼭 알아야 할 내용으로 삼고, 오늘날의 적절한 해석을 일일이 달아놓았으니, 그나마 읽을 만한 <논어>가 된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말하지만, '조선 그림'에 대한 해설도 꽤나 '교육적'으로 보여서 '수행평가'에나 도움이 될 법한 '예시(모범답안)'로 삼으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논어>, 그 자체니까 말이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논어>를 쓴 사람은 '공자'가 아니다. 위대한 성현들인 '예수'도 <성경>을 직접 쓰지 않았고, '무함마드'도 <꾸란>을 쓰지 않았으며, '석가모니'도 <불경>을 손수 적지 않았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저작물을 직접 남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의 '말씀'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그들의 '제자'가 그분들의 '말씀'이 너무 귀하고 소중해서 제자들끼리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해놓았다가 따로 모아서 책으로 남긴 것이 이른바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경전'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이런 성현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따라하고자 '나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 손수 집필하지 아니 하고 '내 제자들'에게 열실히 필기를 하라고..쿨럭쿨럭

암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논어>는 공자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적어 놓은 책이란 말이다. 더구나 공자는 교실 안에서 강의를 하는 '딱딱한 수업'을 하지 않았단다. 제자들과 함께 좋은 산천구경을 하며 다니다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지고 BGM으로 시냇물 소리가 졸졸졸 흐르는 곳에서 노닐다가 악기를 연주하다 흥이 오르면 '좋은 말씀'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고, 제자들은 그런 스승님의 흥취에 장단을 맞추다가 문득 '궁금증'이 떠오르면 질문을 던지는 꽤나 느슨하고 열린 수업을 진행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 터이니 '강의 커리큘럼'이 따로 있을 리 없고, '교과 목표' 따위를 드러낸 교과서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저 '떠오르는 영감'을 주는대로 받아 먹는 식으로 제자들도 공자님의 말씀을 적었을 뿐이다. 그러니 <논어>에 '읽는 순서' 따위는 없다. 아무 대나 손이 가는 대로 펴서 읽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이런 식이니 <논어>를 '격식'을 따져가며 읽을 필요가 전혀 없고, 읽는데 부담을 가질 필요도 전혀 없다. 오히려 그런 부담감을 갖는 순간 <논어>를 제대로 읽기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격식'을 내려놓고 읽다보면 때론 '파격'적으로 읽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땐 '그런 맛'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경전>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려는 '교조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성현의 말씀을 곡해하고, 원래의 뜻을 왜곡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짓이 되는 경우가 더 흔하기 때문이다. '좋은 말씀'은 우리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마음의 양식'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논어>를 읽을 때에도 아무 거리낌없고 막힘 없이 읽어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이를 테면, <논어>의 가장 유명한 문장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也'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느냐'라고 직역을 해버리면, 그 뜻이 살지 못한다. 이 문장의 뜻은 한마디로 '아는 것이 많아지면 즐거워진다'는 공부하는 학생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자세라고 하더라도 '강요'하게 되면 즐거울 턱이 없다. 그래서 공자는 '때 시'를 강조한 듯 싶다. 언제 '학습'을 하면 가장 기쁘겠는가? 바로 '알고 싶은 것'이 생겼을 바로 '그 때' 알 수 있고, 깨우칠 수 있다면, 머릿속에 전구가 밝게 빛나듯, 지혜의 샘물이 콸콸 솟아나듯 '앓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야말로 진정 기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로 풀이를 하면, 이해가 쏙쏙 될 것이다. 이처럼 오래된 문장을 '곧이 곧대로'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공자가 살던 시대와 오늘날이 수천 년이라는 세월의 격차가 있는데, 이를 '세대차이'로 셈을 해본다면 얼마나 큰 차이겠느냔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과거의 지혜'가 세월이 흘렀다고 '낡은 지혜'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왜냐면 그 때에도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으니, '사람' 사는 데에는 다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이를 '욕망' 또는 '욕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은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달라질 것이 없단 말이다. 다만, 사람이 살아가던 '세상의 모습(양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그 '양식'만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좋은 말씀'은 그대로 오늘날에도 '유용한 지혜'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논어>는 절대 고리타분한 옛글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생생히 살아 있는 지혜로 우리가 엿보고 배울 만한 '훌륭한 교과서'인 셈이다. 다만 그 교과서를 '현대어'로 슬기롭게 바꾸어 읽을 수 있는 '짬바(경륜, 또는 경험, 삶의 지혜 따위)'가 필요한 셈이다. 일단 이 책의 글쓴이가 '풀이'한 내용을 참고 삼아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면 <논어>뿐만 아니라 '다른 경전'들도 충분히 쉽게 해석하며 읽어 나가는 짬바(?)가 생길 것이다. 그런 짬바로 '좋은 말씀'을 다시 되새기며 읽다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쯤은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도 느끼게 될 것이다. 좋지 않은 점이 보인다면 '고치고 싶은' 용기도 생길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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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세이프 씽킹 - 불안을 성공으로 바꾸는 사고법
조나 삭스 지음, 서은경 옮김 / 한빛비즈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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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세이프 씽킹>  조나 식스 / 서은경 (2024)

[My Review MDCCCLXIII / 한빛비즈 158번째 리뷰] 성공에 이르는 길은 '레드 오션'이 아니라 '블루 오션'에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레드 오션'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왜냐면 그곳은 '이미' 성공해서 널리 알려진 '안정'적인 경쟁구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루 오션'은 '아직' 미개척지와 다름 없다. 그곳은 아직까지 성공했다고 알려지지도 않았고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어느 쪽일까?

우리는 이 뻔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익숙한 것'에서 탈피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들이 다 하는 안정적인 삶에서 조금이라도 이탈을 하면 불안에 빠져 허우적거릴 정도로 나약해 빠졌다. 과감한 도전이 필요한데도 그러지 못한다. 왜냐면 그 길만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철떡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유치원-사립초등학교-국제중-명문외고-명문대-대기업 입사] 이런 공식을 줄줄이 세워놓고 고~대로 따라기 급급하다. 그렇게 대기업 신입사원이 되면 '성공한 삶'일까? 정답은 그냥 '월급쟁이'다. 대기업 정사원이 되었으니 조금 더 받는 월급쟁이 말이다.

이 책 <언세이프 씽킹>에서는 그런 삶을 '성공'이라 부르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한마디로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직언한다. 왜? 너무 '안전'을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조금 불편하겠지만 '도전'을 하고, '모험'을 하는 삶이 어쩌면 성공에 이르는 진짜 빠른 길일 수도 있고, 설령 성공에 이르지 못했다하더라도 굉장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어서 다른 이에게 귀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치' 있는 삶이야말로 <언세이프 씽킹>이 추구하는 진정한 성공적인 삶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맹신하지 않는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나처럼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걸 다 따라해봤던 경험자로서 그렇게 해도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는 값진 교훈만 얻었다. 그래서 난 '성공의 법칙'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편이다. 그리고 '부를 쌓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생각도 버렸다. 단순히 돈만 많이 벌거나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렇게 성공했다한들 그닥 행복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면 가난하게 살다보니 돈을 그리 많이 들이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건강'이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이리저리 용을 쓰다보니 덜컥 '건강'을 해치게 되었고, 그렇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니 돈 많은 것은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었다. 정작 돈을 주고 '건강'을 다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건강을 회복한 비법은 '규칙적인 일상'을 되찾는 것이었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푹 쉬고, 적당히 운동하고, 적게 먹는 습관을 들였더니 차츰차츰 건강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병원신세는 크게 지고 있지 않다. 이런 몸으로 또다시 '성공신화의 늪'에 빠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공'에 이르는 삶이란 말인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가치' 있는 삶'이다.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이란 남들이 '해보지 않은'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안전(세이프)한 생각'이 아닌 '안전하지 않은(언세이프) 생각'을 실천하는 용기를 뿜어내야만 한다. 그래야 온전히 나만의 독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나만의 삶'은 종종 진정한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웬만한 <위인전>을 읽어보면 저절로 고갤 주억거리게 될 것이다. 그런 위인들의 삶이 참으로 '안전하지 않은 생각들'의 연속이었다고 말이다. 남들 하는 것처럼 '따라쟁이'였다면 결코 인류를 위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도 '성공법칙'을 말하기는 마찬가지다. '안전하지 않은 생각(언세이프 씽킹)'을 실천하면 누구나 성공에 이르는 놀라운 비법이라고 강조하기 있기 때문이다. 허나 교육자로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런 '언세이프 씽킹'은 언제나 '피프티피프티 법칙(50:50 법칙)'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창의성'을 기르는 수업을 진행하겠다면 학부모와 학생들 모두 반가워하지만, 그런 참신한 교육을 통해서 '창의성'이 높아진 것이 '학교내신(성적)'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게 되면 곧바로 '보습학원'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학생과 학부모를 말릴 수 없었다. 그들의 선택이 완벽하고 완전하게 '틀린 삶'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선택을 하고도 '명문대'에 입학하고, 돈 잘 벌고, 결혼 잘 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만의 교육소신은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창의적'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난 그런 삶이 '성공'에 가깝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조금 더 풍요롭고 여유롭게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한다면 남들보다 조금 덜 풍요롭고 쪼들리게 사는 것은 '실패'한 삶이란 말인가? 그건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그런 넉넉함을 '성공'이라고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진정한 성공이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 굳건한 힘 위에 쌓은 것이라야 위대한 금자탑을 쌓아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금자탑은 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왠지 불안해서 도전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런 걸 과감히 도전해서 많은 이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아올리다 무너진 것이 바로 '실패'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굳건한 힘 위에 쌓다 쓰러진 탑을 보고서 손가락질 하기보다는 안타까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응원과 박수를 아끼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고, 진정한 성공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전하지 않은 생각'을 생활화해야 한다. 쌓아올리고, 또 쌓아올리는 이들을 향한 열화와 같은 응원과 박수가 끊이지 않게 말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용기있고, 올곧은 저항을 할 줄 알며, 올바른 비판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기존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안정만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길 바란다.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하고 모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이다. 남들과 '똑같은'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추구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생각 끝에 조금은 '불안한 선택'을 하는 것이 당신의 삶에 '최고'는 아닐지언정 '최선'을 선사해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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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어린이 과학 상식 - 과학으로 충전하는 어린이 일상 속 알쏭달쏭 호기심 유쾌한 교양 수업
이동훈 지음, 이크종 그림, 김금 감수 / 블루무스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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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II / 블루무스어린이 2번째 리뷰] '아는 게 힘'이라는 진리를 믿는 어린이라면 '과학책'을 많이 읽길 권한다. 과학책을 많이 읽으면 '상식'이 풍부해지는 것뿐 아니라 '보이는 것'도 많아지기 때문에 더 많은 지식을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것(지식)'이 많아지면 '보이는 것(이해)'도 점점 많아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학책을 많이 읽으면 좋을지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그에 대한 정답은 바로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다양하게 '많이' 읽고(다독), 또 하나는 읽었던 책이라도 '다시' 읽는 것(반복)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정답이겠지만, 명백한 이유가 있으니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어린 시절에 '다양한' 과학책을 많이 읽고, 읽었던 과학책이라도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과학은 '한 분야'를 이해하면 저절로 다른 분야까지 덤으로 이해가 되는 통합과목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과학책을 많이 접하게 되면 수많은 '과학 지식'이 저절로 '과학적 이해'로 연결되어 어렵게만 여겨지는 수준 높은 과학도 더 쉽고 재미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었던 과학책이라도 '반복'해서 읽게 되면 우리 뇌속에 '단기 기억'이 아닌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잊지 않는 '지식의 원천'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력은 어린 나이일수록 더 또렷하게 기억되기 때문에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과학 상식'을 쌓을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느' 과학책을 읽으면 좋을까? 사실 가장 좋은 과학책은 자기 수준, 다시 말해 '눈높이'에 딱 맞는 책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과학책을 '남'이 골라주기는 참 힘들다. 왜냐면 '나의 눈높이', 즉 '과학적 이해 수준'은 자기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눈높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직접 골라서 읽을 수 있으니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과학책 '추천'을 해달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이 책 <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어린이 과학 상식>과 같은 책들을 권하곤 한다. 이유는 딱 하나다. 풍부한 과학 상식을 쌓을 수 있도록 '다양한 과학 지식'이 한 권에 총망라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과학적 지식에 대한 해설'이 상세하면서도 간략해서 읽는 즉시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책들에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다수 수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100가지 중에 80가지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20가지는 새롭게 익히는 지식이기 때문에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80%인데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물론 그렇다. 그 까닭은 바로 과학책의 경우, '반복' 독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고 있는 것'을 따로 구분하고 있다. 흔히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굳이 말이나 글로 설명을 하려면 잘 되지 않는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뇌가 기억하는 방법이 '단기'와 '장기'로 나누어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은 단기 기억으로 저장하고, 완벽히 '이해한 것'은 장기 기억으로 저장해서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꿀 수도 있을까? 물론이다. 그 방법은 바로 '단기'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되살리게 되면 오랫동안 잊지 않는 '장기' 기억으로 남길 수 있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되살리는데 효과적인 방법이 다름 아닌 '반복하는 것'인 셈이다.

그러나 '반복 독서'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잊을 만 하면 꺼내 읽고, 또 가물가물해지면 또 꺼내 읽는 방법이 '습관화' 되어야 하는데, 웬만큼 바른 생활을 몸소 실행으로 옮기는 의지가 없다면 하기 힘든 방법이다. 내가 어릴 적 써먹었던 방법은 화장실에서 엉덩이에 힘을 주는 10분~20분 동안 '과학책'을 들고 들어가 집중하며 읽는 방법이었다. 여기에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화장실에 자주 맡을 수 있는 '암모니아 냄새'가 의외로 정신력을 집중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단다. 더구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책을 읽으면 '시력보호'에도 효과적이다. 물론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즐겨 읽기도 하니 시력보호에는 그다지 효과를 볼 수도 없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암튼, 이 책 <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어린이 과학 상식>은 어린이가 읽기에도 좋고, 과학 상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중고등 청소년이나 성인 독자들이 읽어도 유익한 책이다. 제목에 '어린이'라고 적혀 있어서 낯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과학 지식을 쌓는 방법으로 '눈높이'에 딱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유달리 과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읽으면 좋다. 과학분야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뜻도 모를 '과학용어'가 산더미처럼 쌓인채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과학이 익숙치 않다면 당연히 '과학용어'도 어렵게 느껴지는 법이니 겁부터 낼 필요가 없다. 그리고 과학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과학지식'을 어느 정도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외울 필요가 있다. 마치 어린 시절 '영어단어'를 100개씩 무작정 외웠던 것처럼 '과학상식' 100가지를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갑다~하고 외워버리면, 다음에 다시 한 번 읽을 때에는 '그런 갑다'가 '그런 거구나'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놀라운 경험을 즐기다보면 자연스레 '과학 천재'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 이제 '과학 상식 100개'가 수록되어 있는 이 책부터 외워보는 연습을 해보길 바란다. 정말로 제목처럼 '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과 비슷한 책을 100권도 넘게 읽었다. 그랬더니 아무리 어려운 과학책을 읽어도 두렵지가 않게 되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겨우 100권 정도만 읽어도 누구나 '과학 천재'가 될 수 있다니 말이다. 여러분도 '과학 천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다독'과 '반복'만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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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1 : 말세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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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I / 엘릭시르 13번째 리뷰] 드디어 '말세편'의 서막이다. <퇴마록> 시리즈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크고 가장 복잡한 스토리로 전개될 것이다. 그 서막의 시작은 '치우천왕'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에겐 '고조선'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겠지만, 사실 '조선(朝鮮)'이란 명칭은 오늘날의 한자 발음일 뿐, 반만년 전에는 '우리식'으로 어떻게 읽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단지 '한자'로만 전해져 왔을 뿐, 그 당시에 적혔을 우리글 '신시문자(또는 신지문자)'를 오늘날에 읽고 쓸 줄 모르니 답답할 노릇이다. 다만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옛 조선의 이름은 '쥬신'이라 불렀다고 전해지는 까닭에 '고조선'을 '쥬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쥬신'은 오늘날의 한반도 북부와 만주, 요동만을 일컸는 영토가 아닌 더 많은 '연맹체'를 합쳐서 아울렀기에 '크다'는 뜻을 써서 '대쥬신(大朝鮮)'이라 불렀고, 그 연맹체의 우두머리를 '환웅'이라 불렀단다. <삼국유사>에도 단군왕검이 1500살을 살다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여러 임금이 '단군왕검'이란 하나의 호칭으로 불렸다는 증거일 수 있으므로, 환웅도 대를 이어 죽 이어져오다가 '자오지환웅(치우천왕)' 때 대제국 조선을 완성했다고 한다. 중국 기록에는 삼황오제 가운데 한 명인 '황제'와 '치우'가 탁록전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하니 '대제국 조선'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 뛰어난 예언자 '우사 맥달'이 있었으니, 그녀가 남긴 '예언서'가 바로 <해동감결>과 이 책의 비밀을 풀어낼 열쇠에 해당하는 <우사경>이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그 당시로부터 반만 년 뒤에 세상이 멸망에 이르게 되는 '말세'가 도래하니, 이를 막고 인류를 구원할 4명의 인물이 나타날 것이며, 그 4명은 '한민족의 핏줄'을 이어받았고, 온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을 선인(善人)이니, 그들이 말세의 도래를 막기 위한 방법을 알 수 있게 두 권의 책을 전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두 권의 책을 5000여 년이란 세월을 견디고 온전하게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종이를 발명한 채륜이란 사람도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인 한(漢)나라 때 사람이니, 그보다 3000년 전엔 나뭇조각이나 대나무조각에 글을 써서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아놓은 '목간'이나 '죽간'이었다. 그러나 '목간'도, '죽간'도, 심지어 '종이'라도 5000년의 세월을 견디기란 대단히 힘들 것이다. 그래서 두 권의 책을 지켜야 할 사명을 띤 사람이 필요했고, 그 사람의 후손이나, 모임의 수장이 두 권의 내용을 손으로 직접 옮겨 적으며 소중히 간직하는 방법을 띠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옮겨 적는 방법도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오래된 옛글자로 전해져 오는 내용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후대의 사람들이 무한정 '베껴쓰기'를 할 것이라는 보장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예언자 우사 맥달은 한가지 묘안을 마련했는데, 예언에 해당하는 중요한 내용은 쉽사리 알지 못하도록 '암호화'했지만, '불사(不死)'라는 단어만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보관중인 사람이거나,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한 사람일지라도 '불사'라는 단어만 보아도 이 책을 소중히 간직해서 전해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권의 예언서가 반만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도 후대에 꼭 전해져야 할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안배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권의 예언서를 '누가' 발견하고 '어디에' 보관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서복'이다. 그는 진(秦)나라 시황제의 명을 받아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러 동방으로 떠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죽지 않는 영약이 난다는 동방의 영산을 찾아헤맸고, 그렇게 찾아헤맨 산이 바로 '백두산, 금강산, 한라산'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일설에는 그가 진시황의 명을 받기도 전에 스스로 자청을 하여 천 명의 어린 선남선녀를 직접 뽑아 배에 태우고 '제주도'로 가서 불로초를 찾았다고도 전해진다. <퇴마록>에서는 이를 기틀로 삼아 서복이 찾은 것이 '불로초'가 아니라 '불사의 기록'이 적혀 있는 <해동감결>과 <우사경>을 발견했고, 이를 해석했으나 원했던 '불로불사'의 내용이 아닌 것을 알자 두 권의 책을 바다 건너 왜(일본)로 가져갔다가 <해동감결>은 일본의 명왕교가 소유하고 있었고, <우사경>은 더 기가막힌 곡절을 겪은 뒤에 개항기 시절 막부의 창고에 묵혀있던 것을 미국이 수탈해서 가져갔으나 아무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해 방치 되었다가 '차이나타운'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스토리를 전개시켰다.

1권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이 두 권의 책 내용을 해석하거나 행방을 찾아 퇴마사 일행들이 떠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여기에 '말세'와 관련되어 전세계 종교와 종파, 비밀결사단체 등등이 자신들에게 전해져내려오는 비밀이 속속 밝혀지는 등 전반적인 이야기의 스케일이 너무나도 방대해져서 독자들을 어리벙벙하게 만들 정도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뒤이어 나올 이야기는 더욱더 놀라운 충격의 연속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퇴마사들의 능력은 '말세'를 대비하여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다. 박 신부의 '기도력', 이현암의 '기공술', 장준후의 '주문술', 그리고 현승희의 '염력(사이코키네시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져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펼칠 활약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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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민주주의, 미국은 왜 위태로운가 - 미국의 기원, 발전, 그리고 위기까지, 지도+인포그래픽과 함께 읽는 미국 민주주의의 모든 것
토마 스네가로프.로맹 위레 지음, 권지현 옮김, 델핀 파팽.플로리안 피카르 지도 / 서해문집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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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 / 서해문집 13번째 리뷰] 미국인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 두 가지를 꼽으라면 '9·11사태(2001)'와 '미 의사당 점령(2021)'을 꼽겠다. 물론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 등의 '대통령 암살'을 비롯해서 엄청난 사상자를 낸 내전 '남북전쟁'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경제대공황', '워터게이트 사건',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흑인인권운동가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며 벌였던 수많은 시위와 폭동 등등 수없이 꼽을 만한 것들이 넘쳐나겠지만, 다른 사건들은 미국의 기조가 흔들리지 않았음에도,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건은 미국을 완전히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실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립을 선포하면서 국왕이 다스리는 왕정을 포기하고 '공화정'을 선택했다. 그리고 유럽의 다른 왕조국가들과는 달리 '민주주의'를 선택해서 국민이 직접 국민을 위한 국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자신들이 구축한 '민주주의'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이를 전세계로 확산시켜 나가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을 정도였다. 이런 기조는 미국이 '농업국가'에서 탈피해서 '산업국가'로 발돋움하고 나아가 '제국주의'로 세력팽창을 해나갈 때에도 여전했다. 그리고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갖춘 뒤에는 자신들이 만든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도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전쟁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였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가 정말 완벽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먼저 미국만의 독특한 '선거제도'를 꼽을 수 있는데, '선거인단'을 구성해서 각 주마다 표를 더 많이 차지한 정당이 그 주의 선거인단을 싹쓸이하는 '승자독식' 방식을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 득표수에서 승리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선거인단 수에서 뒤쳐지는 바람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시 말해, 미국 국민의 다수가 힐러리를 지지했는데도, '선거인단'을 많이 확보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것이 과연 '민주적인 방법'이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대목이다.

또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에 도전했다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정권을 이양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트럼프는 미국의 전통이었던 '패배 선언'을 하지 않았다. 앞서 더 많은 미국 국민의 선택을 받은 힐러리도 군소리 없이 '패배 선언'을 함으로써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라는 미국 정치의 안정과 국론 통합을 위한 대의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더 나아가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 것은 '정치 공작' 때문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을 하려던 미 의사당을 점령하라고 자신의 지지자를 부추기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과거의 역대 대통령들은 감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일을 트럼프는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또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았다. 그것도 압도적인 표차이로 말이다. 아무리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헛발질'을 하는 듯한 엉망진창의 정책을 했더라도 미국 대통령의 자격(?)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 망나니가 또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다니, 미국 국민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느냔 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만 보아도 미국의 정치는 깨끗하다고 보였다. 닉슨 대통령은 정치적 능력이 높다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그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벌인 '도청사건'과 '거짓말'을 한 것으로 미 국민들은 닉슨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였고, 닉슨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거짓말 뿐만 아니라 연이은 스캔들에 법정 소송까지 받을 정도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상태였다. 그 범죄가 다름 아닌 '미 의사당 점거 사태'이지 않느냔 말이다. 이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시그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른 나라도 아닌 '초강대국' 미국의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을 전혀 존중하고 있지 않다.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무시하고 '패배 선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자를 축하해주기는커녕 자신들의 열성지지자를 선동해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대통령이 '미국의 헌법'은 제대로 지키려고 할까? 혹시 2번의 임기로도 부족해서 '3선, 4선'에 도전하지는 않을까? 하긴 트럼프와 푸틴, 그리고 김정은은 정말 친해보이기까지 하다. 실제로 자신의 입으로 '그들'과 친하다는 말도 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미국 국민들의 '선택'이 결국 트럼프였다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헌법조차 무색하게 만들지 모를 위태로운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이었다. 정말로 '민주주의 시민'이 고른 자신들의 대통령이 맞느냔 말이다. 지금 미국은 혼돈의 도가니 속에 빠진듯이 보인다. 아무리 선거전이 치열하게 공방을 거듭했더라도 '대선의 결과'가 나오면 오직 미국을 위해 '한 목소리'로 대통령을 지지하고 국론을 통일시켜 왔던 미국의 민주주의 였는데,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지금의 미국은 한 목소리가 아닌 '두 목소리'를 내며 정적을 죽이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트럼프가 늘상 외치던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가 이번에도 잘 통할지 의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미국의 그동안 추구해왔던 '세계화 물결'부터 거둬들이고 '자국 이기주의 우선'을 내세워 '강 대 강'의 대결만 부추길텐데 말이다. 더구나 지금의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에서 물러나야 할 정도로 빈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과연 어느 나라가 미국의 말에 귀를 기울이더냐는 말인가? 그런데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다면, 미국의 말을 안 듣는 나라들에겐 어떠한 행보를 보여줄텐가? 협박? 전쟁?

그런 전쟁에 나서는 미국민들이 자랑스럽고 떳떳한 전쟁이라고 하겠는가? 부당하게 치룬 '베트남 전쟁'이후 미국은 '모병제'로 기존 체제를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었다. 미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벌인 정책들에는 미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한 그 반응은 정책에 적절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반영이 되기는 할까? 만약 트럼프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정책이 진행된다면 미국에도 '또 다른 형태의 독재자'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 될 것이다. 우려스럽지 않은가? 그래서 수많은 미국민들이 혼돈에 빠진 것이다.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이 말이다. 그리고 그의 예측불가함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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