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한겨레 옛이야기 22
신동흔 지음, 노을진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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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나라 판소리 여섯마당 가운데 하나인 '춘향가'를 이야기로 묶어낸 '판소리계 소설'이 <춘향전>이다. 원래는 '판소리 열두마당'이라 전해지는데, 대부분 유실되었고 신재효에 의해 판소리 여섯마당이 전해지고 있다. 여섯마당에는 '춘향가'를 비롯해서 '흥부가(박타령)',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이 정리되었다. 이 가운데 '가루지기타령'은 너무 야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점잖은 소리꾼들은 잘하지 않아 요즘에는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정리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전해지는 <춘향전>은 판소리계 소설 가운데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있다. 특히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로 시작되는 '사랑가'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명곡이며, 완창을 하려면 총 7~8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마저도 간략히 추려서 핵심적인 내용만 부를 때 걸리는 시간이며, 완벽한 완창을 한다면 12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는 '판소리 유럽투어'를 떠났을 때, 이탈리아 극장에서 '춘향가 완창'을 요구했다가 된통 혼났다고 전해진다. 사연인 즉슨, 관객들의 매너가 좋기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 극장측에서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완창'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12시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주의를 주었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하는 바람에 결국 완창을 시작했고, 한 번 시작한 이상 무대를 끝까지 듣고야마는 이탈리아 관중매너 때문에 12시간 동안 관객들이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고문(?)을 받은 끝에 감동의 피날레로 기립박수를 1시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믿지 못할 후문이 들리기도 했다.

 

  그때 '춘향가'의 가슴 절절한 소리꾼의 '소리조'와 '아니리' 사이의 오묘한 앙상블과 소리꾼의 적절한 '발림'으로 완벽히 알아듣지는 못할지언정 이야기의 맥락과 흐름을 가슴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고 극찬을 했고, 12시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소리꾼'과 '고수' 단 2명이서 완창을 소화해내는 것을 보고 자국의 오페라 명가수들도 해내지 못하는 무대매너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3~4시간짜리 오페라 가수들도 길어야 2~3일간 무대에 오를 뿐이며, '같은 배역'을 2~3명 이상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무대에 오르기 마련인데, 12시간이 넘는 완창을 단 한 명의 소리꾼이 일주일을 공연하는 것을 보며 '신의 경지'에 올랐다면서 놀랍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호평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춘향전>의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판소리를 소설로 옮겼기에 그 매력은 '소리'가 전해주는 매력과는 사뭇 다른 '흡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팔 청춘 꽃다운 나이의 선남선녀가 아우러낸 사랑이야기라는 것이 첫 번째 까닭일 것이고, 두 번째는 기승전결이 딱 들어맞는 흥미진진한 이이갸구성일 것이며, 세 번째는 온갖 인물들이 벌이는 갈등과 억압적인 사회적 모순이 엮어낸 모진 고난을 이겨낸 두 남녀가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결실을 맺는 것으로 해소해버리는 통쾌한 결말을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름지기 이야기가 '극적인 성공'을 얻어내기 위해선 주인공이 잘 생기고 아름다워야 한다. 더구나 꽃다운 나이 '열여섯'의 두 선남선녀가 맞났으니 혈기왕성한 두 사람이 벌일 일이야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배경'을 깔아놓았으니 이미 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구성이 두 남녀를 소개하기도 바쁘게 첫 만남부터 첫 사랑을 나누며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더니 '혼인약조'까지 나눌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그런데 덜컥 제동이 걸린다. 몽룡이 '과거급제'를 위해 서울로 떠나야만 한단다. 남자의 출세길을 막지 않으려면 춘향은 몽룡을 따라가지 않고 남아 몽룡을 기다려야만 하고 말이다. 이렇게 이별의 눈물바다를 만들어놓고서 더욱 눈물을 쏙 뺄 일이 남았다. 춘향이 기생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새로 부임한 사또의 수청을 들어야 한단다. 하지만 춘향은 일부종사, 이군불사, 삼종지법을 내세우며 이미 낭군이 있는 몸이니 정절을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변사또는 천한 기생 주제에 정절 운운하다니 꽤씸하다며 온갖 매질을 다하고 옥에 가두고 만다. 그렇게 춘향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춘향을 죽을 위기에서 구하고 변사또를 벌하며 온갖 수탈로 억압받던 백성들의 설움을 해소하니 '최고의 절정'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해피엔딩 중에 해피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선남선녀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장면과 자신의 목숨을 구한 어사가 실은 그토록 그리던 낭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은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을 절절 끓게 만들다가 한 순간에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명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거지꼴을 하고 변사또의 생인잔치에 사또의 부정부패를 낱낱이 밝히는 '칠언율시' 끝에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는 장면은 죽을 위기에 놓인 춘향의 목숨이 다시 살았다는 안도와 함께 탐관오리들에게 온갖 수탈을 당하며 곤궁함을 면치 못한 백성들의 설움이 일순간에 풀림과 동시에, 억울한 사연을 아무리 외쳐도 들을 척도 하지 않던 아전들이 제대로 된통을 맞게 되는 통쾌함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화룡점정의 순간'일 것이다.

 

  이처럼 <춘향전>은 단순한 사랑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울불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렇기에 <춘향전>은 곱씹어가며 읽어야 할 고전이다. 더구나 천한 기생이 양반들이나 지키던 '정조'를 다하겠다는 서민들의 의식고양은 눈여겨 볼 일이다. 실제로 조선후기에는 일반 평민들도 웬만한 부를 이루며 살 수 있던 시대였다. 그로 인해 '평민들의 삶'은 차츰차츰 수준이 높아지고 있었고, 일부 평민들은 '양반' 못지 않은 의식주를 갖추게 되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또한 그렇게 부유한 평민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평민들은 '양반'들보다 더 양반 같은 행세를 했으며, 심지어 양반이 양반 같지 않다며 '비꼼'의 대상으로 만들어 풍자와 해학이라는 새로운 '서민문화'를 만들어냈으니 춘향이 양반흉내를 내고 있다한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춘향과 몽룡은 '자유연애'를 시도하였다. 양반가의 아들과 천한 기생의 딸이 '혼인약조'를 한다는 것조차 놀라울 판에 부모가 점지해주는 짝이 아닌 자기 자신들 '스스로'가 정한 혼인약조 맺고 정절과 수절을 지키려 애쓰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고 있다. 마치 '그런 것'이 당연한 일인냥 말이다. <춘향전>은 시대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면모를 갖췄다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네 고전소설 속에서 으레 찾던 '시대적 한계'를 찾는 것보다 이런 선구적인 면모를 찾아내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할 것이다. '남자의 발목을 잡는 여인'이라느니 '여성의 해방이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만족한다'느니 하릴없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깎아내리는데 급급한 평론 따위는 개나 줘버렸으면 좋겠다. 비단 <춘향전>뿐이 아니다. 교과서에 실린 '우리 고전'은 죄다 '시대적 한계점'을 시험에 출제하며 달달 외우게 만든다. 외국소설을 보면서 '단점'을 꼽아보라고 시험문제를 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앞선 서양문물에 비해 뒤처진 우리네 전근대적인 낡은 사상을 직시하라던 '식민사관'과 다를 바가 없다. 하긴 해방 이후에도 교육계에도 상당기간 '친일적폐'들이 윗자리를 선점하였더랬으니 놀랄 일도 아니긴 하다. 암튼, 이제라도 '전근대적인 낡은 비판'은 집어치웠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 고전'은 다시금 조명해야만 한다. <춘향전>은 종종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되곤 하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두 가문 때문에 죽어야만 하는 젊은 두 남녀 이야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되어 마땅할 것이다. <춘향전>에서는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을 가로 막는 것이 '사회적인 병폐 현상'이었고, 두 남녀가 끝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면서 '사회적 문제'도 아울러 해결해버리는 뜻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가방끈 긴 평론가들은 '희극(해피엔딩)'보다 '비극(새드엔딩)'이 카타르시스를 더 진하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값어치가 높다고들 하지만, 난 달리 생각한다. 이 세상에 '해피엔딩'보다 값어치 높은 것은 없다고 말이다. '죽느냐 사느냐 고것이 문제로다'라면서 고뇌에 쩌들기보다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십년 묵은 체증이 쭉 내려가는 듯한 통쾌함이 더 짜릿하지 않느냔 말이다. 우리네 고전이 더 맛깔 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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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2 : 인간의 기억력은 형편없다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이고은 글, 김현민 그림 / 아울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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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자꾸 잊어버리고, 심지어 조작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되뇌는 방법을 써왔다. 잊을만 하면 다시 기억하고, 잊을마안 하면 또다시 기억을 되살리고, 잊어버릴만 하면 기억을 꺼내 절대 까먹지 않도록 외우고 또 외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겨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필요할 때 꺼내보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를 위해서 '문자'를 만드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고 말이다. 오늘날에는 '기록장치'를 만들어서 음성이나 영상으로 만들어 두고두고 '기억'을 꺼낼 수 있게 되어 기억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일을 줄이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은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걸까? 한 번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은 '망각'이라는 축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분 좋고 즐거운 기억이라면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을 것이다. 이때에는 '망각'이 귀찮고 불편할 테지만, 슬프고 괴로운 기억을 망각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끔찍한 기억이 자꾸자꾸 되살아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때로는 잊어버리고 잊혀지는 것이 더 나은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기억을 지우곤 한다. 때때로 나쁜 기억을 '조작'해서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것도 슬픔에서 벗어나고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기억법'이다. 어차피 잊어비리지 못하는 기억이라면 '좋은 쪽'으로 편집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기억'을 불신하게 되었다. 기억이 주관적인 편집이 될 우려도 있기에 '기록'이라고 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하지만 유달리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등장하곤 한다. 이들은 무작위로 놓여진 '트럼프 카드'를 뒤집으며 맞추는 게임에서 500개가 넘는 카드는 단 한 번만 보고서 맞춰 '가장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 사람의 놀라운 기억법은 카드의 순서에 맞게 '이야기'를 지어내 카드의 순서를 틀림없이 맞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인간의 기억은 놀랍게도 '짧은 정보'를 외우는 것보다 '긴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물론, 긴 정보는 '앞뒤의 맥락'이 딱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단편적인 '영어단어'보다 길고 긴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하는 것이다. 200쪽이 넘는 이야기책의 줄거리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물론,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살을 더 붙이기도 하고, 군더더기를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맛깔난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렇게 해서 기억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또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의 뇌'가 엄청난 정보량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용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양은 '우주'를 통째로 담을 수도 있을 정도로 무한하다. 또한, 실제로 우주여행은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뇌 처리속도는 광활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우주공간'을 순식간에 왔다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이 때문에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종종 '컴퓨터'에 빗대며 '슈퍼컴퓨터'에 인간의 뇌를 대신 심을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구현해냈고, 2040년이 되면 '인간의 뇌'를 대신할 '인공지능'이 완성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인간에게 유용한 일일까? 인간의 뇌를 대신할 '인공지능의 탄생'이 어떤 미래를 보여줄 것인가? 아직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칫 인간이 '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인간의 뇌는 '기억'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왔다. 과거에 경험하고 배운 것을 뇌에 '저장'한 뒤에 필요할 때마다 기억을 꺼내 생각하고 생각해서 인류에게 유용한 것을 발달시켜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된다면 인간은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될지로 모른다. 지금도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치매'라느니, '결정장애'라느니 다양한 폐해가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인간답게 살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대신에 '인공지능'을 인간이 망각하기 쉬운 기억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좋을 것이다.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한 '도구'로 쓴다면 인간의 능력을 더욱 뛰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뇌과학이 제시하는 미래의 모습도 바로 이런 긍정적인 결과이다. 우리가 뇌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늘어나야만 한다. 한낱 '기계'에 불과한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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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유전자 - 협력과 배신, 그리고 진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
니컬라 라이하니 지음, 김정아 옮김, 장이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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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사는 참다랑어는 희귀한 생선이다. 마구잡이 어획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족자원' 보호 차원에서 참다랑어를 낚는 것을 금지하며 맛있는 참다랑어가 다시 많아지길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 어시장에서 270킬로그램짜리 대형 참다랑어가 경매가 31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단다. 한 마리만 낚아도 대박인 셈이다. 지금 참다랑어 어획량은 늘었을까? 줄었을까?

 

  이를 경제학 용어에서는 '공유지의 비극'이라 부른다. 한정된 자원임을 뻔히 알면서도 주인 없는 공유지에서는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이 앞서 '개체수'가 늘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마구 잡이로 경쟁에 뛰어드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분명 '개체수'가 늘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많은 수확량을 올리는 것이 모두에게 더 이익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할 것을 걱정하며 '한정된 자원'이 바닥이 날 때까지 긁어모아 끝내 사달을 내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협력'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호모 사피엔스는 당당히 현존하는 '최강의 포식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초기 인류는 '포식자'는커녕 더 강한 포식자들의 먹잇감에 불과했는데도 뛰어난 지능으로 정보의 축척을 가능하게 했고, 본능적으로 삶을 영위하기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더 나은 삶'을 꾀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 끝에 지금의 자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생 인류'는 과연 어떤 유전자를 가졌기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일까? 리차드 도킨스의 지적처럼 <이기적 유전자>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니콜라 라이허니의 주장처럼 <협력의 유전자>를 가졌기에 가능했을까?

 

  놀랍게도 거의 모든 생물은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종을 번식시키고 개체수를 증가시켰다고 한다. 글쓴이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예를 들고 있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심지어 인간도 마찬가지란다. 서로 '협력'하며 살아간 종만이 번성할 수 있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앞서도 예를 들었던 것처럼 '협력'보다는 '배신'을 때리는 것이 더 큰 이득을 불어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란다. 그런데도 글쓴이는 '협력'만이 유일하게 종을 번성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더 큰 이득은 저 멀리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팬데믹'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대처방안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던 초기에 수많은 나라들이 두루말이 화장지와 신선식품을 사재기하며 대혼란을 겪었던 것과 병상확보를 하지 못해 수많은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자국의 백신'을 먼저 챙기면서 상대적으로 보건의료에 취약한 나라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물론 초창기의 혼란을 겪으며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지만,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치명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차츰 '자국 이기주의'를 내려놓고 인도적 차원에서 저개발국가들에게 백신을 나눠주며 '팬데믹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나열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협력의 유전자'가 결국 승리했다면서 말이다.

 

  확실히 인간은 비겁하다 못해 비열할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위기의 상황속에서 '나'를 더 먼저 챙기고, '가족'과 '친구'를 그 다음으로 챙기며, '아는 이웃'을 챙긴 다음에야 더 많은 사람들을 챙기는 양상을 보여주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란다. 팬데믹의 초기 때부터 자기보다 남을 더 걱정하고 챙기는 '보편적인 인류애'를 보인 사람들이 더 많았고, 비록 자기가 감염되었다하더라도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를 실천하며 감염의 확산을 막으려 최선을 다했고, 재감염을 막기 위해 손씻기와 마스크를 몸소 실천하며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배려하는 '자기 희생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타의 생물에게서도 발견되는 모습이다. 남미에 서식하는 개미 가운데 하나는 해가 떨어지면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므로 자신들의 둥지로 서둘러 되돌아오곤 하는데, 이때 먹이활동을 벌이다 미처 복귀하지 못한 개미들은 '다른 포식자'들이 자기네 보금자리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밖에서 입구를 막고 난 다음에 춥고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로 행진을 벌인 뒤 최후의 순간을 기다린다고 한다. 이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동료들을 생존확률을 높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협력의 유전자'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협력'하는 것이 더 이득이란 말인가? 앞서 보았듯이 '배신'을 밥 먹듯이 하면 홀로 로또 맞은 것처럼 대박을 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글쓴이는 '정규 상선의 선장과 선원'과 '해적선의 선장과 선원'의 생존률을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머나먼 항해를 떠나야 하는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얻는 뱃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단다. 물론, 상선이나 해적선 모두 '무역'과 '약탈'의 대가로 얻는 이득은 로또 만큼이나 막대하기에 위험천만한 항해를 끝마치고 난 뒤의 엄청난 보수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그 힘겨운 항해를 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망망대해에서 기약없는 이득을 기다리기보다 '생존(안전)'을 택하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단다. 바로 '선상반란'인데, 선장을 죽이고 배를 빼앗는 일이 '정규 상선'과 '해적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았을까? 결과는 놀랍게도 '정규 상선'에서 더 많이 더 끔찍한 선상반란이 일어나곤 했단다. 글쓴이는 그 까닭으로 고립된 선상 위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쪽이 어느 쪽이냐를 주목했고, 놀랍게도 무역을 하는 '정규 상선'에서 선장의 독재와 독단적 폭력이 문제가 된 적이 더 많았으며, '해적선'에서는 배 안의 모두가 평등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기에 선상반란 같은 일은 덜 일어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배신'을 때리는 쪽은 덜 협력적인 방식으로 항해를 했던 '정규 상선'이었다는 말이다. 반면에 '해적선'은 모두가 협력을 잘 했기에 갈등이 더 적었고, 규율이 더 잘 지켜졌으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항해(?)를 했다는 것이다.

 

  비록 고립된 선상에서의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지구도 우주에서 고립되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같은 태양계 안에서도 인간이 이주해서 살 수 있는 행성은 없다. 이렇게 고립된 지구에서 인간이 더 잘 살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지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더 많은 인간들은 '협력의 유전자'를 발휘해서 더 잘 살아갈 것이 틀림없다.

 

  참,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전자에 '감정'이 없다는 점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언급했지만, 유전자는 어떤 방향성조차 없다. 다시 말해, 유전자에는 목적도, 욕구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유전자가 '이기적'인 것을 아는 것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잘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을 뿐이다. <협력의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유전자가 '협력하라'는 명령을 내릴리 없다고 단정한다. 그럼에도 '협력'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단다. 이는 '배신'하는 종은 도태되고, '협력'하는 종이 생존하기에 그리 보일 뿐, 자연선택에서 '방향성'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물론, '목적성'은 더더군다가 없다. 단지, 인간은 '이성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유리한 선택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종은 '협력'을 통해 더욱 번성했다. 우리 인간도 이런 생물들의 번성을 살펴보면서 '배신'이냐, '협력'이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그리고 당신의 유전자는 뭐라 말하던가? 아무 소리도 못 듣는 게 '정상'이다. 자연선택은 아무런 강요를 하지 않는다. 단지, 선택의 결과만을 냉혹하게 보여줄 뿐이다. 짧은 순간의 이득을 위해 '배신의 길'을 걷는 인간들이 더 많아진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 분명하고 말이다. 물론, 강요는 아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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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 : 인간은 외모에 집착한다 (5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이고은 글, 김현민 그림 / 아울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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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실체는 무엇일까? 다소 철학적인 질문이지만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다. 철학에서는 이를 '실존의 문제'로 다루며 인간의 가치에 대한 고찰을 하지만, 최근에는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심리부터 전부 '과학적인 접근'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도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란 말이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기쁘고 설레게 되지만, 세로토닌이 부족해지면 불행하다고 느끼며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뇌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거의 모든 학문의 원천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봐도 절대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뇌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 교육에서는 '뇌과학' 분야에 대해서 학창시절에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단다. 단순히 '신경전달물질'과 신경세포인 '뉴런'에 대해 잠깐 배울 뿐, 뇌과학에 관한 기초교육조차 없이 넘어가버리고 만단다. 이런 상황이면 우리 나라의 인재들은 '뇌과학'이라는 분야가 있는줄로 모른체 대학에 가서야 겨우 그런 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뒤늦게 쫓아가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미래과학의 핵심인 '뇌과학'을 이런 식으로 홀대하다간 '과학대국'으로 성장하기란 영영 꿈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나라 '뇌공학자'의 1인자인 정재승 교수가 야심차게 기획한 이 책이 등장하게 되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재미나게 읽고 배울 수 있는 '뇌과학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책이 널리 읽히길 바랄 뿐이다.

 

  먼저, 1권에서는 뇌의 인지능력 가운데 하나인 '시각'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기관은 모두 다섯 가지다.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시각인데, 다른 감각에 비해 유달리 뛰어난 감각이며, 매우 예민한 감각기관이기도 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인간은 '시각' 능력으로 모든 사물을 평가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란 얘기다. 사회적 문제 가운데 '외모지상주의'가 있는데, 괜히 문제가 된 것이 아니란 것도 바로 인간의 '시각 중심적인 감각능력'에서 비롯되었기에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얼마나 시각에 의존할까? 인간의 뇌가 가장 강렬히 반응하는 것 중에 하나다 바로 '첫인상'이다. 그것도 처음 만난 지 0.1초만에 모든 평가를 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잘생김'에 대해서는 더욱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인간의 눈, 코, 입, 그리고 귀가 모여 있는 '얼굴'이 특히 중요한데, 단 1초 사이에 얼굴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지은 뒤, 평생을 간다는 말이다. 이런 단순한 평가로 인간의 모든 것을 평가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면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얼굴평가'를 시도한다. 눈, 코, 입이 괜히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얼굴'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아니면 못생긴 사람들의 대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로 승부(?)를 내리는 것에 멈추지 않고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유행'에 민감하게 따지며, 이제는 '몸매'까지 신경을 쓰면서 죽을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이어트에 매달리곤 한다. 인간에게 시각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다.

 

  하지만 이 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시각은 '틀린 그림 찾기'의 선수다. 눈가의 주름이나 얼굴에 찍힌 희미한 점까지 구별해낼 정도로 예리하다 못해 예민한 시각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은 누구나 '2개의 눈', '1개의 코', '1개의 입', '2개의 귀'를 똑같이 갖고 있는데도, 70억의 인구를 다 다르게 구분할 수 있다. 개와 초코칩 쿠키를 구분 못하는 '인공지능'과는 너무나도 극명한 실력 차이다. 더구나 갓 태어난 아이조차 '예쁜 사람'과 '안 예쁜 사람'을 구별할 줄 알 정도로 인간의 시각능력은 뛰어나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민감한 시각능력을 갖게 되었나? 아마도 초기의 인류가 '포식자'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춤과 동시에 무리를 이루고 사는 사람 가운데 자신에게 적대행위를 하려는 사람의 감정표현을 민감하게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시각능력이 뛰어난 경우에 살아남기(적자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갖게 되었고, 그런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기 때문에 시각능력이 뛰어나게 되었을 것(자연선택)이란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높을 것이다.

 

  인간의 뇌가 할 수 있는 능력은 엄청나게 많다. 1권에서 다룬 '시각능력'만 따져보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뇌가 가진 비밀을 하나씩 캐내다보면 인간이 하는 '말과 행동의 비밀'도 더 많이 알아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시리즈가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밝혀나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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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온다, 매직 사이언스 와이즈만 미래과학 15
김성화.권수진 지음, 백두리 그림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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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쥘 베른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 미래에 선보일 각종 기기들을 상상해냈다. <해저 2만리>속에선 '잠수함'을 선보였고,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달로 쏘아올릴 대포'를 구현했으며, 후속작인 <달나라 탐험>에서는 인간을 '포탄'속에 태운 채 달 궤도를 무사히(?) 돌고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을 정확히 묘사했다. 모든 것은 쥘 베른의 머릿속에서만 가능했던 상상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세의 과학자들은 '잠수함'을 실제로 만들었고, 쥘 베른이 '상상했던' 그 방법 그대로 아폴로 11호로 구현해서 인류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게 되었다. 한낱 소설가의 상상에 불과했던 것들이 실제로 구현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바로 '과학의 힘'으로 말이다.

 

  이처럼 인간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뒤에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상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인간은 상상하는대로 실현시키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능력도 '과학'에서 비롯된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과학이 모든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물리법칙'을 어기지는 말아야 한다. 이를 테면, 빛보다 더 빠른 우주선을 만들거나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여행하는 타임머신 따위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불가한 것들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기도 하다. 빛보다 더 빠른 속도를 '타키온'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탈 수는 없다. 인간은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로 쪼개었다가 다시 원상복귀를 시킬 수 있다면 가능할 테지만, 그런 기술이 가능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공간이동'도 원자 단위로 인간을 쪼갰다가 원하는 장소에 있는 원자를 이용해 '똑같이 복제'를 할 수 있다면 공간이동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 저곳에 있는 인간은 나와는 다른 '복제인간'이 될 것이다. 나와는 똑같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긴 하겠지만, 이곳의 '나'는 원자단위로 분해되었고, 저곳의 '나'는 그 장소에 있는 원자를 재구성해서 똑같이 복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이곳에 있는 원자'를 저멀리 '그곳'으로 순식간에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타임머신도 일부는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한 방향'으로는 현재의 기술로도 타임머신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바로 '냉동인간'인데, 현재 잠들어 있는 냉동인간이 의식을 되찾아 다시 깨어나게 된다면 냉동인간은 현재에서 미래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한 셈이 된다. 눈을 감았다 떴더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잘 구현하고 편리한 기술을 접목 시킨다면 마치 '잠에 든 것'처럼 편안하고 안전하게 미래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역방향인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가는 타임머신은 불가능하다. 왜냐면 '시간의 물리법칙'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자기 부모님의 연애와 결혼을 방해(?)한다면 자신은 태어나지 않게 될 것이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자신'도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시간에서 사라져버리게 될지, 아니면 존재는 하겠지만 '새로운 미래'가 형성되어 차원이 다른 두 개의 미래가 존재해버리게 될 지...아무도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물리법칙'이 다른 '또 다른 우주'에서는 우리의 우주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른바 '멀티유니버스(다중우주)'라고 불리는 '평행우주' 개념에서 본다면 우리와 똑같은 우주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우리가 실제 관측하지 못할 뿐,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성립된다는 결론이 도달했다. 그래서 '또 다른 우주'에서는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과 완전 달라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과학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분명 '과학의 힘'이다. 단지 과거에는 기술적으로 부족했기에 실현불가였지만,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매직 사이언스'라고 부른다. 마법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바로 '물리법칙'에 대한 이해다. 이를 테면, 인간을 공중부양 시킬 수 있는 것도 '자석의 힘'을 이해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은 전기가 잘 통하는 '전도체'다. 하지만 전도체에 자성을 띠게 하려면 '전기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다. 또한, 인간의 몸이 공중에 띄울 수 있으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무거운 물체도 거뜬히 띄울 수 있는 강력한 전자석의 힘을 지닌 '초전도체의 개발'이 절실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 뒷받침 되지 못했기에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물리법칙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는 전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특히, 교양인이라면 '물리법칙'은 기본상식 중에 상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과학공부'에 집중투자할 필요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발돋움하는 신세대들의 필수교양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 어린이들이 '과학책'을 이야기책 읽듯, 만화책을 읽듯 읽어나가면 가능할 일이다. 영어단어 외우고, 수학공식 암기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가까운 미래에 '자동번역기'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외국인과 소통가능하게 해줄 것이며, '자동계산기'가 어려운 수식 계산을 척척 대신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문화 상대주의'를 깨치는 것이고, 수학문제 풀려고 고민하기보다는 교양인답게 사회적 문제를 '수학적 문제'로 전환해서 자동계산기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날카로운 안목을 기르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과학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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