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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2 : 인간의 기억력은 형편없다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ㅣ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이고은 글, 김현민 그림 / 아울북 / 2019년 12월
평점 :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자꾸 잊어버리고, 심지어 조작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되뇌는 방법을 써왔다. 잊을만 하면 다시 기억하고, 잊을마안 하면 또다시 기억을 되살리고, 잊어버릴만 하면 기억을 꺼내 절대 까먹지 않도록 외우고 또 외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겨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필요할 때 꺼내보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를 위해서 '문자'를 만드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고 말이다. 오늘날에는 '기록장치'를 만들어서 음성이나 영상으로 만들어 두고두고 '기억'을 꺼낼 수 있게 되어 기억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일을 줄이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은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걸까? 한 번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은 '망각'이라는 축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분 좋고 즐거운 기억이라면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을 것이다. 이때에는 '망각'이 귀찮고 불편할 테지만, 슬프고 괴로운 기억을 망각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끔찍한 기억이 자꾸자꾸 되살아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때로는 잊어버리고 잊혀지는 것이 더 나은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기억을 지우곤 한다. 때때로 나쁜 기억을 '조작'해서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것도 슬픔에서 벗어나고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기억법'이다. 어차피 잊어비리지 못하는 기억이라면 '좋은 쪽'으로 편집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기억'을 불신하게 되었다. 기억이 주관적인 편집이 될 우려도 있기에 '기록'이라고 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하지만 유달리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등장하곤 한다. 이들은 무작위로 놓여진 '트럼프 카드'를 뒤집으며 맞추는 게임에서 500개가 넘는 카드는 단 한 번만 보고서 맞춰 '가장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 사람의 놀라운 기억법은 카드의 순서에 맞게 '이야기'를 지어내 카드의 순서를 틀림없이 맞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인간의 기억은 놀랍게도 '짧은 정보'를 외우는 것보다 '긴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물론, 긴 정보는 '앞뒤의 맥락'이 딱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단편적인 '영어단어'보다 길고 긴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하는 것이다. 200쪽이 넘는 이야기책의 줄거리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물론,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살을 더 붙이기도 하고, 군더더기를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맛깔난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렇게 해서 기억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또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의 뇌'가 엄청난 정보량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용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양은 '우주'를 통째로 담을 수도 있을 정도로 무한하다. 또한, 실제로 우주여행은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뇌 처리속도는 광활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우주공간'을 순식간에 왔다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이 때문에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종종 '컴퓨터'에 빗대며 '슈퍼컴퓨터'에 인간의 뇌를 대신 심을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구현해냈고, 2040년이 되면 '인간의 뇌'를 대신할 '인공지능'이 완성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인간에게 유용한 일일까? 인간의 뇌를 대신할 '인공지능의 탄생'이 어떤 미래를 보여줄 것인가? 아직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칫 인간이 '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인간의 뇌는 '기억'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왔다. 과거에 경험하고 배운 것을 뇌에 '저장'한 뒤에 필요할 때마다 기억을 꺼내 생각하고 생각해서 인류에게 유용한 것을 발달시켜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된다면 인간은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될지로 모른다. 지금도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치매'라느니, '결정장애'라느니 다양한 폐해가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인간답게 살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대신에 '인공지능'을 인간이 망각하기 쉬운 기억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좋을 것이다.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한 '도구'로 쓴다면 인간의 능력을 더욱 뛰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뇌과학이 제시하는 미래의 모습도 바로 이런 긍정적인 결과이다. 우리가 뇌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늘어나야만 한다. 한낱 '기계'에 불과한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