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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 - 천일야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8
작자 미상 지음, 르네 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7월
평점 :
[My Review MCMLI / 현대지성 11번째 리뷰] 갈랑의 <천일야화>를 완독하면서, 이 책도 함께 읽었더랬다. 제목이 <아라비안 나이트>지만, 앞서 구분했던대로 리처드 버튼의 <천일야화>는 아니다. 아예 '작자미상'으로 소개하며 유럽의 작가에 의해서 새롭게 엮어지기 전에 '아랍 지역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바로 뒤에 '엮은이'에 따라 내용이 바뀌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는 더욱 풍성해졌다는 말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엮은이의 판본'을 참고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아라비안 나이트>는 대단히 점잖은 표현으로 '고전미'를 풍기는 문장으로 엮어진 것으로 보아 '앙투안 갈랑의 판본'을 참고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르네 불'이라는 삽화가의 삽화들이다. [현대지성] 출판본에 대부분의 삽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1900년대 초반에 주로 삽화를 그렸던 터라 많은 분들이 한 번 보면, '아하~'하고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그만큼 익숙한 그림체다.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인상적이고 말이다. 삽화가의 위대함은 '단 한 장의 삽화'만으로 책의 내용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삽화가가 되기 위해선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섭렵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책 <아라비안 나이트>도 '삽화'만으로 전체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만약 이 삽화를 보고도 내용파악이 안 된다면 아직 <천일야화>를 읽지 않은 독자일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의 삽화는 인상적이다. 예술적이고 말이다.
수록된 이야기는 많지 않다. '단행본'인 관계로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그나마 가장 유명하고 재미난 이야기만 엑기스마냥 꼭꼭 짜서 수록한 듯, '12개의 이야기'만을 담았다. 하지만 <아라비안 나이트>가 '액자 구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12개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서 또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록된 이야기는 아주 알차다. 가장 유명한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어부 이야기', '신밧드의 모험', '아메드 왕자와 요정 이야기', '하룬 알 라시드 왕의 모험', '바그다드 상인 알리 코기아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부 하산, 자면서 깨어 있는 자의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알라딘과 알리바바' 이야기는 갈랑판본에서만 전해지기 때문에 그 책을 참고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야기가 야하지 않고 건전하기에 그렇게 짐작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 책은 '청소년용'으로 권장하기에 딱 좋다. 기본적으로 <천일야화>는 5권 이상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전체 쪽수로도 1700쪽이 훨씬 넘는다. 이런 책을 공부하기에 바쁜 학생들에게 권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니, 아무래도 '단행본'으로 권장할만 할텐데, 그렇다고 분량을 대폭 축소한 책을 권하기엔 아쉬울 것이니 약 300여쪽 분량으로 줄여놓은 이 책이 딱 적당할 듯 싶다. 그리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크게 해치지 않는 정도로 알맞게 축약해놓은 점도 아주 좋았다. 원작의 분량이 방대하다보니 '서술'이 너무 길고 '호흡'이 늘어져서 '읽는 맛'이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이는 사실 셰에라자드가 '천하룻밤'동안이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늘리고 또 늘린 면이 없지 않아 작용한 것일테다. 그런데 전체적인 맥락만 파악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늘여서 한 이야기는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내용을 간추린 '축약본'이 필요한데, 그래도 줄거리가 '기승전결'로 분명하게 전달되는 축약본을 골라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바로 바쁜 '청소년을 위한' 그 좋은 책임에 분명하다.
아쉬운 점은 셰에라자드의 '서바이벌 스토리텔링'과 샤리아르의 '심적인 변화과정'이 <천일야화>의 핵심 키포인트인데, 그 원전의 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그저 샤리아르 황제가 배신을 당한 분노로 새로 맞이한 아내를 처형하는 폭군으로 변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셰에라자드가 자청해서 혼인을 청했으며, 매일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샤리아르 황제가 큰 깨달음을 얻고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셰에라자드를 정식 아내로 맞이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주된 줄거리만 요약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슬쩍슬쩍 드러나는 '서스펜스'를 전혀 맛볼 수 없고, 목숨줄을 걸고 외줄타기를 하는 살떨리는 '흥정의 장면'도 전혀 맛볼 수가 없다. 이런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원전'을 읽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책 자체는 아주 훌륭하다. 군더더기 없이 '축약'을 해놓았기에 핵심파악하는데에는 아주 탁월할 정도다. 단지 이런 '축약본'만으로 느낄 수 없는 '원전의 깊이'가 아쉬울 따름이다. 감동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맛을 보아야 하는데 말이다. <천일야화>를 완독함과 동시에 '단행본'을 같이 읽으니 이런 아쉬움이 먼저 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