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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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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을 여행한 두 사람의 시선,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이 책은 신혼 부부인 두 저자가 호주 시드니에서 머무른 시간동안 생각한 내용들을 각자 적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의 시선과 남자의 시선. 같은 곳을 같은 시간 동안 머물렀지만 글의 분위기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문득 마주치게 되는 교차점들을 만나 흥미로워지는 에세이였다.

 

이 책은 '걸어본다' 시리즈에 속한 에세이이고, 제목에서도 '걷기'와 관련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책 초반에서는 이 책과 '걷기'의 연계성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니 결국은 걷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 여행에세이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라는 제목은 박연준의 글 속에 있던 글귀였다. 하지만 그 글귀는 스쳐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여행 에세이에서의 시드니 여행은 '걷기'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걷기'라는 행위가 주는 것, 그로부터 비롯되는 '사색'이 가득 담겨있는 에세이였기에 결국 제목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먼저 나오는 것은 아내인 박연준의 글들이었다. 그녀의 글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의 한 구절이 담겨 있다. 이미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반가웠고, 자연스레 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걷기가 주는 사색의 느낌들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이것이 책 속의 분위기에 젖어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결국 심심하다는 것은 쓸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시간, 모험을 할 수 있는 시간!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해왔던가. 시간이 많아서, 심심해서, 빈둥거릴 수 있다니! (p.31)

 

박연준의 글은 여행의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에는 사진들과 설명을 담은 컬러 페이지도 있어서 여행의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만나고 느낀 것들이 가득한 여행 에세이를 읽어가는 느낌이었다.

 

한편 남편인 장석주의 글은 다비드 르 브로통의 <걷기 예찬>의 구절로 시작한다. 아쉽게도 이 책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걷기에 대해 규정한 글귀를 읽으며 역시 '걷기'를 통해 하게 되는 사색과 경험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갔던 박연준의 글과 달리, 장석주의 글은 좀더 인문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걷기'와 관련된 책에서 언급한 부분들이 다시 재인용되거나 재언급되었던 것들을 읽어가면서 '걷기'와의 연관성을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걷기'와 그 행위가 주는 경험적 요소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도 읽을 수 있었다.

 

걷는 자들은 숲길이건 들길이건 해변을 끼고 있는 길이건 시내 한복판 길이건 상관없이 걸음을 뗄 때마다 그 길에서 자신이 몸으로 존재함, 즉 존재의 느낌을 돌려 받는다. 걷기는 몸의 잠든 감각들을 일깨운다. 걸을 때 오감 속에서 느낌들이 풍부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p.170)

 

한편 이 책의 디자인적인 요소와 책의 분위기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자에 따라 책 속 본문 내용의 글자 색에 차이를 둔 것도 좋았고, 내지의 재질이나 약간 빛바랜 듯한 색이 좋았다. 또 이 시리즈의 표지 색도 무척 마음에 드는데, 이번에 읽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의 경우 짙은 남색 바탕에 아래쪽에는 비오는 날 물이 고여있는 거리의 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이 담겨 있다. 차분하면서도 미묘하게 톤다운된 느낌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했다. 또 제목과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용과 디자인, 제목 이 세 가지가 잘 맞물려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읽을수록 점점 더 잔잔하게 스며드는 느낌을 준 여행 에세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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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 이용한 여행에세이 1996-2012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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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남아있던 글귀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이 책, 예전에 읽을까 말까 하다가 결국 안 읽었던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 초반을 읽어나가며 정말 그랬었다고 느낄만큼 내용이 생소했다.

그런데 어느 부분을 읽는 순간, 기억이 화악-하고 되살아났다.

아마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내용을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고 여기저기 적어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글귀는 다소 길지만, 이 내용이었다.

여전히 공감하며, 여기에 또 한 번 적어본다.

 

자동차는 우리에게서 산책의 즐거움을 앗아갔고,

오락기는 우리에게서 높이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렸다.

TV는 좀 더 많은 것들을 봐야 할 우리의 시야를 근시안으로 만들었고,

휴대폰은 만남의 소중함과 뜻하지 않은 인연을 밀쳐버렸다.

컴퓨터는 우리에게 독서의 순간을 앗아갔으며,

러닝머신은 우리에게 길의 질감을 느낄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그 모든 이기들은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감정의 이완을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p.75)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저 문명의 이기없이 살아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더 편리해졌고, 우리는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렸으니까.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지털적인 것을 원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아날로그적인 것만을 그리워하고,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른 후 이 글을 다시 만난 나는 좀더 계산적인 세상의 물이 들어버린 것 같다.

 

신기한 일은 또 한 번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인상 깊은 글귀라고 생각하며 기억하고 있던 글귀가 있었다.

존재하는 건 단지 그 글귀를 찍어둔 사진 뿐.

책에서 본 글귀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진 속에 담겨 있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귀가 이 책에 쓰여있었다!

정말이지 뜻밖의 발견이라 신기하고 놀라웠다.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며,

누군가의 빛나는 첫사랑이고,

누군가의 잊지 못할 제자이자

누군가의 존경받는 선생이고 믿음직한 제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이지 않은 적이 없다. (p.257)

 

이제 이렇게 써두었으니, 어느 책의 글이었는지 앞으로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기억에 담아둔 글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다시 읽기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살아나는 기억.

예전에도 참 포근하고 따뜻하게 읽었던 여행에세이였는데, 여전히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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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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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고 싶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설 연휴를 지내는 동안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침, 콧물도 자꾸 나더니만 결국 한쪽 코는 꽉 막혀버렸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미열이 살짝 있는 듯도 했다.

어렸을 땐 그러지 않았던 것 같는데, 요즘은 왜 이리 추위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기후가 변한걸까, 아니면 내 체력이 약해진걸까.

어쨌거나 독하게 감기에 걸려버린 와중에 이 책을 읽어서일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무지무지하게 저자가 부러웠다!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여행'이라기엔 조금 길게 머물렀던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추운 겨울 날씨를 피해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남쪽 나라'는 총 네 곳이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발리, 스리랑카, 태국의 치앙마이, 라오스였다.

남쪽 나라라고 해서 먼 나라들일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익숙한 나라들이어서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이 넷은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공통점으로 묶이고 있지만, 저자가 각 나라에서 경험한 것들, 생각한 것들은 꽤 달랐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가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역시 발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장 처음 접한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약간은 들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새로운 것, 의외의 면을 많이 알게 되서인 것 같다.

저자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발리'는 신혼여행지로 굉장히 유명해서 가족과의 여행이나 혼자 떠나는 여행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건 또 하나의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발리를 어머니와 함께 여행했다. 발리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관광명소들은 어머니와의 여행에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가 먼저 한국으로 귀국한 후 발리에 홀로 남아 마주하는 발리의 모습들 또한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여행에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발리의 수많은 신들에 대한 이야기나, 여자들에게 불합리한 결혼제도 이야기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길들에 대한 이야기들... 뭐든지 처음 접하는 것들이라 호기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발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구절이었다.

 

개발과 성장을 추구하다 전통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발리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플란플란'하게 흘러가는 삶의 속도 속에서 지킬 것은 지키는 의연함이 엿보이니 한마디로 발리는 자연을 파괴하며 돈에 영혼을 판 그런 흔한 휴양지가 아니다. (p.116)

 

이제까지 생각했던 '발리'에 대한 이미지가 그러했었다. 흔한 휴양지의 하나.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편견이 생겨버린 여행지들이 사실은 엄청 많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직접 가지 않고서는 모르는 건데. 하긴,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발리'의 이미지 또한 타인에 의해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 가보면 또 실망하게 되버릴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리랑카에서의 이야기. 스리랑카는 '홍차' 때문에 궁금했던 나라였다. 저자 역시 스리랑카에서 차를 마실 기대를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곳에서 품질좋은 차를 찾기는 힘들었다고. 좋은 찻잎은 모두 수출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찻잎을 따는 모습을 사진 찍는 사람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돈을 받는 여인들. 그런 모습들에 어쩐지 슬퍼졌었다.

태국의 치앙마이 여행은 저자의 편안함이 전달되어서 나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잘 느껴져서 태국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나라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라오스.

라오스의 이야기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라오스 뿐 아니라 많은 여행지들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할 운명 같은 부분이다. 보석같은 여행지가 발견되고, 알려진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변질되고, 몰려온 사람들은 생각과 다르다는 말을 토해낸다. 사실 그 변화는 여행자들이 가져온 것인줄도 모르고.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한참 전,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 관한 여행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잔잔하고 느린 삶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오스는 변화와 마주했다. 인기있는 여행지가 되면서, 갑작스레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변할 것을 은연중에 강요받았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읽었던 그 책에서의 느리고 잔잔한 분위기, 순박한 사람들의 마음씨는 찾기 힘들어진걸까?

이제까지 책을 통해 마주했던 많은 여행지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직접 가서 마주하겠다고 다짐했던 많은 나의 이상적인 여행지들은 이미 오래전에, 벌써, 결코 만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을까?

조금 두려워지던 중에, 저자의 이 이야기를 읽고서 조금은 안도해본다.

 

이 거리의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는 이 도시 사람들의 달라지지 않은 마음도 남아 있을 것이다. 단지 이제 이방인의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이 도시로 돌아왔나보다. (p.392)

 

입춘도 이미 지났다. 겨울은 끝나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다. 다가올 봄이 아주아주 따뜻했으면 좋겠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날 마음은 잠시 접어둘 수 있도록, 그러다 다시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미뤄둔 고민을 해야지, 과연 어느 곳에 가면 추운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날 수 있을까, 하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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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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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또 하나의 페루를 만나다,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나란 사람은 참 겁이 많다.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해외여행이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세계에 관한 호기심은 이와는 별개라는 걸까. 최근 몇년간 꾸준히 즐겨 읽으며 좋아하고 있는 책 장르는 다름 아닌 여행에세이다.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수많은 여행자들이 그들 각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국의 모습을 마주한다. 같은 나라를 여행한 이들이라도 어느 시기에, 어떤 사람들을 만나 그 나라의 어느 지역을 여행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독자들에게 주는 느낌도 달라지는 걸 보면, 때로는 궁금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나만의 시선으로 그곳을 찾아가 마주하면 어떤 것들을 보게 될까, 느끼게 될까, 그리고 결국은 그리워하게 될까.

하지만 그건 여전히 멀고 먼 이야기일 뿐, 그런 생각은 또다시 밀어둔 채 또 하나의 여행 에세이를 펼친다. 이번에 만날 나라는 저 먼 남미대륙에 위치한 나라, 페루.

 

페루라는 여행지를 처음 만나는 건 아니다. 인기 TV프로그램이었던 '꽃보다 청춘'으로 먼저 만났었고, 페루에 관한 여행 정보가 담긴 다른 여행 에세이를 이미 읽었다. 하지만, 이 글의 초반에 이미 이야기했듯이, 이 책의 저자 '손미나'의 시선으로 만나는 페루는 처음이었고. 그래서 이 책에 담긴 많은 내용들은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들은,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적어둔 부분이었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행복과 의미을 찾은 사람들과의 이야기.

 

"아주머니, 행복하세요?"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내 손을 꼭 쥔 채로 이렇게 말했다.

"젊은 아가씨, 우리의 땀이 곧 우리의 삶이에요. 인생은 그런 거지요. 어디에서 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아요. 중요한 건 가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있죠.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당신도 부디 행복하세요." (p.92)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와 마음을 공유하며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듣는 일. 그런데 그 대답은 아주 멋지기까지 하다. 페루의 아주머니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알게되어 참 다행이다.

저자는 페루의 유명 관광지를 도는 여행보다는 페루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고, 마음이 맞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페루 서민들이 찾는 곳들에 가보고. 그렇게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여행이라 그런지, 페루라는 나라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마치 가까이에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사실은 엄청 먼 곳에 위치한 나라인데도 말이다.

 

페루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지막히 미소지으며 읽어갔지만, 잠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던 때도 있었다. 그건 바로, 저자 일행이 콘도르와 마주한 부분에서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야기했다. 페루 여행은 얼마전 세상을 떠난 그녀의 아버지가 가보고 싶어했던 곳이기에 가보겠다 생각한 곳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페루에서 볼 수 있다는 콘도르를 꼭 보고 싶어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했었나보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던 커다란 콘도르가 등장했다면서 그 콘도르의 모습을 설명하는 글을 읽는데, 뭔가 마음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나려 했다. 정말 그녀의 아버지가 무언가 메세지를 보내준 것만 같아서.

 

은색 무늬가 흐르는 검정 날개와 하얀 목덜미, 단단한 부리와 매서운 눈매를 한 콘도르의 침착한 비행! 마치 우리가 있는 곳에 착지라도 할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한참 동안 유유히 떠 있다 천천히 사라지던 그 놀라운 모습. 기대하지 못했던 광경에 온몸이 굳어 꼼짝 않고 제자리에 서 있다 보니 어느새 콘도르는 저 멀리 깊은 계곡을 날고 있었다. (P.200)

 

한편 이 책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글 마지막에 보이는 QR코드! QR코드를 찍으면 글 속에서 이야기했던 영상을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많은 영상들을 통해 페루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상은 '무지개가 나타나는 순간'을 찍은 영상이었다. 어두운 먹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다가 점차 선명해지는 일곱빛깔 무지개는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읽으며 만난 새로운 페루는 흥미로운 것들 투성이었다. 예를 들면 감자 요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 같은 것. 감자를 좋아해서 거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살다보면 언젠가, 그곳에 찾아갈 날도 오겠지? 부디 그때까지 계속 영업하고 있기를. 무엇보다 상업적인 때가 아직은 묻지 않은 곳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좋았던, 여행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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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안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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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읽어가기 좋았던 여행 에세이,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방금 끓인 뜨거운 물에 티백을 넣어 우려낸 루이보스 티의 향이 코끝에 스며든다.

지금 흐르는 곡은 버즈의 'Train'.

그렇게, 책으로 사색의 여행을 떠나는 시간.

 

책 제목을 보고서, 이 책은 꼭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읽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색'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깊게 깊게 생각하며 읽어가야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수많은 도시에서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담겨 있는 여행에세이.

책에 둘러싸인 사주를 가졌다는 작가 소개의 글이 떠오르도록, 각각의 도시 속에서 마주한 에피소드에는 책 내용이 살짝 살짝 끼워져 있었다.

이야기를 쭉 읽어나가다가, 표시를 발견하면 그 글은 어떤 책에서 언급되었던 이야기인가 찾아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요소였다.

이 책의 분량에 비하면, 이 책에 담긴 도시들은 참 많다. 총 80개의 도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짧게 스쳐가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생각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저자는 도시들마다 담긴 이야기들 독자 앞에 내어놓는다.

사색을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세계 곳곳을 넘나들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익숙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떠올리는 장소에 대한 기억이, 현재의 상황과 오버랩되어 사색에 잠기게 하는 내용도 있었다.

저자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행이란 모든 익숙한 것들에서 떨어져 나와 낯선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따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p.315)

 

그렇기에 여행은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익숙함의 틀에서 떨어져 나와, 맞게 된 새로운 상황들과 지식들에 대해 사색한다.

마침내, 익숙했던 것 또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시선들을, 이 책에 담긴 수많은 도시들의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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