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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 이용한 여행에세이 1996-2012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5월
평점 :
기억 속에 남아있던 글귀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이 책, 예전에 읽을까 말까 하다가 결국 안 읽었던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 초반을 읽어나가며 정말 그랬었다고 느낄만큼 내용이 생소했다.
그런데 어느 부분을 읽는 순간, 기억이 화악-하고 되살아났다.
아마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내용을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고 여기저기 적어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글귀는 다소 길지만, 이 내용이었다.
여전히 공감하며, 여기에 또 한 번 적어본다.
자동차는 우리에게서 산책의 즐거움을 앗아갔고,
오락기는 우리에게서 높이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렸다.
TV는 좀 더 많은 것들을 봐야 할 우리의 시야를 근시안으로 만들었고,
휴대폰은 만남의 소중함과 뜻하지 않은 인연을 밀쳐버렸다.
컴퓨터는 우리에게 독서의 순간을 앗아갔으며,
러닝머신은 우리에게 길의 질감을 느낄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그 모든 이기들은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감정의 이완을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p.75)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저 문명의 이기없이 살아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더 편리해졌고, 우리는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렸으니까.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지털적인 것을 원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아날로그적인 것만을 그리워하고,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른 후 이 글을 다시 만난 나는 좀더 계산적인 세상의 물이 들어버린 것 같다.
신기한 일은 또 한 번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인상 깊은 글귀라고 생각하며 기억하고 있던 글귀가 있었다.
존재하는 건 단지 그 글귀를 찍어둔 사진 뿐.
책에서 본 글귀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진 속에 담겨 있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귀가 이 책에 쓰여있었다!
정말이지 뜻밖의 발견이라 신기하고 놀라웠다.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며,
누군가의 빛나는 첫사랑이고,
누군가의 잊지 못할 제자이자
누군가의 존경받는 선생이고 믿음직한 제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이지 않은 적이 없다. (p.257)
이제 이렇게 써두었으니, 어느 책의 글이었는지 앞으로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기억에 담아둔 글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다시 읽기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살아나는 기억.
예전에도 참 포근하고 따뜻하게 읽었던 여행에세이였는데, 여전히 그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