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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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 대충대충 아웃도어 어드벤처, 붉은 노을 맥주

 

리뷰 제목으로 쓴 '초절정 대충대충 아웃도어 어드벤처'는 책 표지에 실제로 쓰여있는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가 자아내는 느낌을 잘 담아낸 문구인 것 같다.

사실 리뷰에 'ㅋㅋㅋ'를 쓰기가 좀 그래서 안 쓰려고는 하는데, 쓰는 말마다 이걸 붙이고 싶을 정도로 어이없을 정도로 우스운 얘기가 가득했던 책이다. 여기에 플러스 약간의 공포 이야기까지 더해져서 더운 여름 시원하게 읽기 딱 좋은 책.

차례를 보면 3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 아슬아슬했던 나날, 2장 틀에 갇힌 인간, 3장 그런 바보같은 탐험대로 구성되어 있다.

 

첫 파트 첫 에피소드부터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자가 찾아낸 비밀 동굴 묘사에 부러움을 느끼던 것도 잠시, 오랜만에 찾은 그 비밀동굴에 노숙자가 살게 되서 '스위트 룸'을 뒤로 하고 '세미 스위트'에서 지내게 되고, 맥주를 유통기한 지난 빵이랑 바꿔먹는 등의 일을 당하게 된 저자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그 황당한 상황을 묘사하는게 재밌어서 계속 웃으며 읽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제일 재미있었던 게 아니었다! 뒤로 갈수록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첫 파트에서 가장 웃겼던 것은 마지막에 두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던 UFO이야기. 특히 두번째 이야기가 진짜 웃겼다! 첫번째 이야기는 우연의 일치로 인한 약간의 공포(?)라는 게 있었다면, 두번째는 그냥 대책없이 웃겼다. UFO에 신기함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싫증내서 야유까지 하다니! 진짜 어이없어서 웃겼다. 그나저나 UFO는 그래서 진짜 UFO였을까? 쓸데없이 궁금해졌다.

 

이번 책은 사실 배경이 여름만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캠핑하며 놀러다니는 이야기라서인지 자연스레 여름이 연상되는 것 같다. 지금 여름에 읽고 있기도 하고. 캠핑 철이 지났을 때 에피소드들 중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공포스러운 이야기.

어쩐지 스산한 캠핑장에 말벌시체와 불투명한 물이 나오는 수돗가. 아무것도 못먹고 잠든 저자와 친구. 밤중에 들리는 아이들 소리와 텐트에 부딪히는 소리. 기묘한 꿈.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같은 소리를 들었음을 확인하고 느껴지는 공포... 등골이 서늘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이어지는 게 또 어이없이 대책없는 여행 이야기라서 다행히 그 이야기를 통해 생긴 두려움은 금방 날릴 수 있었다. 한여름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느껴졌다.

 

사실 UFO 이야기가 이 책의 웃긴 얘기 중 최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생각을 수정하게 만든 것이 은어 이야기였다. 저자가 캠핑을 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은어를 많이 잡아서 칭찬했더니 은어를 15마리를 두고 가서 그걸 억지로 먹는 모습... 처음엔 맛있다고 먹다가 나중에는 꾸역꾸역 밀어넣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억지로 먹는 심정이 공감이 되서... 다음날, 그 할아버지가 은어를 잘 먹는다고 생각하셨는지 또 은어를 두고 가셔서 또 먹게 되고... 저녁에도 또 두고 가셔서 또 먹는... 결국 은어를 먹는 것을 '작업'이라고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맛깔스럽게 묘사하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자, 작업 시작이다.

이제부터 담담한 마음으로 과제를 하나하나 처리할 것이다.

나 자신을 타이르면서, 담담하게 모닥불을 피우고, 담담하게 은어에 소금을 뿌리고, 담담하게 강변에 굴러다니는 돌로 작은 아궁이를 만들고, 담담하게 그 안에 숯불을 넣고, 담담하게 석쇠를 올리고,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게 맥주를 마시고, 다시 담담하게 은어를 굽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살짝 서글픈 생각이 들려는 걸 꾹 참고, 담담하게 은어를 굽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눈물이 글썽거려도,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노력하는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은어를 굽고... 마지막엔 오늘도 '왕근성'으로 다 먹었다. (p.228~229)

 

이 부분도 진짜 웃겼는데, 다음날 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못먹겠다고 말했는데 커피를 주신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은어 또 먹게 되는 상황이 그려져서 너무 웃겼다. 결국 마지막에는 은어인간이 된 것 같다고 하면서 이제 집에 가서 보통 인간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기까지 했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여행 에피소드를 만들어간 모습이다.

 

그 외에도 재미난 에피소드가 가득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모리사와 아키오가 참 멋지고 신나는 청춘을 보낸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맘 놓고 편안하게 여기저기 다니며 캠핑할 수 있다니! 현실에 얽매여 있다보니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래도, 대리만족할 수 있게 이렇게 글로 써줘서 고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직접 가는 거에 비할 수 없겠지, 이런 대책 없이 자유로운 여행 해보고 싶다. 정말정말.

 

그나저나 작가 후기를 보니 이런 부분이 있다.

 

요즘 독자 여러분께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에세이 속의 모리사와 씨와 소설 쓰는 모리사와 씨의 이미지가 달라도 너무 달라요."

당연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폴로나 미야지마도 "네가 저런 소설을 썼다니 절대 믿을 수 없어!"라며 대필 의혹을 제기하니까요.(웃음) (p.262)

 

역시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었구나. 그래도 소설과 다른 친근하고 자유로운 매력이 돋보이는 에세이도 만족스러우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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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의 Dream
유연석 글.사진 / 페이퍼북(Paperboo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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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여전히 꿈을 쫓고 있나요? 유연석의 DREAM

 

매달 초가 되면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신간이 들어왔나 살펴보곤 한다.

그러다가 눈에 띈 책이 바로 이 책, <유연석의 DREAM>이었다.

늑대소년, 응답하라 1994, 꽃보다 청춘에 나오던 그 유연석?

유연석이 책도 썼었나?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결국 마음에 들어 구매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은 사진 에세이다.

유연석이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아 갔던 에티오피아의 노노마을에서의 시간이 담긴 에세이.

그리고 그 곳의 아이들의 꿈이 담겨있는 에세이이다.

 

꿈은 꾸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꿈의 진짜 의미는 꾸고, 간직하고, 포기하지 않고 이뤄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꿈은 현실이 되어 있곤 한다.

그 현실은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시작이자,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p.59)

 

이 글을 보면서,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꿈의 진짜 의미.

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한발 한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와있을 것이라고...

그러고보니 꿈꾸고 있다고 항상 말하지만, 그렇게 꾸던 꿈이 얼마나 지속되었던가.

이제까지 꿈을 더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반성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꿈.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아프리카에서는 생사의 문제, 생활의 문제 때문에 꿈이라는 걸 가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이나 아이들은 맑고 순수한 자신들만의 소중한 꿈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나보다.

유연석이 소개하는 아이들의 꿈은, 소박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꿈들이었다.

무엇보다 그 꿈들이 아름다웠던 것은, 모든 꿈들이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족을 위한 꿈, 아픈 사람들을 위한 꿈, 총리가 되어 좀더 좋은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꿈.

그리고 아이들은 그 꿈을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이들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는데...

꿈을 너무 쉽게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지나치고, 놓쳐버린 꿈들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글에 다다랐다.

 

그럼, 이제 우리 다시 잊었던, 지웠던, 놓쳤던 꿈을 꿔 볼까요?

아주 행복하고도 행복한 꿈을요. (에필로그에서)

 

꿈.

사소하지만, 그 꿈을 품은 것만으로 가슴 따뜻해질 그런 꿈.

그런 꿈을 다시 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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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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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아쉬웠던 책, 내 옆에 있는 사람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하는 건 너무나 위험하다. 오랜만에 이병률 작가의 여행 에세이 신작이 나온다고 해서 큰 기대감을 안고 읽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은 역시 독이었을까. 그래도, 좋은 책이었음은 분명하다. 다만, 기대가 너무 컸고, 두께감이 생각보다 버거웠을 뿐.

여행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여행에 대한 부분보다 산문집에 가까운 부분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좋았다.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여행으로부터 얻은 생각들을 읽어가고 싶어서이니까. 그런데 이 여행 산문집은 조금 독특한 부분이 있다. 몇몇 부분에서는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이 아니라, 평소 머무르고 있는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 갔을 때 느꼈던 일들을 풀어놓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처음에는 그걸 여행이라고 볼 수 있나? 싶었는데, 그걸 여행이 아니라면 뭐라고 정의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결국 여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쨌든, 평소와 다른 공간에 가게 된 것이고, 또 그곳에서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여행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산문집에 가까운 글이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글들이 참 많았다. 잔잔한 느낌을 전해주는 글들.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글들. 가끔은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고, 멍하게 만드는 사연들도 있었다. 내가 여행을 간 곳에서 누군가는 일상을 살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내용이었던 것도 같다.

그런 수많은 글들 중에 단연 눈에 들어왔던 것은 표제작. 역시 표제작은 뭔가 다르다. 정말 짧았는데, 그 내용 전체가 너무 좋아서,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 전문)

표제작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이 책에서는 '관계'에 대한 글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사랑,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의 어긋나고 이어지는 것에 대한 생각들.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항상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일까. 홀로 어디든 떠나더라도 결국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고 온 사람들과의 관계도 떠올리게 되기 마련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한편은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책을 읽어가게 되었다. 공감가는 글들을 읽으며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와 많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두렵다. 비슷한 사람하고의 친밀하고도 편한 분위기에 비하면 나와 다른 사람 앞에는 본능적으로 속을 여미게 된다. 그럴수록 나아 같은 사람을 찾겠다면서 여러 시험지를 들이대고 점수를 매기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기준과 중심들을 꺼내놓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해하는지 이해 못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은참 그렇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살며 혼자만의 시력만큼 살아간다. ('세상의 여러 맛을 보려고 사는 것 같아서' 중에서)

 

시간은 또 선택하게 합니다. 그 힘겨운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음도 알게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람이 오고, 아무도 모르게 그 사람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내가 만든 감정인데 그 감정은 문득 나를 아프게 합니다. 시간이 허무는 일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거의 모든 일들이' 중에서)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는 페이지수를 적어둔 부분이 없었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페이지수가 적혀있지 않은 책들을 만나게 된다. 왜 없을까? 물론 숫자가 없는 것이 깔끔해 보일 때도 가끔 있지만, 기억해두고 싶은 글이 많을 때 페이지수를 적어두곤 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엔 조금 불편할 때가 있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마음에 드는 글들만 고심해 선별해서 열심히 따라적게 되기도 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좀더 관계에 대해, 삶에 대해 알게 된 후에. 그렇다면 또 다르게 읽힐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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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한 스케치 여행, 개정증보판
이장희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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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숨어있는 많은 풍경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처음 책을 봤을 때는 두께가 적절해보이는데다가 스케치 위주일거라 예상해서 빨리 읽을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펼쳐보니 글씨가 좀 작은 편이었고 보기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통의동 백송에서 시작해, 경복궁, 명동, 수진궁, 효자동, 광화문광장, 종로, 청계천, 우정총국, 정동, 혜화동, 경교장, 딜쿠샤, 인사동, 숭례문, 환구단, 서울성곽과 그 주변을 둘러보는 구성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미처 담지 못한 풍경들이라는 제목으로 풍경 스케치이 가득 담겨 있다.


가장 먼저 나온 경복궁은 스케치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경복궁 곳곳의 풍경을 스케치로 접하면서 익숙했던 공간의 색다른 매력을 느꼈다. 또한, 경복궁 깊숙히 위치해 있어, 가보지 못한 곳들의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았다. 조만간 직접 가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명동에서는 그곳에 위치한 추모비와 표지석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명동에 다녀왔는데, 그런 게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번화가 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냥 스쳐가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음에 명동에 가면 찬찬히 둘러볼 이유가 생겼다. 한편 명동 근처에 위치한 을지로 입구역이 최초의 지하상가라는 정보도 새롭게 알았다. 흥미로웠다.

수진궁이라는 곳은 처음 알게 된 곳이었다. 지금의 종로구청 일대인데, 수송동에 수진궁터 표지석이 남아있다고 한다. 수진궁 귀신이라는 것도 생소한 것이었다. 이 일대는 조선 초에는 정도전의 집터이기도 했었고, 수송동 쌈지 공원에는 이색 영당이 있으나 출입은 제한되었다니 아쉽다. 다양한 역사가 있는 곳이라 신기했다.

다음은 서촌, 효자동. 이 곳도 꽤 최근에 갔었는데, 최근 북촌에 이어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곳에는 바위에 새겨진 세 개의 각자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각각 필운대, 백세청풍, 운강대라는 것인데, 이것들도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에 모르는 것이 정말 가득한 것 같다. 이곳에는 옥인동 자수궁터, 송석원 터, 김상헌 집터, 세종대왕 생가터가 있다고 한다. 모두 '터'만 남아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전쟁까지 겪으면서 모든 문화재가 살아남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기대일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광화문 광장은 익숙한 풍경이 이어졌고, 종로에서는 한 때 종이 울렸던 곳이지만 지금은 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최근 다시 바깥으로 나오게 된 청계천에 관한 부분에서는 조용한 곳에 있다는 옛 수표교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 장벽 일부를 비롯해 독일 전통 가로등, 독일 의자까지 있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청계천 공사가 끝난 후 꽤 가봤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것일까? 스케치를 보니 삼일교 근처인 듯 하니 찾아가야할 것 같다.

종각역에는 우정총국 건물이 있었다. 세계에서 오래된 우체국으로 꼽히는 건물이라고 한다. 한 때는 사라질 뻔 하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우편 서비스 업무도 하고 있다고 한다. 흥미롭다. 이 부분에서 편지와 이메일에 대해 저자가 써 놓은 내용이 있는데,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편지, 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메일이라는 외래어로 바뀐 것 같다.

편지는 아날로그시대로, 메일은 디지털시대로 두 단어가 하나의 분기점쯤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 같다. 친구가 보낸 편지가 대문에 걸린 우편함에 꽂혀 있을 떄의 그 설렘, 몇 번이나 반복해서 편지를 읽던 기분 좋은 밤이 다시 찾아올까? 물론 이메일이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저 옛날의 기억과 다른 모습의 감동, 다른 빛깔의 느낌일 뿐이다. 결국 세상은 계속 변해가는 것이니… 그래도 노란색 지로용지나 간혹 날아오는 분홍빛 과태료 딱지뿐인 우편함에 친구가 보낸 편지 한 통이 고이 놓인 풍경이 문득 그리워지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시대의 사람인가보다. (p.205)


편지를 보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편지에는 메일과 다른 뭔가 특별함이 있다. 꾹꾹 눌러쓴 글씨체에서 상대의 특성이 그대로 느껴지니까. 다양한 글씨체를 사용할 수 있다지만, 손글씨에는 좀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게다가 편지의 양에 따라 느껴지는 두께도 있고, 또 편지와 함께 여러가지를 봉투에 담아 보내기도 하고... 우체국이 계속 존재하는 한, 계속 편지를 주고 받고 싶다. 역시 나도 아날로그시대의 사람일까.

사실 이렇게 편지 외에도 전반적으로 개발 때문에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문화재를 홀대하는 현실들이 특히 그랬었다. 추모비와 표지석들은 외면받고, 과거의 기억이 담긴 공간들은 '터'만 남거나 새로운 건물 때문에 자꾸 밀려난다.


그런 점에서 정동에 위치한 캐나다 대사관의 건축의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대사관 앞 회화나무를 배려해 공사를 나무의 동면주기에 맞췄고, 나무가 있는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약간 뒤로 건물을 밀어서 건축한 것이다. 개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좀더 오래 간직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동 부분에서 덕수궁에서 떨어져 나온 중명전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역시나 처음 알았다. 예약제로 운영되었으나 현재는 평일 오전 자유관람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정동에는 시립미술관이 존재한다. 덕수궁과 함께 꽤 많이 방문했던 곳이라 소개가 반가웠다. 더불어 국립 미술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국립 미술관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소격동에 서울관이 생겼다. 꽤 큰 공간이어서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어 좋은 것 같다. 정동에서 배재학당도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는데, 익숙한 이름이고 오며가며 많이 보았던 건물이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없었다. 역시 다음에 근처에 가게 되면 들러야 할 것 같다.


한편 혜화동은 비교적 스케치가 가득해서 그림을 감상하며 읽어가게 되었고, 김구의 이야기가 담긴 경교장을 지나 딜쿠샤라는 독특한 이름의 공간에 관해 읽게 되었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이상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이름을 가진 건물에는 앨버트 테일러라는 인물이 살았는데,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권율 장군의 집터에 있었다는 나무라고 한다. 과거에서 더 예전의 과거까지. 시간의 흐름이 가득 담긴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어 읽은 인사동 부분도 자주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생소한 곳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끌었다. 민영환 선생 자결터라던가, 목조각상 전문 박물관이라는 목인 박물관, 그리고 골목길 서점. 이 세 곳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서울 성곽길. 서울에 있는 여러 성문을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부록처럼 있었던 미처 담지 못한 풍경들은, 북촌 일대, 1900년대 정동일대, 경희동 주변 내수동, 충무로 작업실, 공공 조형물들, 서울 사람들, 고궁문, 운현궁, 추녀마루, 종탑들, 다양한 운송수단들이 스케치로 그려져 있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혜화동에 있었다던 버스 정류장 벤치. 독특한 예술작품처럼 보이는데 지금은 사라진 걸까? 없다고 하니 아쉬웠다.


읽어가면서 서울의 다양한 곳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몰랐던 곳들, 아주 오래전 간 적이 있는데도 기억에 묻혀 생소하게 느껴졌던 곳들,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의 의미를 잘 몰랐던 곳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개발되어 표지석으로만 남아있는 곳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그마저도 잘 찾기 어렵게 되어 있고... 그래도 이런 책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다행인걸까. 찾아가고, 기억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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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주 TOP10 TOP10 시리즈
앨리스 리 지음 / 홍익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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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만나는 갖가지 경험,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주 TOP10

일단 제목을 보면서 자연스레 예전에 읽은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과 <나만 알고싶은 유럽 TOP 10>이 떠올랐다.

그 책들을 즐겁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비슷한 구성이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른 내용에 처음에는 So So라고 생각했다.

기대와 달랐다. 테마에 따라 호주의 여러 도시에 대한 여행 정보를 기대했는데, 에세이에 더 가까운 듯했다.

그러나 읽는 동안 이 생각은 바뀌었다.

애초에 나는 여행 책을 통해 여행 정보를 얻는 것을 선호한다기보다는 에세이를 선호하는 독자니까.

에세이에서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도시의, 관광지의 매력을 느껴가는 것이 좋다.


호주에 살고 있는 저자가 소개하는 호주 곳곳의 매력적인 여행지들.

아무래도 그곳에 살고 있는 저자가 소개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여행지도 더 특별하고 신뢰감있게 느껴진다.

표제에 맞게 총 10가지의 주제로 나뉘어 도시들, 여행지들이 소개된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역시 호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 단연은 역시... 캥거루 고기!

저자가 소개하는 캥거루 고기 음식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가다보면...

그 식감과 맛이 정말 궁금해져 간다.

이 독특한 고기를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곳을 짚어주어서, 호주에 가게 된다면 꼭 그곳에 가서 캥거루 고기를 먹어보고 싶었다.

캥거루 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들 '한번쯤 먹어볼만한 고기'라고 평했다고 하니까.

음식 소개하는 부분에서 또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하이 티 파티'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

특정 카페를 소개한다기보다 저자의 지인이 열었던 티 파티를 소개하며 문화적인 요소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호주도 영국인이 많이 이주한 지역이다보니 영국의 티타임 문화가 호주 문화에도 적셔져 있는 것이다.

차를 좋아하다보니 식사와 함께 즐기는 하이 티 파티도 꼭 경험해보고 싶은 호주의 문화였다.


또 호주 곳곳의 자연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다.

역시 여행에서는 자연이 주는 경외감과 치유를 빼놓을 수 없지 않나 싶다.

표지 사진으로도 쓰인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울룰루와 같은 지형, 북반구와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있을 것만 같은 남태평양의 바다.

아름다운 웬트워스 폭포도, 자연이 만들어낸 그레이트 오션 로드도,  캥거루들이 뛰어다니는 곳도 신선한 경험을 선사해줄 것 같다.

이러한 자연을 이용한 다양한 레저활동도 꼭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이다.

모래언덕에서 타는 모래 썰매나, 번지점프, 낙타를 타는 여행, 래프팅, 스카이다이빙, 요트, 크루즈 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하려면 호주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어야하는걸까?

자연뿐만이 아니다. 호주는 멋진 건축물들도 많다.

그중 가장 보고 싶었던 건물인 시드니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있었다.

멋진 건축물 만큼 멋진 공연들이 열린다는 곳. 꼭 그곳에서 경험을 보는 것도 위시리스트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테마가 좋다. 오직 호주에서만 가능한 것들.

남반구에 위치한 국가이다보니 한여름에 맞는 새해 맞이 행사. 크리스마스도 여름에 맞는다.

악어를 볼 수 있는 점핑 크로커다일 크루즈도, 코알라를 직접 안아보는 경험도 했다는 코알라 보호구역도 눈길을 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수많은 테마로 호주 곳곳을 들여다보며, 제목에 공감하게 되었다.

남반구에 위치하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다른 나라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한 나라 호주.

그 곳은 기대한 것들에서도,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에서도 놀라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나라인 것 같다.

사는게 그렇다. 인생에는 무엇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고, 반면에 뭐 하나 놀랄 것도 없다는 아이러니. 삶은 그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크게 기대하며 먼저 흥분하는 일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지레 실망하는 일도 없이,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카타추타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오는 놀라움과 감동이 나를 두세배 더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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