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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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에게 온다 리쿠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두어야겠다.

나는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편으로, 매사에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려 애쓰는 편이다. 물론, 지향하는 바는, '남에겐 관대히, 자신에겐 엄격히' 이긴 하지만, 나도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이라 그딴게 잘 될 리 없다. 한 작가에 대한 지극한 편애는 당연히 비판적인 시각 따위 개나 줘버리게 만든다. 


 온다 리쿠의 작품세계는 딱 두가지로 압축시킬 수 있다.

[회상] 과 [대화] 이다. 그녀의 작품세계에서 [회상] 과 [대화] 는 플롯의 전체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아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되고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전체를 뭉뚱그려 보았을 뿐으로, 과일생크림 케익이 스폰지빵과, 생크림과 과일로만 이루어져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고급 원유와 빈티지가 오래된 향기로운 좋은 브랜디로 만든 생크림에, 유기농 밀을 이용해 만든 신선한 빵, 제철에 나는 신선한 과일들 역시 각각 다른 맛일터다. 그와 같이 온다 리쿠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회상들과 대사들 역시 촘촘하게 잘 짜여진 각각의 플롯들을 가지고 있다.  그저 몇 사람이 앉아 평범하게 과거를 추억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 과거와 대화 내용을 꼼꼼히 뜯어보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스토리 텔링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세상에 어떤 작가가, 등장인물들이 그냥 방안에 앉아서 이야기만 나누는 소설을 이렇게 흡인력 있게 써낼 수 있겠는가?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은 단편에 가까운 세 편의 이야기가 모여 중편에 가까운 한편의 장편을 만들어낸다. 

세 친구, 니레자키 아야네와 도자키 마모루, 하코자키 하지메는 고교 동창생으로 도쿄에 있는 대학 동기생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때는 곧잘 어울렸지만, 다른 과를 택했기에 대학에 와서 부터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특히 아야네와 마모루는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묘한 관계이기도 했는데, 친구도 아닌 짝사랑도 아닌 묘한 감정은 하지메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 세명의 친구들이 각기 과거를 추억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먼저 아야네의 이야기가 [그애와 나] 라는 챕터로, 마모루의 이야기가 [파란 꽃] 이라는 챕터로, 하지메의 이야기가 [젊은이의 양지] 라는 챕태로 이루어져 있다.

아야네의 이야기의 소재는 일본문학으로 챕터 제목[그애와 나]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책 이름이고, 마모루의 이야기의 소재는 대학시절 몸담았던 재즈밴드의 이야기로, 챕터 제목[파란 꽃] 은 책 안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재즈 연주곡의 제목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하지메의 이야기는 온다 리쿠가 종종 활용하는 인터뷰의 형식으로 쓰여졌는데, 이야기의 중심 소재는 영화이고, 챕터 제목 [젊은이의 양지]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영화의 제목이다. 그리고 책 제목이기도 한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은 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실제 성 프란체스코의 인생을 다룬 영화 제목이다. 


일본문학과 재즈에는 식견이 없어서, 확실치는 않으나, 세번째 챕터의 제목이나 책 제목, 그리고 온다 리쿠 작가의 성향으로 봤을때 챕터 제목들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들일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그 작품들에 받은 영향은 어쩌면 온다 리쿠 작가가 받은 영향을 풀어낸 것일 수도 있다. 온다 리쿠는 [목요조곡] 이라는 작품속에서 베스트 셀러 작가의 삶을 비교적 상세히 풀어낸 적이 있는데, 당시 어떤 인터뷰에서 일정부분 본인의 이야기가 어느 캐릭터엔가 묻어있다고 한 기억이 난다. 이 작품 또한 본격적인 자전적 소설은 아니겠지만, 작가의 성향상 어느정도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묻어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온다 리쿠의 작품들은 그 독특함 때문에 작품을 한두단어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정의한 '청춘소설' 이 주는 단어의 어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향수' 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아서, 일본 현지에서도 굳이 '노스텔지어' 라는 애매한 외국 단어를 가져다가 닉네임처럼 붙였을터다. 

그녀의 이야기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에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녀의 작품 안에는 장르 자체가 주는 묘한 긴박감과 음습한 분위기가 듬뿍 묻어있다. 묘하게 삶을 관조하는 듯한 시각도 거의 매 작품마다 등장하고, 그렇게 자신의 삶과 한걸음 떨어져 있는 듯한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청춘이나 향수같은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노스텔지어' 라는 단어의 어감이나 이미지가 온다 리쿠의 작품들과도 잘 어울릴 듯 하다. 

안개에 쌓여있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뿌옇고 몽환적인 추억들. 

 

이 작품 [브라더 선 시스터 문] 또한 그러한 온다리쿠의 특색이 여지없이 묻어난다.

세명의 친구, 아야네와 마모루, 하지메 또한 대단히 관조적인 자세로 자신들의 대학시절을 추억하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세 친구가 공통적으로 겪은 사건과 영화 이야기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이것이 세 친구의 과거를 꿰는 실 같은 역할을 한다. 

대학을 졸업한 동창들이 모여 과거를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흑과 다의 환상] 과 비슷하긴 하지만, 훨씬 얇고, 훨씬 관조적이다. 이야기의 방식은 차라리 비교적 초기작인 [유지니아] 와 닮아있으나, 작품이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는  더 건조하고 담담하다. 

확실히 작가의 작품색이 달라진 느낌으로, 그녀의 데뷔작부터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 묘한 느낌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걸까? 

미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과거는 고정되어있고,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다.

다가올 고통은 두렵지만, 지나간 고통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고, 과거는 이미 겪어낸 일이다.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아야네와 마모루, 하지메 모두 이제 막 시작하는 초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야네는 막 작가로 등단한 것 같고, 마모루 역시 막 사회로 뛰어드려는 초년생인 듯 하고, 하지메는 10여년간 금융권에서 일한 샐러리맨이었지만 이제 막 상업 영화 감독으로 입봉한 터다. 미래를 향해, 희망을 향해 뛰어가야 할 선에 서있는 것 같지만, 담담하게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린다. 

 이 작품은 거창하게 미래를 이야기하지도, 희망이나 의욕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현재와 과거, 삶의 불가역성과 기억의 가역성을 이야기 할 뿐이다. 


나도, 전혀, 아무것도 없었던, 좁고 좁았던 대학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실, 아직도 그 좁고 좁은 세상속에 갇혀있다.

어쩌면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좁은 관 속, 아니면 좁은 유골함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과거가 될테고, 머지 않은 훗날에 오늘을 추억할테니까.

지금 이 순간이 기쁘고 행복한 만큼,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훗날에, 기뻐하고 행복해할 수 있을테니까. 




p.s

최근에 작가의 신작 장편과 작품집이 연달아 출간된 것으로 알고있다.

어서 만나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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