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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ㅣ 시공그래픽노블
브래드 멜처 지음, 래그스 모랄스 외 그림, 정리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2년 3월
평점 :
[DC]의 대형 크로스오버 이벤트였던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의 한국 정발본이 나왔다.
[마블]에 '어벤져스' 가 있다면, DC에는 '저스티스 리그' 가 있다.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Justice of America' 줄여서 'J.L.A' 라 불리는 이 모임은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과 그린랜턴 등 우리가 잘 아는 DC의 히어로 캐릭터들이 모두 모여있다.
잠깐 여기서 미국 만화 회사와 캐릭터의 상관관계를 살짝 언급한다면, [마블] 과 [DC]는 큰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SM]과 [싸이더스] 정도로 보면 될까? [YG] 나 [JYP] 등을 생각해도 된다. 그리고,[마블] 의 회사에는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토르, 헐크, 퍼니셔, 호크아이 등등이 소속되어있고, [DC] 에는 슈퍼맨, 원더우먼, 그린랜턴, 플래시, 그린애로우, 아쿠아맨 등이 소속되어있는 것이다.
국내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도 가수들이 서로의 앨범에 피쳐링을 해주고, 뛰어난 작곡가와 보컬 트레이너를 영입해 연예인들을 성장시키듯, 미국의 만화 회사에서는 뛰어난 스토리 텔러와 아티스트를 영입해 히어로 캐릭터들의 이야기들을 계속 만들어낸다고 보면 된다.
[마블]이 디즈니를 인수하고, 영화 제작 회사를 꾸리며 본격적으로 종합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면서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마블] 의 캐릭터들이 무게감있게 다가오지만, 만화만 놓고 봤을때 미국의 메이저 시장은 [마블] 과 [DC]가 양분하고 있다.
만화 회사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캐릭터들을 소속 연예인으로 생각한다면, [시빌 워] 나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같은 크로스 오버 프로젝트는 시즌별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쉽다. 각 회사의 캐릭터들이 모두 속해있는 동일한 세계관이 있는데, 간단하게 [마블 유니버스] 와 [DC 유니버스] 라고 통칭한다.(보다 상세한 설정이 있긴 하지만 너무 복잡하니 생략). [마블 유니버스]는 당연히 아이언맨, 토르, 헐크, 스파이더맨 등이 함께 존재하는 동시대를 뜻하고, [DC유니버스] 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그린랜턴 등이 함께 존재하는 동시대를 뜻한다.
매 시즌 각 출판사는 자사의 세계관 전체를 포괄하는 큰 사건을 터뜨리는데, 이것을 주로 '메인 이벤트' 라고 부른다.
자사의 캐릭터들 모두가 영향을 받는 사건이 되고, 이들 각각의 타이틀에도 영향을 미치며, 모두가 함께 등장하는 타이틀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사건에 관련된 수많은 외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 사건을 접하는 캐릭터별의 상세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짧은 15~30페이지 내외의 한 회 분량의 단편들로 그 밖의 캐릭터들과 다른 사건들도 펼쳐지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DC역시 마찬가지인데, 메인 이벤트에 접근하는 방식과 철학은 약간 다르다고 보면 된다.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는 '브라이드 멜쳐' 라는 당시 미국에서 떠오르는 신예 스릴러 작가가 스토리를 담당했던 메인 이벤트로서, J.L.A의 한명인 '일롱게이티드맨' 의 아내 '수' 가 끔찍하게 불탄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롱게이티드 맨은 정체가 탄로난 상태였기 때문에, J.L.A는 일롱게이티드 맨의 아내인 수가 아직 연인이었던 시절부터 그녀를 보호해 왔었다. 그렇게 히어로들은 정체가 탄로난 동료의 가족과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으나, 치밀한 감시망과 보호 시스템을 뚫고 누군가 침입한 것이다.
수의 장례식에조차 자신의 코스츔과 가면을 쓰고 참석해야만 했던 히어로들.
정체가 탄로난 히어로들은 자신의 가족들과 친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수를 죽인 범인을 찾기위해 빌런(악당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히어로의 반대개념) 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히어로' 로 산다는 것, 그리고 '히어로'의 주변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흡입력있는 이야기 속에서 깊이있게 그려진다. 물론 사건의 반전과, 등장 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도 아주 뛰어나다.
'이야기의 힘' 과 '캐릭터의 생명력' 을 동시에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수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