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의 역사 100년 고려사 5부작 100년 시리즈 1
이수광 지음 / 드림노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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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 를 다루는 책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철저하게 고증과 기록을 중심으로 쓰여진 '역사서' 이다.

역사서의 저자들은 수많은 고서들을 조합해 역사의 흐름 자체를 책에 담기위해 노력한다.

기록과 기록 사이에 공백이 있는 부분은, 저자의 책 안에서도 공백으로 남는다.

저서 안에 수많은 인용문들이 들어있고, 시간의 흐름 보다는 시대의 중심적인 인물 위주로 저술된다.

이것은 이미 아주 옛날, 사마천이 '사기' 에서 썼던 방식이다.

 

두번째는 고증과 기록을 기저에 깔아두고, 그 밖의 것들은 상상력에 의존하는 '역사소설' 이다.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많은 고서들을 통해 '기록' 들을 발췌하고, 당시 시대에 실제 '있었을 법한' 배경과 환경들을 상상하여 책 속에 담는다.

기록과 기록 사이에 공백이 있는 부분은, 논리적이면서 인과적으로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저서 안에 인용문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고, 작가나 작중 인물이 화자가 되어 시간의 흐름대로 저술된다.

우리가 잘 아는 조정래, 김훈, 김연수 작가등의 작품을 떠올려 보면 된다.

 

'굴욕의 역사' 의 저자 '이수광' 작가는 전자에도 능하고, 후자에도 능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 나는 조선의 국모다' 는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소설로서 작가의 능수능란한 스토리 텔링을 경험할 수 있고,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같은 작품을 보면,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역사적 기록들을 객관적으로 짜맞추는데도 대단히 능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의 경우는 딱딱하고 별 이야기 같지도 않은 단순한 기록들을 계획된 연출과 기획속에 일사불란하게 짜맞추면서 역사서와 역사소설의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굴욕의 역사' 는 완벽하게 역사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총 5부작으로 기획된 고려사 500년의 역사 중 최후의 100년을 다루었는데, 이 또한 이수광이라는 작가의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최후의 100년부터 시작해서, 고려의 건국까지 거꾸로 100년씩 저술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저서에는 몽골에 항복한 왕 고종부터 고려 최후의 왕 공민왕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려사는 조선사에 비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지 않다.

통일신라가 결과적으로는 지역간의 완벽한 융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어이없이 소멸되자, 그 뒤에 난립한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고구려의 기상을 받든 '고려' 라는 나라를 세운다.

고려는 초~중반까지는 고구려의 기상 그대로 강한 외교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극동의 강국으로 송나라, 요나라 등과 대등한 줄다리기를 벌였으나, 후반에 들면서 무신의 반란으로 인한 어지러운 내부정세와 중국대륙을 휩쓴 몽골족의 침입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애초에 침략과 약탈에 능한 유목민이었던 몽골에게 약 30년간이나 유린당한 끝에, 고려 왕조는 몽골에 무릎을 꿇고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신하가 되고 만다. 고려왕은 원나라의 번왕이 되고, 고려는 원나라의 식민지가 된 셈이다.

몽골의 침략부터 원나라가 멸망함으로서 자연스레 속국신세를 면하게 되는 기간이 약 100여년에 이르니, 일제시대는 그 절반에 불과하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같은 권력투쟁만이 횡행했던 시기이다.

끊임없는 모함과 이간질, 권력을 잡기위한 처절하고 치졸한 모략과 음모, 좋은 줄을 잡기 위한 신료들간의 끊임없는 아전투구의 시기였다.

보는 내내 어이없고 짜증이 날 뿐 아니라, 사실 우리 민족의 정치수준은 이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카더라' 식의 어처구니 없는 비방과 상대의 허물 들추기, 각종 지저분한 추문과 꼬리를 무는 폭로전 등, 정치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게 없지 싶다.

 

고려의 황혼기는 이렇게 더럽고 굴욕적이었지만, 사실 고려는 이름 그대로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한 나라였다.

앞으로 나올 나머지 400년의 기간들에는 보다 자랑스럽고 떳떳한 이야기들이 훨씬 많이 실릴 것이다.

아- 일단 바로 다음에 나올 무신정치의 시대는 더 지저분하고 더러운 정치판 이야기들이 나올테니, 그 부분 역시 짜증을 감내하고 봐야 할 듯 하다.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왕보다 큰 힘을 쥐기 위한 무신들의 치졸한 음모와 배신, 모략들이 등장할테니 말이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의 거울이고, 미래의 예언이다.

자랑스러운 것만이 우리의 과거가 아니다. 굴욕 또한 우리의 과거이다.

굴욕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닥쳐올 굴욕을 이겨낼 방법을 배우고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동북아의 정세는 예나 지금이나 시끄럽기 짝이 없다.

북한은 여전히 긴장을 조성하고 있고, 중국은 북한을 집어 삼켜서 동북공정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시진핑 부주석은 6.25 전쟁이 미국의 침략이었다며,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야욕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결국은 형제국, 우방국으로 언젠가는 집어 삼키겠다는 의도이다.

 

고려가 원나라에 갖은 굴욕을 당하고 있을때, 왜구는 끊임없이 한반도의 남해안을 집적댔다.

일본은 그때와 다름없이 독도를 끊임없이 집적대고 있다.

 

어쩌면 '굴욕' 은 한반도가 가지고 있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고려의 100년은 굴욕이라는 운명에 굴복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시대는 우리에게 또다시 너무나 어려운 문제를 눈 앞에 내놓고 있다.

운명에 굴복할 것인가, 당당히 맞서 이겨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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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만 실종된 최순자
김은정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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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작가의 첫 작품이었기에, 그렇게 큰 기대를 갖지는 않고 책장을 넘겼다.

서른을 목전에 둔 평범한 여성의 소소한 일상들이 적절하게 펼쳐져갔다.

지나친 미사여구와 너무너무 남용된 묘사들이 감정이입을 방해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서른을 목전에 둔 최순자와 그녀가 몸담고 있는 변호사 사무실의 정경. 그리고 지난 연애들에 대한 회상이 가볍게 흘러갔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나이에 민감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외모에 민감하다.

물론 사회가 여성에게 외모를 중시하게끔 하는 풍조가 생겨나긴 했지만, 이 사회가 남성중심이 아니라 여성중심 사회였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방향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 여성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외모는 결국 남성들이 좋아하는 취향이지만, 여성중심 사회였다면 여성들은 스스로 여성들이 좋아하는 취향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외모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여대를 가보면 알 수 있다.

공대의 남학생들 사이에 있는 홍일점 여학생보다, 미대나 여대의 여성들 사이에 있는 여성들이 훨씬 더 화려하고 예쁘게 꾸미고 다닌다.

아마 무인도 한가운데에 여성 한명을 던져놓고, 전신거울을 하나 함께 보내준다면, 아마 그 여성은 외모를 꾸미고 싶다는 충동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여성들에게 외모의 가장 큰 적인 바로 '나이' 일 것이다.

 

여성들이 나이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게도, 스스로의 외모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남성에 비해, 거울을 보는 횟수가 많다.

즉,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매일 스스로의 외모가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그것은 스스로가 매일매일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 또한 관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현실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나이를 먹어가는 얼굴. 늘어가는 주름살들, 윤기를 잃어가고 화장이 잘 안먹기 시작하는 피부를 발견한다면, 과거 - 어린시절로 돌아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면, 여성에 비해 거울을 자주 보지 않고, 화장도 잘 하지 않는 남성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생리나 임신같은 신체의 리듬이 뒤바뀌는 경험도 하지 않기때문에 신체의 변화 또한 쉬이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남성은 여성보다 나이 먹는데에 민감할 수가 없게 된다.

 

이 작품의 초~중반은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여성에 대한 심리와 환경을 적절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궂은 삶을 살아왔지만, 그것들을 잘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최순자라는 여성의 삶이 비교적 좋은 흐름으로 진행된다.

물론 위에 언급했던 지나친 묘사가 목에 턱턱 걸렸다. 마치 트왈라잇의 최순자 버전인 듯 할 정도였다.

솔직히 책의 반은 그런 불필요한 묘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단순하게 넘어가는 문장이 단 한줄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설에서 묘사는 일종의 조미료다. 문장을 맛깔나게 만들고,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지게 하는 것인데, 이 작품은 지나치게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 음식 본래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 요리와 같다.

 

게다가, 중반부를 접어들면서 이야기는 판타지로 급반전된다.

이렇게 저렇게 개연성을 짜맞추려 노력을 한 흔적은 보이지만, 말도 안되고 생뚱맞은 사건으로 갑자기 디테일이 사라져버린, 만화 같다고 한다면 오히려 만화에 대한 지대한 모독이 될만큼 어처구니 없이 이야기가 반전된다.

 

차라리 만화적 상상력을 담았으면 좋았을 정도로 디테일도, 개연성도, 설득력도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초~중반은 비록 전개가 조금 산만하고, 지나친 묘사들이 발목을 잡았지만, 적어도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과 사건의 개연성으로 인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단 한줄로 급반전되는 후반부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져서 이야기의 흐름조차 놓칠 정도였다.

 

작가의 욕심이 큰 화를 부른경우로 보여진다.

 

애초에 이런 만화적 발상을 했다면, 그 과정역시 만화적인 상상력에 의존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디테일도, 개연성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반전이 작가의 재기발랄한 발상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셈이다.

 

이런 판타지가 여성들에게는 어느정도 '치유' 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겠지만, 과연 이런 이야기가 이런 스토리텔링이 먹힐수도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애초에 '서른만 실종된 최순자' 에게 '달콤한 나의 도시' 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디테일, 설득력 따위를 신경쓰지 않는 여성 독자에게라면 얼마든지 추천한다.

적어도, 꿈꾸던 '판타지' 정도는 채워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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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 세계가 열광한 IT 창조자 직업 인물 학습만화 꿈의 멘토 1
최재훈.황재희 지음, 코믹 팜 그림 / 웅진주니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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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은 내가 국민학교(이래뵈도 나도 국민학교 시절이었다.)때부터 유명했던 학습만화 브랜드였다. 계몽사와 더불어 양대산맥이었던 웅진은 과학 학습만화와 역사만화 등등에서부터 일찌감치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계몽사가 인수합병과 여러가지 사건으로 다른이름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는동안, 웅진은 여러 컨텐츠로 꾸준하게 아동시장을 공략하며 예림당, 북21과 함께 꾸준한 학습만화의 강자로 자리매김 하고있다.

 최근 '애플' 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스티브 잡스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분석이 다각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스텐포드 대학 졸업 연설은 그의 각종 프로모션 동영상들과 함께 UCC의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학습만화는 바로 그 스티브 잡스의 '스텐포드 대학 졸업 연설' 에서부터 시작한다.감동적인 그의 연설에서 시작하여, 그의 과거를 훑고, 다시 그의 연설로 마무리 짓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10~12페이지가 한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총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각 챕터별로 잡스의 인생이 차분히 그려지며, 챕터 말미마다 어린이들의 학습효과를 위한 참고 페이지가 들어가 있다. 이 참고 페이지 역시 여러 일러스트들로 쉽고 상세하며 재미있게 각종 개념이나 생소한 IT 언어들이 소개되고 설명되고 있다. 잡스가 꿈을 이룬 실리콘 베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컴퓨터의 각 부품과 역할, 그리고 여러 상식들이 생각보다 아주 깊이있게 소개된다.

이 책을 접하니, 문득 나 역시 어린시절 만화로 보았던 여러 위인전기들이 생각난다.

그땐 사실 그 만화책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 보면 글 반, 만화 반. 솔직히 '만화' 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이 작품은 만화 와 글의 부분이 명확히 구분된다.

만화는 만화답게, 설명은 여러 일러스트들이 포함되어있지만 설명답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아주 어린 친구들에겐 그닥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할 것 같다.

애초에 '스티브 잡스' 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질만한 연령대라면 최소한 초등학교 이상은 되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애플' 로고가 새겨진 전자기기를 다룰만한 아이들이나 관심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아마 많은 아니들이 '닌텐도' 는 알아도 '애플' 은 잘 모를테니 말이다.

 

하지만, '위인전기' 를 보는 연령대라면 충분히 추천할 만 하다.

어린 아이들이 '훈민정음' 을 몰라도 '세종대왕' 의 위대함을 배울 수 있고, '라듐' 이나 화학식을 몰라도 '퀴리부인'의 위대함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오히려 스티브 잡스는 그들보다는 더 익숙하게 다가올 법 하다. 잡스는 엄연한 '현대인' 게다가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이고, 앞으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길 것이며, 라듐 보다는 익숙한 '컴퓨터' 의 선구자이니 말이다.

 

 



 

 

애초에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만든만큼 양장본으로 튼튼하게 제본되어 있고, 볼륨감도 상당하다.

202페이지. 대부분의 학습만화들이 150페이지 안팎인데 비하면 상당한 두께이긴 하다.

아이들은 같은 책을 수십번이고 되풀이 해서 본다. 본데 또보고, 본데 또 봐도 항상 새로워하고, 항상 재미있어 한다.

때문에, 왠만큼 튼튼하지 않으면 쉬이 배겨내지 못한다.

 학습페이지 부분은 챕터 사이에 8페이지 안팎으로 생각보다 풍부한 상식들이 알차게 들어있어서, 나도 처음 알게 된 것들도 있었다.

낱말맞추기, 정답찾기, 도표 등 쓸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이 구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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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괜찮아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 두 번째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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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이 작품은 에세이라기 보다는 전문서적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정말 끔찍한 결혼생활을 했고, 그보다 끔찍한 이혼과정을 거쳤으며, 정말 오랜 시간동안 그 상처를 치유했던 이제 40대에 가까워진 여성이 '결혼' 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본질을 찾아나가는 내용이니, 이보다 더 진정성이 담길 수는 없을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소설들이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수의 작품들이 솟아나고 있지만, 그 어떤 작품이든 작가가 '진정성' 을 담으면 그 작품은 최소한 범작 이상이 된다.

작가가 독자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순간 작품은 졸작이 되고, 망작이 된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아무런 기대 없이 자신의 이혼과정과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써 나갔다.

남성잡지 전문 기고가이기도 했던 제법 와일드한 여성이었던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그렇게 담담하게, 일기처럼 써내려갔던 글이 전세계 40개국에 번역될만큼 어마어마한 베스트 셀러가 될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성' 이 가진 놀라운 능력이다.

 

사람은 사람을 속일 수 있다. 생각보다 아주 쉽다.

사람을 속이는 걸로 수천만원, 어쩌면 수억원까지 벌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수천만명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을터.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를 어떤 마음으로 써내려 갔는지 생각해 보면 '진정성' 의 의미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어린 아이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써내려 갔던 그녀의 글 역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롤링이 해리포터의 후속편을 계속 낸다면, 그 진정성은 분명 훼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해리포터 팬들은 물론 반기겠지만, 작품 본연의 힘을 빛을 잃으리라고 생각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해라'(이하 '먹기사') 의 엄청난 성공 이후,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엄청난 중압감을 가지고 쓰고있던 원고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더이상 전과 같은 글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고백한다.

베스트 셀러 작품을 낸 작가들은 대부분, 진정성을 잃고 전작의 흥행에 기댄 상업적인 작품을 후속작으로 내면서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묻혀져 버리고 만다.

 

비록, 난 '먹기사' 를 읽지는 못했지만,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그런 부분을 확실하게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겠다.

그저 그런 칙릿 소설에 불과하거나, 페미니스트의 과격한 단어가 주축이 된 망상들이 가득한 에세이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첫장을 넘겼다는 사실 또한 고백하겠다.

그리고, 그 예상이 책의 1/3까지는 대강 들어 맞는 듯 해서, '그럼 그렇지'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는 사실 역시 고백해야겠다.

 

현대사회에 '결혼' 이란 점차 그 의미가 완벽하게 '변화' 하고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혼전동거가 급속도로 늘고있고,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사실혼 상태의 미혼커플들도 생각보다 훨씬 많다.

이 변화의 주된 원인은 여권신장에 있다.

여성들이 경제력이 강해지고,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지극히 남성에게만 유리한 룰이었던 '결혼' 의 형태는 급속도로 바뀌어가고 있다.

결혼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예측하는 것은 쉽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변화가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자신의 경험과 수많은 연구자료를 토대로 '결혼' 에 관해 고찰을 시작한다.

분명 그녀는 결혼에 대해 엄청난 상처와 거부감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전재해야겠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거의 대부분은 결혼의 부정적인 부분이 아주 체계적으로 서술된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합리성, 비논리성, 거기에 비인격성까지 낱낱히 파헤쳐진다.

 

내가 만나온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 환상이나 기대치가 100이라고 가정했을때, 여자는 결혼하는 순간 이 기대치가 거의 20까지 떨어지는 반면, 남자는 80정도까지만 떨어진다.

그 후가 더 문제다.

이미 우리 사회 자체가 남성중심이기때문에 결혼한 여성에게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 엄청난 차이를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보면서 느끼는 것보다, 아버지를 통해 느끼는 것이 많다.

난 결혼하면,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 아내가 될 사람에겐 우리 어머니의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수십년동안 남편과 남자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지만, 여자의 역할은 정말 엄청나게 변화했는데도 말이다!!!

결혼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이 여인의 글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 영원히 몰랐을터다.

그녀들은 '결혼'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론 답은 없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알아챌 수 있다.

적어도, '아 내가 어떻게 해야겠구나, 어떤 생각을 가져야 겠구나' 정도는 말이다.

물론 내가 겨우 이 텍스트 하나로 여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따윈 하지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먼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진정한 결혼의 의미에 대해 체계적인 고찰을 시도한다.

아직 원시풍습을 가지고 있는 동남아 오지의 소수부족들을 찾아가 그들의 결혼에 대해 듣기도 하고, 함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실패했던 결혼과 비교해 보기도 한다.

그들의 가지고 있는 결혼의 의미와 마음가짐, 자신이 가졌던 결혼의 의미와 마음가짐을 비교해보고, 그 차이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따져본다.

시간과 환경, 모든게 다르지만 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고,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본질은 같기때문에 차이점을 비교하긴 오히려 쉬웠다.

그리고 미국의 결혼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여러 통계들을 바탕으로 보여주고, 변화의 이유와 의미를 논리적으로 열어놓는다.

'여성의 입장' 에서 말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 역시 저자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녀는 자신이 내세우는 수많은 가설들과 스스로 내린 결론들이 오류가 있을 것이고, 위험한 발상인 경우도 있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

설사 자신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잃게 된다해도 독자들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보편타당하고 공감을 가질만한 결론을 내림으로서, 스스로에게 '결혼' 에 대한 금제를 푸는데 성공한다.

 

 

결혼.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와 수십년을 함께 살기로 '약속'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난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사는건데 뭐 어떠냐...고 되묻기엔, 할만큼 경험은 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얼마나 많은 양보가 필요할까.

 

이 책은 그런 아찔한 항해에 상당한 조력자가 될만하다.

결혼에 대해 마치 무한의 우주에 떠다니는 미지의 행성같이 생각했던 내게 조금은 구체적인 사진을 보여주긴 했으니 말이다.

 

분명 어렵고 복잡하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과 고난이 뒤따를 것이다.

난 잠자리도 엄청 예민하단 말이다!!!!  이정도는 애교 수준인 고통과 고난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선택하고, 누군가에게 선택되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에 사회적인 약속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1년에 한번씩 이 책을 읽고, 결혼한 뒤에도 이 책을 1년에 한번씩 배우자와 함께 읽을 수 있다면,

 

결혼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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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disc)
이준익 감독, 백성현 외 출연 / 프리지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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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때는 조선시대 선조임금 시대.

조선조를 통틀어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능한 임금인 선조의 시대는 당쟁이 가장 극심했던 시절로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시절의 당쟁은 얼마나 심했나면, 지금의 여야갈등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어떤것도 양보하지 않고 서로를 반대하며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인 출신이었던 정여립의 사건이 발발한다.

지방에서 '대동계' 를 조직해 무술훈련을 시키던 정여립은 서울로 침범하여 한다는 고발을 당해, 관련자들이 체포 당하자 도망을 쳤으나, 관군에 포위당하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건을 이용해 실세를 잡으려는 서인들은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동인들을 관련자로 몰아 마구잡이로 역모로 몰아부쳤고, 사건의 진위와 관계없이 수많은 동인 출신 실세들이 처형당하거나 유배당했다.

 

이 영화는 바로 이시기.

정여립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동계의 일원이었던 '이몽학'과 봉사인 '황정학' 의 갈등이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이다.

정여립이 죽자 황정학은 대동계를 해체시킬것을 주장하며, 조직을 떠나지만, 이몽학은 조직을 존속시키며 다음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갈등속에 이몽학에게 아버지를 잃은 서자 '견주' 와 이몽학의 연인인 기생 '백지' 가 얽히게 된다.

 

 

 

이 작품은 본디 동일한 제목의 만화책이 원작이다.

한국 만화계의 뛰어난 작가들 중 한분이신 박흥용 선생의 원작 만화책은 주인공 '견주' 가 혼란한 시대속에서 스승을 만나고, 검을 배우고, 여자를 품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 즉,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절묘한 호흡으로 그려낸 명작중의 명작이다.

 

하지만, 영화는 완벽하게 다른 작품으로 보는게 옳을 것 같다.

'원작' 이라고는 하지만, 영화와 책이 품고있는 메시지와 그 전달 방법은 완벽하게 다르다.

캐릭터와 시대배경, 그리고 제목을 빼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캐릭터도 이름이나 배경만이 같을뿐, 그 개성이나 특징은 모두 다르다.

 

애초에 비교할래야 비교할 수가 없다.

 

확실히, 이준익 감독도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원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은 한 개인의 깨달음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조 자체가 단순하다.

견주와 황정학의 만남은 필연보다는 우연에 가깝고, 이몽학과의 관계는 스승인 황정학이 한때 연을 나눈 사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황정학은 이몽학에 대해 이제 완벽하게 방관하는 입장에 불과하다. 

백지는 견주의 첫 여인이자, 잃을 수 밖에 없는 첫사랑이고 이몽학과는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구조를 이준익 감독은 이몽학과 황정학에게 첨예한 갈등을 밀어넣고, 견주를 이 둘의 중심에 밀어넣음으로서 보다 농밀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게다가 이몽학에게 견주의 아버지를 죽이게 함으로서 황정학과의 접합점을 만들어 냄으로서, 황정학과 견주의 만남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백지 또한 마찬가지.

이몽학과 백지를 연인으로 만듦으로서, 이몽학 - 황정학+견주 - 백지 라는 안정적인 긴장의 삼각관계를 이끌어낸다.

이 안정적인 삼각관계 속에서 그의 이야기는 생동감과 함께 설득력을 얻어낸다.

 

 

이런 시대극을 보면 항상 이상한 감정이 들끓는다.

이 시대보다 단순한 사고를 필요로 했지만, 보다 큰 열정이 필요했던 시대.

삶에도, 사랑에도 '열정' 만이 가장 큰 가치였던 시대.

하지만, 아무리 열정이 크고 강렬해도, '신분' 이라는 벽 앞에서는 벌레보다, 먼지보다 못해지던 시대.

 

이몽학과 황정학이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사가 떠오른다.

 

이: 우리가 같이 살자고 꾼 꿈이... 이 길 아니오?

황: 아, 아니여, 아니여. 이건 다 같이 죽는 꿈이여...

이: 난 이 꿈을 깨고 싶지 않고.

 

 

그리고, 이몽학과 백지가 나누는 마지막 대사 역시 떠오른다.

 

이: 이건 꿈이지??

백: 당신 꿈안에는 내가 없는거지? 내 꿈안엔 당신이 있는데.

이: 미...미안해 백지야...

백: 꿈에서 만나, 꿈에서 만나. 꿈속에서 만나.

 

 

이 작품안에서 이몽학은 '꿈' 을 대표한다.

백지는 견주에게 '넌 이몽학에게 안되' 라고 이야기한다.

격분해서 왜 자신이 이몽학에게 안되냐고 묻는 견주에게 백지는 '넌 꿈이 없잖아.' 라고 말한다.

이몽학의 '꿈' 은 세상을 바꾸고픈 열정이다. 혹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기도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꿈은 Dream 이자, Hope 이다.

 

 

원작에서 '달' 은 진정한 자유, 진정한 자아였다.

그리고, 그 달을 가리는 구름은 오기와 자존심이었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며, 항아리 안에 가두는 것들.

자존심. 오기.

원작에서의 견주는 자존심을 산산히 깨뜨리며 스스로가 작은 존재임을. 약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기에, 더 좁고 작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두고 있었던 스스로를 깨닫는다.

신분제 사회속에서 서자로 태어난 설움. 따돌림당하며 살아왔던 수많은 날들은 그에게 어줍잖은 자존심과, 쓸데없는 오기만으로 길러주었고, 그것들은 스스로를 가두는 좁디좁은 항아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영화에서의 달은 무엇이고, 구름은 무엇일까?

영화에서의 달은 '삶' 이다.

그리고 '구름' 은 헛된 욕망으로 물든 잘못된 꿈이다.

 

이몽학은 구름도, 달도 아니었다.

잘못된 꿈을 쫓아간 가여운 사내였다.

 

문득.

나는 달인가, 구름인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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