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disc)
이준익 감독, 백성현 외 출연 / 프리지엠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때는 조선시대 선조임금 시대.

조선조를 통틀어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능한 임금인 선조의 시대는 당쟁이 가장 극심했던 시절로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시절의 당쟁은 얼마나 심했나면, 지금의 여야갈등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어떤것도 양보하지 않고 서로를 반대하며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인 출신이었던 정여립의 사건이 발발한다.

지방에서 '대동계' 를 조직해 무술훈련을 시키던 정여립은 서울로 침범하여 한다는 고발을 당해, 관련자들이 체포 당하자 도망을 쳤으나, 관군에 포위당하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건을 이용해 실세를 잡으려는 서인들은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동인들을 관련자로 몰아 마구잡이로 역모로 몰아부쳤고, 사건의 진위와 관계없이 수많은 동인 출신 실세들이 처형당하거나 유배당했다.

 

이 영화는 바로 이시기.

정여립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동계의 일원이었던 '이몽학'과 봉사인 '황정학' 의 갈등이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이다.

정여립이 죽자 황정학은 대동계를 해체시킬것을 주장하며, 조직을 떠나지만, 이몽학은 조직을 존속시키며 다음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갈등속에 이몽학에게 아버지를 잃은 서자 '견주' 와 이몽학의 연인인 기생 '백지' 가 얽히게 된다.

 

 

 

이 작품은 본디 동일한 제목의 만화책이 원작이다.

한국 만화계의 뛰어난 작가들 중 한분이신 박흥용 선생의 원작 만화책은 주인공 '견주' 가 혼란한 시대속에서 스승을 만나고, 검을 배우고, 여자를 품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 즉,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절묘한 호흡으로 그려낸 명작중의 명작이다.

 

하지만, 영화는 완벽하게 다른 작품으로 보는게 옳을 것 같다.

'원작' 이라고는 하지만, 영화와 책이 품고있는 메시지와 그 전달 방법은 완벽하게 다르다.

캐릭터와 시대배경, 그리고 제목을 빼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캐릭터도 이름이나 배경만이 같을뿐, 그 개성이나 특징은 모두 다르다.

 

애초에 비교할래야 비교할 수가 없다.

 

확실히, 이준익 감독도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원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은 한 개인의 깨달음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조 자체가 단순하다.

견주와 황정학의 만남은 필연보다는 우연에 가깝고, 이몽학과의 관계는 스승인 황정학이 한때 연을 나눈 사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황정학은 이몽학에 대해 이제 완벽하게 방관하는 입장에 불과하다. 

백지는 견주의 첫 여인이자, 잃을 수 밖에 없는 첫사랑이고 이몽학과는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구조를 이준익 감독은 이몽학과 황정학에게 첨예한 갈등을 밀어넣고, 견주를 이 둘의 중심에 밀어넣음으로서 보다 농밀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게다가 이몽학에게 견주의 아버지를 죽이게 함으로서 황정학과의 접합점을 만들어 냄으로서, 황정학과 견주의 만남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백지 또한 마찬가지.

이몽학과 백지를 연인으로 만듦으로서, 이몽학 - 황정학+견주 - 백지 라는 안정적인 긴장의 삼각관계를 이끌어낸다.

이 안정적인 삼각관계 속에서 그의 이야기는 생동감과 함께 설득력을 얻어낸다.

 

 

이런 시대극을 보면 항상 이상한 감정이 들끓는다.

이 시대보다 단순한 사고를 필요로 했지만, 보다 큰 열정이 필요했던 시대.

삶에도, 사랑에도 '열정' 만이 가장 큰 가치였던 시대.

하지만, 아무리 열정이 크고 강렬해도, '신분' 이라는 벽 앞에서는 벌레보다, 먼지보다 못해지던 시대.

 

이몽학과 황정학이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사가 떠오른다.

 

이: 우리가 같이 살자고 꾼 꿈이... 이 길 아니오?

황: 아, 아니여, 아니여. 이건 다 같이 죽는 꿈이여...

이: 난 이 꿈을 깨고 싶지 않고.

 

 

그리고, 이몽학과 백지가 나누는 마지막 대사 역시 떠오른다.

 

이: 이건 꿈이지??

백: 당신 꿈안에는 내가 없는거지? 내 꿈안엔 당신이 있는데.

이: 미...미안해 백지야...

백: 꿈에서 만나, 꿈에서 만나. 꿈속에서 만나.

 

 

이 작품안에서 이몽학은 '꿈' 을 대표한다.

백지는 견주에게 '넌 이몽학에게 안되' 라고 이야기한다.

격분해서 왜 자신이 이몽학에게 안되냐고 묻는 견주에게 백지는 '넌 꿈이 없잖아.' 라고 말한다.

이몽학의 '꿈' 은 세상을 바꾸고픈 열정이다. 혹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기도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꿈은 Dream 이자, Hope 이다.

 

 

원작에서 '달' 은 진정한 자유, 진정한 자아였다.

그리고, 그 달을 가리는 구름은 오기와 자존심이었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며, 항아리 안에 가두는 것들.

자존심. 오기.

원작에서의 견주는 자존심을 산산히 깨뜨리며 스스로가 작은 존재임을. 약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기에, 더 좁고 작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두고 있었던 스스로를 깨닫는다.

신분제 사회속에서 서자로 태어난 설움. 따돌림당하며 살아왔던 수많은 날들은 그에게 어줍잖은 자존심과, 쓸데없는 오기만으로 길러주었고, 그것들은 스스로를 가두는 좁디좁은 항아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영화에서의 달은 무엇이고, 구름은 무엇일까?

영화에서의 달은 '삶' 이다.

그리고 '구름' 은 헛된 욕망으로 물든 잘못된 꿈이다.

 

이몽학은 구름도, 달도 아니었다.

잘못된 꿈을 쫓아간 가여운 사내였다.

 

문득.

나는 달인가, 구름인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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