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와 앤 -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 보름달문고 89
어윤정 지음, 해마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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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잃어가고 있는 감정과 인간성(!)을 로봇에게서 찾게된다는 설정을 꽤 많이 본 것 같다. 그때마다 좀 혼란스럽기는 하다. 과학이 발달하면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기도 하고, 그것 자체가 문제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다. 이런 의문과는 별개로, 이야기에 빠져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로봇을 애틋해하고 있는 나를....

표지를 보면 바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도 로봇이 나온다. ‘리보’가 로봇이다. 앗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이라는 부제가 있네. 그렇다면 ‘앤’도 로봇이다. 도서관에 왜 아무도 오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가 겪었던 지난 3년간을 표현한 것이다. 드디어 이런 작품이 나왔구나.

“안녕하세요! 즐거움과 안전을 책임지는 여러분의 친구, 리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리보는 이렇게 안내와 도움을 맡은 도서관의 로봇이다. 사람의 감정을 읽고 소통하면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강력한 감정이 포착됐다. 감정 센서에 ‘즐거움’이라는 결과가 뜨면서 왼쪽 가슴에 진동이 울렸다. 지르르, 지르르 춤을 추는 것처럼.』 (13쪽)
이렇게 리보는 감정을 학습해간다.

평화롭던 도서관에 어느날 비상벨이 울리고 사람들이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그리고 흰 옷으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이 들어와 호스로 무엇인가를 뿌려댔다. 비상사태이자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사태,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에 대한 방역을 하는 장면이다. 도서관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로봇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고 리보는 전원이 켜진 채 혼자 남겨졌다. 휴식과 충전을 하던 곳은 막혀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로비 중앙으로 돌아와서 현관문을 바라보고 섰다. 늦은 밤까지 전원이 켜져있는 게 처음이라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우두커니 서서 초록색 비상구 불빛을 쳐다봤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다.』 (24쪽)
아, 이 책의 화자는 리보다. 로봇이 화자인 것도 특별한 점이다. 서술하기 쉽지 않으셨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다음날 아침 리보는 업무 시작을 했으나 도서관에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리보는 어린이 자료실에 있는 이야기 로봇 앤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한다. 초록지붕 집에 살고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앤은 바로 그 ‘앤’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감정표현을 많이 하고 감성적인 반응이 돋보이는 로봇이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두 로봇만이 도서관을 지키며 이런저런 소통을 나눈다.

오늘도 지인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처럼 코로나는 아직도 위력을 떨치는 중이다. 하지만 방역지침은 점차 완화되고 있고, 새학기에 수업은 정상적인 대면수업으로 진행될 것이다. 3년을 겪고 나서야 이것이 가능했다. 모두가 처음이던 때,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고, 확진자의 동선이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나도 그렇게 될까봐 어떤 모임에도 갈 수 없었다. 얼굴도 못본 아이들과 원격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2년차때부터는 그나마 줌으로 얼굴이라도 보고 목소리라도 들었지만 첫해에는 기껏 힘들게 수업을 만들어 올려도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힘들었다. 심연에 빠진 아이들을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부모님의 눈물에 무력감이 더해졌다.

그렇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한편으로는 좋은 점도 있었다. 회식이 없어진 점, 용건 없는 친목모임이 대폭 줄어든 점은 에너지가 부족하고 혼자있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지 오래도록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좀 지나서야 깨달았다.

남겨진 로봇들을 걱정하는 아이가 도서관 밖에서 리보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리보는 새로운 감정을 학습한다.
“앤, 나에게 그리움이란 감정이 추가됐어.”
“오오! 그리움은 슬프고도 아름다워. 그리움은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거든. 끝낼 수 없는 마음이거든.”
그리고 리보는 앤의 이 말을 깊이 저장해 두었다.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는 재난.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한다.”
바이러스보다도 더 큰 재난은 우리들 사이의 단절이었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나는 평소에 ‘소통의 결핍도 문제지만 과잉 소통도 문제’라고 생각하곤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회식이 길어지면 너무나 피곤하고, 별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친목모임을 오래 하느니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좋다. 아이들도 너무 휩쓸려 몰려 다니지 말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를 두려워하면 무리에 휩쓸리고,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의미없는 신체접촉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내가 좀 인정머리가 없어.... 아이들한테 신체접촉에 대한 주의를 많이 준다. 괜히 툭툭 치고, 건드리고 뒤엉키고 뒹굴고 하는 것을 방치하면 금세 엉망진창이 된다. 이런 면에서 깔끔한 매너를 가르치고 싶다. 그게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겠지.) 이런 나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고 나는 확신하지만, 인간에게 홀로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단절이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홀로인 순간에도 연결에의 확신은 필요하다.

“괜찮아?”라고 나를 확인하는 목소리,
내가 꺼져갈 때 나를 향해 달려오는 발소리,
이게 없다면 내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장 큰 재난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두 로봇과 아이를 통해서.

이야기는 시대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니 우리가 겪은 이 일들이 앞으로 많은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할 것이다. 그중에서 일찍 나온 편인 이 책이 차지하는 무게는 상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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