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우리는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문경민 지음, 이소영 그림 / 우리학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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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청소년소설 훌훌을 읽고 너무 좋아서 이 작가님의 동화를 다 찾아 읽었다. 또 한권의 동화가 나온 것을 보니 너무 반갑다. 이 책도 역시 좋았다. 어린이와 청소년기를 잇는 시기의 책으로 권할 만하다. 주인공들이 열세 살이니 말이다. 3년 전 6학년을 맡았을 때 코로나 첫해라서 1년 내내 거의 원격수업만 하느라 온작품읽기를 제대로 못했던 게 아쉬웠는데, 만약 그 아이들과 다시 함께한다면 이 책을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그 해 6학년, 아이들마다 힘들었다. 얼굴도 못 본 아이들과 연락해야 하는 나도 힘들었고, 멀리서도 힘든 게 느껴지는 아이들의 부모님께 연락하면 부모님 역시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힘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혼자만의 벽에 갇혀 신음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과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 나도 힘을 내보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루미와 보리는 유치원 때부터 단짝이고 부모님들도 서로 알고 지낸다. 특히 아빠들이 같은 회사에 다닌다. 그러다 같은 위기를 맞았다. 회사는 위기를 인력을 정리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고, 두 분 다 희망퇴직명단에 올랐다. 두 사람의 대응은 달랐다. 루미 아빠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길을 찾으려 하지만 보리 아빠는 끝까지 버티려 한다. 힘든 와중에 보리 엄마와도 싸우고, 멀리 발령난 김에 아예 집을 나가버리셨다. 집안에는 무거운 어둠이 깔렸다.

 

루미네도 상황이 좋을 리는 없다. 아빠는 재취업을 위해 전기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만도 힘든데 루미 동생 쌍둥이들은 아직 아가고, 엄마는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중.... 아빠의 초췌한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는데, 그래도 보리네와 같은 어둠은 없다. 힘들긴 하지만 간간이 웃음도 있다. 근데 알고보니 이 가족엔 엄청난 시련이 이미 있었네! 쌍둥이 엄마는 루미 새엄마다. 친엄마는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몇 년 전 돌아가셨다. 겨우겨우 다시 찾은 행복도 위태위태하지만 웃으면서 버텨간다.

 

어둠에 침잠한 보리의 눈에는 이런 것조차 공평하지 않게 보인다. 루미가 부럽다 못해 밉다. 때마침 의문의 전학생 세희가 보리 반에 들어왔고, 친구 구도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보리는 한없이 변해간다. 그런데 보리가 모든 것을 깨닫는 반전.... 작가님의 서사 능력과 필력이 대단하시다는 걸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숨에 읽게 되었다.

 

작가님이 세희를 버리지 않을 줄 알았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잖아, 어쩔 수 없었잖아, 라고 감싸실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버렸다는 표현은 좀 심하지만 다른 적절한 말이 생각이 안남) 아닌 건 아니라고, 힘든 건 이해하나 모든 걸 감싸줄 순 없다고 엄격하게 말해 주시는 것 같았다. 결말에 좀 놀라면서도 나는 이런 작가의 가치관에 완전 동감했다.

 

나도 아닌 건 좀 아니라고 말하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때 주변 눈치를 보게 된다. 내가 이해심이 부족하고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함부로 재단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공감해주고 도닥여주면 스스로 깨닫고 벗어나는 거지. 꼰대질은 금물이야. 요즘의 대세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런 무한공감주의가 싫다. 50대가 되도록 살아보니, 정색을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면 한없이 질질 끌려다닌다. 그러면서 핑계와 악행은 날개를 단다.

너 힘들지? 다들 그래. 안 힘든 사람 없어.” 이건 좀 잔인한 위로라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오죽 힘들면 그랬겠니. 그래 괜찮아. 다 어른들 죄야. 너는 잘못 없어.” 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도 덜 살아봐서 그런 걸까? 60대가 되면 또 달라질까? 확실한 것은 망가지고 삐뚤어지는 데는 핑계가 없다는 것이다. 특수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의 선택 지점이 전무하지 않다. 루미와 보리처럼. 고개를 들고, 멋진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멋져! 엄마 박수를 물개박수로 짝짝짝 보내주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무리 속상해도 너의 인생을 망가뜨리지 말고 세우라고. 나쁜 마음을 경계하고 양심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라고. 거기서 지면 핑계댈 수 없다고! 인정머리 없다고 나를 욕해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작가님이 나와 똑같은 생각에서 쓰신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 작품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도 힘들어하는 거의 모든 열세 살들, 앞으로 수많은 유혹과 시련 앞에 놓일 그들을 응원한다. 멋지게 가! 그럴 수 있어! 꼭 그래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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