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형태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88
오나리 유코 지음, 허은 옮김 / 봄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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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에서 예전과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말의 힘'이라든지 '말의 영향'등의 주제를 통해 '말하는 태도'를 따로 다루는 단원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옛날에야 언어폭력이란 말도 거의 쓰지 않았고 언어 태도를 국어수업에서 따로 다룰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저학년부터 <고운 말을 해요>, <다른 사람을 생각해요>등의 제목으로 언어예절을 다루는 단원이 있다. 필요성이 부각되었기에 더 강조된 단원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의 감수성은 민감해진 데 비해 언어의 폭력성은 전혀 줄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말로 인한 상처와 갈등은 더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몇권의 책을 챙겨둔 게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이라든가 <말풍선 왕국에 놀러 와>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같은 책들이다. 오늘 하나를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주제로 이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매우 아름답고 감각적인 책이어서 더 귀하게 느껴진다.

유아, 어린이가 읽을 책인데 제목을 『말의 형태』라고 한 것이 적절할까 생각했다. ‘형태’라는 말이 너무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져서다. ‘모양’ 정도로 하면 그래도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하지만 번역가나 편집인들이 내가 한 고민을 안했을 리는 없으니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형태와 무형태를 대조해보기 위함인가? 어쨌든 읽어줄 때 “형태가 뭐예요?” 하면 “응, 모양이랑 같은 말이야.”라고 답해주면 될 것 같다.

작가는 상상한다. 말에 형태가 있다면 어떨까?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만약
말이 눈에 보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어지는 상상은 참 감각적이었다. 그 장면이 연상되기도, 촉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아름다운 말은 꽃이 아닐까.
형형색색 꽃잎이 되어
입술에서 팔랑팔랑 떨어져 내릴 거야.”
이와 같이 문장 자체도 감각적인데, 물을 많이 써서 번짐효과를 사용한 수채화 또한 느낌이 뚝뚝 떨어졌다.

가장 느낌이 강렬한 상상은 이런 것이다.
“누군가를 상처 주는 말이
못처럼 생겼다면 어떨까.
말할 때마다 뾰족한 못이
입에서 나가 상대방에게 꽂히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
그렇다. 정말 저렇다면 우리가 하는 말은 달라질 수 있겠지.

그 외에도 작가가 만든 ‘형태’는 정말 그 말의 내용과 잘 어울려서,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감상하기에 참 좋은 책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아이들에게서 많은 생각을 끌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수많은 말들이 형태를 갖고 있다면, 그건 어떤 모양일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이 책처럼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겠다. 합해서 우리반만의 <말의 형태> 책을 만들 수도 있겠다. 아마도 저학년일수록 기발한 발상이 많이 들어가 있을 거라 예상한다.

그려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왜 이 말에 이 그림을 그렸어?" 하고 물어본다면 아이들의 경험, 그로인해 형성된 생각들까지도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끼리도 서로 공감하고 남의 생각을 통해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중반부를 넘어가면 이런 질문도 나온다.
"말이 보이지 않아서
좋은 점은 무엇일까.
말이 눈에 보여서
기쁜 점은 무엇일까."
말의 모습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어떤 것을 고르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보이지 않는 걸 고르겠다.
당연히........?
내 말이 갖고 있는 모양, 말 너머에 존재하는 그 실체. 그건 꺼내놓기 어려울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좋은 모양일 때도 없는 건 아니겠지만.

단순히 '고운 말을 써요' '배려하며 말해요'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상상과 감각을 동원하여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공부가 훨씬 예술적이고 오래 남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소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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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회장 마루비 어린이 문학 1
최은영 지음, 이갑규 그림 / 마루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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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이건 주제가 담기기 마련이고 그 주제는 교훈의 형태일 때도 많은데, 아이들 책을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읽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주제에는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고 그게 교훈의 느낌을 띠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 그냥 입맛 짭짭 다시게 재밌다가 훅 들어오는게 좋다. 이 책처럼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직진하는 책은 그냥 아 그렇구나 하게된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나타냈나, 이게 아이들에게 어떤 때에 필요할까, 읽어주면 유용할까, 어떤 활동을 하면 효과적일까 그런 계산을 해보고 필요에 따라 챙겨두든 잊어버리든 선택하는 것이다. 이미 순수한 독자가 아닌 것이지.^^;;;

제목처럼 이 책이 '회장선거'에 대한 문제의식만을 다룬 책이라면 나는 이 책을 굳이 챙겨두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회장의 문제 행동을 나는 현장에서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 보면 "회장이 되면 교실에서 뭐든 내맘대로 할 수 있잖아!"라는 말을 들으시고 고민이 시작됐다고 하셨는데, 지역차와 개인차가 있는지 몰라도 우리 교실에 이런 회장은 없었다. 오히려 고학년이 될수록 아이들이 회장을 안하려고 한다든가, 회장에게 권한을 주기에는 자치활동의 기회가 너무 부족하고 역량도 미흡하다든가 등의 고민이 있었다. 한마디로 회장은 명예직? 그냥 인정받아서 선출되었다는 뿌듯함 외에 큰 의미가 없었다. 그 명예(?)조차도 귀찮아서 거부하는 아이들이 많다. 제한적인 경험이겠지만 아이들은 이제 점점 이런 공식적인 대표 자리에 관심이 적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에 반해 비공식적 리더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리더가 되기도 하고 리더를 따르기도 하고, 혼자만의 노선을 고수하기도 하고, 해체되었다 재조립되기도 하고 다양한 양상을 띤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어른이 될 때까지 무수히 있을 것이다. 사실 부모가 되는 것도 일종의 리더가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동아리 모임을 이끌 수도 있고 회사에서 팀을 이끌 수도 있다. 리더가 되기를 좋아하든 싫어하든(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함) 누구나 그 위치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주제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은 한번 짚어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뜻으로 본다면 이 책의 주제는 보편적으로 좀더 의미가 있게된다.

주인공 시우는 4학년이 되었다. 새 담임선생님은 특별한 회장선출 방식을 발표하셨다. 매주 월요일 아침 뒷문 앞자리에 앉는 사람이 그 주 회장을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회장은 그 주 학급규칙을 하나 정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우 위험한 여지를 주신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선생님이 계실 것 같지는 않은데... 첫 회장 좌석에 앉은 시우는 '놀이시간에 모두 보드게임을 한다'는 규칙을 세웠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집에 있는 보드게임을 바리바리 싸오고 배정표도 짤 정도로 애를 썼지만 매우 가성비가 떨어지는 고생이었고 마음만 상하게 되었다.

이어서 두번째 회장이 된 주혁이는 여유가 넘쳤다.
"이번주에는 회장 규칙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혁이는 환호를 받았고 "회장이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반 친구들 모두에게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이런 말로 시우를 죄인 만들어버렸다.

이 책의 논조는 시우의 반성을 촉구하는 느낌인데 그건 시우에게 너무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선생님이 설정 자체를 잘못하신 탓이고, 주혁이의 발언도 배려가 모자랐다. 그런데 계속 읽어보니 주혁이의 자유로운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한마디로 할땐 하고 놀 땐 노는 리더십이랄까?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운동시합 기회도 자주 만들어 아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한마디로 시우만 바보된 상황이다. 시우의 판단이 미숙했다 해도 이렇게 몰아가면 안된다. 시우는 오기로 다음 기회에 또 회장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대청소하는 규칙을 내놓았는데 이것도 여러가지 문제상황이 발생하여 시우는 한마디로 폭망했다. (아이고 답답해라 담임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시우네 집에 리더는 또 있었으니 시우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동네 방범대장이다. 책임감으로 무장하셨고 실제로 수고도 많이 하신다. 하지만 꽤 부딪히기도 하신다. (하필 주혁이 할머니랑) 그러다 할아버지 또한 시우처럼 낭패보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시우한테 이렇게 고백하신다.
"대장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동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무조건 윽박지르고, 꾸짖고, 신고하는 게 최고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런 일 저런 일 겪어보니 사람들 상황을 밝은 눈으로 헤아리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더라."

이렇게 가족단위 반성을 한 후에 시우는 월요일 또 아침 일찍 등교했다. 주혁이도. 회장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주혁이는 "너 회장 안시키고 싶어!"서 회장 좌석에 앉겠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같다? 저사람 되면 절대 안되니까 이사람 찍는다, 최선은 없으니 차악을 고른다, 뭐 이런....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나라에는 이토록 능력자가 많은데 왜 눈씻고 찾아봐도 괜찮은 리더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주혁이는 시우 생각을 듣고는 흔쾌히 회장 좌석을 양보했고, 시우는 순번을 정해서 회장을 하자는 제안을 하고는 회장 자리에서 내려온다. 집에 와보니 할아버지도 주혁이 할머니랑 화해를 하셨다는 아름다운 결말.

이 책을 내가 챙긴다면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 진정한 리더가 탄생되는 토양에 대해서도. 위에 잠깐 말했지만 우리나라에 인재는 많으나 리더는 부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리더 개인의 소양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리더는 함께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리더도 소비되고 버려지는 세상. 그럴수록 인재는 꽁꽁 숨고 껍데기들만 리더가 되어 버려지지 않으려 진흙탕 싸움을 하는게 아닐지. 요즘 핫한 30호 가수 이승윤씨의 노래를 찾아 듣다가 무릎을 친 곡이 있었는데 그 가사를 아래에 붙이고 마무리하겠다. 동화와 가요가 너무 격이 안맞아 좀 기괴한 리뷰가 되겠다. 요즘 내가 좀 의식의 흐름이 이상해.... 죄송.^^;;;

<영웅수집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아마도 나의 영웅이야
어쩌면 저렇게도 올곧고 위대한 건지
끝까지 나는 따를 거야
다만 내가 원할 말만 영원히 하면 돼
걸음걸이도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 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이제야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마지막 나의 영웅이야
원하지 않는대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시대가 원하고 있잖아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을 걸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일 거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우릴 위해서 부서진
영웅을 위해 묵념 한번 하고선
관짝을 뜯어서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다 완성이야
(전설이 탄생했단 걸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걸 너는 그냥
왕관을 쓰고나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될 거야)
아무런 의미 없는 널
완성 시켜 놓아 준 건
나니까 전리품은 전부 내 진열장에다
네 자리는 없어 너는 거기까지야
그러게 흠집 없이 완벽하지 그랬어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품격있는 리더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책을 읽고 성찰하는 것도 꽤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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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 년 내내 방학이에요! 꿈터 어린이 28
김경옥 지음, 최현묵 그림 / 꿈터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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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다른 환경의 주인공들로 아동인권을 다룬 책 2권

<우리는 일년 내내 방학이에요 / 김경옥 / 꿈터 / 2020>
<신나게 자유롭게 뻥! / 황선미 / 베틀북 / 2013>

이 책을 읽는데 같은 주제의 책이 떠올라 함께 적어보고자 한다.
두 책이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
먼저 대비되는 환경의 두 주인공 어린이들이 나온다는 점.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양 극단에서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쪽은 넉넉한 환경에서 풍요롭게 지내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공부압박에 눌려 고통스러워 하고, 한쪽은 공부 압박은 커녕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을 하느라 학교에 다닐 형편이 안되는 것이다.

<신나게 자유롭게 뻥!>은 아동노동의 현장이 좀더 심각하다. 배경은 파키스탄이고 하루종일 축구공을 꿰매느라 학교를 다니기는 커녕 건강마저 지키기 어려운 아이들의 현실을 볼 수 있다. 반대쪽 한국의 아이는 엄마의 공부압박에 대한 탈출구로 축구공을 사려고 돈을 모은다. 두 아이 사이에 축구공이 있으나 같은 축구공이라도 의미가 다르다.

<우리는 일년내내 방학이에요!>는 배경이 필리핀이다. 위 책과 다른 점은 두 주인공이 같은 공간적 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은 다르다. 시완이는 아빠의 파견근무를 따라가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 우타는 빈민가에 살며 길거리 연주로 먹고 사는 아이. <신나게...> 책처럼 시완이도 엄마가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우타는 돈을 버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일년내내 방학이라는 책의 제목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두 책 다 그럭저럭 읽을만 하지만 그렇게 아주 재밌지는 않다. 순수한 재미를 찾으려면 다른 책을 읽는게 낫다.^^;;; 그러나 주제와 관련하여 뭔가 생각해 보고 대화 나눌 소재로 삼으려면 권해주는 것을 추천한다. 아주 재밌지 않다는 거지 재미가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내용구조의 참신함과 완결성은 황선미 님 책이 돋보인다. 그런 면에선 정평이 난 대가시니까... 양쪽에서 맞춰 들어가는 퍼즐이 가운데서 딱 맞는 느낌. 근데 3년전 4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읽었는데 인기가 가장 없었다. 종류별, 주제별로 다양성을 맞추기 위해서 이 책을 넣었으나 아이들 마음을 두드리진 못한듯...

김경옥 님의 <일년내내 방학..> 책이 훨씬 더 쉽고 경쾌하다. 일단 분량이 더 적고(신나게...책이 4,5학년용이라면 일년내내... 책은 3,4학년용?) 두 아이가 친구가 되어 어울리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 아동노동의 강도와 참혹함도 <신나게..> 보다는 훨씬 약하다. 이 책은 그럼 <신나게...>보다는 인기를 끌까? 글쎄, 내가 보기엔 비슷할 것 같다.

영상으로 보든 책으로 보든, 직접 겪지 않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라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그렇다고 '어차피 몰라~' 하면서 아예 알려주지도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겠지. 그래서 딱히 인기는 없지만 이 책들을 리스트에 갖고는 있으려고 한다.

<일년내내 방학...> 책에서 시완이의 필리핀 영어선생님이 힘들어하는 시완이를 보며 안타까워서 한 말이 내겐 가장 기억에 남았다.
"공부는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는 거야." (43쪽)
행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닐 터, 또 행복인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기본 태도란 것도 있는 바, 아이들이 부지런히 배워야 하는 것은 맞다. 그걸 기쁘게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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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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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마지막으로 3주간의 방학을 마무리한다. 이것이 20편째 리뷰다. 거의 하루에 한편씩 쓴거 같다. 아이들 책이 대부분이었으니 쉬엄쉬엄 뒹굴면서 1년의 여독(?)을 다 푼 일상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이지만 텐션없는 작품이 매력없듯이 생활도 그런 거겠지. 이제 텐션을 채워야겠지. 아 넘 괴롭다. 하지만 살아가야 하느니라.

무심코 텐션이란 낱말을 썼는데, 생각해보니 이 책도 적절한 텐션으로 긴장감과 재미와 의미와 먹먹한 마음의 진동과 사색을 주는 작품이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비틀리고 지나친 텐션으로 일반취향을 가진 나같은 독자를 고문하는 책인가 했더니. 전혀 아니었네. 절제미가 가득한 작품이라고 할까.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반의 인기스타 발랄한 여학생.
그 사실을 우연히 알게된 존재감 없는 조용한 책벌레 남학생.
두 아이의 관계가 이야기의 주축이다. 새로울 것 없는, 아니 진부한 설정이다. 순정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아참, 순정만화 무시하단 큰코 다치는데.ㅎㅎ)

제목과 시한부를 연결하면 답이 나오는구나. 여학생은 췌장암(암이라는 표현은 없었던거 같은데 췌장의 병이라니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에 걸렸고 남은 삶이 1년 정도라고 한다. 여기에서 잠깐 의문, 암 중에서도 췌장암의 고통이 가장 심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시한부를 선고받을만큼 위중한데도 주인공이 병으로 고통받는 장면은 없다. 남은 삶의 버킷리스트를 이루려는 의욕은 좋지만 보통 허물어져가는 육신 때문에 그게 쉽지 않은 법인데 이 책에선 그런 낌새가 전혀 없다. 엄청 잘 먹고, 잘 돌아다니고, 심지어 술을 마시고, 입원을 했을 때도 병색이 없을 만큼. 이런 부분에서 작가가 병에 대한 취재를 제대로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러면 순정만화가 되는 것이다. (앗, 또 순정만화 무시^^;;;)

그러나 비록 병증에 대한 묘사가 현실과 다르다해도 그쪽으로는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 다른 쪽의 묘사가 훌륭했다. 바로 그 아이들의 대화와 심리 묘사다.

그들은 우연히 가까워졌다. 아니 그 우연을 기회로 여학생이 남학생을 '찜했다'고 표현해도 될까. 남학생은 거기에 순순히 따랐다. 그도 그럴것이 죽은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선택! 이었다고 여학생은 말한다. 남학생도 나중에는 수긍한다. 궤변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역시 설득되었다.

젊은이들 특유의 쿨하고 경쾌한 대사들도 좋았다. 번역을 잘하신 탓인지 외국어였다고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여학생은 남학생을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라는 긴 호칭으로 부른다.
"....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도서실 정리 같은 것에 써도 괜찮아?"
"글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를테면 비밀을 알고있는 클래스메이트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
"..... 없지는 않다, 라고 할까."
"근데 지금 그걸 안하고 있잖아. 너나 나나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너나 나나 다를 거 없어, 틀림없이. 하루의 가치는 전부 똑같은 거라서 무엇을 했느냐의 차이 같은 걸로 나의 오늘의 가치는 바뀌지 않아. 나는 오늘, 즐거웠어."

이렇게 여학생은 시한부의 하루하루를 평범한 일상으로, 가끔 원하던 이벤트(여행이나 특별한 곳 방문, 맛있는거 먹으러 가기 등)로 채워간다. 되도록 모든 일상을 남학생과 함께 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타인이며, 동시에 그 사실을 알고도 호들갑떨지 않고 무심히 일상을 공유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둘 사이에 있었던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들, 그리고 둘을 이어주었던 여학생의 투병일지(공병일기)의 내용, 에필로그와 같은 남은 이의 후일담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감정을 터뜨리지 않는 두 사람의 배려와 신중함이 좋았다. 애초부터 연애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감정이었을리는 없지 않나. 그 감정을 소중히 다루고 조심하는 게 내 취향으로는 좋았다.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알고 기뻐하는 마음이 그 어떤 사랑보다 내 마음에 다가왔다. 수준높은 책에 이런 막말 죄송한데,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감정은 아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오히려 나에게 정직한 일이다. 감정이 날 속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여학생의 제의로 그들은 진실게임을 하곤 했는데 마지막 질문에 여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너에게, 산다는 것은 뭐야?"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 (222쪽)
이 책의 화자는 남학생이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변화한 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나를 내려다보는 나에게 말해주리라. 나는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나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은 것은." (241쪽)

남학생만 여학생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공병일기에 적힌 유서에서 여학생은 이렇게 고백한다.
"너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너 자신을 응시하면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어.
나도 나 자신만의 매력을 갖고 싶어.
네가 진심으로 날 걱정해준 날,
친구라느니 연인이라느니 그런 관계를 필요로하지 않는 네가 나를 선택해준 거잖아.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으로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걸 알았어." (290쪽)

여학생이 떠난 후, 그녀의 묘 앞에서 남학생은 또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는 부족했어.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주기 위해 살아온 것이겠지.
그러니까 네가 없는 나는 혼자 일어서지 않으면 안 돼.
그것이 둘이어서 마침내 하나였던 우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316쪽)

떼어내서 적어보니 읽으면서 든 느낌이 하나도 안 든다. 리뷰란 어쩌면 단면을 만드는 작업인 것 같다.
이제 내 자식들보다 더 어린 10대 학생들에게서 삶의 진지함을 배우다니.... 아마도 나는 책을 더 읽어봐야 하고 더 살아(?) 봐야 하는 것 같다.ㅎㅎㅎ

어차피 다 알려진 내용이니 중요한 반전도 이야기하자면, 여학생은 그 시한부 인생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참혹한 사고로. 그렇게 원망스러운 결말인데도 표지의 벚꽃은 너무나 은은하고 따뜻하고, 슬픔을 다 토해낸 사람들은 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구나. 인생이 어떻구나 하는 것은 평생 배워야 하나보다.

집에 이 작가의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오늘이 새울 수 있는 마지막 밤인데 읽을까말까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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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1-23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니메이션도 꼭 보세요. 잘만들었습니다.🙂

기진맥진 2021-01-25 10:37   좋아요 0 | URL
네, 애니도 영화도 많은 분들이 보시고 추천하시더라구요. 시간날 때 꼭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팽이 도둑 - 제9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62
서정오 지음, 김효연 그림 / 샘터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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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작인데 작가 이름이 서정오...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서정오 님은 옛이야기 하면 대표로 꼽는 중견 작가이신데? 엇, 프로필을 보니 그분이 맞다. 왜 학교 백일장에서 선생님이 상타신 느낌이 들지?ㅎㅎ 어쨌든 반가웠다. 옛이야기가 아닌 서정오 님의 창작동화.

옛이야기 살려쓰기를 오래 해오신 탓인지 입말을 살려 쓰는 글투가 창작동화에도 적용되었다. 그런데 옛이야기의 입말체는 어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말 아닌가? 동화는 아이가 화자고. 그러다보니 글투와 화자의 연령이 조화가 안되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살짝 드는 곳도 있었다. 세 편의 이야기 중 첫번째, 세번째는 괜찮은데 두번째 이야기 [누구일까?]가 특히 그랬다. 두번째 이야기는 화자가 여자 아이라서? 그렇다면 나의 편견이 반영되었다는 뜻인데.... 어쨌든 그부분에서 아이가 화자가 아니고 어른이 아이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느낌이 약간 들었다.
"아버지 친구분 가운데 시골 내려가 사는 이가 있는데, 그이가 자꾸 권한 까닭이랍니다." (53쪽)
"그러면서 아닌 척 하다니, 어른들은 좀 의뭉스러운 데가 있습니다." (54쪽)
이런 부분들이 좀 거슬렸다.

이상은 괜한 타박일수도 있다. 이야기가 좋은가 그게 문제지. 이야기는 좋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세 편의 이야기는 양지마을이라는 곳에서 사는 세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아이를 찾아보기 힘든 깊은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웬만한(?) 시골이다. 전교생이 40여명이라고 하니 그래도 한 학년에 한반씩은 있겠다. 들고 나는 일이 별로 없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첫번째 이야기 [팽이 도둑]의 은호네는 도시에 살다 두 해 전에 내려온 가족이다. 그 집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집이다. 할아버진 은호에게 세상없이 좋은 분이었다. 늘 은호 편이었고 잘 놀아주셨으며 손재주가 좋아 장난감을 뚝딱 만들어 주셨다. 이 대목 읽으며 아버님과 우리 아들 관계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버님이 누가 버린 스케이트 주워다가 날 떼어 판자에 붙여서 만들어주신 썰매를 가지고 우리 아들은 얼음판을 휩쓸었더랬지... 그런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은호는 할아버지의 유품인 팽이를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그 팽이를 어떻게 만든 건지,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에서 자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그런데, 도랑가에 두고 잠시 엿장수 구경을 하고 온 사이에 그 소중한 팽이가 사라졌다. 놀라 찾아다니던 은호가 며칠 후 동네 형이 갖고 노는 장면을 포착했지만 형은 아니라고 딱 잡아뗀다. 어른들께 이 일을 이야기해 보지만, 누구도 은호의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팽이는 하나밖에 없는, 지금은 살아계시지 않은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거라 소중한 것인데!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증거도 없이 함부로 그런 말 하는 것 아니다."
"아무데나 둔 게 잘못이야."
"요즘 팽이 하나에 얼마나 하냐?"
이러는 걸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선생님은, 경찰서에 있던 어른들은 더하지 않았겠는가? 은호의 낙심은 깊어져 간다.

이때, 나선 이들은 동네 친구들이었다. 혼자는 상대할 수 없는 형에게 모두가 우르르 몰려가 따박따박 따지고 결국 팽이를 받아낸다.
"마침내 팽이가 내 손에 다시 돌아온 순간이었습니다. 2월 6일 목요일 오전 10시 15분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입니다."

때로 아이에게 소중한 것은 어른들에게 가 닿지 못한다. 이런 경험이 어느 아이에게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아이들과 읽는다면 그 경험을 꼭 물어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어른들은 이미 지나버려서 알 수 없는 것, 그것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아이들이 이 책에서처럼 너희들끼리 문제를 좀 해결해보면 안될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안되는 건 아이들의 해결력이 떨어져서일까? 해결도 하기 전에 어른들이 끼어들어서일까? 아무래도 후자겠지?ㅠㅠ

두번째 이야기 [누구일까?]는 한달 전에 이사온 윤수의 이야기다. 현장학습 가서 깨달은 윤수의 특기는 바로 도끼질! 남학생들도 선생님도 못하는데 윤수가 쩍 하고 두동강내는 장면 묘사는 아주 생생하고 시원하다. 시골로 와서 윤수는 원하던 도끼질을 맘껏 해보게 되는가? 생각과는 달리 아빠의 반대가 심해서 산비탈 공터에서 나무를 주워 몰래 취미생활(?)을 하던 윤수, 그곳에 또다른 누군가가 취미생활을 하러 온다는 걸 알게 되는데... 남학생인 그 아이의 취미생활은?ㅎㅎ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해서 이야기나눌 때 들려주면 아주 좋을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 [환한 날]은 다툼과 화해에 관한 이야기라 아주 훈훈하다. 다툼은 아이들이 아니라 할머니들 사이에서였다. 단짝이었던 현우 할머니와 지민이 할머니는 어느날 화투장 잘못 센 걸로 험한 소리를 몇마디씩 주고받다 오랜세월 우정에 와장창 금이 가버린다. 고민이 깊은 현우에게 지민이가 두번이나 아이디어를 내놓는데 그때마다 현우가
"이야, 진짜!"
이러면서 감탄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화해의 메신저가 된 두 아이. "온 세상이 환합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정말 환해지는 이야기다.

다투고 어색해지는 관계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메신저가 되겠다고 오지랖을 떨다 남의 관계를 더 망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 어긋났다고 그걸로 끝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적당한 오지랖도 자존심 적당히 굽히는 것도 다 필요한데.... 부디 모든 관계에 환한 빛이 쏟아지길.^^

서정오 작가님의 이 이야기들이 옛이야기처럼 입에 착착 감기면서 아이들의 내면에 힘을 주는 이야기들이면 좋겠다. 일단 한편씩 읽어주기로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싶다. 작가후기에서 서정오 작가님은 "아이들에게는 응원이요 어른들에게는 충고" 라고 했다. 이 책의 소재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진실은 사소한 것에도 들어있는 법이고 그걸 알아보는 건 아이들이지. 아이들이 가진 진실의 힘을 함께 응원해 보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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