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분 읽으니 생각난다. 예전에 처음 박상영 작가 단편 읽을 때 느꼈던, 내 속에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편함, 낯설음이.. 이성적으로는 이성간 연애나 동성간 연애나 같다고, 같은 사랑아니냐고 나에게 정보를 주입하지만, 게이 커플의 사랑에, 애정표현에, 애무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내 느낌까지 속이지는 못하겠더라. 이게 불편한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다. 폐미니즘도, 퀴어도 접해보지 않아서다. 그래서 결론은 자꾸 읽어야 한다. 당연하게 생각되도록. 지금은 박상영 작가 책 읽으면 ‘이 커플 너무 귀엽군’하는 생각^^
한편 시드니나 샌프란시스코 등 해외의 유명한 프라이드 행사에서는잘 다듬어지고 성적인 매력을 강조한 남성 신체의 노출과 전시를 쉽게 볼수 있다. 이러한 노출은 어떤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중도덕이나 ‘불편함‘이라는 감각에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 안에서 문화적으로 학습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등 이성 간의 애정표현, 사회가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여성의 신체노출, 미디어에서의 성적 묘사 등은 다수의 사람이 비교적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때로는적극적으로 수용되기도 한다. 비슷한 수준의 행위가 성소수자에 의해 표현될 때 느끼는 불편함은 상당 부분 규범적 이성애와 획일적인 성별이분법적 사고(애정표현은 이성 간에만 일어나야 한다‘ ‘남성은 남성다워야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 ‘남성 중심의 이성애적인 쾌락을 제공하는 신체에게만 노출을 허용할 수 있다‘ 등에서 벗어난 표현에 대한 낯섦과 충격에서 온다. - P262
또한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반대로 기존의 도덕관념이 과연 사회성원 모두에게 공정하게 존재해왔는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퍼레이드에서 동성끼리 손잡거나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등의 애정표현은 지금까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왔던 이런행위들이, 사실은 특정한 조건 —— 이성애 – 하에서만 허락되어 왔음을 을드러낸다. 이러한 모습은 성소수자에게는 평소에 가리고 있었던 자기다움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카타르시스적인 효과가 있고, 당사자가 아닌 앨라이에게도 당연시해왔던 기존의 성규범과 젠더규범을 거리를 두고 재고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만약 성소수자의 노출과 애정표현 같은 모습이 불편하다면, 그래서 표현을 막거나 음지로 돌려보내고 싶다면, 사실은 지금까지의 ‘편함‘ 이라는 것이 다수의 ‘편함‘을 위해 소수자의 권리나 실존을 희생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그런 사회는 과연 윤리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 P263
사회의 낙인과 차별이 두려워서, 스스로 벽장 속에 숨던 성소수자들이조롱과 차별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깥세상으로 나와 존재의 당당함을 알리는 일년에 한번의 기회, 그 기회조차 반대자들의 위협과 폭력, 공권력의 실망스러운 대처 속에 무산되려는 듯했다. 퀴어풍물패의 풍물소리에 맞추어, 굴다리 밑 어두운 공간에서 참여자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 - P275
이호림 일단 활동 차원에서는 법제도와 거버넌스를 둘러싼 현재의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돌파구를 찾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혐오·선동세력과 성소수자 인권, 이 대립구도와 프레임에 갇혀서 법·제도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변화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성소수자 의제를 마주할 때마다 반대세력의 존재를 먼저 의식하고, 성소수자 의제를 인권·시민권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예민한 사안으로만 취급하는 상황이 현재 성소수자 운동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해요.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운동의 전략이나 활동은 무엇인가를 함께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하나 있고요.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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