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멋진 선생님이 부모들이 많아지길!

커밍아웃을 하고 상대가 자신을 수용할 때의 안도감은 그 반대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의 두려움만큼이나 크다. 게다가 부모나 교사가 자신을 받아준다면 대단한 위로와 안심이 된다. 연우가 커밍아웃했을 때 선생님은이렇게 반응했다. 그냥 "말해줘서 고맙다"는 이 반응이 연우에게는 가장좋은 답변이라고 느껴졌다.

"선생님이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 고맙다 하는 반응이셨어요. 너같이나한테 먼저 밝혀주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 친구들을 위해서 도와줄수 있는 말, 멘트, 그런 것들을 선생님한테 먼저 알려줘라. 만약 그 친구가 힘든 상황이 됐는데, 나는 겪어보지 못했고 나는 그 입장에 서보지I 못했으니까 대신 네가 알려줘라. 이렇게 말해주셨어요." - P143

하지만 커밍아웃이 성소수자 당사자와 그 대상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인할 부분이 있다. 커밍아웃은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소통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커밍아웃의 순간은 당사자에겐 성소수자로서의 자신을 표현하는 시점이며, 상대방에겐 성소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깨닫고 표현하게 되는 순간이다. 일반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려는 당사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커밍아웃을 한 이후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지 자문하는 준비의 과정을 거치지만, 상대방에게는 커밍아웃이 일방적인 통보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커밍아웃의 과정에는 성소수자를 가족과 친구로 마주하게 되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친구나 상담가와 예행연습을 하고 편지를 쓰는 등 준비과정을 거치며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기도한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준비과정이 커밍아웃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겪는 것을 완화시킬 수 있다. - P157

자녀의 커밍아웃을 수용하는 과정은 애도의 과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있으며, 보통 커밍아웃 직후의 첫 일년을 가장 힘들어 한다. 많은 부모들이 이때 감정적으로 ‘거부‘를 표현하거나 신체적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해외의 한 연구는 자식이 성소수자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변하고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커밍아웃 이후의 풍경이 (지금의 한국과 유사한) 분노와 좌절의 눈물바다였다면, 최근 들어서는 초반에 가족구성원사이에서 한바탕 ‘소란‘을 경험하는 등 부정적인 양상이지만 점차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적응하고자 ‘협상‘하는 단계를 거쳐 가정 및 사회 속에서 성소수자 가족구성원이 정체성을 인정받으며 살 수 있도록 ‘균형‘을찾아가는 "수용의 과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자녀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사랑받고 보살핌받을 가치가 있다는 보편적인 전제하에, 성소수자의 부모에게 자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달하는교육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한편 최근 엄마와 사춘기 청소년 성소수자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엄마와의 긍정적인 관계가 건강한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시사하고 있다. - P162

그러나 부모가 내 자식이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벽장 안에 갇혀 있다면, 이는 성소수자 자녀에게 암묵적인 메시지로 해석될 수있다. "우리는 네가 성소수자여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 비밀로 하자". 어떠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도 ‘하지만‘ 이란 단어 이전의 이야기는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부모 역시 아이의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을 숨겨야하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자식의 커밍아웃을 온전히 받아들여 내 아이가 성소수자임을 부모가 커밍아웃하고아이에 대한 지지를 공표하는 일은 성소수자 당사자와 부모에게 진정한도전이자 마지막 관문이다. - P163

"내 아이가 단 한번도 부끄러워 본 적 없어요. 단 한순간도. 그러니까엄마들한테 커밍아웃할 때는 난 그렇게 이야기해요. 난 내 아이가 자랑스럽다고, 진심이기도 해요. 저는 아이한테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세상에 어떤 아이가 20대에 너만큼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기 삶에 대해 이렇게 고민하고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겠냐. 너는멋진 일을 해낸 사람이지, 모자란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너 스스로자부심을 가져라. 일반 아이들보다 네가 자부심이 없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네가 (…) 당당하게 살고 나서, 그 삶이 아름다웠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날이 분명히 올 거라고 엄마는 믿는다. 아이한테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날이 반드시 올 거다." (연구참여자 E) - P174

흔히 가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전형적인 이성애 핵가족이며, 이성간의 사랑이어야 행복하고, 이성 간의 결혼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완성되며, 위기의 순간에 나를 돌볼 사람은 그래도 내 자식이고 배우자라는 막연한 신념들과 연결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무수히 반복되는 사랑에 대한, 행복에 대한, 돌봄에 대한 이러한 감정구조는 ‘정상가족‘ 내부의 불평등한 경험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적인 삶의 시간을 연장하게 되는 원인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결혼 및 출산과 양육의 시기를 정하고 그러한기능의 총합으로서의 가족의 형태를 규정할 뿐 아니라 가족 단위로 개인의 생존을 도모하고 자립의 의무를 부과해왔다. 심지어 가정폭력의 상황에서도 ‘선 가정보호, 후 사회보장‘이라는 미명 아래 가족 내의 폭력을 용인하는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 P176

이렇듯 가족질서는 이상적인 가족의 상을 구상하는 것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이상적인 개인이 누구인지와 시민의 자격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토대가 된다. 가족은 단순히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가장 우선적인사회적 제도 a social institution 라는 점에서 다양한 가족구성권에 대한 요구는 사회제도에 대한 개입이며 이상적인 가족을 매개로 작동해온 생애정상성을 흔들고자 하는 저항의 과정이다. 그러한 반란들은 동질화된 삶의 양식을 반문하는 것이며, 동질화된 삶을 강제화는 사회의 공적 규범으로부터 이동하면서 생성되는 ‘나‘의 삶을 마주하는 것이다. - P1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