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평생에 걸친 젠더 추격전의 실상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이기도 하다. 생리 같은 것도 잘 알고 보면 다 이것의 일부이다. 하지만 그런 육체적이고 1차원적인 혈 그 자체를 떠나서, 젠더는 사람을 퍽 진절머리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나는 젠더에 너무 갇혀서 또는 갇히지 않아서 돌아버리곤 한다. 그리고 결국 그 돌아버림 자체가 나의 젠더임을 마지못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젠더가 지독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살짝 정신과도 소풍처럼 들러준다. 약도 고명처럼 곁들여본다. 스스로의 존재를, 젠더를 견디는 것은 이토록 인간의 생을 관통하는 고행인 것이다. - P180

우울증, 평생의 싸움이죠. 기억해둘 것은 우울증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거예요. 삶의 일부죠.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죠. 하지만 코로나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생각이 들 때는, 주변에 폐를 끼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진짜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엔 내가 쓸모없는 존재 같고, 민폐 그 자체인 것 같으니까요. 누구한테 전화하고 치대고, 이러기가 진짜 힘든 상태일 거거든요.. 그래도 주변에 얘길 해놓는 게 좋습니다. 당분간 내가 많이 힘들 거야, 심할 때 전화할게. 아니면 이럴 때는 병원에라도 가야해요. 응급상황이거든요. 우리가 갑자기 살찢어지면 응급실 가잖아요. 똑같습니다. 이럴때는 정기적으로 가는 상담 시간이 아니어도 응급이라 생각하고 가셔야 해요.

_<월간 이반지하> 4호 - P206

어쨌든 나는 진짜 그렇게 살고 있었다. 힘든 순간이 올 때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 전화하거나 불러낼 수 있는 친구들, 맛있는 음식, 확 떨치고 일어나는 요령, 좀더 객관적인 지표로 상황을 체크해보는 것 등등, 공짜로 얻어진 것 하나 없는 그 하나하나의 비법들을 나는 가지고 있더란 말이다. 하지만 모든 비법의 맹점은 비법을 행할 에너지가 남아 있을 거라는 전제 자체에 있다. 레시피가 소금을 한 꼬집 넣으라고 가르쳐는 줘도, 소금을 꼬집을 힘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는 레시피 어디에도 언급이 없는 것이다. - P208

‘저는 언제쯤 마음이 편해질 수있을까요?’

그런 때는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니만 그런 게 아닙니다.

전 인류가 불편한 마음으로 평생을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마음이 편한 상태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 짧은 행복들을 누리는것뿐입니다.
_<월간 이반지하> 8호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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