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애숙 옮김 / 삼천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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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노트>는 까다로운 텍스트이다. 무엇보다 1879년의 <류큐 처분>부터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의 최고의 격전이었던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과 1972년 <본토 복귀>에 이르는 오키나와의 현대사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아무리 지우려 해도 <본토> 출신이라는 숙명을 지울 수 없는 지식인 오에의 고뇌가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오키나와로 가는가"라는 내면의 목소리와, "무엇때문에 오키나와로 오는가"라는 현지의 거절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오에의 고뇌와 그 고뇌가 빚어내는 글의 <공백>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텍스트는 불완전한 넋두리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오에의 다른 소설 작품들에 비해, 그리고 잘 알려진 <히로시마노트>에 비해 이 책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은 전쟁과 전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억과 망각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가장 <성실한> 응답처럼 보인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메도르마 슌이 쓴 <오키나와>에 대한 작품들, 그리고 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을 함께 읽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나갔다가는 이 세상의 모든 텍스트들을 다 읽어내야 할 것이다..

<오키나와 노트>를 가장 잘 읽는 방식의 하나는 책을 읽고 난 후, 이 책에 실린 9개의 장의 제목 하나하나를 다시 반추해 보는 것이다..

1. 오키나와가 일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2. 씁쓸한 세상: 본토의 오키나와화 논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3. 오키나와인들의 이의신청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4. <본토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등..

만약 포스를 마구 잡고 글을 쓴다면, 아마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아니 망각에 관한 텍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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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망각은 가해자뿐만이 아니라, 피해자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1972년 미국과 일본의 밀약에 의한 오키나와 반환에 의해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 다시 귀속된 것은, 일본 본토의 일방향적인 의지(오키나와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아직 전후는 끝나지 않았다는, 당시 사토 수상의 연설이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의 결과만은 아니었음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본토 복귀를 열망하는 오키나와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들이 단순명쾌했을 것이라는 토도로프T. Todorov(그리고 徐京植)의 탄식처럼, 전후 오키나와가 본토 복귀를 강요하는 일본에 맞서 저항했다면, 모든 것들이 단순명쾌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오키나와는 1945철의 폭풍暴風이라는 악명에 걸맞게 태평양전쟁 최대의 격전지였고, 전 도민의 1/3이 전쟁에 連累되어 죽은(더구나 그 상당수가 아군인 일본군에 의해 강요된 집단자결에 의해 죽음을 당한) 비극적 역사를 가진 섬이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섬에서 미국에서 일본으로의 반환이 구체화되던 시점에 조국 복귀라는 슬로건 아래 본토로 편입되고자 하는 열망이 표출되었던 것이다. 본토의 방어를 위해 섬 전체를 무정하게 저버렸던 일본이라는 국가에 다시 귀속되고 싶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키나와인들의 열망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아래와 같은 자신은 오키나와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는 식의,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본토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거리낌 없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cf. 류큐국 사람들이여! 제군들의 나라는 원래 독립국이네. 도쿠가와 시대나 그 이전 당나라 때 사쓰마 번이나 중국에 공물을 바치고 겨우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번듯한 독립국이 아니었던가? 그러다가 메이지유신이라는 북새통에 일본의 오키나와 현민으로 영유된 것이다. 그리하여 좌천된 본토의 관료가 통치하고 일본의 赤子 현이 되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제 2차 세계대전 덕분에 제군들은 일본에서 벗어나 미군 통치 아래 들어가서는, 그 때문에 제군들은 미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제군들의 둘레나 길거리를 둘러봐라. 전부 자유다. 군사시설 말고는 본토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같은 영토이지만 조선은 독립했다. 타이완도 독립했다. 제군들의 류큐는 어째서 독립하지 않는가? (<류큐신보> 19694).

물론 전후 미군정에 의한 새로운 억압통치, 그리고 철수가 예정된 미군이 빠져나갔을 경우,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오키나와의 정치경제적 구조에서 오키나와인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는 본토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인간들은 배알도 없는 것이냐~”라고 쏘아버리기 전에, 그러한 냉혹한 현실 앞에서 조국 복귀를 슬로건으로 내걸 수밖에 없었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마음 한켠에 첩첩이 쌓인 분노와 슬픔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시대가 흘러,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잊혀진다고 해도, 그 망각은 또 다른 의미에서 억압된 것이고, 억압된 것은 언젠가 다시 현실의 세계로 귀환할 것이라는 믿음.

모호한 말로 막연한 표현으로 암시되고 있는 것의 실체가 분명해졌을 때, 경악과 분노가 있고 막다른 벽에 가로막혀 피를 흘리는 머리가 있을 뿐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만큼 인간을 광적인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는 것이 있을까? 광기에 빠지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은 분노를 내면에 응축시킨다. 그 응축된 분노는 쉽게 말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머리가 세게 부딪친 그 벽에, 머리를 부딪칠 일이 없는 타인에게 그 축적된 분노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조국으로 돌아가는 운동은 조국에 대한 반역 투쟁이어야 합니다. 구세대는 자신들을 일본인이라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가장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본인이라고 강하게 느낀 적도 없지만 강하게 의심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세대와 단절이 나타납니다. 나는 중학교 교사이지만, 내셔널리즘을 가지지 않는 것은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하는 󰡔기대하는 인간상󰡕의 생각에 반대합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천황을 경애하는 것이 나라를 … 라는 말이 결코 성립하지 않습니다. 나라의 실체는 국민이라고들 모두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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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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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의 사상으로 들어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책. 예전 이 책에 실린 <회색지대>와 <부끄러움>을 외국어로 읽으면서도 탄복했던 적이 있다. 정말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으면 모든 것이 단순명쾌했을까. 하지만 역시 증언은 남는다. 그리고 그 증언은 잔여(remnants)임을, 아감벤에게 계시한 이도 바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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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아카자와 시로 지음, 박화리 옮김 / 소명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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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라면 망설일 수 있지만 반값이라면. 일본어판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번역판이 나오면 살 수밖에 없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야스쿠니의 전후사가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에서 잘 정리되어 있으며 일본에서도 호평을 받은 책이다. 다카하시의 <야스쿠니문제>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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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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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쓴다..

3.11 이후 일본 사회의 변화에 대해 얼마 전 글 한 편을 쓰면서 샀던 책이다..

다른 텍스트들에 치여 그 당시엔 그냥 앞부분만 읽다가 놔둔 책인데, 다음 주 수업을 준비하면서 기차에서 다시 꺼내 읽었다.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프로 근성을 갖고 있는 기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신문>이 있다는 이유로 종종 착각에 빠지기는 하지만, 우리와 거의 비슷한 미디어 후진국 일본에는 그나마 이런 기자 출신 작가들이 집요한 탐사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1인 대안언론이라는 히로세 다카시도 그 대표적인 경우일 터.. 

3.11 이후 원전과 보상 문제를 둘러싼 대기업, 정치가, 관료들의 검은 커넥션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는 기본적으로 점수를 주고 싶다.. 3.11 초기에는 사회적 여론의 압력도 있고 해서, 보상 한도 설정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보신에 급급한 오만한 도쿄전력을 단죄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던 정책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역-코스로 전환하는 궤적.. 이번 파국을 계기로 원자력 마피아(원자력 무라)의 무소불위의 권력에 제동을 결려는 혁신관료들의 개혁 시도들이 무엇보다 자신들의 보신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들의 카르텔, 이들 기업들과 끈끈한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결코 자신의 관할 영역을 뺏기지 않으려는 경제산업성(구 통산성)의 관료들, 그리고 이들을 전면적으로 후원하는 일본 판매부수 1위의 요미우리, 그리고 산케이를 위시한 언론들의 연합전선 아래 하나 둘씩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은 결코 유쾌하지 못하다..

물론 비단 일본사회 뿐이랴.. 혁신적 개혁시도들의 꿈이 보수 카르텔에 의해 무너지는 현실은 전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며, 너무나 익숙한 정치 드라마의 플롯이기도 하다.. 2009년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주위의 일본 지인들은 이것이야말로 <선거혁명>이라고, 이제 자민당의 시대는 끝났다고 감개무량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3.11의 뒷수습에 발목이 잡힌 민주당은 3년 천하로 자민당에게 다시 권력을 내주고 말았고, 급기야 아베 정권같은 시대 착오적인 악령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이 2년만 늦게 정권을 잡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어차피 질 싸움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하다.. 실제로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허탈해진다.. 하지만 2009년 민주당은 55년 체제 이래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자민당의 아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한국 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볼 때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싸움에서 진보 세력은 어떻게 두번이나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물론 이들 역시 부패하고, "그 밥에 그 나물"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 이길 수도 있었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패배한 (민주당) 간 정권의 5개월여 간의 사투를 보면서,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 했던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깃드는 희망의 정체는 무엇일까.. 기차를 타고 오면서 계속 밥 딜런을 듣고 싶어졌다..

 

The Answer, my friend

Th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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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잔 - 그 존재와 의미, 문지스펙트럼 우리시대의 지성 5-009 (구) 문지 스펙트럼 9
칼 슈미트 지음, 김효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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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매혹을 주는 책. 나치 이력만 없었다면 정말 언젠가는 칼 슈미트의 세기가 되었을텐데. 요즘 좌파사상가들이 왜 그의 텍스트에 의존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그들은 대결하고 싶었지만, 그의 논리에 매혹되고 말았던 것. 현대 정치사상의 <절대반지>와 같은 그의 존재감을 느끼기 위한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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