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카눈이라는 관습법은 폭력의 연쇄를 부추기는 장치일까, 아니면 폭력의 연쇄를 깨기 위한 사람들의 지혜의 산물이었을까.

아니 폭력의 연쇄를 깨기 위한 장치였다 하더라도, 어느 우연한 계기로 폭력이 발생해버리고 말았다면-마치 베리샤가가 맞닥뜨려야 했던 불행한 사고/사건처럼-, 그 폭력이 야기시킨 끝없는 폭력의 연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뿌려진 피에 대한 정당한 가치/가격은 어떻게 정해질 수 있을까..

 

'문명'이라는 것이 발생하는 그 시작점부터, '사회'가 맞닥뜨려야 했던 이 난제를..

이스마일 카다레는 자신의 조국이기도 한 알바니아의 한 고원이라는 실험실을 통해 실로 음울하게-음울은 그의 첫 작품인 <죽은 군대의 장군>부터 그의 전매 특허이다- 기록하고 있다.

그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갑고 음울한 3월의 고원에는, 운명의 여신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쓰는 오레스테스를 도와주는 아테네 여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관습법의 무거운 그림자, 고독,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그 치명적인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 공포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이것이 '숭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조르그는 죽는다.. 그것은 예정된 운명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작가는 그조르그가 살 수 있는 단 1%의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분쟁해결사인 알리 비낙을 따라다니는 어느 (전직) 의사의 말처럼 "피는 상품으로 변질됐다"는 추문을 퍼뜨리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역자의 말처럼 피에는 피라는 법칙은 누구의 피도 등가로 취급되기에 어느 헌법 체계보다 '민주적'이고 피를 일단 잃으면 회수되지 않는 법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유혈을 일으킬 수 없게 만들어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였을까..

 

어쩌면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다만, 지적 허영때문에 알바니아의 고원을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베시안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약혼녀를 잃어버린 그 에피소드를 기록하면서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판단은 결코 쉽게 해서는 안 되며, 또 함부로 퍼뜨려서도 안 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폭력의 연쇄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또 그래서 그러한 폭력을 함부로 이야기해서도 안 되며, 그 연환을 깊이 있게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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