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없는 곤충 학교 재미있는 곤충 학교 3
우샹민 지음, 샤지안 외 그림, 임국화 옮김, 최재천 외 감수 / 명진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첫번째 추억을 떠올리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자주 듣게 된 소리는 바로 ‘왕따’와 ‘일진’이었다. 어느 날인가 반에서 ‘찐따’(찌질한 왕따)로 불리는 아이와 짝이 되어 불쾌하다고 했다. 마트에선 매장에 같은 학년의 일진이 떴다고 빨리 가자며 손을 이끈 적도 있다. 일진에 찍히면 왕따가 된다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날을 잡아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 땐 소위 말해 노는 친구를 뜻했던 ‘날나리’는 그냥 노는 애들일 뿐이었다. 그것도 거의 학교 밖에서 날나리들끼리 어울렸고 교실에선 선생님도 아이들도 제외시켰다. 날나리들도 반에선 될수록 눈에 뛰지 않으려고 조용히 지냈던 것 같다. 교실 밖에선 누구와 나쁜 짓을 하는지 어떤 폭력이 오가는지 우린 알지 못했다. 반에서 유난히 친구가 없고 지금처럼 왕따에 가까운 아이가 있긴 했지만 날나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 때와는 달리 공부도 잘하고 덩치도 좋고 집안도 좋은 아이들이 일진이 되어 반에서 권력을 장악한다. 날나리가 ‘탈선’의 상징이었다면 일진은 ‘위선’의 아이콘이 된 것 같다. 적어도 겉으로 보아선 모범생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일진은 친구들과 선생님의 인정을 바탕으로 교실 내에서 누군가 맘에 안 드는 아이를 왕따시킬 수 있는 어엿한 신분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운동회 때엔 일진(이라고 불리는) 아이의 학부모가 반 전체에 음료수를 제공하기도 했다. 알고 봤더니 그 아이는 반장이었다. 아이 말로는 일진이 입는 유명 브랜드의 점퍼와 신발은 다른 아이들이 착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스마트폰도 계급도에 따라 서열을 매기고 서열이 낮은 아이는 교실 내에서 신분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벌써부터 권력의 맛을 알고 계급을 나누어 같은 친구들을 지배하는 심리에 익숙해져 있다니 놀라우면서도 서글펐다. 조직 및 계급 서열화와 성과지향주의에 물들어 버린 우리 사회가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물려주었는지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일진의 눈에 벗어나면 ‘왕따’가 되는 것이다. 뉴스에서도 보았듯이 왕따가 된 친구는 일진으로부터 정신적, 물리적 폭력에 시달려 급기야 자살까지 하게 된 경우도 있다. 왕따와 일진은 분리될 수 없는 학교문제가 되었기에 이제 왕따가 없다면 일진도 없는 것이고 학교폭력이 없다면 왕따도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요즘 초등학교 일진은 중학교 일진을 빽으로 두고 반에서 짱노릇을 하는 친구가 많다. 아이 말로는 어떻게라도 일진과 연결고리가 있으면 중학교 언니, 오빠들이 건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중학교 일진이 초등학교 후배를 선별해 기르면서 중간관리자를 만드는 꼴이었다. 초등 일진은 왕따를 중학교 일진에 보고하고 중학교 일진은 타겟이 되는 아이들만 골라 돈을 뜯거나 이유 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인접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그 연결고리가 탄탄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아이들은 일진이 싫어도 표면적으로 친한 척 해야 하며 혹시라도 찍힐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들이 일진에 찍히는 것일까. 이웃 학부모들과 이야기 해보면 엄마들이 교실까지 따라다닐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최선이라는 결론이었다. 아니면 공부나 예체능을 아주 잘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실력자가 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너무 잘난 척을 해도 안 되고 너무 침묵해도 안 되고 혼자 얌체 짓을 해도 안 되고 혼이 났다고 징징대도 안 되고 어떤 특정 과목을(특히 예체능)너무 못해도 안 되고 너무 더러워도 안 되고 너무 뚱뚱하거나 못생겨도 안 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의 중간치인 평범한 아이가 되는 것이 찍히지 않는 비결인 것이다. 가슴 아픈 것은 혹시 학원을 안다니고 학습지도 안하고 핸드폰이(혹은 MP3) 없거나 집이 멀다는 이유도 찍힐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뿌리 깊은 획일성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다수의 입장에서 소수를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집단이기심이기도 하다. 아이들 입장에선 더 많은 쪽이 강한 것이고 다르고 적은 쪽이 약한 것이다. 일진이라는 의미는 학교폭력 조직을 상징하지만 그 이면에는 학교에서 잘나가는 아이들(기득권)이 휘두르는 소수자에 대한 과시와 배제 심리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생각할수록 왕따와 일진의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아주 밀접한 학교문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라는 조직에서 위선을 먼저 배우고 성장한 후에도 궁극에 권력을 얻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어른이 될까봐 걱정스럽다.


덕분에 나는 언젠가부터 왕따라는 제목이 붙은 책은 서점에서도 꼭 훑어보는 학부모가 되었다. 아마 많은 학부모들이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아이는 이 책을 보고 자신이 4학년 때 과학관에서 얻어온 장수풍뎅이와의 추억에 흠뻑 빠졌다. 알 상태로 집에 가져온 장수풍뎅이는 애벌레와 번데기를 지나 어엿한 살아있는 곤충의 모습으로 탄생했다. 우리는 곤충의 몸이 커지자 마트에서 집도 사고 나무와 먹이도 사다가 그럴싸한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아이는 당시 전학을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짱수’(애칭)에게 인사하고 정을 붙였었다. 짱수는 4월에 우리 집에 들어와 겨울이 시작될 무렵까지 살았다. 친구들의 곤충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지만 평균수명을 고려해 볼 때 퍽이나 오래 살았던 것은 확실하다. 아이는 어느 날인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짱수가 뒤집어 진채로 죽어 있었다고 자신이 새벽에 뒤집어 줬어야 했다며 큰소리로 울었다. 한동안 짱수를 어쩌지 못했던 아이는 첫눈이 흩날리던 날 집 앞 화단에 묻었다. 그 후로 화단을 지날 때 마다 짱수야 안녕, 하며 인사를 잊지 않던 아이였다. 우리는 애완견을 키운 적이 없었고 아이는 개나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편인데 곤충에 쏟는 애정은 남달랐다. 이 책에는 장수풍뎅이 같은 딱정벌레 곤충들이 인격을 가진 친구들로 등장한다. 이야기 마지막에 모범생 장수풍뎅이가 정확한 답안을 쪽지에 적어 사슴벌레에게 전달한다. 폭탄먼지벌레의 독가스 살포로 교실은 혼란에 빠지고 그 틈을 타 다른 학생들이 답안을 베껴 쓴 덕에 딱정벌레반은 전체 학생이 시험에 통과한다는 해피엔딩이었다. 정의를 위해 단결한 건 아니지만 아이는 역시 장수가 자기처럼 똑똑하다고 우쭐해 했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다

 

 

나는 아이와 책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에 나오는 곤충들을 예로 들어 보았다. 혹시 반에서 큰 턱으로 친구들을 괴롭히는 사슴벌레 같은 친구가 있는지 물었다. 사슴벌레의 행동을 지혜롭게 변화시키던 남생이잎벌레처럼 힘이 아닌 머리로 친구들을 움직이는 친구는 있는지 물었다. 느리고 답답해 보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은 누구보다 최고인 달팽이 같은 친구가 있는지도. 독가스를 뿜어대는 폭탄먼지 벌레 같이 결정적 한방이 있는 친구. 초음파로 사냥감을 찾는 박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밤나방 같이 촉이 예민한 친구. 날개는 없지만 독니를 가진 늑대거미 001처럼 자신만의 유별난 무기가 있는 친구. 죽은 동물의 사체를 묻어주는 송장벌레처럼 반에서 더럽고 궂은 일을 하는 친구. 쉰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꿀벌처럼 부지런한 친구. 개미같이 몸은 작아도 반을 위해 자기 역할에 충실한 친구...... 누가 폭력적인지 물었다면 대답하기 더 쉬웠을까. 아니었다. 곤충의 생김새와 특성을 확인하면서 친구를 떠올리니 한결 더 쉬웠다. 희한하게도 곤충학교 학생들은 아이네 반 친구들에서도 볼 수 있는 캐릭터와 일치했다. 친구를 곤충에 비유하고 곤충을 친구이름으로 부르니 마치 소꿉놀이 하듯 재미가 났다. 우린 기세를 몰아 책 뒤에 있는 스티커로 교실 분포도를 만들었다. 스티커 위에 곤충이름과 그 옆에 친구설명을 적고 새롭게 합성된 별명을 만들어 우리끼리 키득키득 거리고 나니 새로운 방법의 독서 감상 대화(?)를 마치고난 느낌이었다.(이름을 적으면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사실 책은 고학년이 읽기엔 조금 쉬웠으나 어른들도 가끔은 만화나 쉬운 그림책이 재미나듯 아이들도 자신의 수준보다 한 단계 낮은 책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듯 했다. 덕분에 나는 친구관계를 조사하고 감시하는 엄마가 아닌 아이와 친구별명을 만들고 그것을 우리끼리 비밀에 부치는 같이 흉보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 아이와 함께 만들어본 ‘우리 반 곤충분포도’ 이다. 가운데 늑대거미는 노래와 춤도 잘추는 반장이면서 일진인 아이를 상징한다. 일진을 중심으로 2인자 딱정벌레들과 행동대원 사슴벌레, 심부름꾼 바구미들을 근처에 붙였다. 아이는 참았다가 폭발하는 ‘폭탄먼지벌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것저것 고자질을 잘하는 친구, 소문을 내고 말을 옮기는 스피커 같은 친구, 조용히 책 읽고 숨은 지도자 같은 친구, 멋만 부리고 반 일에 관심이 없어 겉도는 친구를 비슷한 곤충과 짝짓기 했다. 맨 오른 쪽과 왼쪽 아래에 못생긴 ‘찐따’ 배자바구미와 더러운 ‘왕따’ 쇠똥구리가 보이고 힘이 세 보이지만 아직 이름은 알수 없는 전학 온 친구도 보인다. 현실은 아쉽게도 왕따 없는 곤충학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곤충을 붙이는 위치를 보고 아이가 친구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자신은 어느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 만들어 놓고 나는 이 분포도가 어른들 조직에서도 비슷할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이 지나 아이는 학교숙제로 독서 감상문을 내야 하는데 다른 읽은 책이 없어 이 책에 대해 써야겠다 말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제가 너무 쉽다고 무슨 주제로 써야 할지 내게 물었다. 왕따에 대해 쓰자니 마음이 불편해서 솔직하기 싫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나는 기억나는 한마디가 없느냐 물었고 아이는 생각이 나지 않았던지 고개를 흔들었다. 이때다 싶은 나는 페이지를 펼치며 ‘중요한 건 무엇이 없느냐가 아닌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늑대거미 001의 한마디를 펼쳐보였다. 늑대거미는 뿔이나 턱이 없었지만 독니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아이가 어떤 내용을 써내었는지 보진 않았다. 꼭 내가 가르쳐 준 힌트를 작성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아 부러 잊은 척 했다. 학부모로서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은 많은 것 같다. 벌써 나만해도 곤충을 빗대어 아이 반 친구들을 파악했으니 대화소재로도 유용했다. 교사라면 곤충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역할극을 만들어도 될 만한 소재를 제공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도움이 된 메시지는 딱정벌레반 반장인 늑대거미의 한마디였다.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라 요즘 들어 아이는 자신의 신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누구는 다리가 짧은데 반바지를 입고 왔다고 흉을 보기도 하고 자신은 신체에 비해 발이 커서 창피하다고도 한다. 어떤 아이는 얼굴에 비해 코가 크고 친구 누구는 눈은 큰데 너무 튀어 나왔다고 대신 걱정을 해주기도 한다. 한창 다른 친구들의 장점이 유독 부러워 보이고 내가 가진 장점은 크게 여기지 않을 시기인 것이다. 더불어 내 단점만 상대적으로 심각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고 그 사람의 장점은 반드시 단점과 연결이 되는 것. 곤충의 경우에도 더욱 크고 힘이 센 뿔은 일을 하는 데는 효율적이겠지만 운동성과 순발력은 떨어짐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꼭 신체 외모 뿐만이 아니라 성격이나 환경도 장점은 언제든 단점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단점이 어느새 장점으로 기능하게 될 수 있다. 자신의 단점을 긍정하면 상대의 단점도 받아들이게 되고 어쩌면 이런 생각들이 나아가 왕따를 사라지게 하는 근본은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쉽고 웃기지만 그 효과만은 우리 모녀에게 어떤 책보다도 확실했던 것 같다. 우리는 흔히들 인간의 아주 비참한 상황을 ‘벌레만도 못한 삶’이라 비유하곤 한다. 기어다니고 새의 먹이나 되기 쉽상인 곤충들은 우리가 사는 우주와 생태계에서 아주 하찮은 존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왜 저렇게 생겼을까 싶은 신체 부위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고 부족한 능력은 다른 것으로 보상하며 살아가는, 인간보다 지혜로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행복하기 위해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처음엔 옥신각신하다가도 결국 아무도 왕따없는 교실환경을 구축해나가는 곤충들이야 말로 어쩌면 사람보다 공존과 공생의 개념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존재들일지 모른다. 바로 이 책의 가치는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알아가는 곤충들이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친구들과 무엇이라도 조금만 다르면 왕따가 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곤충들의 모습은 어른이나 아이에게 새삼 되새겨야 할 교훈인 듯 하다.

 

 

작년 말부터 터져 나온 학교 폭력의 실상과 그로인한 청소년들의 자살이 이제 곧 청소년이 되는 아이를 둔 학부모로서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서처럼 귀뚜라미 선생님이 실종되자 다들 모여 단체로 개미네 집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그립다. 문득 아이가 정성을 다해 돌봐주던 짱수도 그립다. 이제 짱수는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유익한 거름이 되었거나 다른 유충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잊혀진 유기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가슴에 새겨진 맨 처음 곤충의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더불어 오늘 아이와 나눈 우발적인 대화도 짱수 뒤에 새로운 곤충의 추억으로 덧붙여지길 기대한다. 자연속에서 우리 인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이야기와 쉬운 교훈으로 아이와 의미있고 재미난 시간을 만들고 싶다면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한다.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 모두에게 이 책은 살아있는 곤충의 추억을 만들고 서로 나누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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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2-06-14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한사람님 서재에 들러서 글을 읽다가 남깁니다. 대단한 글이네요. 한사람님 뿐만 아니라 한사람님 자녀와 함께 쓴.. 한편으로는 참.. 뭐랄까 씁쓸한 기분도 남네요. 찐따와 일진은 진짜 사라져야되는데.. 잘안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