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요즘 아예 ‘놀토’가 없어졌다. 토요일은 그냥 모두 언제나 노는 날이 된 것이다. 우리 땐 토욜 4교시도 참 기다려지는 날이었는데 주 5일 문화는 이제 공교육에까지 확대되었다. 덕분에 아이와 같이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아이들은 공부에서 해방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일까. 요즘 토요일에 영화관에 가보면 아침부터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린 사람들 붐비는 게 싫어 늘 조조영화를 보아왔는데 지난 토요일도 아침부터 만원이었다. <코리아>를 좀 뒤늦게 본 편인데 영화는 아이와 함께 보기 재미있었지만 약간 뻔 한 구석이 많아 감동의 수준은 ‘우생순’이나 ‘국가대표’ 급에 못 미친 것 같다. 하지만 배두나(리분희)의 절제와 몰입에 놀랐고 김응수(북한측 조감독)의 멱살 잡히는 장면, 한예리(유순복)의 실감나는 사투리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하지원 연기는 사투리고 스포츠고 워낙 익숙해서 이제 여간해선 감동을 받기가 힘이 드는데 그래도 마지막에 버스 떠나는 장면에서 울며 매달리는 특유의 우는 연기는 찡했다. 실제 상황이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우린 항상 버스타고 떠나는 북한사람들을 버스 밑에서 울면서 보내는데 익숙하다. 두 가지 다 해보았는데 확실히 떠나보내는 쪽이 더 안타깝고 눈물이 많이 흐르는 것 같다. 하지만 울음이 터져버렸기 때문에 또 뒤돌아서 잘 일상에 복귀하지 않았을까...

 

 

#2. 어느 쪽이 더 솔직한 걸까

 

 

나는 사람마다 울 때 내는 흐느낌의 소리는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슬픔에 복받쳐서 우는 소리는 연기로 조절하기 상당히 힘든 영역이 아닐까. 왜냐하면 극도로 슬퍼야지만 나오는 그 사람만이 가진 목소리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웃어야지만 나오는 소리가 있고 아파야지만 나오는 신음소리가 있듯 울 때 나오는 목소리는 울어야지만 나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와 표정, 흐느낌의 패턴은 다른 사람이 따라할 수도 없고 스스로도 바꿀 수는 없는 듯 하다. 이것은 신체의 각 조직이 반응하며 일어나는 복합적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고유성의 영역에 속한다. 어떤 사람은 울 때 꼭 입을 막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꼭 이불을 뒤집어 쓰는 것도 연차적인 행동반응이다. 그런데 우는 건 웃는 것 보다 일반적으로 더 솔직하고 속일 수 없는 감정이다. 그래서 우는 연기가 다양하다면 연기의 고수가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는 연기가 다양하려면 다양한 상황에서 울어봤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는 연기의 달인이 되려면 어느 정도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나이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웃는 것도 참 억지로 못할 일이지만...

 

 

#3. 많이 운다고 예술이 더 깊어질까

 

 

그런데 가수나 배우들을 보면 인생의 경험과 나이와는 상관없이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 들었다고 모두 연기의 달인이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일까. 어렸을 때부터 눈에 띄게 연기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아마 나이 들어서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연기력은 그대로인 중견배우들을 보면 예술이 꼭 인생의 경험과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예술이 탄탄해질 수는 있겠지만 예술가의 역량이 높다고 산전수전 다 겪은 건 아니라는 말씀.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썩 반갑지가 않다. 계속 노력하다보면 무언가 되겠지... 하는 생각에 회의가 많이 든다. 한 살 더 먹었다고 더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더 많이 이해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더 실력이 느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가진 조그만 재능이 더 빛을 발하긴 커녕 한계만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 우울한 요즘이다.

 

 

 

#4. 얼굴이 예뻐야 주연을 하는 걸까

 

 

주말이 지났지만 자꾸 생각나는 배우가 있었다. 분명 어디서 본 배우였기에 우린 어렵지 않게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기억해냈다. 알고 보니 짧게 나왔지만 미친 존재감만은 강렬하게 기억된 배우였다. 아이와 나는 공교롭게도 그녀가 출연한 <하모니>와 <퀵>을 보았다. <퀵>에서는 폭주녀로 잠깜 나왔는데 이민기에 키스를 한 누나뻘 옛날 불량애인?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사진을 못찾아서 아쉬웠다. <여인의 향기>에서도 재일교포로 나왔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건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이 김재화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한눈에도 개성 있는 조연을 하기에 적당한 외모를 가졌고 약간 올라간 눈꼬리와 광대뼈 덕분에 중국인 역할에 딱인 포스이다.

 

 

 

- 중국의 덩 샤핑(영화에서는 덩 야령)을 연기한 김재화. 내 기억으로 덩 샤핑은 아주 단단한 체구의 단신이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중국인으로 보이는 강렬한 인상이 얼마나 중국인으로 보이고 싶어했을지를 떠올리게 했다.

 

 


-하모니에서 권달녀 역으로 출연한 김재화. 맨 오른쪽 뒤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사람. 교도소에서 짧게 나왔지만
존재감만은 최고였다. 완전 범죄포스에다가 욕설이나 행동도 재소자에 빙의된 모습... 노래는 어찌나 또 오버해서 하던지...

 

 


-여기저기 프로필 사진들을 찾아 봤더니 이 사진이 꼭 동남아시아 항공사(싱가폴이나 홍콩)
스튜어디스 같아 슬쩍 가져왔다.

 

 

 


- 전혀 다른 눈빛이 너무 강렬해 오래 매력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그녀는 알고보니 중앙대 메릴스트립으로 불리던 한 연기 하던 연극배우였다. 80년생인 것에 비해서는 얼굴이 좀 노안이긴 하다.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김윤석, 황정민의 공통점은 연극바닥에서 발성과 연기를 익힌 배우들. 그러니 그녀도 대성할 배우의 자격쯤은 갖춘 셈이다. 이제 여자 배우들도 저런 개성강한 얼굴이 당당히 주연으로 등극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오늘 신문에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는 '하지원'이고 가장 연기 잘한다 생각하는 배우는 '전도연'이었다. 하지만 남자로 가면 얼굴이 매우(?) 잘 생긴 배우는 이제 하향세로 돌아섰다. 감독이 남자라서 그런 것일까? 관객이 예쁜 배우를 보기 좋아해서 그런 것일까. 제작자가 그림이 좋은 것을 선호하기 때문일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도 스크린에 예쁘고 섹시한 여배우가 연기까지 잘하면서 등장하면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언젠가는 김재화라는 배우가 주연을 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아니 꼭 주인공이 되어 칸느에서 주연상도 타길 바란다. 본인이 칸느 카펫을 밟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해서 하는 말이다. 실력이 능력이 되고 그것을 실력만큼 인정받길 바란다. 이상하게 그녀와 친분도 전혀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울하고 우울하다. 책이 재미가 없다. 글이 허무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이 생각 저 생각

잡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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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2-05-2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모니에 나왔던 배우군요! 이렇게 사진을 보고 나니 알아볼 수 있겠어요. 마지막 사진은 특히 강렬합니다. 저도 이 배우가 칸의 레드카펫을 당당히 밟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

한사람 2012-05-23 11:12   좋아요 0 | URL

그죠~~ 기대되는 배우 맞아요.
칸에 홍상수 감독 가 있던데 좋은 소식 들렸으면 좋겠네요~
마노아님은 바쁘시다면서 영화는 많이 보시더라구요, 하하
저는 하나도 안바쁜데 영화관 가는게 귀찮아요 ㅠㅠㅠㅠ

차트랑 2012-05-22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극히 뜬 구름 잡는 소리이이며
말도 안되는 말씀입니다만
연기자 김재화의 년월일시의 주를 알면
언제뜰지^^ 예측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ㅠ.ㅠ

인생은 'timing의 예술'이라는 말은 참 많은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그 timing은 온다^^
다만 그 시기를 알 수 없는 것이 문제입지요 ㅠ.ㅠ
물론 예측이 불가능한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한사람 2012-05-23 11:13   좋아요 0 | URL

어떻게 아세요???
궁금해요!!

타이밍이라는게 미리 정해져 있는 걸까요?
사람은 정해진대로 살게 되 있는걸까요???

2012-05-24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