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기특한 책이다. 이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거리의 풍경 스케치와 소소한 감상정도로 생각한 터였다. 그런데 내가 놓친 건 거리라는 ‘공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스토리라는 ‘시간’을 그린 것이었다. 시간은 곧 역사였고 역사 속엔 사람도 사건도 사물도 포함된 것이었고 그곳엔 오랜 세월 흘러온 이야기가 고스란했다. 작가는 그 흔적을 찾아 떠난 것이었고 떠나다 보니 더 많은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흔적들 앞에 밑줄을 그을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 책에 밑줄긋는 버릇이 생겨 당연 펜을 들고 책을 펼쳤는데 이 책에는 어느 한 페이지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어떤 공식적인 문화재에 감히 철없이 낙서하는 기분이 들었달까. 아니면 여행지에서 만난 돌담 하나, 바위 하나지만 차마 아름다워 남들처럼 적어볼 수 없는 내 이름이었달까. 조금만 폰트가 컸더라면 교육용 서적이 될 뻔했다. 작가가 정리하고 모아놓은 이야기, 자신만의 감상 역시 무게가 상당했기에 이 책은 오래도록 거실 한 켠에 놓아두고 커피한잔 할 때마다 들추어 보고 싶은 책이었다. 요즘 홈쇼핑에서 자주 듣는 말 ‘절대 여러분들 생각하시는 그런 흔한 느낌이 아’니라는 멘트,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이 책을 덮고 가장 실감한 것은 나는 서울사람이 아니었다는 자각이었다. 물론, 나는 서울사람이 아니다. 애초부터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부모님 고향 역시 서울과 거리가 아주 멀다. 하지만 나는 일곱 살 이후 초, 중, 고, 대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다녔고 행정구역상 서울주소를 삼십년 정도 사용했으니 서울사람이 다 된 것이 아니라 서울사람이 되어 있어야 했다. 아니 그동안 그러한 자각조차 없이 당연히 서울사람인 줄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내가 아는 서울, 내가 살았던 서울, 내가 살펴본 서울은 하나도 없었다. 설마하고 나는 목차를 두어 번 확인했고 어쩐지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서울살면서 지하철을 몇 번을 탔을 것이며 광화문 네거리를 몇 번이나 횡단했을 터인데 나는 모두가 처음보는 이름처럼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더 부끄러운 건 이 책에 소개된 장소와 이야기를 한번도 연결하여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며 혹시 지나쳤을지 모를 지명이나 장소 하나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이를테면, 거기 그 정도에 그것이 있겠지(있었겠지) 수준의 스쳐가는 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 서울처럼 무심한 사람,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과 다를 게 무엇인가.

내가 아는 서울은 바둑판 도로와 회색빛 빌딩, 싱겁게 솟아난 한강다리, 차도를 다투는 자동차, 인도마저 차가운 사람들, 그 정도가 다였다. 물론 나는 70년대 말 한강 이남의 개발이 한창인 시절 당시는 변두리였던 강남에 이사와 그곳이 서울의 전부인줄 알고 성장하기는 했다. 딴에는 강남에서 줄곧 학교를 다녔고 버스 정류장 이름이 ‘고개’인 시절부터 24번 버스를 타왔던 사람이니 강남발전사쯤은 두어 시간 막히지 않고 이야기 할 수는 있겠다. 그러고 살았어도 충분히 서울사람으로서 문제는 없었고 외려 웃기지도 않은 우월감마저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니 나는 서울사람이 아니라 그저 서울의 한강 남쪽, 강남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나는 서울에서의 내 주거이력이 당연 서울사람으로서의 당당한 주거자격쯤 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가끔 시장선거철이 오면 서울시민도 아니면서 서울시장 후보들을(만) 놓고 비교를 하곤 한다. 정작 내 지역의 도지사를 뽑는 일이 시시하고 맥없이 느껴져 아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는 ‘그렇게’ 살아온 내 자신이 ‘그렇게’ 부끄럽고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나처럼 자신이 강남에 오래 살았으니(살았다는 것만으로) 서울 사람중에서도 뭔가 우월해 보이는 시민이라 생각해온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정말 서울도 강남도 뭣도 모르는 사람이라 말해주고 싶다. 나를 포함한 그들은 적어도 서울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울을 알지 못했고 서울을 보지 못했으니 서울을 말할 수 없었을 터이다. 우리가 살아온 곳은 그저 행정구역상 서울시의 한 지역에 해당되는 주소상의 기록일 뿐이었다.

사실, 서울을 모르고 서울에 사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바쁜 도시에서 내가 사는 곳의 역사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꼭 알아야 그 도시에서 살만한 자격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서울을 그려온 이 작가에게, 피사체가 된 서울에게 미안한 것은 그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도’ 서울을 폄하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같은 수도지만 서울은 도쿄나 파리, 런던에 비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만한 관광자원도 문화상품도 없다고 생각했다. 뉴욕처럼 분명한 도시 정체성도 없고 인구밀도만 높았지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을 알아보려면 서울이 생겨온 내력과 생겨먹은 아우라를 찾아야 하는데 사대문안에 위치한 광화문과 경복궁, 덕수궁등의 주요유적지는 젊은이들이 자주가는 약속장소는 아니었다. 예전엔 큰 서점에 가려면 광화문 교보문고나 종로서적에 들러야 했지만 이젠 굳이 크고 많다는 이유로 그곳을 방문할 명분도 없어진지 오래다. 또 하나 바둑판 네비게이션에 익숙해져 있는 나같은 길치에게 강북의 일방통행, 연결도로는 정말 난해한 코스이다. 골목골목 잘못 들어가다 보면 전혀 출구를 찾을 수가 없고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서도 빙 둘러 놓치기 일쑤였다. 어쩌다가 세종문화회관에 공연이나 한다면 모를까 될 수 있으면 한강다리 너머 북쪽으로는 여간해선 마음마저 열지 않았던 나였다. 언젠가 바람이 촉촉하던 어느 봄날, 북악 스카이 웨이를 드라이브 하겠다고 나선 것 까지는 좋았으나 돌아오는 길 한남대교에서 사고가 나 집까지 두 시간이 걸린 이후로는 그런 무모한 낭만은 일찌감치 접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내게 있어 서울을 찬찬히 살펴본다는 건 대체로 시간낭비에 속하는 비효율적인 업무에 해당되었다고나 할까. 
 
그래놓고 나는 자랑스럽게 서울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울이 별 볼 일 없는 도시라 말했다. 몰랐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간의 서울살이와 서울생각이 부끄러워 서두가 길었다. 책을 덮고 작가가 궁금해 블로그와 홈피를 방문해보았다. 이 책에도 그려져 있지만 작가는 이렇게 그림을 그렸나보다. 간간히 커피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그린 스케치가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참 정겹게 느껴졌다. 가령, 비오는 날 광화문 별다방에선 길 건너 참나무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누끼(일본식 편집용어인데 다른 말은 모르겠다, 역상?)로 처리했다. 어떨땐 밀리는 버스안 맨 뒷좌석에서 와이드 렌즈로 오후 풍경을 그린 것도 있었다. 광화문 KT아트홀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교수님이 설계한 곳이기도 한데 작가는 거기서도 누워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기록했다. 운동화에 작업복에 카메라와 커피 한잔, 늘 그렇듯 스케치북에 펜을 쥔 모습이 자세와는 달리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글씨체가 꺽어진 글자체여서 그랬을까. 한번쯤 우연히라도 스케치북에 담겨지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 채색된 느낌이 새로와 슬쩍 가져왔다. 2009년의 1월달, 따뜻한 겨울의 수요일날 이었나 보다.


이 책이 왜 정성스럽게 느껴지는지 예를 들어 한 가지만 프리뷰 해보고 싶다. 작가는 이런 식이다. 작가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통의동(나는 서울에 이런 동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지만)에 백송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그의 마음을 잡아끈 내용은 죽은 나무를 기리기 위해 사대문 안 비싼 땅에다 터를 남겨놓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때부터 작가는 발길 한번, 마음 하나 돌려먹고 백송을 찾아 나선다. 
 

#1. 3호선 경복궁역에 내려 걷다보니 추사 김정희 선생의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을 발견했단다.
      표지석을 서울에서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던 나로선 새로운 뉴스였다.




#2. 표지석 안내를 따라 걷다보니 옛날 골목길로 접어 들었나보다.




#3. 그런데 백송은 사라지고 고목만이 덩그러니 남아 과거와 쓸쓸히 조우했다.
      백송고목앞에서 작가는 백송이 천연기념물이었으며 나무가 언제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4. 그리곤 죽은 백송고목 곁에서 자라난 네 그루의 후계목을 그려본다.
      물론, 후계목이 네그루인 사연을 곁들여서.




#5. 명찰에 종로구, 문화재청, 서울시와 함께 걸려있는 개인소유의 낯선 이름, 홍기옥




#6. 백송할머니라 불리는 홍기옥 할머니는 제초제가 뿌려진 흙을 황급히 퍼내다가
      그만 손에 화상을 입으셨다고 한다.




#7. 작가는 못내 백송이 아쉽고 그리워 인터넷에서 찾아내 일제시대 훤칠하던 백송을 그림으로 살려낸다.
#8. 그리고 지금의 초라하기 그지없는 백송(비교는 우리더러 하라는 뜻)




#9. 들어올 때 눈에 띈 표지석대로 백송과 더불어 김정희가 살았던 집터였음을 작가는 잊지 않았다.
#10.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김정희가 어린시절부터 글을 잘 써 서울 큰아버지 댁에 입양되어 살았던 곳이
       백송옆 월성위궁이라 하느니.


 
#11. 작가는 골목길을 돌아 나오며 김정희의 아방가르드한 추사체를 떠올린다.
        간만에 손글씨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백송에 대한 서운함이 조금은 풀어졌을까.


이렇듯 백송을 그리기 위해 작가는 백송의 사연을 마치 스토리보드처럼 자신만의 영화로 만들었다. 모든 장소와 모든 사물이 이런 식이었다. 자연스레 그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정지해 있는 대상이었지만 흘러온 시간을 담기 위해 그는 얼마나 시간을 들였을까. 한자리의 모습을 3개월 2주나 걸려 완성했다는 그림, 종각역 지하철 그림은 시간의 깊이가 담겨져 있는 듯 잠시 눈길을 머무르게 하였다. 매번 같은 의자에 앉아 열차가 들어오기 전 그 짧은 시간에 조금씩 그려 넣었다고 했다. 열차가 지나가고 또 다음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그는 펜을 멈추었을까. 이 그림은 열차를 타고 지나온 지난날의 시간들이 촘촘히 기록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는 그림을 그린 후 시청방면으로 갔을까?



- 3개월 2주나 걸려 완성한 '종각'은 서울의 시간을 그린 것이 아니고 혹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그린 것이 아닐지

그런가하면 작가는 도시공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단순히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설물에 대한 도시계획에도 깊이있는 해설을 곁들여 주기도 했다. 특히 청계천 복원 사업이 빛의 속도로 시행된 우리 시공능력의 놀라움에 대해 아쉬움이 많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중간중간에 자신이 상상한 광화문, 청계천의 상상도를 운치있게 그려내기도 하였다. 불도저 같은 토목공사가 아닌 좀 더 긴 계획과 완벽한 공사로 파리 세느강의 다리처럼 이야기와 철학이 담긴 다리를 만든다면 청계천의 색깔이 더 서울스러워지지 않겠느냐 질문한다.

책을 덮고 나니 더욱 이 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산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가는 아마도 처음부터 그래, 서울을 그려보자 작정하고 거리로 나섰던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날은 공원벤치에 앉아 어떤 날은 한강변에 서서 서울을 관찰하고 사진에 담아 집에 왔을 것이고 그림을 그리다보니 궁금해진 것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몰랐던 사연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사연의 주인공을 찾아가보니 또 새로운 사연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어진 발걸음이 모여 서울이 지나온 시간이 지금의 그림에 스며들게 된 것이었다. 아마 장대한 계획을 세워 서울의 시간을 담아보겠다 처음부터 마음먹었다면 그 부담감은 엄청났을 것이고 카테고리나 표현방법, 이야기들도 정형화된 채로 여느 여행책의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을 담아보고 싶다는 소망은 서울을 알아보고 싶다는 관심없이는 불가능한데 작가는 왜 굳이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 아닌 느리고 아스라한 방법을 적용했을까.

이 책이 그림으로써 가장 절실하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아무래도 ‘천천히’ 관찰하고 ‘느리게’ 느끼고 ‘조용히’ 기억하는 서울에 있는 듯하다. 서울의 규모는 이제 세계적이다. 통계수치를 좋아하는 언론에 의해 우리는 서울이 어느 부문에 몇 위 하는 식의 기사를 거의 매일 접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숫자만큼이나 정확하게 서울의 이미지가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두렵다. 그런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건 서울을 몰랐기 때문이며 몰랐던건 알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내가 발디디고 사는 이 서울을 굳이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는 스케치로 서울을 담은 이유가 바로 서울을 '더 잘 알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서울을 알아가면서 서울과 더 친해졌고 친해지고 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을 덮고 가장 (찾아)가보고 싶은 곳이 하나 생겼다.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라는 뜻의 ‘딜쿠샤’이다. 태어나 처음 들어본 ‘딜쿠샤’라 불리는 집이 서울 하늘 아래 종로구 행촌동 골목에 쓰러질듯한 모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딜쿠샤에서 살았던 앨버트 테일러(3.1운동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한 특파원)의 이야기도 물론 처음 들었다.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그가 묻혀있는 양화인 외인묘지도 처음 보는 장소였다. 작가가 발견한 시간의 사연은 딜쿠샤앞에 위치한 은행나무였다. 권율장군의 집터에 있었다는 은행나무를 보고 ‘이상향’을 꿈꾸어 보자고 말한다. 420년 된 은행나무의 그늘에 앉아 우리 선조와 한 외국인과 그리고 지금의 지역민이 함께 숨쉬고 바라보았을 하늘에 ‘이상향’을 그려보자 말한다. 그곳에서 우리 후세들이 무럭무럭 자라 똑같은 하늘과 그늘을 누리면서 ‘이상향’을 그려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내가 찾아본 딜쿠샤는 말 그대로 쓰러져 가는 빈민가옥의 외양이었다. 그의 시선이 깊고도 따스하다는 생각으로 ‘이상향’이라는 어색한 단어를 적어본다. 은행나무에 걸터 앉은 우리 아이들이 서울의 '이상향'을 그리면서 하늘을 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딜쿠샤'는 충격적이리 만큼 '이상향'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곳이 정말 서울인 것일까.

서울이 변화하고 있다.(고들 말한다) 서울이 계획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서울사람인 적이 있었을까. 내가 이렇게 변한 만큼 서울도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이제야 실감한다. 하지만 외모가 달라져도 나인 것은 변함없듯 서울 역시 오래전부터 서울이었음이 새삼 반가운 오늘이다. 한 때 서울사람인 적이 있었고 오랜 세월 서울사람인줄 알았던 무늬만 서울사람 한사람이 다시 서울을 기억할 기회를 얻었음에 짐짓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이 미안함을 서울사는 애꿎은 당신들에게 돌려보고 싶다.

당신은, 당신은 서울사람인지. 당신도 서울사람인 줄 알았는지.

이미지 출처 :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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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1-04-13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추천~후독서^^ 그리고 감상후기 꼬오옥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