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교수님의 행복한 도덕학교
문용린.길해연 지음, 추덕영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아이, 어른을 바라보다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그른 게 없어 올 한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달력을 보면서 새삼 놀라고 있는 요즈음이다. 아이도 벌써 겨울방학을 앞두고 크리스마스 선물 타령을 하고 있다. 이제 이 맘 때가 되면 학생이나 학부모 할 거 없이 이번 방학엔 어디로 보내야 하나를 고민하게 된다. 처음엔 대한민국 학부모로 사는 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습관이 되버렸고 습관도 경력인 지 여기저기 방학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를 향해 열심히 안테나를 작동중이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맞벌이 할 땐 늘 정신없이 아이가 무슨 책을 보는지 요즘 어떤 일이 화제인지 도무지 몰랐는데 요즘은 대화시간이 늘어 아이와 눈을 맞출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아이가 조울증세가 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을 땐 춤이라도 출 듯 흥분상태라 너무 좋고 사소한 일이라도 기분이 나쁠 땐 머리가 아파 토할 정도로 안 좋아 지는 것이다. 대부분 학교에 갔다 오는 처음 얼굴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는데 요즘 들어 친구보다 선생님에 대한 비평을 자주 하는 추세다. 즉, 자신 또는 친구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잘 알지도 못하고 꾸중을 한다든지, 선생님이 아이들과 한 약속을 잊어버렸다든지, 정해진 기준없이 누군가를 선별한다든지 하는 것에 심각하게 반응한다. 친구들이 아닌 선생님의 '도덕'에 시선이 향해 있었다. 아이가 커버린 것이다.

아이는 가끔 선생님이 이러이러 한데 이것은 나쁜 행동이 아니냐 묻는다. 친구간에 벌어진 일을 물어올 땐 자신있게 답하다가 선생님으로 주인공이 바뀌다 보니 상당히 당황스럽다. 자꾸 선생님도 이유는 있었을 것이라는 어른 된 입장으로 같은 편이 되려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마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아이들에게 나처럼 허를 찔리는 기분이 드는 학부모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분명 어려운 단어를 써가면서 적당히 넘어가기 곤란한 경우도 생긴다. 아이가 끝까지 선생님의 잘못을 인정받고 싶어 할때, 그럴 때가 있다. 어른들 사이에서 요즘 한창 '정의'와 '도덕', '공정'이라는 개념이 유행인데 이 책은 아이들 입장에서의 도덕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선생님도 얼마든지 아이들 기준에서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항상 나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우린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 선생님에게도 유용한 기준이 될 듯하다.

승부, 정면으로 하다

먼저, 이 책은 참 착하다. 솔직히 제목에 '도덕학교'라는 말이 들어 있어 아이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누군가 재밌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입소문은 이렇게 중요하다. 사실 아이들이 문용린 교수를 알리는 만무하고 이 책은 바로 학부모를 타겟으로 한 책이라 느껴진다. 엄마(혹은 교육계)가 선택해서 아이한테 권하는 루트를 꾀했다고 보여지는 제목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초등 3학년만 넘어가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출판사도 좀 알았으면 한다.(다음부터는...고학년 대상이라면 더욱더) 그래서 나는 책을 사줄 때 '이건 너무 지루하지 않겠어?', '이 이야긴 너무 빤한 거 아냐?' 이렇게 말하곤 한다. 특히 『문용린 교수님의(아이들 입장에서 누구인 지 알게 무언가) 행복한(너무 진부하지 않나?, 도덕해야 행복하다는 말? 도덕을 배우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 도덕학교(뭔가 교훈을 주입할 것 같은 분위기 아닌가?)』라는 제목은 너무 정직한 편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이 정공법이 제대로 먹힌 듯 하다. 책 제목에서부터 저자의 어떤 의지와 자신감을 감지했는데 에두르지 않고 바로 정면으로 승부한 마케팅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에는 문용린 교수의 분신인 스마일 선생님과 여섯 명의 아이들, 그리고 한명의 엄마가 등장한다. 공통의 커다란 줄거리 안에 다시 한명씩 고민이 담겨지는 따로 또같이의 이야기 구성이다. 공동의 목표는 합창대회라는 하모니에 있으며 개인의 목표는 도덕에 관한 개념이해라 할 수 있다. 스마일 선생님은 행복교실의 담임선생님이자 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행복우체통의 비밀 관리인이다. 아이들은 각 편의 이야기에서 저마다의 고민을 편지로 적어 우체통에 질문하고 마지막에 선생님이 답변을 해준다는(물론, 아이들은 누군지 모르고) 형식이다. 합창단을 지휘하는 엄마는 애석하게도 큰 역할은 없다. 같은 엄마인 입장에서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엄마는 늘 우스꽝스럽거나 다그치는 캐릭터로 출연하는 것이 서운하고 불만스럽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지휘했던 박칼린 선생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관련된 소정의 역할이 있었으면 했는데(특히 선표의 목소리를 배려하는 음악과 관련있는 부분의 경우는 충분히 엄마의 역할이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을 덮고 나서도 생각나는 건 과장된 몸짓과 우스운 말투가 전부다. 이 시대의 학생들에게 엄마란 성적관리 혹은 학원감독, 아니면 사생활 감시자로서만 인식되는 것 같아 좀 맥빠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화음, 여섯 개로 울리다

여섯 가지의 이야기는 정직, 약속, 용서, 책임, 배려, 소유 즉 '정.약.용.책.배.소.'를 구성으로 하는 도덕원칙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진부한 듯 해도 도덕이란 아주 기본적인 인성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우리는 주제를 끌어내는 아이들의 에피소드에 주목해야 한다. 여섯 가지 이야기를 들어가는 이야기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합창대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조건으로 시작한다. 문제는 이나무, 강웅, 김선표, 김병희, 이다미, 오필이가 같이 모여 노래를 하는 것인지는 몰랐다는 것이고 이들은 각자 따로 대회에 나가는 줄 알았던 것이다. 문용린 교수는 결국 여섯 가지 도덕원칙을 각자가 내는 목소리로 여기고 다같이 조화롭게 화음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이들은 할 수 없이 오필이네 집에 모여 연습을 하게 되는데 바로 오필이의 엄마는 지휘자로서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의 중심은 합창대회를 위한 노래연습 과정이라기 보다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모이고 대화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아이들간의 사소한 그렇지만 예민한 갈등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갈등 유발 요인에는 여섯 가지 도덕원칙이 불편하게 자리한다.

정직을 이야기 할 땐 내가 하지 않은 것을 내가 행한 것으로 하는 거짓을 예로 들었다. 합창대회 출전곡의 노래가사를 각자 써오는 숙제에서 다미는 이미 언니가 발표한 가사를 가지고 왔는데 그만 다미의 것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 웅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알면서도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한집안 식구인 언니가 지은 가사를 가져와 급한 대로 제출하는 다미의 행동이 대수롭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친구의 속임수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이해할만한 마음이지만 문용린 교수는 정직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한번 생각해보라 한다. 그리고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습관이야 말로 우정을 더 단단히 해준다 답해준다. 아이들은 다미가 우체통에 써낸 편지와 의문의 천사로부터 돌아온 답장을 통해 자신만의 비밀과도 같은 고민이 해결되는 느낌을 받으며 타의가 아닌 스스로에 의해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이 우체통이라는 고민해결사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체통에 쓰레기를 넣지 않고 누군가 편지를 넣었더니 신기하게도 답장을 받았다는 소식에서부터 아이들은 우체통에 자신의 고민을 의지하게 된 것이다.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말못 할 사연을 띄우면 '그래 네 고민을 잘 알고 있으니 이렇게 해보렴' 하는 위로성의 답장이 배달되는 것이다. 우체통이 운영될수록 아이들은 공정한 누군가가 친구들끼리의 민감한 잘못도 판가름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해결에의 신뢰를 가지게 된다. 아이도 이 책에서 편지를 쓰고 누군가 답을 해주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편지는 질문의 역할도 하면서 동시에 반성문의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일어난 일을 돌이켜보면서 비로소 상대친구를 이해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약속을 이야기 할 땐 '선약'의 중요성을 실감하도록 하였다. 치과를 혼자 가기 싫어하는 병희를 위해 같이 가주겠노라 약속한 선표가 그만 병희가 청소를 하는 사이 다른 친구의 생일초대에 가버린 것이다. 선표는 병희와의 약속을 잊은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번인 친구 생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병희는 자신이 먼저 제안한 선표가 걱정이 되어 치과예약 시간도 놓치고 노래연습을 하러 갔는데 선표는 태연하게 피자한판을 들고 나타난다. 선표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고 있었을까?

용서를 말하는 이야기는 가장 감동적인 화해장면을 연출해 내었다. 유치원때부터 친구사이인 나무와 웅이가 서로를 미워하게 된 것은 과학실에서의 실험기구파손을 선생님에게 일러바쳐 웅이가 망신을 당하게 된 이후 부터였다. 나무는 반장이었고 웅이가 가장 믿었던 친구였기에 웅이의 상처는 클 수밖에 없었다. 나무의 반장된 책임과 웅이의 친구로서의 우정이 맞서게 된 서로의 미움은 어느 비오는 날 웅이를 바쳐 준 나무의 우산으로 전환을 맞는다. 이들은 서로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책임 이야기에선 반장인 나무의 고민이 설득력있게 전개된다. 과학실 사건으로 웅이와 불편한 관계가 된 뒤로 나무는 모범생으로서 아이들의 잘못을 잡아내고 선생님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짐처럼 부담스러워진다. 웅이에겐 반을 대표하는 공적인 책임이 중요한 것일까. 친한 친구와의 사적인 책임이 중요한 것일까.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친구를 버리고 반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배려를 말할 땐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아이들의 지혜를 예쁘게 모아 놓은 이야기였다. 목이 아파 소리가 나오지 않는 선표를 위해 친구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선표를 위한다고 목에 좋다는 음식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것은 친구의 아픔을 걱정하기 보다 친구로 인해 대회가 걱정된 마음은 아니었을까? 선표는 오히려 이들의 배려가 더욱 속사정을 시원히 말 못하게 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뿐이었던 것. 생각하긴 쉬워도 진정으로 상대의 어려운 입장을 위해 실행해내긴 힘든 것인데 아이들은 어떻게 양보와 희생을 배우고 선표를 배려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이야기인 소유는 내 물건이 소중하듯 남의 물건도 소중함을 알게 하는 이야기였다. 다미는 죽은 엄마가 남겨주신 '따또(따로 또 같이)'라는 인형을 잃어버렸는데 그것을 본 친구들은 낡고 더러운 인형이었기에 누군가 버린 것인 줄 알고 쓰레기 취급을 한다. 나에게 필요도 의미도 없고 외양이 형편없기라도 하다면 누군가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길거리에 떨어져 너덜너덜한 빛바랜 사진 한 장이지만 사진의 주인에겐 고이접어 지갑속에 간직하던 가장 소중한 유품일 수 있지 않을까.

다미의 정직, 선표의 약속, 웅이의 용서, 나무의 책임, 병희의 배려, 오필이의 소유는 훌륭한 화음을 이루며 합창대회의 성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문용린 교수는 교육심리 전공자 답게 아이들의 사소한 감정변화와 그 원인을 잘 잡아내어 아기자기한 일상의 에피소드로 배치하였다. 거짓말하지 마라, 약속 잘 지켜라, 모범을 보여라, 친구 입장을 생각해라, 남의 물건도 소중히 하라는 틀에 박힌 주입을 하지 않기 위해 부러 아이들이 먼저 잘못을 하게 만들고 스스로들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도록 하였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죄책감과 동시에 난국을 해결하도록 자연스레 편지와 우체통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하여 교육적인 답안을 전달해주는 영리한 방식을 시도하였다. 반갑고도 지혜로운 교육이 아닐 수 없다.

도덕, 영원히 배우다

정직을 비롯한 여섯 가지 도덕원칙은 살아가면서도 매일 부딪치는 일상의 원칙과도 같다. 거짓을 안 하고 살기 얼마나 힘든가. 약속을 어기지 않기란 또 얼마나 힘든가. 밉기만 한 누군가를 용서하기란, 내 책임을 다하기란, 상대입장을 먼저 생각하기란, 상대 물건도 내 것처럼 여기기란 도덕교과서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동화를 읽다보면 정말 세상의 분진이 많이 묻었구나...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는 어짜피 이 동화를 읽고는 나름대로 교훈을 얻었을 것이고 이젠 내 삶의 원칙을 돌아봐야 할 시간이 아닐까 싶다.

여섯 가지 도덕원칙을 갈고 닦은 아이들이라도 결국 우리처럼 변변찮은 어른이 될지 모른다. 남의 생각을 슬쩍 가져다 써놓고선 태연하게 모른 척 하고, 핑계를 대어 약속을 파기하고, 형식적인 용서만을 하고 살아가는 우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행해놓고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것과 자신이 한 잘못이라도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를 바란다. 잘못했음을 알았기에 이제 반복하지만 않으면 되는 아주 쉽고도 어려운, 그 일만이 남았으니 말이다. 언젠가 아이들은 반드시 이 원칙의 잣대로 우리에게 질문 할 것이다. 거짓과 약속위반과 원망과 태만과 이기와 무관심을 지적하며 의아해 할 것이다. 아이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지만 아이가 더 깨끗하고 훌륭할 땐 그들로부터 다시 배워서라도 깨우쳐야 하는 것이 인생이지 싶다. 다만, 아이들이 우리처럼 더 많은 시행착오 없이 정확한 잣대를 가진 도덕원칙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잃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 역시 언제라도 허물어진 잣대를 다시 바로 세워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선생님이 떠오르는 독서를 했다. 하지만 도덕이란 지식이거나 학문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야무지게 알면서도 야속하게 마음을 접지 않는가. 다분히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우린 또 늘 흔들릴 터이니 고맙게도 이러한 책들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린다. 아이들의 행복한 도덕학교에 슬며시 숨어들어 이야기 몇 개 훔쳐들은 기분, 나쁘지 않다. 도강의 재미란 원래 학점도 신청하지 않아 자격이 안되는 학생이지만 수업이 듣고 싶어 찾아든 용기있는 의지의 실현에 있다. 끝까지 들키지 말자. 학부모들이여, 실은 도덕은 우리의 문제인 것을, 당신도 나도 잘 알고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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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01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의 글을 읽으면 참 좋을거 같은데,, 대부분의 책이 어린이실에 있어서
안타깝기만 하네요. 그 책을 읽은건 아니지만 한사람님의 글 덕분에 간접적으로 책 내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사람 2010-12-01 19:39   좋아요 0 | URL

좀 교과서적이긴 하나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