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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평점 :
사람들은 왜 지금 살고 있고 나중에 죽을 거면서 허구헌날 산다는 것, 죽는 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걸까. 그냥 살고 그대로 죽으면 안되는 걸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일까. 허나 생각한다고 해서 그리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산다고 하면 언젠가는 죽는 것에, 죽을려고 치면 다시 살아야 하는 것에 끊임없이 의미를 찾고 정답이나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사하거나 차선인 답을 찾아서 자기 것으로 만드려고 하는 것일까. 별자리 하나 없는 하늘에 나는 가을만큼 서러운 질문을 던져본다. 언젠가부터 답을 기다리거나 그것을 찾지 않고 질문만 바꾸어가며 더 신선한 질문을 찾아보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니까 질문함으로써 벌써 답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 가끔 누구에게라도 질문하기 참 민망한 것들도 있다. 더 서글픈 건 답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알아간다. 자문자답...나는 무릎을 탁 치고선 쓴웃음을 지어본다. 이 소설, 이 작가는 자신에 묻고 자신이 답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런지 독자인 우리에게 무언가 물어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하면 서운하실런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번 해보았으니 당신네들도 한번 해봐요...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고로 이 작가는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없다고 보여진다. 그리곤 자신에겐 상당히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대단한 우월감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먼저, 이 작품의 표지를 한번 볼까. 꽤 알려진 일본의 일러스트 작가 마츠모토 시오리의 그림중 하나를 대문으로 걸고 있다. 흡사 잔혹동화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그림속에서 소녀의 눈동자는 주로 파랑이거나 초록의 섬칫한 무표정으로 몽환적 환타지를 물씬 제공해 준다. 강남출신의 일류대 졸업자로서 오랫동안 방송과 영화물을 괜히 먹은 게 아닌 작가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작품의 흥행에 얼마간 일조한 그림이라 생각하기에 그녀의 홈피를 찾아 다시보기도 여간 즐거운 게 아니었음이다. 그런데 난 그림을 넘겨가며 처음의 호감과는 달리 단번에 그림들이 성적인 폭력을 암시하는 것을 감지 할 수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실제 어린 시절 성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하였기에 그것을 그림으로 치유하는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림이라는 것이 소비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특히 남성의 시각에서 롤리타 콤플렉스를 상당히 만족시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작품과 연관지어 본다면)역으로 남성들의 성적인 환타지를 자극하는 용도로도 유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일, 여성학 분야에서 이 책과 그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면 작가는 어느 정도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쨋거나 작가의 최초 의도는 그림에 숨은 상처와 드러난 이미지를 다섯 편의 이야기가 가지는 초현실적 상상력과 짝짓기 하려고 하였다고 믿기에 감각의 촉수에 박수를 보낸다. 이른바 먹히는 그림이 아주 잘 어울리는 이야기 였음이다.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자. 다섯편의 이야기는 모두 남녀 간의 사랑을 자극하는 멜로물이라 할 수 있다. 장르가 환타지, 미스터리, 호러등으로 다양화 하였다고는 하나 결국 서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는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이루어 질 듯한 사랑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결국 같이 잤거나 같이 잤을 번 한 꽤 말초적인 사연들을 상상력의 범위에 핵심적으로 위치시켜 놓은 덕에 은근히 남녀주인공 불문하고 남성위주의 성적인 우월감을 엿볼 수 있는 서사를 띠고 있다. 영화로 보자면 적당한 상업성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치밀한 전략으로 느껴졌다. 실제 연극이나 영화를 염두해 두고 스토리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학에서 이를 대중성이라 이름 한다면 그는 재미난 이야기를 아주 신선한 문학으로 요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어떤 이야기였는지 그 이야기를 잘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야기의 결론이 비교적 명확하다는 뜻과도 다름 아니다. 즉, 어떤 이야기도 모두 결론이 정해져 있다.(작가가 우리에게 원하는 게 없다고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스토리라인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은 충분했다. 각 이야기 마다 완벽해 보인 스토리라인이 지극히도 현실적인 도시인의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고 초현실적인 소재로 사용한 설정들이 전혀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다는 것, 외계인이나 연쇄살인범 같은 공격적 장치들이 물흐르듯 편안해 보이는 작가의 바느질이 결코 기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충격적일지라도 덮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기발한 상상력과 소파같은 편안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독특한 매력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카시오페아 공주>
SECRET PROMISE, 2006
가장 슬펐다. 딸은 서초동에 있는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남자는 아버지와 함께 약국을 운영하는 삼십대 중반이라면 그의 차는 BMW라면 방학을 맞아 코타키나발루 섬에 여행을 간다하면 그의 아버지는 <인류의 기원>을 읽고 계시다면 아마도, 마누라가 오년 전에 괴한에 칼을 맞아 죽은 것만 빼면 사는데 뭔 걱정이 있을까 싶었다. 남자는 딸아이의 유치원 선생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데 그녀는 사람과 사람간의 파동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외계인이란다. 특별한 일 없으면 한 천년쯤 살면서 이 행성 저 행성 돌아다니며 다른 생명체를 연구한다는. 누가 더 운이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들은 서로 눈이 맞은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남자는 무슨 비밀이 있는지 그저 취미로 열정을 불사르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종격투기 선수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이다. 한눈에 보아도 외계인 선생님이 지구에 오게 된 이유는 분명 남자와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남자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을 가진 여자에게 자신의 아내를 죽인 사람을 찾아 달라 부탁하고 여자는 거부한다. 아내가 죽은 후 오랫동안 복수의 칼을 갈았던 남자의 가슴은 새 사랑이 싹트기엔 너무나 불모지였던 것일까.
결국 여자가 말하지 않아도 남자가 알려고 하지 않아도 범인은 밝혀지지만 예정된 이별은 막을 수 없었다. 하필 우주적으로 이별하게 된 이들에게 남겨진 그리움은 카시오페아 별자리로 그려진다. 그녀는 떠나면서 피같은 남자의 복수심도 함께 가져간 것이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가슴이 되지 않고서는 다시 사랑 할 수 있는 가슴이 될 수 없다는 우주적 진리를 깨우쳐준 이야기였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살면서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준 사람에게 원망이나 복수심을 품지 않고 내 삶의 행로대로 걸어가기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그래, 어쩌면 내 자신보다 더 생생한 내 모든 원망을 외계인이라도 나타나 가져가 준다면 우린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와의 사랑을 포기할지라도 피로 얼룩진 내 가슴을 씻어 내리고 싶다. 두 번이 아닌 살면서 한번은 꼭 씻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섬집 아기>
LITTLE GARDEN, 2005
가장 쓸쓸했다. 이번 남자도 집은 삼성동, 직업은 펀드매니저, 장인은 재력가...그림이 좋다. 차는 아우디쯤 되려나. 어느 날 우연히 그의 집에 수상하게 생긴 고향친구가 불쑥 찾아온다. 남자는 친구가 반갑지 않고 친구는 무언가 치명적인 비밀을 확실히 가지고 나타난듯 하다. 친구 태규는 야수의 몸뚱아리를 한 근육맨이기도 했다. 참, 남자는 스트레스가 심해 신경성 발기부전이란다. 이쯤 되면 고향친구 역시 원하는 것은 있어 보인다. 이들 두 남자는 고향에서 우연히 어떤 실성한 여인을 살해한 후 사체를 유기한 것이었다. 끝에 가서 치정극으로 막을 내린 결말이 지극히 드라마타이즈 했다. 다만,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서사를 남자의 불안한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끌고 간 것은 끄덕 일만 했고 섬집 아기(제목인 만큼)의 정체성에 공포를 더해주는 에피소드가 빈약했던 것은 옥의 티만큼만 아쉬웠음이다.
<레몬>
START SIGNAL. 2004
가장 난해했다. 이야기의 구성을 탄탄하게 하려는 의지는 많았으나 나는 어쩐지 주인공의 논리가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 작품이다. 이런 류의 작품은 호흡이 긴 연출가를 만나 멋진 배경음악을 뒤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감상이 새롭지 않을까 싶다. 역시나 한남대교를 주로 건너온 남자의 여자 친구는 아나운서, 자신은 외국계 은행에 합격해 놓은 상태로 일상의 균열속에 '사랑은 레몬같은 거야'라 말하는 풋풋한 처자가 다가오는 이야기. 남자의 여자친구인 윤미는 <성공하는 그대를 위한 100가지 충고>의 충고를 따라 화가날 때 상대를 보지 않고 다른 곳을 응시하는 여자. 섹스 뒤에 남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싫어하는 여자. 이 여자의 도시적인 야망과 실천의지에 매력을 느껴 일상을 의지한 남자가 갑자기 레코드 가게를 차려놓고 하루종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며 입사를 망설인다면, 그건 헤어지자는 이야기와 무에 다른가. 크게 와닿지 않았던 개연성의 진부함이었다. 차라리 우연히 알게 된 핸드폰 매장의 알바를 하던 여자애 때문에 혼란스럽다 말하는 용기가 더 비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오랜 남자친구를 사고로 잃고 쉬이 마음을 열지 않던 레몬녀가 이벤트 요원이나 요릿집 종업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설정으로 나타나 또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느닷없음이 이들 두 사람의 애틋함을 자꾸 견제하는 듯 했다. 어짜피 들어갈 외국계은행을 다니며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가 사랑은 레몬같다고 하는 것이 나는 왜 이해되지 않았던 것일까. 차라리 그녀가 권해준 핸드폰을 자꾸 어루만지면 마술처럼 그녀(진이)가 찾아오는 느낌을 툭 터넣고 사랑은 요술같다고 하는 것이 더 소년스럽지 않았을지.
<좋은 사람>
TWIN BIRDS, 2008
가장 끔찍했다. 역시 여자는 패션잡지의 기자이며 강남 유흥가 한 구석 오피스텔에서 거주. 여자는 우연히 디자이너에게 소개받은 남자의 인상착의와 행동이 수상쩍어 여간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던 차에 쌍둥이였던 동생의 실종이라는 상처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불안이 자꾸 환기되면서 급기야 정신과를 찾게 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때마침 선배는 기획으로 연쇄살인범의 기사를 작성하게 되고 여자는 반사적으로 소개받은 남자를 떠올리며 공포에 노출된다. 이때 마치 연쇄살인범과 유사한 이미지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여자의 소개팅남 때문에 정신과를 찾은 여자는 뜻밖에도 정신과 의사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전의 수사를 선보이며 비극을 예고한다. 정신과 의사는 소개팅남을 이용해 그녀를 압박해오고 실종된 동생의 비밀까지 엮어내는 공포의 아노미를 연출한다. 여기까지...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후반부에 누군가 그녀를 구출하러 등장하는 구성과 해피엔딩의 결말은 너무 허리우드식이었음이다. 장편을 압축했다는 상황이 그 부분에서 이해가 되던 끄덕임은 다시 단편으로 압축하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남겨졌다. 그럴 필요성이야 작가의 영역이겠지만 어짜피 영화로 제작까지 한다고 알려진 이 작품을 굳이 단편으로 요약(?)해야 할 당위성이 질문으로 남는다.
<중독자의 키스>
BLUE MOON, 2007
가장 여운이 길었다. 역시나 직업은 영화프로듀서, 동호대교 건너 언니네 아파트에 얹혀살고 있는 서른의 미혼녀. 이야기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평행을 이루는 듯 하다가 마지막에 합체되며 접점부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모양새다. 그 하나는 그녀를 스토커처럼 미행하며 그녀의 그림자로서 거리를 유지하는 남자이며, 대학 1학년 철학동아리에서 만난 남자친구로 죽음을 알고 싶어 하는 수인이 두 번째이다. 이들 세 명은 도시의 고독을 견디는 방법으로 모두 중독이라는 기제를 사용했다. 여자는 스크린에 그림자는 타인을 엿보는 것에 수인이는 죽음이라는 실체에. 우리는 현실이 힘겨워 매달리는 그 무엇이 다시 현실과 자기를 파괴한다는 것쯤은 도시인된 경력으로 익히 알고 있음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멈출 뾰족한 방안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결국 인생은 중독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고독한 것이다. 가볍게 즐기면서 그 위에서 모든 걸 감당하는(하곤 했던) 작가의 우월을 느꼈다면 독자된 오해일런지. 사실 도시에 살면서 고독을 즐기지 않으면 그마저도 너무 피곤할 테니까. 이들 세명이 각자 자신의 고독을 소중히 지키는 모습이 가장 설득적이었다. 세 명이 현실에선 한군데서도 마주치지 않지만 그림자가 찍은 사진 속에 그녀와 수인이 행복하게 마주한 모습은 쓸쓸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마지막이었다. 서로의 고독함을 존중하는 것도 행복이 될 수 있구나...세개의 오롯한 외로움이 한자리에 따스하게 마주한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다섯 가지 이야기를 모아놓고 보니 참신한 신상이 된 느낌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강남에 거주하며 직업은 자영업, 펀드매니저, 아나운서, 패션잡지 기자, 영화 PD등의 도시적이면서 주로 청담동, 신사동에서 한잔들 하시는 서울의 남쪽 사람들이었다. 뭐랄까 외람되지만 서사에서 인생의 패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작가의 당연한 자연미를 엿본 기분이랄까. 살아온 직업적 지식으로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을 짚으라 한다면 자기성취, 자기만족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글들에서 독자와의 소통은 소원했는지 궁금하다. 전화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받을 것이 아닌가. 훌륭한 첨단의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전화를 걸 생각인 것도 알겠다. 어쩌면 계속 걸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울림이 분명치 않아 자칫 놓칠 수 있다는 걸, 받고 싶어도 듣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면 독자된 욕심이 지나친 것인가. 한국에서 방송국의 PD이면서 대접받는 작가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누가보아도 근사하고 확실한 밥벌이가 있는 상태에서 목구멍은 포도청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 한국 문단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한국 청취자들을 향한 소설이라면 충분히 성공이다. 단, 그에 만족하고 말 것 같지는 않아보임이, 안타깝다. 현재로선.
<덧붙임>
책에서는 마츠모토 시오리의 일러스트가 흑백인 게 아쉬워 홈피에서 원본을 슬쩍했다.
(그림/ 마츠모토 시오리 홈피 : http://www.ne.jp/asahi/secret/label/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