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뚜르 -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0
한윤섭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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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대체로 반갑습니다. 외국을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됩니다. 여러분은 외국에서 외국인이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기분이 어떻든가요? 아마 일본이나 중국인이냐고 질문을 받을 때가 더 많았을테죠. 만약 누군가가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았는데 한국인인 저는 그 사실이 몹시도 부끄러웠다면 그건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런데 만약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사연이 있었다면 그건 더 슬픈 이야기 아닐까요. 여기 같은 민족이면서 한명은 일본인, 한명은 한국인인 두 소년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프랑스어로 같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느 나라말로 친구가 되었을까요...

저는 세상에서 맨 처음 이별이라는 슬픔을 피부로 체감한 그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바로 어린 시절 서울로 이사오면서 친구들과 헤어진 그날이었어요. 그때 나누었던 동심의 순정이라는 것이 이젠 기억하고 싶어도 막연한 그리움으로만 남은 나이가 되었지만 오늘 잠시 두 친구들 덕에 어른임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구상 어느 나라에 살건 나는 한국인이지만 같은 민족일지라도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어른이 된 것, 그리고 한국인이 된 것, 그럼으로 한국의 어른이 되 버린 것이 많이도 슬펐습니다. 이 작품을 만나는 한국의 어른들은 저처럼 서러운 그리움에 복받칠 것입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많은 것이 미안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누군가 몹시도 미웠습니다. 우리 민족은 언제쯤이면 모두 온전한 한국인으로서 세상 어느 나라에도 보란 듯이 자랑스러워 질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오기는 할까요....? 

 

              

                                                     <한윤섭 글, 김진화 그림 / 본문 삽화 중에서>


어른이 어린이 동화를 읽고 눈물을 훔친다면 철이 덜든 탓인지 철이 든 탓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이런 감정을 자신의 소중한 기억과 만나게 한 작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최근에 우리 어른들만의 작품을 읽고도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없었기에 저는 작가가 유학할 때 살았다는 프랑스의 도시 뚜르가 애꿎게도 그리워 지더군요.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관광엽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성아래 위치한 마을과 은빛 강물, 그리고 집을 비추던 달빛까지 너무나 낭만적인 그곳에서 시작된 동화속 이야기가 적어도 거짓말 같았다면 그래서 저 먼 곳 지구 반대편 다른 나라의 훈훈한 이야기로만 느껴졌다면 좋았을텐데요. 어쩌면 우리 처한 현실이라는 지금과 이곳이 참으로 거짓말 같기 때문에 누구나 다 아는 오랜 거짓 하나쯤은 부러 꺼내어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요? 우린 항상 바쁘고 열심인데 '민족'이나 '분단' 혹은 조금 더 분명한 '북한'이라는 실존적 명제는 이제 지난 세대의 아픈 역사이거나 다음세대와는 거리가 먼 미래인 걸까요? 전쟁이나 이산가족, 북한 문제는 적어도 우리 다음 세대까진 이어지지 않을 자연스레 소실될 사회적 현상일 뿐일까요...이 무겁고도 외면하고픈 주제를 프랑스라는 제 3의 장소에서 따스한 동화로 옷을 입힌 작가의 깊은 마음에 고개를 숙여봅니다. 


 
  < 프랑스 뚜르의 언덕위에 위치한 쉬농성과 그아래 마을, 루아르강의 정경 >


 


<봉주르, 뚜르> 의 배경이 된 도시를 그려봅니다. 옛날 프랑스 왕족들이 너도나도 성을 지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성관광지가 되었지요. 작가는 뚜르의 고성지대 아래 회색빛 지붕이 올망졸망한 예쁜 주택에서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이라는 루아르 강물을 바라보며 오래된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저는 언젠가 파리의 세느강을 바라보며 우리의 한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옹색한 물줄기와 또 우리의 한강다리에는 반절도 훨씬 못 미치는 퐁네프 다리를 확인하고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요. 적어도 파리의 세느강을 목격하고 지하철을 한번이라도 타본 분들은 우리의 한강과 지하철이 얼마나 대단한 결과였는지(물론 규모와 청결면에서만요....)우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답니다. 유학생이 아닌 그 누구라도 다행히 세느강이 아닌 루아르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침실을 비추던 별빛과 달빛에 젖어보았다면 오래된 그리움...혹은 타지에서의 외로움이 더 사무치지 않았을까요. 바로 그렇게 매일 비추던 달빛에 이 작품의 주인공 봉주는 자신의 방 책상 모서리에 적힌 낯익은 글씨를 발견한답니다. "사랑하는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그리고 한뼘 떨어진 곳에 마치 답장이도 되는 듯 놓여있던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살아야 한다."


그만 한눈에 보아도 우린 저 낙서가 낙서만이 아닌 절실한 맹세이거나 혹은 소망이거나 아니면...유서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곤 이내 약속이나 한 듯이 반사적으로 우리의 조국과 우리의 가족...그리고 살고 있으면서도 살아야 한다고 적을 수 밖에 없는 아니 그렇게 적어가면서라도 꼭 살아있어야 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 절실함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일 것임을 깨닫습니다. 프랑스어 인사말인 봉주르와 같은 이름의 봉주라는 똑똑한 우리의 아들이 이 낙서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습니다. 비록 이름은 프랑스 적이지만 머리에 노란물을 들이는 건 유럽이라는 염색약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다는 봉주가 아니던가요? 엄마와 벼룩시장에서도 일본말로 인사하는 상인에게 이곳에 사는 동양인은 모두 일본인이 아니라 말하는 코레앙이 아니던가요?

아...저는 작품속 봉주가 우리 한국인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언젠가 프랑스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하신 분이 같은 동양인이지만 자신은 베트남이나 일본인,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각인시켜주려고 여기 한국에서보다 더 이를 악물고 공부하고 더 깔끔하게 하고 다녔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프랑스같은 유럽에선 자기네들이 보기에 한국이나 일본, 중국이 그저 같은 부류의 동양인으로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고 우리 한국인들은 누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굳이 일본인과 중국인과는 다르다는 걸(무엇이 되었건)밝히고 그것을 인정 받고 싶어 한다고 말입니다. 아마 그것은 우리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조금은 달라져 있을거라 믿지만 애국을 강요당한 우리 세대들은 문화적 우월감이 하늘을 찌를 듯한 프랑스 하늘에 우린 굳이 자랑스런 한국인이라 말하고 싶네요. 어떤가요? 한국이라는 나라의 아픈 과거를 실감하지 못하는 봉주에게도 그 핏줄이 이어졌을 것이겠죠? 그전에 바라보지 않았던 달님이지만 열 두살, 프랑스에서 보는 첫달이 비추던 조국과 민족, 삶에 대한 강렬한 문구가 자신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일 것이라 어렴풋이 감지 했겠죠?

봉주가 낙서아닌 밀서를 발견한 후 그 비밀을 좇아가는 그리고 마침내 비밀이 추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오래된 강물이 흘러가듯 잔잔히 펼쳐집니다. 낙서아닌 밀서의 주인공을 찾아가는 봉주의 여정이 속상하게도 많이 현실적입니다. 유럽에서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각, 외국에서 우리가 일본인을 이야기 하는 속마음, 같은 유색인종으로서 이슬람권 민족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민족이지만 남한인으로서 북한인을 바라보는 태도...봉주와 친구들을 비롯한 등장인물간의 대화 속에서 작가가 프랑스에서 살면서 접해본 많은 일상들을 어렵지 않게 겹쳐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덮고 호기심에서 비롯된 '낙서의 주인공 찾기'가 우리 조국과 우리 민족, 결국은 우리의 삶에 대한 위치 찾기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상 때부터 살아온 나라, 자기가 태어난 나라, 부모의 나라'인 조국은 같으나 '통치권이 미치는 집단'인 국가는 달랐던 토시와 봉주의 우정이 그들이 성장함과 같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발전이자 한국인의 성장이자 한국문제의 미래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동화로서 가질 수 있는 문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분단된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 분단되지 않은 외국에서 남한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성찰하게 함과 동시에 우리 윗세대들이 겪었고 우리 세대가 외면한 분단이라는 현실이 우리 다음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교훈이 아닌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감동의 박수를 보내고자 합니다. 



              < 토시네의 일본 식당이 자리했다는 플뤼므로 광장의 노천 카페 >



                  <회색빛 지붕과 베이지색 주택들로 이루어진 뚜르의 마을 풍경>


이제 우린, 프랑스로 여행을 간다면 굳이 고성여행을 핑계로 뚜르를 방문할 지 모르겠군요. 루아르 강변을 산책하며 공원과 광장에 들러 슬며시 외국인으로서의 감상에 젖어 있을 즈음 누군가 한국인이냐고 물어온다면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파리의 세느강 보다는 이곳 루아르 강을 더 좋아한다'고 말해보고 싶은데요. 그때 그들이 이미 우리에게 북한에서 인지 남한에서 인지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고성여행이 더 뜻 깊을 것 같습니다. 우린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인사할지 모르겠어요, '봉주르, 뚜르 !!' 우리도 여기보다 멋진 한강이 있어, 그치만 오늘은 이곳 뚜르가 최고야! 우리에겐 소중한 추억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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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7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사람님의 글을 읽게 되면 감성이 자극되는거 같고
읽고난 뒤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뭐라고 해야 되나..^^;;
마음이 짠하면서도 애틋한 여운이 강하게 남습니다.
조금 있으면 야간 일하러 가야하는데
하루가 끝나가는 즈음에 이런 멋진 글 한 편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ㅎㅎ
입에 발린 소리로 보실지도 모르겠지만 진심이랍니다ㅎㅎ
좋은 글, 멋진 사진들 잘 봤습니다^^ㅋ

한사람 2010-10-07 23:28   좋아요 0 | URL

글을 쓰시는 분들은 남의 글 밑에다가
절대로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걸 잘 압니다..
아예 침묵하거나..하게되면 거짓을 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지요^^

cyrus 님의 덧글이야 말로 잔하게 여운이 남는걸요~
아마도 아예 서평 쓸때 제마음에 남지 않았던 책들은 웬만해선(의무가 있는 책을 제외하고)
평을 안하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하루가 끝나갈 시점에 이런 칭찬..정말 감사해요 !!

해라 2010-10-1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 님:) 추천 꾸욱!!!^^

한사람 2010-10-15 10:53   좋아요 0 | URL

해라님 ~~~~~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