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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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만화란 중학교 시절 황미나의 <안녕, 미스터 블랙>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론 잘 기억나지 않는 이유들로 만화와 인연이 끊어졌기에 만화에 대해선 아직 '순정'이나 '로맨스', '환타지' 라는 장르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수적 독자층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감히 만화일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으며 최규석이라는 작가 또한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심정은 대학시절 늘 그렇고 그런 헐리우드 영화를 보아오다 어쩌다가 학회에서 장산곶매의 <닫힌 교문을 열며> 같은 영화를 본 기분이라 할 것이다. 만화라 하기엔 좀 애매하고 그렇다고 웃기엔 더 애매한 이 작품은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가을바람 만큼이나 신선하고 놀라웠다.

먼저 이 작품의 참신한 미덕은 무엇보다도 '표현과 감정의 디테일'에 있는 듯하다. 작가는 처음엔 60페이지 분량을 생각했다가 어찌하다 보니 125페이지의 살인적인 작화작업을 헤쳐나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장 한 장 일일이 선화작업을 하고 채색한 컷수가 어림잡아 800커트가 넘어 보인다.(세어보면서 새롭게 발견한 그림도 있다) 길바닥에 떨어진 지라시에 전화번호까지 새겨넣는 세밀함을 배경의 기본으로 유지한 덕에 그 노동량을 페이지가 넘어가는 손끝에서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공을 들인 덕에 요즘 일반만화는 물론이고 수채만화조차 접해본 일이 없었던 만화까막눈인 나로선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눈이 즐겁고 마음이 풍요로왔다.

공평한 꿈

하지만 그렇게만 말하고 말기엔 뭔가 좀 애매한 이 잔여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도 담겨진 이야기가 너무나 만화적이지 않다는 '리얼리티' 때문인 걸까.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김밥장사 어머니를 둔 강원빈 학생이다. 이름은 고급스럽지만 그의 외모는 원래부터 빈(貧)했을 것같은 뉘앙스가 물씬이다. 원빈이라는 배우가 생겨버릴지 미처 몰랐을 그의 부모의 센스가 아쉬울 지경이다. 실제로 작가는 미술학원에서 대학입시 만화강사로 일하며 학생들과 농담따먹기에 능했다고 했다. 그래서 작품엔 자학성 개그, 위악성 개그, 폭로성 개그가 난무한다. 원래 늘 거울로 확인하던 자신의 얼굴도 어느날 문득 정사진으로 새겨지면 그제서야 얼굴에 드리운 세월의 신산(辛酸)을 실감하듯 늘 보아왔던 서울의 거리, 동네학원가, 청소년의 뒷모습이 스틸컷으로 표현되고 나니 이토록 비정하고 짠할 수 있다니 새삼 우리 현실이 시려온다. 입시를 앞둔 청소년들의 실상이 그야말로 울기엔 좀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 웃거나 울거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화를 내는 것도 가능하지 -

울기도 뭣하고 웃기엔 미안하고, 화내기엔 썰렁하고... 얼마나 익숙해지면 상처에 무던해 질수 있을까. 나는 주방에서 오래 일한 어느 주방장의 수천 번 데인 손등이나 하도 발길질을 해서 발톱이 문드러져 버린 축구선수를 떠올렸다. 분명 매번 아프고 견디기 힘든 외상일테지만 반복된 내성은 본질이나 형태까지도 변하게 할 수 있는 '고통의 성찰'단계, 아프긴 하지만 견뎌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에 '알 수 있는 슬픔'이자 그러기에 '두렵지 않은 슬픔'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친구가 산전수전 다 겪은 아저씨, 아줌마가 아닌 꿈많은 십대 청소년들이다. 아... 이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꿈 많다'는 무책임한 수식을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많지는 않았지만 선명한 꿈은 있었다.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안형편 때문에 재능을 포기할 뻔한 원빈이에게도, 합격한 대학에 어떻게든 등록금을 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은수에게도, 단점은 없지만 몇 년 동안 특성이 없는 그림을 그려내던 부잣집 딸 지현이에게도, 지현이보다 성적은 높았지만 수시합격에 떨어진 윤선이에게도, 술집에서 알바를 하던 은지에게도 모두 꿈은 있었다. 이들에게 꿈이 없었다면 현실은 오히려 더 편하고 그런대로 살만했을까. 이들은 모두 확실한 꿈이 있었기에 현실이 아팠다. 학원비는 그들이 키우는 꿈의 속도를 좇아오지 못하고 툭하면 밀리기 일쑤고, 겉으로 천민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난하던 서점 사장에겐 노동의 사기를 당하고 만다. 언뜻 보아도 누구라 콕 짚어 말하긴 거시기한 누구와 참 비슷하게 생긴 학원 원장은 강사에게 살짝 손댄 그림을 학생응모작으로 공모전에 접수하라며 돈 주는 애들을 위해 일을 하라 핀잔을 준다. 어른이 보기에도 어른 됨을 무지하게 후회하게끔 만드는 어른들의 얼굴은 거리의 전봇대나 어지러운 간판, 포장마차의 불빛과 어우러져 늘 그 자리를 지키던 길고양이에게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음이다.

불공평한 재능

학원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사제지간에서도 그런대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꿈을 준비하던 이들에게 무엇보다 그냥 넘길 수 없었던 순간은 빈부격차가 곧 합격의 격차와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자신의 꿈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현실을 확인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수시합격자 발표를 둘러싼 학원내부 비리 갈등은 비단 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에서만 일어나는 비극은 아닐 것이지만 태섭샘과 달리 세상이 더 편해 보이는 종화샘이 보여준 어른들의 야합과 학생들을 향한 기만은 그의 반반한 얼굴을 더욱 역겹게 하는 대목이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90도로 인사하던 지현이 부모님보다 걱정하지 말라던 종화샘도 분명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시기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경쟁은 거기서 끝났지만 작품이후 지현이의 삶은 어떠했을까. 친구들 그림으로 만들어진 포트폴리오로 대학을 합격한 지현이는 대학시절을 떳떳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그렇게 기득권을 차지해버린 지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다시 자신의 아이를 같은 방법으로 지원해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자신의 그림으로 자신이 응시하려고 한 대학에 합격한 지현의 소식을 듣고도 원빈은 윤선이 처럼 울거나 은지처럼 화내지 않는다. 머리 좋으면 놀아도 공부 잘하고, 재능이 있으면 그림도 금방 그리고, 얼굴이 예쁘면 살기 편하다고 그러니까 '돈도 재능이다'라는 말로 우린 그저 돈이라는 재능이 없었을 뿐이라는 슬픈 의견을 내비치고 만다. 아이들의 꿈을 담보로 학원에서마저 철저하게 모순된 부조리를 겪으며 그 순간을 이해해 버리고 마는 원빈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것일까. '운도 실력이다' 나 '부모도 능력이다', '얼굴도 재능이다'같은 우리 세대들의 넋두리에서 진일보된 '돈도 재능이다'는 이 작품의 명언이자 사실상의 결론이었다.

"돈 외에 명예 그런 것이 있다고 하지만 결국에 돈이 있으면서 다른 가치가 붙어 있는 경우에만 그 사람의 가치가 입증되지, 돈이 없는 상황에서 학식만 있는 사람은 학식이 입증 안된 것으로 판단된단 말이에요 대중들한테. 그런 것을 좀 깨고 싶은 생각이 있죠."     - 작가 인터뷰 중에서

작가는 명예나 학식은 독립적으로 입증되는 가치가 아니라 돈이라는 자본 위에서만이 비로소 그 후광효과를 톡톡히 얻을 수 밖에 없는 종속적 가치라 주장한다. 즉, 돈도 없이 명예나 학식을 입증하기란 소위말해 지들끼리 땅 따먹는 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는 진부한 논리는 여기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재능은 적어도 타고나는 것인데 돈이 재능이라면 지현이 같이 날 때부터 타고난 돈으로 원빈이나 재수생 은수보다 조금은 더 쉽게 명예나 학식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세명 다 그림이라는 재능은 거기서 거기라 치고 돈이라는 재능에선 지현을 따라 잡을 수 없었기에 마치 백미터 달리기에서 50미터는 저만치 앞서 출발한 주자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암담하다.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기계처럼 그림을 그린 덕에 어찌하여 지현이와 같은 대학에 붙었다 하자. 그런데 마침 지현이도 어쩐 일인지 친구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탄탄대로로 좋은 직장을 배정받았다면 재능의 차이는 노력과 상관없이 절대로 좁혀지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원빈이와 은수에게 지현이와 경쟁하려들지 말고 자신과 경쟁하며 오로지 자신의 부족함만을 채우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으로 깰 것인가. 이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원빈이는 대학을 합격해 놓고도 은수처럼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자신을 앞에 두고 그야말로 울기에 애매한 상황에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 살아온 모든 내공을 발휘하고 만다. 이대로 끝인가? 슬픔을 일찍부터 내면화하며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아온 원빈이가 그 순간 만큼은 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슬픔을 위해 원빈이의 슬픔이 가라앉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눈물로 외면화 될 수 있었던 원빈이의 외침이 sound off 되면서 막을 내리는 이 작품의 야속함은 우리 모두의 심장을 억누르며 차마 울지도 못하게 하는 비루함을 선사하는데 대성공 한다.

재능과 꿈의 동행

이 작품은 우리시대, 울고 싶은 십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십대를 울게 하는 나머지 세대들을 위한 작품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고 눈돌릴 수 없다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향한 작가의 농담은 담배 한모금 들이 마시고 쳐다보는 가을하늘을 생각게 한다. 구름한점 없는 가을 하늘엔 왜 그리 떠다니는 것들이 많은 것일까.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태섭샘은 수업중에는 지현이의 재산을 노리고 있는 것은 자신이라며 원빈에게 농담을 던지다가도 어쩐 일인지 아이들 입시전략이나 원장의 위선을 대하는 갈등해결 국면에서는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표현된다. 아쉽게도 태섭의 사연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삽입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의도가 실제로 불의나 부조리 앞에서도 막상 팔 걷어 붙이고 투쟁하기엔 힘이 없는(아니 용기가 없는) 기성세대를 암시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그의 역할은 학원에서 원장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펜과 붓으로 아이들의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들을 멋지게 그려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원빈이는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해 지현이와 같은 대학에 입학하길 바란다. 은수는 화장실에서 헤어진 여자친구와 선후배로 다시 재회하길(화장실 청소와 그녀의 독설장면은 이 작품에서 표현과 감정의 디테일이 가장 완성도 높게 어우러지는 명장면이었다) 바란다. 윤선과 은지도 정시모집에선 합격의 축배를 들길 바란다. 생계를 위해서건 미래를 위해서건 한때 만화를 가르치며 아이들과 현실의 위악을 견뎌낸 그가 이렇게 독특한 창작력으로 주목받는 만화가가 되었듯이 그때 그 친구들도 각기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주길 바란다. 울기엔 좀 애매해도 나를 위해 울기엔 쑥쓰러워도 한명의 친구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확실한 어른이 되어주길 바란다. 방법은 없다. 묘안이나 전략도 없다. 좋은 어른이 꼭 좋은 환경에서 좋은 청소년을 지내왔으리라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미 어른 된 어른일지라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 이렇게 만화도 넘겨보고 그만 미안함에 냉가슴이 되곤 한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트럭밑에서 눈을 부릅뜨던 길고양이를 떠올린다. 다 지켜보고 있었을 것 같은 유난히 파랗던 하늘도 생각난다. 인생은 길고양이의 눈과 눈부신 하늘 사이에 위치하는 것 같다. 고양이는 재능이고 하늘은 꿈인 걸까? 우리는 가끔가다 고양이를 벗삼아 먹이를 줄 때도, 눈이 부셔 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하늘을 우러러 볼 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갈 길을 잃지 않고 앞을 보고 걸어가게 될 것이다. 재능과 꿈이 하나 될 그날까지 미련하게 반복 할 것이다. 그 외엔 없지 않을까? 


 
 - 어두운 주황과 카키톤의 모노톤을 유지하지만 하늘만큼은 파랑이었다 -



- 억지로 찍게된 사진이라지만 본인이 만족하는 것 같아 살짝 퍼왔다 -

그의 홈피에는 누가보아도 예쁜여자가 자신은 절대 예쁘지 않다며 한사코 부인 하는 류의 사람들이 제발 '객관적 지표로 볼 때 예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바란다고 한다.외모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에 관해 지나치게 겸손인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유무형의 자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누려온 혜택을 은폐함과 동시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도 애초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위한 작전이라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인물 덕을 봅니다'라며 당당히 말해왔기에 평판이 안좋아졌다고 말한다. 잘생긴 그의 얼굴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참고 : http://www.mokwa.net/

 < 덧붙임 >

오늘 새벽 (9.29) 우연히도(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격으로)  KBS '책읽는 밤'에서  최규석 작가와의 인터뷰를 시청했다. 그는 아이들과 같이 보낸 그 시절에 이미 꼭 만화로 그 시절을 이야기 하는 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 다짐했다며 그래서 이 작품을 마치고 어떤 것보다 보람있었다 말했다. 외모는 도시적, 예술적이었지만 의외로 약간의 사투리 투박한 억양이 무뚝뚝하게도 느껴졌지만 표정에서 소설가의 서사를 읽을 수 있었다. 만화를 하려는 친구들에게 막연히 만화가를 꿈꾸지 말고 나는 어떤 만화를 그리겠다는 분명한 좌표를 오래동안 생각하라는 그의 눈빛이 진지해보였다. 우연히 좋은(?) 작가를 알게된 것 같아 기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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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속 하늘처럼 요즘 가을 하늘도 너무 좋을만큼 파랗기만한데 왜 현실은 속시원하게 울 수도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웃을 수도 없을 정도로 애매할까요?? 만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와 한마음님의 글을 읽으니
뭔가 가슴이 먹먹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사람 2010-10-02 12:24   좋아요 0 | URL

만화라 하기 참 애매한 작품이었던 이유는...
아마도..서사가 소설적이라는 이유때문인 것같아요
다분히 소설식의(?) 결말을 지향하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