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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황홀 - 김도언 문학일기
김도언 지음 / 멜론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가는 삶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게 아니고,
삶에 대한 자신의 오해를 정당화하려고 소설을 쓴다...



 이 글을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와 시인이 되지 못한 자가 읽기를 바란다. 이 작품의 저자는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소설가가 된 듯하다. 많은 소설가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시인보다 많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러므로 시인이 되지 못한 자가 소설가가 되지 못한 자 보다 많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러므로 시인이 되고자 한 자, 시인이 되지 못한 자 모두 이 작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글로써 간섭하고 싶은 충동을 물리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였다. '문학을 하는 사람'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한 후 그 영향으로 마치 나조차 '문학을 아는 사람'이 되버린 듯...남의 일기지만 내 일기처럼 곁에 오래두고 싶은 작품이었다.

# 전날 밤

불안의 황홀이라...이사람 이름이 낯익다. 김.도.언. 일단 이름은 문학적인 것 같고 누구의 남편인 듯하다. 그래...작가들끼리 결혼한 사람들인 듯 한데...찾아보니 부인이 김숨이네...근데 두 명 다 소설가 아닌가. 이거 은근 氣싸움이 만만치 않을텐데...한명은 시를 써야 더 문학적으로 완벽한 커플 아닐까. 서른 여덟부터 거꾸로 서른 세살까지 일기를 '문학'으로 엮으셨네. 좋겠다. 이외수 작가처럼 그냥 트위터에 몇 자 적은 것도 그림넣고 모아내면 베스트셀러 되고 마는...그런 건 아니겠지...이거야 원, 작가라고는 하지만 남의 일기 훔쳐보고 평까지 하게 생겼다. 지난번 독고준처럼 일기라 해놓고 잔뜩 비평만 있기만 해봐...문학일기인지, 일기문학인지 오늘은 됬고 내일부터 들쳐 볼란다. 가을이 무서운 속도로 도착했다. 그래놓고 영 봐주지 않을 기세다. 책을 덮고 쓸쓸해 질까 두렵다. 느낌이 수상하다. 선뜻 펼치는데 주저함의 이유가 무엇일까.

# 아침

1. 독특하다. 솔직하다. 하지만 몇몇 단어들의 선택에 지나친 문학적 우월감이 엿보인다.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애석하게도 김훈과 고종석까지는 아직인 것으로 느껴졌다.(그들은 저자가 존경하는 작가들이니 맘 상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그 직업적으로 능란한 문체가 왜 그런지 참 매력적이다. 허구헌 날 술인 것으로 보아 그만 슬그머니 동석해 한잔하고 싶을 정도다. 생계와 창작 사이에서 병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사람인가 보다. 일기가 마치 자신의 지병을 기도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까지 연출이든 말든 상당히 일기자체에 충실했다고 느껴지기에 그 온전한 '솔직'은 강박에 가까운 '정직'으로 이해 될 지경이다. 이로써 적당한 가식이 더 편해진 나를 발견하는 꼴이다.

2. 자신이 좋아하는 어느 시인과 술자리를 한날 그 시인의 직업이 현재 예순 나이에 지방 내륙도시의 보일러공이라는, 그래서 그 직업에 고개 숙인다는 김도언에 울컥해진다. 그런데 그 시인 오래전에 처와 자식을 위해 술을 끊었다고 하니 코끝이 시큰해진다. 시인이 먹고살자고 처자식을 위해 술을 끊었다는 건 詩를 끊었다는 것 아닌가. 시인을 사랑한 여자는 더 이상 시인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시인은 사랑을 해도 이별을 해도 살거나 죽어도 진실해야 할 것. 진실하나가 시인의 전부인데 세상은 참 시인같지가 않다. 그 순간 시인이 무척 되고 싶었으나 그 욕망을 잠재운 그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왜 매일 시인을 만날까.

3. 그는 작년에 내가 한참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 때 김승옥 작가를 초대해 아내와 지인들과 함께 따스한 시간을 가졌다, 고 적었다. 살면서 몇 편의 단편을 읽었는지 모르지만 여지껏 읽어본 단편 중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서울, 1964년 겨울>...을 쓰신 희대의 천재아니던가. 자신의 원고도 당선시켜주고 주례도 섰으니 보통의 인연은 아닌 게다. 그가 작가인 것은 부럽지 않으나 문단과 절교하셨다는 김승옥과의 인연만큼은 부러웠고(이것은 강호동과 이승기가 친한 것이 부러운 수준과 다를 바 없지만서도) 속된말로 '지자랑'격인 인연일기는 그의 평생재산이자 문학적 경쟁력으로까지 읽혀졌다.(미안하다. 나는 이렇게 속물적이라)

4. 문장이 선동적이다. 열정을 태우는(태웠던)사람들 로부터 격한 감동을 느끼며 그것을 주체 못하는 일상을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고통이든, 좌절과 패배든 타자의 극한이 그에게 미학적 쾌감을 드높이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을지.

   "살아있는 몸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진부한 것이다. 살아있는 몸은 성욕을 관리해야 하고,
    날씨와 식사량등을 체크해야 한다. 부패하지 않은 몸의 형편은 그토록 남루하다."   - 60P

5. 감정선이 고르지 않다.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을 고백할 때만이 뜨겁고 동료문인들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땐 무서우리 만치 냉철하다. 그 당연한 텍스트가 나 역시 편치가 않다. 그는 일기라는 장르적 특성안에 자신의 허울과 문학적 미완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순서없이 허용할(허용받을) 생각으로 문학일기를 표방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그의 일기를 보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 또한 나의 서평을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다행히 공평하다. 서른일곱 연말에 그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견해를 인용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고바야시 히데오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한 그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가는 자신의 사상과 세계관, 정체성등을 이해하고 그것을 작품 속에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고, 작품을 창작하는 동안 비로
    소 자신의 사상이 무엇인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존재다"  - 고바야시 히데오

흔히들 작가가 세상의 이치와 도리를 훤히 꿰고 있어 그토록 격조높은 작품을 창작해 냈다고 생각하지만 통찰의 깊이는 작가의 자각의 결과가 아닌 작품의 자각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작가는 훌륭한 작품보다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 역시 한권의 책을 읽고는 모든 생각을 집대성 한 것처럼 글을 쓰지만 사실은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된 생각이 결국 하나의 작품을 겪어낸 내 성찰의 질량임을 깨닫는다. 결국 '작품의 자각'이 통렬할수록 독자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인 것이다. 아...자각...자각...입에 살근살근 씹히는 단어의 질감이 참으로 관능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왜 시를 쓰지 않았을까.

# 점심나절

1. 시인 김수영과 고종석이 꼽은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처럼 그도 아끼는 우리말 열 개를 꼽으며 '직관의 사전'풀이를 해주었다.(이외수의 감성사전 표절! 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형식이 유사하다고 몰아부칠 수는 없는 일) 아침에 김훈과 고종석만 못하다는 말 취소다. 정확히 내가 아끼는 단어와 세 개가 일치하고(아..이 주관적 평가란) 감성의 논리적 묘사는 충분히 시적이며 다분히 이기적이다. 한 개의 단어를 선택하기까지 그간의 눈물이 느껴진다. 누구도 거침없이 내뱉는 그만의 자유를 감탄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 비문단형 비주류 작가로서 고종석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는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자신의 글만큼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적었다. 내가 생각할 때 작가들은 작가이어야 할 때를 제외한 모든 시간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같다. 점점 그의 글이 슬퍼진다. 조짐이 안좋다. 텍스트에 감염될 가능성이 농후하고...이사람 전염성이 아주 강한 문체를 지니었다. 남의 일기 읽고 눈물 흘리긴 싫다.

3. 이래도 되는 걸까? 그는 자신의 지인을 만나고 돌아온 날 그들을 이야기 하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물론 일기니까)그들의 가족사와 사연을 꺼내놓고 연민과 공감의 산문을 완성한다. 그의 지인들은 그의 일기에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이고 자신의 큰형은 큰아버지에 양자로 입적되었다는 등등의 사연이 문학으로 생산되었음을 반가워 할 것인가.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이후 한동안 가족들과 냉랭했다고 전해지며, 공지영은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나눈 담소를 에세이에 적었다가 절교할뻔 한 적 있다고 고백했다. 내가 그의 지인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으로 출간됨에 적어도 구두로 통보내지는 허락의 절차를 가졌을 것으로 믿는 바, 그렇다면 그의 지인들은 참 너그러운 분들이며 그럼으로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4. 등단이후 글만 쓰지 않고 육체를 썼다는 사실에 상처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 세월이 오늘의 일기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쓰려고 문학을 하였나 생각될 정도로...아니 일기를 썼기에 문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서의 진도가 나가지 않아 잠시 글을 덮는다. 어느 선배가 그의 소설을 달콤하다고 했다는데...진한 다크 초콜릿 같은 느낌이다. 보통이상으로 쓰지만 결국엔 감미로운.

# 늦은 오후

1. 사람 중에 가장 불편해하는 부류는 남을 이기려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똑같다. 아버지는 늘 '져주면서 살아라' 말씀하셨고 그 무기력한 유전자는 작심하고 남을 이기려는 사람들을 경멸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언젠가 하루키도 경쟁을 죽도록 싫어한다고 고백한 글이 기억난다. 꼭 세상에 경쟁자라고는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저런말 할 때 나는 그 절망만은 이겨보고 싶다.

2. 시인들과 만나고 온 날 조금 더 뜨겁다. 그들과 시를 이야기 하고 온 날 그의 글이 지독하게 환멸스럽다. 노동자의 문법을 구사하다가도 일순간 예술가의 문법으로 돌변하는 그가 두얼굴을 가진 직업예술인과 같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모든 계간지 송년회는 다 불려 다니는 그가 이상하게도 그날들의 술자리에는 말을 아끼는 것 같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인가. 말하면 안되는 이유인가. 송년회는 꼭 요약하는 그의 일목요연이 계속하여 걸린다. 그래도 글이 중반부를 너머서면서 부터는 좀 덜 불안해 보인다. 그 이야기는(일기가 과거로 회귀하는 형식이므로)지금이 가장 불안하다는 말이렸다. 그렇다면 가장 황홀하다는?

3. 많은 문인들의 부고소식이 나를 슬프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청준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이 서운하다. 박경리 작가 때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말도 속상하다. 출판사 편집장을 하면서 문인들의 뒷모습만 보아도 눈물이 핑돌았다는 그가 나와 같지 않음에 상처받는 내가 웃기다. 사계절 내내 비를 그렇게 설레고 달뜨게 기다려 놓고선.

4. 시인이 쓴 산문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 역시 시적인 부력으로 변형된 산문을 외면하고자 한다. 시를 쓸 줄 알면 나 같으면 산문 같은 건 안쓴다. 이 사람, 시를 읽을땐 꼭 술을 마신다, 고 적었다. 소설보다는 시집을 읽는다고 한다. 일기를 표방한 전문적인 시평도 더러 보인다. 혼자 사는 시인이 밤새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자신에게 전화 걸어 울면서 자신이 쓴 시를 읽어주었을 때 그만 울고 한숨 자라고 했다. 코미디언이 자신의 코미디 연기에 웃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이다. 난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서럽게 운 적이 있는데...코미디언의 웃음은 아마도 눈물이었을 거다. 시인의 눈물은 웃지 못함이었을까. 잘한일임에도 그가 야속했다.

5. 이어령 선생님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무척이나 정중하게 고독하고 적막한 분이라 평하였다. 박범신 선생님을 뵈었을 땐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제자를 당당히 소개하는 각별한 정이 부러웠다고 했다. 피천득 선생님은 그에게 "찬물에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최인호 선생님은 "왜 소설 안 쓰고 직장생활 하는 거냐" 덕담을 해주신 덕에 그만 가슴이 쿵쿵 울렸다고 했다. 아...김승옥과 산책하고 고종석이 책을 선물해준다는 그가 도대체 부러울 것이 무엇인가. 


온종일 그의 일기가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한 하루였다.
이상하게도 그의 일기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 진다.
그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감성의 온도가 높았던 것인지,
일기가 뇌리에 누적될수록 내 가슴의 온도가 올라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책을 덮고서 그 오묘한 매혹에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했던 건
히스테릭한 그의 사유때문인지 델리케이트한 표현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를 키운 건 8할이 불안이었던 것 같다.
공부하고 있으면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는 모범생적인 면모는
차라리 섬뜻할 정도였다.
몇 년에 걸친 일기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고민,
'문학을 어찌 할 것인가'에
읽는 내내 어찌할 바를 모를 독서였다.

많은 문장들 중에
가장 설득력있게 다가온 그의 한마디로 당혹함을 대신하겠다.
불안은 불안하지만 불안의 황홀은 불안하지 않았다.
결국, 황홀이었다. 
 
                ... 사랑은 출렁이는 물, 흔들리는 줄과 같은 불안의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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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9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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