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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나원참, 원나참, 참나원....
이 소설 한마디로 유쾌경쾌상쾌 하다 !!!
큰 기대 없이 열어본 선물상자나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영화 한편이 꼭 그 쪽 일 것이다. <청춘극한기>라는 물과 불의 속성을 한데 섞어 놓은 듯한 묘한 느낌의 제목에 대한 호기심과 전작 <모던보이>를 통해 이미 재기발랄한 발상을 기대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은 그냥 말 그대로 그뿐이었다.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얼마 전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벨이 울리고>를 덮고는 다시금 청춘연애소설에 대한 얼마간의 기피현상까지 생기게 된 나로서는 솔직히 다시 <청춘>이 반갑지 않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소설, 이 작가 퍽이나 괘안타. 영화로 치면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 SF, 적당한 멜로까지 온 장르가 잘 버무려진 12세 관람수준으로 학생관객까지 동원할 수 있는 설이나 추석 특수 초특급 흥행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읽는 내내 웃다가 짠하다가 또 뒤늦게 미소 짓다가 진지해지다가 결국 마지막엔 시원스레 박수치며 고개 끄덕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책 읽는 동안 연관되어 떠오르는 다른 잡념없이 오직 책읽는 즐거움에 몰두하며 빠른 시간에 책을 덮었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고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없는 건 사랑해 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이 없음을 안타까와 하는 고백의 심정과도 같을 것이니 이해를 바란다.
희망을 짝사랑하는 청춘...
이 작품에는 일, 연애, 인간관계 등 살면서 그다지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자칭 백수의 시나리오 작가인 서른 정도의 일인칭 화자 '옥택선'(2PM의 옥택연이 내내 연상되었지만)이 등장한다. 그녀는 스타벅스에서 소개팅을 하며 자신의 유품으로 주성치와 에릭 로메르 DVD, 아이북과 아이팟, 낡은 나이키 조깅화, 어그부츠,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의 메모들, 이 빠진 머그잔, 머리냄새가 밴 쿠션 등을 떠올리고 끈기나 패기, 희망, 행복같은 것에는 변변찮은 생활만큼이나 큰 미련이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명의 부실한 청춘임에 틀림없다. 여기까지는 흡사 김애란식 소설에 등장하는 편의점에 가는 이십대 여자와 비슷한 현실에 냉소적인 성격을 예상할 수 있었다.
"..희망이 간절한 사람은 때론 희망이 두렵기도 해. 희망밖에는 가질 게 없으니까...그러면 오히려 희망에게 배신당할까봐 피하게 되지.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숨는 것 처럼." 58p
어린시절 재혼한 아버지는 다시는 가질 수 없는 희망으로 옥택선의 가슴에 문신이 되고 결국 무언가 간절할수록 그것이 두려워지는, 그리하여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방어기제로 무관심이나 냉소, 미련 버리기 같은 부차적 반응이 일상화 되 버린 것이다. 이긴 자가 다가진다는 말을 청춘이 한참 지난 후에 비로소 깨달은 나는 그래도 순진한 축에 속했지 싶다.
마법의 시간으로의 초대...
그러나 작품 초반부에 묘사되는 남수필과의 소개팅 분위기, 첫사랑인 김연우와의 흥분된 재회 및 뜬금없는 고백상황, 남수필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연락에 이은 연우와 함께 공무원들로부터 도망치는 장면까지 빠른 속도로 펼쳐지던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남수필이 문자메시지로 실마리를 제공한 이균과의 만남이 전개되는 중반부로 넘어 오면서 부터는 잠시 머뭇하며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데 이는 러브 바이러스의 이차적 징후인 '마법의 시간'을 거치면서 그 절정에 달한다.
- 내가 누구인지, 나란 존재를 이루는 사건과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내가 애써 외면한 진실은 무엇인지, 그것들을 추리하며 슬슬 나를 지배하는 그것에 대하여 감을 잡기 시작했다. 139p
이는 러브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인해 나타나는 1차적 징후 - 온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뛰고, 흥분으로 들뜬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해지는 느낌 - 를 겪고 난 후 그동안 잊고 지내던 무의식 속 자신의 지난 과거를 하나씩 회상하는 것으로 비록 바이러스 자체는 무방비 상태에 들어온 것이지만 이를 충분히 객관화 하여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암시하는 상징적 희망기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독감에 걸린 후 주사를 맞으면 내 안의 지독한 바이러스와 그것을 퇴치 하려는 약들과 치열히도 치고 박으며 서로의 힘겨루기를 하는 내적인 싸움의 시간처럼 말이다.
'마법의 시간'에서는 20년 전 헤어진 아빠를 다시 만나기도 하고, 아직은 미숙하기만 했던 스무살 첫사랑을 기억나게 하고, 어릴 적 뛰놀던 동네를 생각나게 만든다. 비록 지금 바이러스에 감염된 청춘은 가시화되지 않은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하지만 마법과도 같은 반추의 시간은 어떤 외부의 자극이 아닌 순도 백프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하여 결국엔 바이러스가 아닌 진짜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하는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하나, 옥택선이 첫만남에선 옥신각신하며 서로를 반신반의 하다가 바이러스로 인해 서로가 원치않던 사랑을 느끼지만 백신의 치료로 정상이 된 후에도 병리학적 전염병이 아닌 진짜 가슴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 현실의 인물 이름이 이균인 것은 아마도 바이러스의 가짜 사랑균과 가슴속 진짜 사랑균 두 가지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개인적 이익을 위해 동료의 희생을 당연시 하고 성공을 위해 비열한 태도가 경쟁력이 되 버린 이균의 가슴에도 러브바이러스의 감염 후 비로소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되었으니 그 또한 옥택선 만큼 기뻐할 일이었다.
감염을 희망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작품 후반부에서 옥택선이 성교수를 만나 러브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을 위해 기꺼이 실험용 쥐 신세가 되는 과정과 이균과의 바이러스가 아닌 진짜 사랑의 시작을 암시하는 장면, 뜻하지 않게 '바이러스 가이드'가 되어 자신처럼 다시 다양한 감염자를 만나 사회적 역할을 마다않는 능동적인 변화들은 분명 같은 <청춘>을 소재로 하면서도 궁극에는 그 불완전함과 현실적인 고뇌, 실존적인 물음 등을 던지고 막을 내렸던 무거운 작품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결말이었지만 몇 개의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작위적인 연출-아이돌 그룹의 리더와 사제지간의 바이러스 가이드가 되는 설정 등-은 자칫 만화적인 설정으로 인식될수 있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나 역시도 앞만 보고 달려온 청춘에 대해 그 치열했던 시행착오를 다시 떠올리면 얼굴이 뜨거워 고개를 들기 민망할 정도이다. 사실 청춘이라는 극한기를 거쳐 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이나 희망 버리기 같은 소극적이고 패배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하면서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학부모가 되고 중년이 된다. 많은 상처와 미련으로 세상에 속고, 사람에 사랑에 다치다 보니 굳은살의 모양이 그만 얼음같은 외모로 굳어져 버렸던 것은 아닐까.
지금 청춘이든 아니든 이 작품을 접한 독자들은 잊고 지내던 시간들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처럼 다시 찾아오는 마법의 시간을 경험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 안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도 될 바이러스 일 것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을 시켜도 좋은 바이러스 일 것이다. 목숨을 위협하거나 완전한 치료가 불가능해도 좋을 것이다. 잠시 활동을 멈췄다가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잠복 감염의 증상을 보여도 좋을 것이다. 아마도 삶을 청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앞으로 끝없이 살아내는 동안 사랑하며 살 수 밖에 없을 바이러스.
이제, 나에게도 전염되었음을 알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