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배달의 무도편은 오랜만에 마음을 움직인 뭉클한 방송이었죠. 방송 속살은 무한도전 일꾼들이 세계 곳곳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집밥을 전해주는 이야기예요. 아프리카 가봉 대통령 경호실장, 칠레 라면집 사장님, 미국으로 입양 간 여자군인,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까지 모두 저마다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어요. 입양기관에서 만난 외국인도 오래 기억에 남아요. 한국말을 들었을 때 너무 아름다워 한국을 알고 싶었다고 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말을 사랑하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고, 그만큼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도 부끄러웠어요.  \

 

 일본 하시마편을 볼 때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죠. 일본은 우리나라 강제징용 사실을 쏙 빼놓은 채 하시마섬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렸어요. 열여섯에 강제로 끌려가 더운 탄광 안에서 속옷 하나 입고 일하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할아버지들. 그렇게 죽어가며 외쳤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요.

 

 “아이고, 배고파라... 나 쥐나서 못살겠다.”

 

 그분들 넋을 기린 위령탑은 찾을 수 없는 외진 곳에 있었죠. 사망 기록도 모두 불태워 사라졌다는 사실을 듣고 너무 화가 났어요. 나라 잃은 서러움과 아픔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죠. 우리도 모르게 쓰는 일본말투 부터 하나씩 뿌리 뽑고 우리말도 바로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봐요.

 

무한도전 - 배달의 무도(2015.8.15/8.29/9.12 방영)

 

1. 버릇처럼 쓰는 영국글자말

 

. 3위 할 것 같은 질문 앙케트! 3위 할 것 같은 질문 조사!

. 아쉽, 가봉키드(?)인데 아쉽네, 가봉꼬마인데

. 기부 배틀 버금가는 해외배달 배틀 기부 싸움 버금가는 해외배달 싸움

. 남바원(?) 이렇게 하고 으뜸(엄지척) 이렇게 하고

. 레시피 전수 완료 조리법(맛길잡이) 전수(넘겨주기) 완료(끝냄)

. 스케줄상 아쉽게도 불발된 만남 어긋난 일정으로 아쉽게 못 만남

. 식신 준하가 보너스로 준비하는 한국의 맛 먹보 준하가 덤으로 차린 한국의 맛

. 자주 오는 듯 메뉴를 고르고 자주 오는 듯 음식(라면)을 고르고

. 제가 정말 스페셜하게! 제가 정말 특별하게!

. 기름 온도 체크 기름 온도 점검

. 동그랗게 마는 것이 포인트! 동그랗게 마는 것이 핵심(알맹이, 고갱이)!

. 단무지 없는 김밥 시식 타임 단무지 없는 김밥 맛보는 때

. 결혼에 골인커플도 여럿! 결혼에 성공도 여럿!

. 숙자 언니의 나이스 초이스 숙자 언니의 멋진 선택

. 클래식하게 예스럽게

.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축하는 플래카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축하는 현수막

. 밝은 목소리로 말 꺼내는 일본인 가이드 밝은 목소리로 말 꺼내는 일본인 안내원

. 너무 몰아주니 커트해주는 센스! 너무 몰아주니 잘라주는 슬기!

. 압도적인 고릴라의 비주얼에 난리법석 엄청난 고릴라 모습에 난리법석

. 짧지만 임팩트 있었던 만남 3세트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3묶음

. 스펙타클한게 있겠지? 재밌고 굉장한게 있겠지?

 

. 지목해서 디스...? 가리켜 깎아내림...?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 무례)의 준말로 상대방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공격해 망신을 주는 힙합의 하위문화를 일컬어요. [출처: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들온말(외래어)들이 자꾸 만들어져서 답답해요.

 

. 박사장의 플레이팅에 이어 박사장의 음식놓기(음식꾸미기)에 이어 (박사장이 음식을 접시에 놓고)

 

요즘 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플레이팅이라는 말도 많이 써요. 원래 뜻은 도금, 이예요. 국어말집, 지식백과를 아무리 뒤져도 공장 작업 기술로 쓰이고 음식을 접시에 담고 꾸미는 뜻은 없어요. 그렇다면 음식놓기’, ‘음식꾸미기라고 하면 어떨까요?

 

. 잘 몰라요아우라 발산 잘 몰라요기품(분위기, 느낌) 드러냄

 

아우라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뜻하며 독일어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국립국어원에서는 기품이라고 다듬어 쓰자고 했어요. 국립국어원이 다듬은 말도 중국글자말이 많네요. 아쉽죠. 더 좋은 우리말도 찾아봐야겠어요.

 

2. 바꿔 쓸 수 있는 중국글자말

 

. 아이고, 수고해라. 아이고, 애써라.

 

우리는 흔히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잘 합니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버릇처럼 쓰죠. ‘수고의 어원은 15세기 문헌에 슈고로 나와요. 이는 한자어 수고(受苦)’입니다. ‘고통을 받음이라는 뜻이죠. 지금 힘을 들이고 애를 씀이라는 뜻과 다르죠. 알고 보면 나쁜 뜻을 담고 있어 윗사람에 쓸 수 없다고 해요.

일터에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집에 갈 때 남아 있는 사람에게 수고하세요.”라는 말보다 먼저 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같은 인사가 좋아요. 동년배나 아랫사람에게는 애쓰세요.”애써.”라는 말도 좋겠죠. [출처: 표준 언어 예절, 국립국어원 2011]

 

. 첨언, 언제 또 가봐 덧붙인 말, 언제 또 가봐

. 가봉에서 절대 접할 수 없는 음식 가봉에서 조금도(죽어도) 맛볼 수 없는 음식

. 제작진 호출에 다시 모인 셋 제작진이 불러 다시 모인 셋

. 아드님을 예전부터 부르시던 호칭 있을까요? 아드님을 예전부터 부르시던 별명(이름) 있을까요?

. 단도직입 곧바로

. 칠레에 거주중인 남편과 둘째 아들 칠레에 사는 남편과 둘째 아들

. 멤버들 제일 먼저 출국하는 명수 구성원들 가장 먼저 떠나는 명수

 

멤버라는 말도 많이 써요. 국립국어원에서 밝힌 다듬은 말(순화어)은 회원, 구성원, 선수라고 하네요. 말이 잘 안사는 느낌도 들어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해봅니다. 동무들은 어떨까요?

 

. 한국말 능숙한 외국인 또 등장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또 나타남

. 이건 시중에서 먹을 수 없는 맛이야 이건 쉽게 맛볼 수 없어.

. 이제 마카롱 음미하러 이제 마카롱 맛보러

. 매일 저녁을 먹으며 날마다 저녁을 먹으며

. 착하고 매일 같이 놀아서 좋아요 착하고 날마다 같이 놀아서 좋아요

. 어떻게 매일 재밌어요. 어떻게 날마다 재밌어요.

 

. 정차 중인 차들을 상대로 영업 중 서 있는 차들을 상대로 영업 중

. 우선 칠레말로 거는 아버님 먼저 칠레말로 거는 아버님

. 치밀한 작전 설계 후 꼼꼼한 작전을 짠 다음

. 금세 아이 같은 미소가 둥실 금세 아이 같은 웃음이 둥실

. 재석이 선물하는 저녁 식사 재석이 선물하는 저녁

.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고마운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 때마침 자택 귀가중! 때마침 집으로 돌아옴!

. 떨어져 있으면서 전하지 못했던 애정 떨어져 있으면서 전하지 못했던 사랑

. 공유할 수 있어 더 소중해진 추억 함께 할 수 있어 더 소중해진 추억

. 밀가루 옷 입은 닭고기 투하 밀가루 옷 입은 닭고기 넣기(퐁당)

. 박사장의 노고 덕에(?) 노릇노릇 잘 튀겨진 닭고기 박사장이 애쓴 덕에 노릇노릇 잘 튀겨진 닭고기

. 옆에서 항상 챙겨줄 수 없기에 옆에서 챙겨줄 수 없기에

. 저희가 주변을 알아보니 저희가 둘레를 알아보니

. 하시마 주변만 도는 배 탑승 하시마 둘레만 도는 배에

 

. 말은 서로 통하지 않지만 말을 서로 나눌 수(주고받을 수) 없지만

. 한국을 통해 경호팀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사람으로 경호팀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통하다는 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해요.

 

. 애정 넘치는 동생들 사랑스러운(사랑 가득한) 동생들

. 나탈리 눈에 포착된 실수 나탈리 눈에 들어온(잡힌) 실수

. 변수가 많은 하시마 입도 변수가 많은 하시마에 들어감

. 두 번 만에 입도하는 하시마 두 번 만에 들어온 하시마

. 일본에서 지난주에 공수한 겁니다. 일본에서 지난주에 가져온 겁니다.

. 철근과 콘크리트 뿐인 회색철근과 콘크리트 뿐인 잿빛

. 형이 제일 그리웠을 텐데? 형이 가장 그리웠을 텐데?

.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 속속 내오시는 어머니 잇달아 내오시는 어머니

. 드디어 등장핵심 소스 드디어 나타난 알맹이(고갱이) 양념

. 이제 마카롱 음미하러 이제 마카롱 먹으러

. 꿀 뚜껑 맛 가미 꿀 뚜껑 맛 보탬

 

. 임신 중인 딸을 위한 미역국 임신한 딸을 위한 미역국

‘-이라는 말도 많이 써요. 그는 수감 이다. 대학 재학 중에 입대했다. 그러던 중에 그가 왔다. 이런 말투는 영어 현재 진행형을 잘못 옮긴 일본 말투예요. ‘-대신 가운데를 써도 옳지 않아요.

 

*그를 만나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얘기를 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얘기를 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3. 틀린 말

 

. 좋겠다~ 아프리카에서 무슨 식사를 할까아~? 좋겠다~ 아프리카에서 무얼 먹을까?

 

식사끼니로 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을 뜻해요. 무슨 음식을 먹음을 할까? 무슨 음식을 할까? 앞뒤가 안 맞아요. 아프리카에서 무얼 먹을까? 이렇게 바꿔야겠죠.

식사하러 가시죠.”라는 말도 많이 써요. 왠지 밥 먹으러 가시죠.”라는 말보다 높이는 말이라 느낄 수 있어요. 뿌리박힌 잘못된 생각부터 바로 잡아요. ‘식당대신 밥집이라 부르면 참 푸근하고 정겹죠.

 

. 리포터 완전 빙의 리포터로 바뀜

. 완전 감동이겠지? 정말 뭉클하겠지?

. 완전 기대 정말 기대

 

. 훈내 풍기며 본인 아이디어 핏대를 세우며 준하 생각

 

훈내뜻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군내라는 말은 본래의 제 맛이 변하여 나는 좋지 아니한 냄새를 뜻하는데 훈내훈훈한 냄새라고 짐작해봐요. 그런데 흐름을 보면 그 뜻도 어울리지 않아요.

 

. 새하얀 백지 같은 비천만(?) 광희 새하얀 백지 같은 천만 아닌 광희

 

비천만도 없는 말이예요. 아마도 천만 관객 영화를 못 본 광희에게 천만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형돈이 말한 듯해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도는 이상한 말들도 이렇게 마구 말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본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4. 쓰면 안될 말

 

. 정말 가슴 아프고 현실적으로 와 닿는 사연 하나를 고르게 됐습니다. 정말 가슴 아프고 피부에 와 닿는 사연 하나를 고르게 됐습니다.

. 바라만 봐도 감동적인 바라만 봐도 가슴 찡한

. 양심적으로 솔직히

. 푼타 아레나스의 이국적 건물들 사이로 푼타 아레나스의 다른 나라(낯선) 건물들 사이로

. 열정적인 자기 소개 혼을 바친 자기 소개

. 어떤 요리보다도 폭발적인 인기! 어떤 요리보다도 엄청난(어마어마한) 인기!

. 강제적으로 해내야 했던 작업 할당량 강제로 해내야 했던 작업 할당량

 

지난 글에도 ‘-을 쓰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버릇처럼 너무 많이 쓰고 있어 고치기가 참 어려워요. ‘-을 찬찬히 돌아보면 그 뒤에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는 사실 새삼 또 느껴요.

 

. 신용카드가 보편화되지 않은 동네 신용카드가 널리 퍼지지 않은 동네

. 대중화돼 있지 않던 양변기 널리 퍼지지 않던 양변기

. 칠레에선 먹기 힘든 한국식 닭강정 칠레에선 먹기 힘든 한국 닭강정

. 일본 최초 철근 콘크리트식 아파트 건설했다고 일본 최초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 건설했다고

. 명수 식대로 풀어내고 온 마음 명수 나름대로 풀어내고 온 마음

중국글자말에 를 붙여서 어설픈 말을 만든다고 이오덕 선생님도 말씀하셨죠. 온난화, 일원화, 형상화, 내면화, 간소화, 무력화... 정말 많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신 쓸 수 있는 우리말은 꼭 있어요. ‘-도 중국말투예요. ‘-을 빼도 말은 아름답게 흘러요.

 

. 음 스멜~ 스뎅(?) 스멜~ 음 냄새~ 스테인리스 냄새~

 

스뎅은 스테인리스를 일본식 영어로 발음한 말이예요. 어린 아이들까지 보는 예능프로그램에 이런 말들이 나오면 씁쓸해요. 그동안 받았던 좋은 느낌과 뭉클함이 사라질까 걱정도 들어요. 아직도 남아있는 일본말투는 뿌리 뽑아야겠죠.

 

. 선영 씨가 살아온 이야기와의 만남 선영 씨가 살아온 이야기와 만나

 

와의는 어찌자리토씨(부사격조사) ‘에 매김자리토씨(관형격조사) ‘가 붙은 것인데, 지금 꽤 널리 쓰고 있지만 이것은 일본말 との를 그대로 옮긴 거예요. ‘韓國との交涉을 옮기면 한국과의 교섭이예요.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은 ()’는 그대로 두고 를 붙이지 말고 움직씨를 쓰면 된다고 하셨죠. 보기를 들면 다음과 같아요. [우리 글 바로쓰기1, 128쪽]

 

* 노조위원장은 금일 중으로 김 회장과의 면담을 희망하고 있다.

노조위원장은 오늘 안으로 김 회장과 만나길 바라고 있다

 

. 내리자마자 멘붕 내리자마자 짜증

 

멘붕멘탈붕괴라는 신조어로 나이든 어른도 알 정도로 널리 퍼진 말이죠. 이런 말들을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처음에는 재미있게 쓰고, 젊은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는 말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말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잡아먹고 있어요. 모든 느낌말을 멘붕이라는 말로 싸잡아 말하죠. 당황스럽다, 짜증난다, 화난다, 울화가 치민다, 울고 싶다, 황당하다, 놀랐다, 식은땀이 흐른다 같이 느낌말들이 참 많은데 말이죠.

 

살펴보니 고쳐야 할 말이 많네요. 1012일에는 지난 17호 글과 편지를 무한도전 김태호PD에게 보냈어요. 워낙 바쁜 일꾼들이라 그 뜻이 잘 전해질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꾸준히 보낸다면 생각은 조금이라도 해보겠죠.

 

(민들레처럼.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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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2 :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이오덕 일기 2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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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자는 밤 - 퇴임한 날

 

42년 교직을 어쩌면 이렇게 미련도 한 올 없이

헌 옷 벗어던지듯 훌훌 벗어던지는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딴 곳에다 꿈을 두었던가?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랑은 아직도 저 총총한 눈망울 반짝이는

아이들한테 가 있다.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삶은 그대로 감옥살이 42년!

이제야 나는 풀어 놓인 한 사람의 인간

인간이 되었다.

퇴임식-

부끄러운 내 교단생활을 끝장내는 그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내 방에 홀로 앉아

그래도 한 방울 눈물도 없이 이렇게 태연하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하구나.

산 같은 마음이 있어서인가?

하늘 같은 믿음 때문일까?

그래도 한번쯤은 큰 소리로

통곡이라도 해 봄직한데

어쩌면 목석으로 굳어진 것 아닐까?

자리에 누워도 잠이 안 온다.

쫓기고 시달린 그 많은 나날에도

밤마다 차라리 평안한 죽음을 생각하며

잠을 잘도 잤는데,

오늘 밤엔 어쩌자고 잠이 안 온다.

내일 새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인가?

소풍날을 앞둔 밤의 어린이 마음인가?

얼마나 어리고 철없는 마음인가?

마구 짓밟히고 쥐어뜯기고 뿌리 뽑히는 풀 같은 어린 생명들

그들을 살리는 일 이제부터 시작되는데,

어쩌자고 잠은 안 와 들떠 있는가?

어린애같이!

 

 조그만 방에서 퇴임식을 마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난다. 학교생활을 감옥살이 42년이라고 하실만큼 답답해 하셨지만 늘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던 선생님.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깡마른 어깨를 넘어본다. 일기 속 선생님 학교생활이 스르륵 지나간다.

 "참 많이 애쓰셨어요."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리고 선생님 손을 말없이 꼭 잡아드린다. 조용히 방을 나오며 생각한다. 내가 학교를 떠나는 날, 난 "내 꿈은 아이들이다."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어두웠던 우리 역사 속 온 몸으로 뜨겁게 사셨던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이오덕 선생님 일기다.

 

 *그런 짓을 해서 점수만 따고 상장만 받는 것을 목표로 학교를 경영하는 것이 가장 유능한 교장이다. (71쪽)

 

 *모두 기계가 되어 있어 학교가 교장인 내 한 사람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154쪽) 

 

 *교감 선생은 교육을 꼭 그런 장부나 물질적인 증거로 남겨 놓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교육이란 그런 게 아니래요. 교육한 표적은 그런 행사 결과를 증거로 남기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아이들 태도에 영향을 주는 데 있는 겁니다. (267쪽)

 

 *이렇게 겉모양 다듬는 것이 교육자들의 가장 긴급ㅎ고 중요한 할 일이 되어 있는 세상인데, 나는 이런 세상을 모르고, 무시하고 지냈으니, 이제 나는 이 학교에서도, 우리 교육계에서도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338쪽)

 

 아직도 그렇다. 학교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교에 '아이들'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름만 혁신학교, 그 속에는 보여주기 위한 성과만 있는 학교도 많다. 뿌리박혀 있는 거짓교육, 일기를 살펴보면 그 뿌리가 꽤 깊다. 

 

 *지금 우리 나라의 교육은 국민학교에서부터 중고등대학에 이르기까지 시험 준비 교육으로 단편적인 지식만을 밤낮 강제로 주입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바보 만드는 교육, 병신 만드는 교육입니다. (107쪽)

 

 *사람되는 공부에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 일하는 것, 둘째, 책 읽는 것, 셋째, 생각하는 것,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오늘날의 일반 학교에서는 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책 읽지 않는 인물을 기르고 있는데, 이렇게 보면 여러분들이야말로 가장 참된 교육을 받게 되는 행복한 학생들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46쪽)

 

 마리타스 졸업식에서 그는 교육이 가야할 길을 생각한다. 그 당시도 학교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에서 새길을 보니 참 씁쓸했다. 사회를 바로 보지 못하는 이에게 건낸 선생님의 따끔한 비판은 시원했다. 지금 우리에게 회초리같은 따끔한 말을 해줄 큰 스승이 그립다.

 

 *노 양은 한참 동안 교직 초년생이 겪은 여러 가지 경험담을 얘기했다. 무슨 체육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상을 못 타서 윗사람한테 꾸중당한 일, 학력검사 성적이 나쁘다고 야단 맞은 일,... 참 너무 기가 막힌 얘기들이었다. (124쪽)

 

*정말 요즘은 훌륭한 수업을 볼 수 없다. 연구 논문이나 교육 자료 잘 쓰고 만들어 점수 따서 영전하는 사람은 있지만 수업 잘한다고 이름난 사람은 없다. (248쪽)

 

 지금 학교 선생님들은 행복할까? 지옥같은 경쟁을 뚫고 우수한 인재들이 교단에 들어선다. 행복한 꿈을 꾸며 학교에 들어서지만 그 꿈이 곧 무너진다. 무엇때문에 힘들까 생각해보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참 놀랍다. 무려 삼십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인데 말이다.   

 

 *버스에서 라디오방송 뉴스가 나오는데 들으니 아직도 광주 사건이 해결이 안 난 것같이 말하는 듯했다. 얼마나 피를 흘려야 이 나라가 바로잡힐는지, 막막한 느낌이다. (174쪽)

 

 일기 속에는 굵직한 역사가 곳곳에 담겨있다. 바로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도 선생님이 보고 들은 살아있는 이야기로 쓰여있다. 일기가 살아있는 역사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학교때 선배와 함께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충격적인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을 보며 토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 속 선생님과 함께 분노한다. 부정적인 표현, 감정표현까지도 검열을 받았던 시절, 마음이 답답해진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는 말처럼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얻어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렇게 얻어낸 민주주의 사회. 지금은 어떤가? 다시 답답해지지만 그 암울했던 시절도 이겨낸 우리 힘을 믿는다.

 

 *이원수 선생님은 이제 운명의 시간이 경각에 놓인 것 같으셨다. 얼굴이 부은 것이 가라앉았는데, 입을 벌리시고 누워 계시는 모습이 거의 해골만 남으신 것 같았다. ...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나만 울음이 북받쳐 엎드려 잠시 울었다. 눈물을 닦고 나서도 또 눈물이 났다. (237쪽)

 

 이오덕 선생님의 스승인 이원수 선생님도 돌아가신다. 장례식장에서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만큼 큰 영향을 주고 믿었던 삶의 기둥이었구나 싶었다. 눈물이 난다.

 

 *나무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 없을까? 사람은 자기 몸 치료하는 것밖에 모른다. (300쪽)

 

 *산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밟아 죽인다는 것임을 새삼 생각해보았다. (314쪽)

 

 일기 곳곳에서 개구리 입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주고, 길잃은 비둘기를 보살펴 날려보내며, 모르게 밟아죽인 개구리를 불쌍히 여기는 선생님 모습을 본다. 아마도 이오덕 선생님 생각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바로 사랑이다. 자연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셨고, 아이들과 약한 이들을 사랑하셨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살아가시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 모든 것은 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끝맺는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느낀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일하는 데 기쁨을 발견한 사람은 죽음도 두렵지 않다.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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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약이 엄마 그림책이 참 좋아 25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그림책은 진한 연필로 투박하게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 빛깔을 입히지는 않았지만 검은 빛깔로 악동같은 니양이 모습을 잘 살렸다. 소중한 생명을 나타내는 달걀과 병아리, 그리고 달은 노란 빛깔로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달걀을 꼴깍 삼켜 먹어버린 니양이는 시간이 지나자 점점 배가 불러온다. 니양이 뱃속에서 알이 자라더니 결국 응가로 삐약이를 낳는다. 응가를 누는 삐약이 모습, 정말 익살스러우면서도 재밌다. 아이들도 참 빠져들며 보겠다. 삐약이가 태어나며 당황하는 니양이 모습도 참 사랑스럽다.

 

 

 악명높은 '니양이'도 자기가 낳은 삐약이를 돌보며 '삐약이 엄마'가 된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된다는 것. 어버이가 되는 것은 그렇다. 아무리 모진 사람도 아이를 낳고 길러보면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 사랑이 뭔지, 왜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지, 아이가 아프면 왜 내가 더 아픈지, 그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생명, 따뜻함, 그리고 사랑이 담뿍 담긴 참 재밌는 그림책이다.    (민들레처럼. 201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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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탕 선녀님 그림책이 참 좋아 7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옛날 어릴적에 동네 목욕탕에 한 달이면 한 두번은 꼭 갔다. 그 어릴적 목욕탕이 아직도 있다. 둘레가 개발되면서 이 목욕탕도 없어질 줄 알았다. 그래도 꿋꿋이 남았다. 수 년전 그 목욕탕에 가본 적이 있다. 옷장이 조금 바뀌긴 해지만 목욕탕 구조는 그대로였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옛 추억에 잠겼다. 탕 속에서 갖고 놀던 장난감, 목욕 끝나고 맛있게 먹었던 삼각우유가 떠오른다.

 

 추억이 새록 돋는 그림책이다.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힘이 그림책에 있다. 그것도 나와 동떨어진 곳이 아닌 가까이에서 시작한다. 오래된 장수탕에서 꼬마 아이는 선녀님을 만난다. 재미있게 함께 신나게 놀고 선녀님에게 요구르트를 선물로 준다. 꼬마 아이는 감기에 걸리지만 선녀님이 밤에 불쑥 나와 돌봐주며 낫는다는 이야기다.

 

 이 그림책은 익살스러운 인형이 참 머릿속에 남는다. 백희나 작가는 그림이 아닌 이런 입체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책이 많다. 그림보다 이야기에 실감나게 더 빠져들기도 하며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곳곳에서 살아있는 표정들이 저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목욕탕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겪은 일,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음식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 재밌겠다.    (민들레처럼.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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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 개정판 그림책이 참 좋아 19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구름빵으로 널리 알려진 백희나 작가 그림책이다. 독특한 그림과 다양한 표현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기발한 생각들이 그림책에 녹아들어 정말 그림책 재미를 폭 느끼게 해준다.

 

 한 여름날 사람들을 에어컨을 씽씽 틀며 더위를 쫓는다. 너무 더워진 지구. 달이 똑똑 녹아내린다. 부지런한 반장 할머니는 큰 고무 대야를 들고 뛰쳐나가 달 방울들을 받는다.

 

 

 반장 할머니는 노오란 달 물을 샤베트 틀에 나누어 담아 냉동실에 넣어둔다. 갑자기 정전이 되지만 반장할머니 집에서만 노오란 빛이 새어 나와 사람들은 빛을 따라 할머니 집으로 모인다. 할머니는 달샤베트를 하나씩 나눠주고 사람들은 그걸 먹고 더위를 잊고 시원하게 잠든다. 그러다 이 그림책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달이 녹아 살 곳을 잃어버린 토끼가 할머니 집으로 찾아온다. 이런 깜찍하고 기발한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놀라며 정말 어떻게 하지 고민을 했다. 지구에서 살 공간을 마련해줄까? 다른 별을 소개해줄까? 어떻게 해야지 생각하니 참 재밌다. 아이들과도 여기까지 읽어주고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 지구환경을 생각하며 함께 읽어도 좋겠다.

 

 결과는 더 기발하고 놀랍다. 좋은 그림책 작가들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그림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 이런 그림책을 만들어주는게. 참 고맙다. (민들레처럼.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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