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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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다 읽고 나서, 루스 웨어라는 신예 작가와 책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봤다. 이 책의 내용이 벌써 영화제작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리즈 위더스푼이 운영하는 영화사에서 제작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있었다. 위더스푼이 직접 주연을 맡게 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인기가 있단 말이겠지. 출발이 좋군.

 

소설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는 10년 간 연락이 두절된 청소년 시절의 절친으로부터 결혼초대가 아닌 싱글 파티(여성판 총각파티)에 초대 받은 작가 노라 쇼에게 지난 48시간 동안 벌어진 사건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왜 결혼초대가 아니라 싱글 파티 초대일까? 친한 친구라면 싱글 파티보다 결혼초대가 우선일 텐데. 게다가 노라 쇼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소설의 전개를 위해서. 소설은 영국의 오지 마을 유리성에서 2박 3일을 보내게 된 이십대 중반의 남녀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그린 정통 추리소설이다.

 

시작은 흥겹고 즐거운 싱글 파티에서의 한 장면이 아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노라 쇼가 병원에서 도대체 지난 며칠 동안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 또한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전개 기법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노라의 플래시백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가지 말았어야 할 그런 자리에서 벌어진 비극의 실마리를 좇는 과정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어 보인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시키는 데자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추리소설의 기본기에 충실한 설정과 구도가 마음에 들었다.

 

싱글 파티를 주관하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플로가 자신의 고모 별장으로 모두를 초대한다. 플로는 거의 싱글 파티의 주인공 클레어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싱글 파티를 치러 주겠다는 강박관념을 시달리듯 참석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전이된다. 설상가상으로 유리성처럼 보이는 오지의 별장은 당연히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공간이다. 이웃도 보이지 않는. 이럴 때, 누군가 외부로부터 침입해 온다면 속절없이 당할 판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루스 웨어 작가는 외부의 적 대신 친구라고 생각했던 내부 인물들이 더 무섭다는 추리소설 전통을 <인 어 다크, 다크 우드>에 그대로 이식했다.

 

한편 개인적으로 주인공 노라 쇼가 범죄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설정에 주목했다.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선에서 사건의 추이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까. 옛 친구였던 클레어의 싱글 파티[hen party]에 미묘한 감정을 가진 상태로 또다른 학교 동창 니나와 참석하면서 이야기의 수레바퀴는 요란하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노라가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살인용의자로 몰리는 가운데,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주변 인물들의 심리세계를 파고드는 장면은 탁월했다.

 

유리성에서 벌어진 사건의 모든 걸 한꺼번에 들어내는 대신, 노라 쇼의 기억이 더듬어 가는 대로 서사 구조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노라의 부분적 기억상실은 아주 유용한 소재다. 조금씩 드러나는 기억과 대비되어 도대체 누가 범인일까라는 스릴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나중에 영화화되면 눈으로 뒤덮인 숲 속을 가로 질러 달리는 노라의 추격 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꾸며질지 자못 기대가 된다.

 

기본 설정도 그렇지만, 10년 전에 있었던 주인공 노라 쇼와 제임스 쿠퍼 사이에 있었던 비밀을 기억상실증에서 회복해 가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 그리고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 싱글 파티를 위해 모인 5명 중의 한 명(주인공을 제외한)이라며 역추리해 가는 과정이 아주 인상 깊었다. 물론 노라의 플래시백과 현재 병원에서 회복 중인 주인공의 심리적 고뇌가 빚어내는 스릴과 속도감도 일품이었다. 이제 막 작가로서 발걸음을 내딛은 루스 웨어 작가의 또다른 도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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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 한 남자 사랑의 기초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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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은 적이 있던가. 보통이 17년 만에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로 쓴 <사랑의 기초>를 읽었다. 버거운 직장생활과 결혼에 이어지는 전투육아로 고단한 와중에도 꾸역꾸역 책을 읽었다. 보통의 따르면 우리는 서구에서 18세기에 도입된 부르주아 계급의 고안해낸 결혼 시스템에 대한 관념과 제도의 충실한 후계자라고 한다. 삶이 고달파서인지 작가가 창조해낸 그리고 상당히 자신의 삶을 닮은 벤과 엘로이즈의 결혼행진곡이 남의 이야기처럼만 들리진 않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보통 작가가 벤이라는 남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서술해서 그런진 몰라도 정말 공감대가 팍팍 형성되는 그런 느낌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 닿을 수 없는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사랑이라는 기초로 결혼에 골인했지만, 주지하다시피 결혼생활이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결혼생활을 위한 최소한 필요조건이라고 해야 할까. 결혼이라는 시스템에 일단 들어오면, 부르주아들의 욕망을 억압하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일단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의 구성원이 늘어갈수록 일이 고단해지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엄마 아버지였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다. 도전은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느냐는 어려운 과업이 기다리고 있다. 보통 작가가 거의 도발에 가까울 정도로 섹스 라이프에 대해 대담하게 다룬 점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어찌하오리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랑 역시 느릿한 속도로 녹슬고 닳아간다. 믿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게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놀이공원을 찾아가는 길에 벤과 엘로이즈가 벌이는 혈투 장면에서는 정말 크게 웃었다. 어쩌면 그렇게 현실을 닮았을까. 최고의 완벽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항상 좋은 결말은 아니었다. 차라리 부부생활 중에 벌어지는 상처와 두려움의 근원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우리는 더불어 살기라는 과업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알 수 없다. 아니 솔직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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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
제임스 설터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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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마음산책에서 나온 제임스 설터의 1957년 데뷔작 <사냥꾼들> 보면서 든 생각 두 개. 드디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설터의 책 표지를 장식했던 던컨 한나의 이미지에서 탈출했다는 점(정말 대환영이다)과 왜 계속해서 번역자가 바뀔까 하는 생각. 예전 경험을 유추해 보면, 헤르타 뮐러의 책 번역자가 모두 달라서 출간된 뮐러의 책에서 동일 작가의 균질성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점이 바로 떠올랐다. 나름 첫 두 권의 책을 번역한 박상미 작가와의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내 생각과 출판사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어쨌든 앞으로도 5권의 책이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나의 설터 컬렉션이 늘어갈 생각을 하니 그냥 기분이 좋다.

 

*** 오 맙소사, 책 표지의 비행기 그림이 던컨 한나의 이미지가 아닐 거라고 나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다시 확인해 보니 던컨 한나의 그림이란다. 이 작가가 전투기 그림도 그렸다고? 미치겠다 정말. 아니 ‘집구석의 화가’(a painter at home)라는 별명을 가진 작가가 왜 전투기 그림을 그렸냐고.

 

로쟈 선생이 알라딘 북플에 남긴 글을 보고 설의 데뷔작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책을 주문해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딸랑 5% 정도. 하지만 일주일 동안 읽을 책이 갑자기 너무 많아져서 잠시 휴지기를 가졌다가 어제부터 다시 시작했다. 재밌어서 단박에 절반을 다 읽어 버렸다. 위키피디아를 뒤져 작가의 신상을 조사해 봤다. 제임스 설터의 본명은 제임스 아놀드 호로비츠, 배경을 바로 알 수 있는 이름이군. 1925년생으로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군인 출신 작가였다. 2차 세계대전과 특히 한국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점이 눈에 띄었다. 소설 <사냥꾼들>에서도 일본을 거쳐 한국전에 투입된 주인공 클리브 코넬 대위는 작가의 분신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100번의 전투비행을 마친 베테랑 조종사로 1952년 2월에 한국에 도착해서 미그기를 격추시킨 기록도 가지고 있다.

 

31세의 클리브는 7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로 남들은 군경력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만 전장의 흥분을 자아내는 짜릿한 분위기를 동경한다. 문제는 전투기 조종사로서는 치명적인 시력 약화 문제가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전쟁이 마지막으로 생각한 클리브는 한국전을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전투기 조종사로서 탁월한 전훈을 세우고 전역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에이스 더치 이밀 대령 휘하에서 편대장이 되지만, 교묘하게도 자신이 출격하는 날마다 적기를 만나지 못해 공적을 쌓지 못하는 긴장의 나날이 계속된다. 언젠가 창공을 날다가 빛 속으로 사라지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미 5대의 적기를 격추시켜 에이스가 된 라이벌 로비 대위 편대팀이 공적을 올리는 것을 지켜보는 클리브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인간 세상 어디에나 등장하는 경쟁구도가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기이하게 생각한 점은 하늘에서의 전투에 나서는 용사들이 하나 같이 자신의 안위보다는 적기를 격추시켜 소위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매스컴을 타서 주위에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겠다는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한국전쟁은 휴전단계에 접어들어, 일개 비행전단의 활약이 크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 듯이, 미그기를 모는 소련 전투기 조종사들도 공적을 세우기 위해 마치 먹이를 향해 벌떼처럼 달려드는 F-86 세이버와 굳이 공중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 점이야말로 우리의 주인공 클리브 코넬 대위가 번번이 허탕을 치는 진짜 이유였다.

 

하지만 진짜 클리브의 라이벌은 로비가 아니었다. 그는 바로 일본에서 마주치기도 했던 풋내기 조종사이자 자신의 휘하에 있는 소위 에드 펠이었다. 책 뒤에 실린 ‘야비한 성공과 장엄한 패배’가 의미하는 게 무언지 궁금했는데 미그기를 추적하는 가운데 윙맨으로 리더를 호위하는 본연의 임무보다 적기를 격추시켜 에이스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타인의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위험 아랑곳하지 않는 자칭 ‘닥터’ 펠의 치기어린 행동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클리브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공군 에이스의 자리에도 오르지 못할 그런 위인이었지만, 미그기 격추라는 전훈을 애처롭게 원하는 이밀 대령의 후원 아래 오직 결과만이 말해준다는 사회의 평범한 진리에 따라 영웅으로 추대되기에 이른다. 어쨌건 간에 닥터 펠의 연속된 성공은 클리브를 더욱 소외시키기에 이른다. 자신의 본심을 잘 아는 들레오와의 도쿄 휴가를 보내다 만난 일본 여성 에이코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되뇌이는 클리브의 모습에서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남자의 진심을 엿보기도 했다.

 

마지막 무대답게 100번의 미션 비행을 앞둔 클리브 대위는 멋지게 적의 에이스 케이시 존스를 잡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일이 공교롭게 진행되려고 하다 보니 사실을 판별할 수 있는 카메라가 고장이 나버리고 클리브의 윙맨 헌터 소위마저 연료부족으로 추락하면서 아무도 클리브의 전훈을 입증할 수 없게 되버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클리브의 선택은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제임스 설터 작가는 새로 등장한 애송이 에이스의 눈부신 활약에 반비례해서 갈수록 침잠해 가는 주인공 클리브 코넬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모든 것이 정량화되어 비교대상이 되어 버린 각박한 현실세계의 시각화는 보는 사람을 다 답답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클리브의 애송이 펠에 대한 정당한 지적이 수용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미 사회는 그 때부터 야비한 성공을 희구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과정 따위는 필요없다, 오로지 상황판에 표시된 미그기의 격추 숫자만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의 선택지는 시간이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다할 실적이 없던 도터스처럼 오로지 100번의 출격을 마치고 무사히 고향으로 귀환하고 싶다는 소망마저 야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읽기 시작한 지는 열흘 정도 되었지만 사실 이틀 만에 완독해 버렸다. 그 정도로 몰입도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어쩌면 소설의 배경이 한국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에 비해 친밀도를 느꼈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제임스 설터 작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정제된, 그리고 삶의 진실과 인간 내면세계에 대한 정밀한 고찰이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향후 반세기 가량 지속될 작가의 문학적 오딧세이의 출발점을 알린 작품이 바로 <사냥꾼들>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말 멋진 소설이다. 계속해서 작가 중의 작가라는 제임스 설터의 책들이 출간되길 바란다. 올해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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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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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 술에 취하여 정신없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

 

술을 사랑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술 드시는 게 싫어서 나는 크면 나중에 술 먹지 않는다 했지만 다 거짓말이었다. 사반세기 동안 술을 마셔왔다. 요즘에는 여건상 예전처럼 들이 붓지 못하고 있지만 술꾼들이 그렇듯, 언제나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그러던 차에 여기저기서 권여선 작가의 신간 <안녕 주정뱅이> 추천하는 글을 읽고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구해다가 읽기 시작했다.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읽기 시작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안녕 주정뱅이>는 2013년 여름부터 2015년 겨울까지 발표된 모두 7개의 소설로 구성된 셋트상품이다. 그리고 기대했던 표제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소설에 술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기대한 주정뱅이는 찾아볼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소설집에서 술은 어떤 특성을 가진 매개체라기보다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들을 이 소통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되어진다. 그리고 그 저간에는 상실이라는 공통분모가 자리 잡고 있다.

 

술을 끊지 못해 요양원을 들락거리는 여자와 병상에서 죽어가는 남자 수환의 이야기인 <봄밤>으로 주정뱅이 시리즈는 시작된다. 무시로 현재의 상황이 툭 던져지고,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작가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알려준다. 술에게서 위안을 찾지만, 술은 임시방편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에서 남자와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일 따름이다. 일명 ‘알류커플’로 불리던 수환과 영경 역시 알고 있었을까.

 

자연이든 관계든 오래 지속되어온 것이 파괴되는 데는 번갯불의 찰나만으로도 충분하다(62쪽).

 

<삼인행>은 좀 더 흥미롭다. 어느 날 여행길에 나선 세 명의 친구들. 그 중에 둘은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이별여행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스스럼없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자못 푸근하게 다가온다. 여행길 즐거움 중의 하나는 역시 먹는 것이라는 걸 입증하기라도 하듯, 황기삼계탕과 수제버거 그리고 홍게를 알뜰하게도 챙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느낌이다. 결국 일정을 작파하고 황태 식당에서 소줏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상의 단조로움으로 복귀하는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

 

이어지는 <이모>와 <카메라>에는 좀 더 진중한 상실의 사연들이 담겨 있다. 결혼 전에는 미처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시이모의 일상을 관찰하게 된 화자의 이야기 그리고 2년 전 헤어진 애인의 누나가 보낸 카메라에 얽힌 사연은 물에 데친 브로콜리처럼 심상하게 다가온다. 자신을 희생하고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시이모가 절연하고 지내다가 결국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과정 속에서 묽은 죽처럼 흘러가던 시간에 대한 단상과 죽은 시이모가 남긴 유산은 화자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여기에도 상실 코드 하나 추가. 그리고 우연히 만난 옛 애인의 누나와 함께 하게 된 술자리에서 아주 오랜 뒤에 애인이 사준다고 말한 카메라에 담긴 비밀을 알게 된다. 도대체 이 상실감을 어찌 할고.

 

<실내화 한 켤레>는 요즘 즐겨 보고 있는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학창시절 내내 트라우마였던 이쁜 오해영에 대한 피해의식을 떠올리게 해주는 그런 내용이었다(아, 그리고 보니 드라마에서 오해영도 새로운 사랑을 찾기 전까지 기승전술로 세월을 보냈었지). 미디어 범람 시대에 텔레비전에 동창생이 출연한 것을 보고 수배해서 결국 찾아내 습격하는 혜련과 선미 그리고 경안의 이야기다. 혜련과 선미의 기억 속에는 수학 잘하는 친구로만 기억되던 경안이 시나리오로 작가로 출세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것저것 사온 식재료로 술안주로 준비하고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는 친구들. 자기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경안 역시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고교시절 수학선생님의 칠판지우개에 맞은 급우들이 흰독수리떼 같아 보였노라는 증언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결국 술판을 거쳐 춤판까지 모두 마무리된 뒤에 남는 건 다시 찾아온 결핍 뿐. 작가가 후기에서 말한 것처럼 술자리는 필연적으로 결핍을 생산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렇게 무한반복되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알코올 하이에나로 변신해서 해질녘 어슬렁 거리던 나의 모습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초추의 양광’이라는 안톤 슈나크의 문장으로 기억될 <층>도 역시나 헤어진 남녀간의 이야기다. 인태초밥을 경영하는 인태는 왜 그가 혜연에게 차였는지 알지 못하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어떻게 다시 한 번 만날 법도 한데 그럴 일은 없다. 해피엔딩으로 소설을 끝내기에는 상실과 결핍이라는 주제가 너무 강력하기 때문일까. 성실한 남자로 생각했던 남자가 마구 쌍욕을 해대는, 어쩌면 분노장애를 겪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자는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 술자리에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맥락 없는 웃음을 짓는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의적인 해석으로 기억을 재단하고, 추억하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만.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나 그 시절을 다시 떠올려 보면 또 어떤 일로 상념 속을 헤매게 될지 모르겠다.

 

소설집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소설 속에 주정뱅이라는 말은 <역광>에 나오는 위현 작가가 화자에게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누구냐고 외친 게 전부인 것 같다. 진짜 주정뱅이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그 주정뱅이에게서 작가가 어느 술자리에서 들은 말처럼 위안과 친밀감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찐한 술꾼의 이야기를 원한다면 요제프 로트의 <거룩한 술꾼의 전설> 정도는 읽어야 하나. 작가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던지는 물음표로 남아 있는 질문들에게 사실을 들려주지는 않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독자들에게는 알려준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을 더 재밌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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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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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렀다. 평민귀족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코르넬리우스 씨족의 술라가 막 떠오르던 시절의 이야기에서 영광과 위엄으로 가득 찼던 시절을 보낸 두 영웅이 무대에서 퇴장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미 마리우스는 세상을 떠났고, 펠릭스라 불리던 호시절의 술라 역시 말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로마, 아니 세계의 패권을 쥐고자 동방원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브린디시움에 상륙했다. 영웅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영웅들이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율리우스 집안의 카이사르다.

 

이탈리아 전쟁(동맹시 전쟁)이 공화정 로마의 명운을 건 고귀한 목적과 절박한 이유를 내세운 그런 전쟁이었다면, 술라와 마리우스-킨나를 승계한 카르보의 두 번째 내전은 그저 누가 로마를 지배하는가에 대한 싸움이었노라고 콜린 매컬로 작가는 단정 지어 말하고 있다. 누가 봐도 확실한 정권교체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대의를 쫓는 이들도 있었지만, 미래의 권력과 재화를 위해 뛰는 기회주의자들도 소설에 수없이 부침을 거듭한다. 왜 이렇게 현실 세계의 그것과 닮아 있는 걸까.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역사소설이라는 범주를 뛰어 넘어 현실세계로 지평을 넓히는 수작이었다.

 

놀라운 건, 이천년 전의 역사적 사실에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와 대화를 통해 살을 붙이는 콜린 매컬로 작가의 수려한 문학적 솜씨다. 물론 이 방대한 시리즈를 위해 시력을 잃을 정도로 수많은 문헌을 조사했다고 들었는데, 저가의 그런 노고는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상상의 경계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가령 예를 들어 술라의 살생부에 올라 목숨을 건 도주를 하던 중에 카이사르가 학질(한 겨울에 말라리아에 걸리다니!)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카이사르의 모친 아우렐리아가 자신의 아들을 독재관 술라에게 살려 달라고 청원하는 과정은 또 어떤가. 역사에 남은 기록은 아지만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풀잎관> 시리즈를 아직 읽지 못해 저간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남긴 기억의 편린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강의 역사적 윤곽을 따라잡았다.

 

토지를 소유한 전통 귀족 가문이 로마를 이끌어야 한다는 모스 마이오룸에 입각한 술라파와 새로 부상한 기사계급으로 대표되는 카르보파는 로마를 양분했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와 정부에 대한 사고 그리고 미래의 로마를 상이한 집단의 사회적 통합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폭력적 제로섬 게임으로 승부를 가려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내전발발의 원인이었다. 어쩌면 이 상황은 공화정 로마에서 제정 로마로 가는 거대한 사회적 시스템 이행기의 전초전에 해당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탁월한 정치적 인간이었던 술라가 고민했듯이, 이런 사회적 통합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블랙홀 같은 문제였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방법이 제시되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 혹은 내전이라는 폭력적 방법이 최종 해결책이었다. 고대나 현대나 소모적 방법 대신 창조적 방법을 강구하고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최고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이 문제는 시리즈에서 다룰 가장 위대한 로마인이 설계를 맡게 될 것이다.

 

한편, 카르보 휘하 장군들과 참모보좌관들의 무능한 전략적 판단 때문에 현직 집정관이라는 합법성과 이탈리아 본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병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이 주도하는 옛 로마 공화정의 부활이라는 대의명분을 걸고 내전에 나선 술라에게 굴복하고 만다. 술라에게 극렬하게 저항한 반대파의 주축은 평민출신 귀족과 마리우스 시절에 부를 쌓은 기사계급 그리고 기원전 3세기 때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패권에 도전했던 삼니움 전쟁의 후예들이었다. 카르보와 마리우스 2세로 대표되는 반대파를 제압한 술라는 대대적인 숙청에 나선다.

 

바로 이 시점에서 소설의 제목인 포르투나(행운의 여신)의 선택이 등장한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술라를 필두로 한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모두 자신이야말로 포르투나가 선택한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별명이 펠릭스(행운아)였던 술라는 제외하고, 내전 무대에서 병참과 조직 운영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포르투나의 선택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술라의 명령대로 시칠리아로 가서 로마의 안정적인 식량공급을 확보하고, 아프리카로 도주한 카르보의 잔당을 소탕한 폼페이우스가 요청한 개선식 요청을 술라는 편지로 간단하게 무시한다. 정당한 재판 없이 현직 집정관인 카르보를 죽인 젊은 지휘관의 야만성을 술라는 냉정하게 비판하면서 죽은 아버지의 별명을 따서 “꼬마 도살자”라고 부른다. 작가는 폼페이우스가 천성적으로 동정심이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훗날 정치적 라이벌인 카이사르와의 대결에서 그가 패배하게 되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었는지 유추해 보게 된다.

 

독자는 이미 알고 있지만, 진정한 포르투나의 선택은 바로 카이사르로 귀결된다. 이제 겨우 17세가 된 카이사르는 마리우스가 채운 유피테르 대제관이라는 족쇄에 걸려 군사적 업적을 세우고 로마의 프린켑스가 되겠다는 야망을 접은 상태다. 하지만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술라는 십대의 카이사르에게서 수많은 마리우스를 보았다고 했다. 7번의 집정관 경력과 불세출의 전쟁 영웅이었던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경력을 뛰어넘는 가장 위대한 로마인의 모든 자질을 갖춘 영웅이 드디어 본격적인 정치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카르보와 마리우스 2세로 대표되는 반대파를 제압하고 대대적인 숙청에 나선 술라는 카이사르에게 킨나의 딸과 이혼하라고 명령한다. 정치개혁에 앞서 모든 것을 종교에 의존하는 로마 관습을 개선하기 위해 선출직 제관을 폐지하는 개혁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현재 로마의 프린켑스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독재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목숨을 건 도주에 나선다. 궁극적으로 카이사르의 항명은 한낱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던 카이사르의 명성을 로마 정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들이 독재관의 서슬퍼런 권위 앞에 끽소리 못하고 시절에 철부지 소년의 도발은 충격적인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콜린 매컬로 작가는 그렇게 가이우스와 술라의 대결을 마무리 짓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대를 장식할 영웅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모멘텀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포르투나의 선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폼페이우스와 바로가 나눈 대화에 등장하는 술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엄”(디그니타스)에 관한 부분이다. 로마 귀족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존엄은 무형의 자산이면서 어떤 형태로든 확장이 가능하며, 망각과 상실을 뛰어넘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치의 총합이라고 한다. 콜린 매컬로가 분석한 술라의 존엄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을 준비하며 공화국 재건에 여념이 없는 펠릭스 술라의 본질을 규정하는 동시에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술라에게서 빼앗은 그가 당연히 누려야할 것들을 되찾기 위해 동족상잔의 비극과 가혹한 시련을 견뎌야 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술라가 제시한 로마인의 존엄은 역시 가장 위대한 로마인에게 전승되어 확장될 거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또 한 가지 아무리 종신독재관인 술라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재자답게 반대파를 숙청하는 데 있어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내전기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카이사르 역시 동의하고 있다. 로마를 다시 접수한 뒤에 자기 권력의 기반인 병력을 해산하는 순간,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냉철한 판단 역시 주목할 만하다. 사회시스템 재건의 영속을 위해 까다로운 법률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도 독재자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생략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관철시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시절이 2016년이 아니라, 기원전 1세기경이라는 점도 무시하면 안될 것이다.

 

자 이제 무대는 준비되었다. 그동안 역사 무대를 휘젓던 영웅이 퇴장하면, 다음 세대의 영웅들이 등장해서 로마 인민들과 포르투나 여신의 간택을 받기 위해 가열찬 투쟁을 벌일 것이다. 콜린 매컬로는 바로 그 과정을 조율하는 문학적 마법사로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독자를 인도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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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08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도 가제본을 먼저 읽으셨군요. ^^

레삭매냐 2016-06-08 21:44   좋아요 0 | URL
촉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재밌어서 생각보다 금세 읽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