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1
정소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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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위층에서 들려오는 발망치 소리와 수시로 구슬프게 짖어대는 멍멍이 울음소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또 그전에 살던 집에서 밤 11시만 되면 시작되던 진공청소기가 돌아가는 소리(그들은 왜 그 시간에 항상 청소를 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모자간의 다툼 소리에 비하면 양반이지 싶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가 보다. 그 시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도, 생활소음이 거슬린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2019년 여름, 처음으로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이 50%를 돌파했다. 그만큼 아파트는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주거 환경이라는 방증일 게다. 그런데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 형태가 과연 모두에게 이로운 것일까? 아파트 주거는 살아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내가 이웃을 고를 수는 없지 않은가.

 

정소현 작가의 <가해자들>은 바로 그런 오늘날 이상적 주거 형태로 꼽히는 아파트에서 소음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을 정밀하게 타격한다. 소리와 냄새만 없다면, 이웃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이웃의 저녁 메뉴가 자반 고등어인지 구수한 청국장인지 달달한 불고기전골인지 후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해치는 요소가 냄새보다 소리일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냄새는 대개의 경우 끼니 때를 전후해서 발생하고 소멸하지만, 생활소음으로 알려진 사운드는 그렇지 않다.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리는 조용한 나만의 시간에 발망치로 찧듯 쿵쿵 거리며 거실을 돌아다니는 소리, 화장실에서 변기물 내리는 소리,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는 소음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정소현 작가는 정말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리얼하게 재현해낸다.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듯 소설의 1111호 윤서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이 딸린 홀아비에게 시집와서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아야 했던 주인공은 자신의 아이를 낳은 뒤 수년 뒤에 산후풍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그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소머즈 같은 청각의 소유자로 변신한다. 다른 이들은 무심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그런 생활소음들이 그녀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소리의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견딜 것인가 아니면 네 이웃과 전쟁에 나설 것인가. 주인공의 선택은 후자였다.

 

이것은 단지 성격상의 예민함이 문제가 아닌 심리치료가 필요한 영역의 문제였다. 시어머니와의 불화로 상처 받은 자신의 내면세계는 끓어 오르는 투쟁의 대상을 이웃의 타자로 삼았고, 그게 문제의 핵심이었다. 1211호 아줌마는 자신의 눈앞에서 토악질을 하며 뒹구는 윤서 엄마의 증상을 시어머니 알레르기라고 진단한다.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의 본질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호간의 불신에서 비롯된 혐오가 아니었을까. 이후 첨예하게 벌어지는 대결 구조에서 이웃 간의 보일만한 양보의 미덕은 점점 침몰의 수순을 밟는다.

 

인내와 양보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것은 강력한 우퍼와 브릿니 스피어즈의 히트곡 <TOXIC> 환청이었다. 이웃을 징벌하기 위한 미영 씨(윤서 엄마)의 노력은 대단했다. 천정에 우퍼를 달 정도라니. 아니 그건 광기라고 봐야 할까? 실제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홈파티 열기를 좋아하던 내 친구의 아랫집에 살던 부부는 파티가 벌어질 때마다 빗자루인지 장대를 가지고 따라 다니면서 천정을 쿵쿵대면서 치곤 했다고 한다. 나도 그 파티의 일원이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렇다, 그런 식으로 나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던 것이다.

 

억압받은 한 영혼이 폭발시킨 광기의 전염성을 대단했다. 전선은 위층 아래층 그리고 심지어 옆집 가리지 않고 마구 퍼져나갔다. 중재에 나선 관리소장 아저씨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이해와 타협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공간을 파국이 채우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다만 어떤 형태로 오는가가 관건일 뿐.

 

정소현 작가의 <가해자들>을 스피디하게 다 읽고 나서, 성경에도 나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나도 시시각각 변하고 회의하는 내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힘든 마당에, 타자인 이웃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묻게 된다. 소설 <가해자들>은 아파트 거주란 공동 거주 양식이 모든 이들의 선망이 되었지만, 내가 아닌 타인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소시민적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피해자와 가해자의 얄궂은 경계선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싶기도 하다.

 

이웃의 멍멍이 울음소리에 대해서는 다른 주민이 엘리베이터 거울에 멍멍이 울음소리로 다른 이들을 학대하지 말라는 취지의 노란색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얼마 뒤, 멍멍이 주인이 멍멍이가 피부병에 걸려 약을 복용 중인데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 자주 흥분하고, 분리불안 증세를 겪고 있다는 사연을 덧붙이며 양해를 구하고 아파트 주민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마침 <가해자들>을 읽고 나서인지 어쩐지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을 멍멍이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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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26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층간소음이라면 저도 할 말 많은 사람이지만요 ㅎㅎㅎㅎ 이 책은 정말 우리의 일상의 가장 가까운 일을 그리고 있네요. 그저께 신간도서칸에서 봤던 책인데 제목이 눈길을 끌어 자세히 보다가 권수 때문에 탈락했거든요. 아쉽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0-11-26 09:07   좋아요 0 | URL
가비얍게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고런 책이었답니다.

요즘 층간소음에 시달려서 그런
진 몰라도 더더욱 와 닿더군요.
역으로 제가 누군가에게 가해자
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독립혁명가 김원봉
허영만 지음 / 가디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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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락의 <아리랑>으로 시작된 독립운동 추적은 신출귀몰했다던 의열단 의백 약산 김원봉을 다룬 그래픽노블에까지 도달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요즘엔 도서관 출입도 상당히 번거롭다. 체온을 재야 하며, 도서관 대출증으로 본인 인증을 통과해야만 서가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우리나라 최고의 데생 전문가라는 허영만 선생은 정말 통달한 실력으로 붓가는 대로 쓱쓱 그렇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캐릭터에 생명감을 불어 넣어준다. 밀양 출신이라는 김원봉의 이력을 출생이 아닌 그가 본격적으로 의열단 활동을 시작한 청년기로부터 출발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약산 선생은 망국의 슬픔을 겪으며서 자랐다. 거의 모든 독립혁명가들에게 공통된 사항이지만 19193·1운동은 독립운동에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조선 민중은 독립을 외치는 비무장 평화시위에 나섰지만, 일제의 대항은 간악했다. 시위에 나선 민중들을 법적으로 구속할 근거가 없기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결국 3·1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실패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대다수 민족주의 운동가들은 극적인 방향의 전환을 도모하게 된다. 말로 해서는 도저히 조국의 독립이 불가능하는 간단한 결론이었다. 그 결과,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에 나서게 된다. 만주에서는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의 전투가 있었다면, 약산 선생을 필두로 한 일단의 청년들은 아나키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일제에 대한 테러에 나서게 된다. 의열단 공약 1조에 등장하는 정의를 맹렬히 실행한다가 그들의 신념을 대변한다.

 

임정의 김구 선생(60만원)을 능가하는 현상금이 걸린 약산 선생의 활약을 대단했다. 하시모토 부산경철 서장 저격을 비롯해서, 조선총독부 폭파와 조선총독 암살 기도 등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의열단에 투신한 청년들은 자신들이 먼저 거사에 나서겠다면 제비뽑기를 하며,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에 청춘을 바쳤다.

 

모든 활동이 그렇듯 의열단 활동에도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다. 무기 구입을 비롯해서, 폭탄 제조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게다가 의열단 추적에 혈안이 된 일제는 마쓰우라 히로(친일경찰 노덕술의 일본명) 같은 밀정을 동원해서 숱한 독립혁명가들을 체포해 고문했다. 거사를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사살당하거나 죽는 건 불가피했다. 옥고를 치르다 죽은 인사도 상당했고, 김익상 의사처럼 긴 세월의 옥고를 치르고 나서 행방불명된 이들도 있었다.

 

의열단 활동은 조선 민중이 지닌 저항의 기백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들 운동의 한계 역시 뚜렷했다. 소수 엘리트주의 활동으로 중국대륙까지 침략에 나선 일본 제국주의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차에, 국민당 주석 쑨원이 김원봉과 회합을 추진했다. 같은 혁명가 쑨원은 약산 선생에게 돌아오지 않는 화살의 비유를 들어 중국대혁명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이에 결단을 내린 의백 약산은 일단의 동지들을 이끌고 황푸군관학교에 정식으로 입교해서, 국민군 소위로 변신한다.

 

물론 유자명 같은 인사는 의열단원의 황푸군관학교 입교에 반대하기도 했다. 조선 혁명가들의 목표는 조선의 독립이지, 중국 혁명의 성공이 아니란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냉철한 판단을 내린 약산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는 우선 중국 혁명을 성공시켜,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하는 길이 첩경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머지 부분들은 장지락의 황푸군관학교 시절과 광둥 코뮌 그리고 하이루펑 소비에트 붕괴에 이르는 과정과 유사했다.

 

소위 장제스의 반공 쿠데타인 청당운동으로 국민당이 좌우로 갈리면서, 중국대혁명에 가담했던 조선 독립혁명가들도 분열하게 됐다. 국민당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장제스를 암살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약산 선생은 예의 제안을 뿌리치고 훗날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어디까지나 중국혁명은 부차적인 문제이자, 방법이었을 뿐이고 목표는 조선의 독립이었다.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는 좌파 계열과 합작을 거부했다. 약산이 시도한 좌우합작 민족혁명당의 합류도 난망했다. 한편, 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두 번째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이 본격화되면서 19381010일 조선의용대를 발족시키면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전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조선 독립혁명이라는 대의는 좌우 모두에게 공통의 지향점이었지만, 각론의 방법론에서 상이한 차이가 단일대오를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게다가 일제의 교활한 책동으로 기존의 의열단 동지인 김천수 같은 인사가 변절하기도 했다. 장지락의 동지였던 오성륜 역시 일본에 체포되어 변절했다.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에도 나오는 것처럼, 친일매국노와 배신자는 끝까지 추적해서 처단한다는 의열단 공약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 <밀정>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황옥경부사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애국과 친일 사이의 혼란스러운 시대상 만큼이나 복잡한 인물이 바로 황옥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는 송강호가 이정출 역으로 등장해서 열연했다. 원래 독립운동을 하던 인사가 변절해서,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최고 경찰직인 경부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의백 약산 선생과 접촉하고 개심(?)하여 의열단 활동 지원에 나섰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약산 선생은 그런 황옥을 끝까지 믿었다고 한다.

 

조국의 광복을 얻기 위해 국내진공작전까지 구상했으나, 미국의 원폭투하로 일본이 갑작스럽게 해방되면서 약산과 김구 선생은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주권자로서 당당한 해방이 아니라, 외세에 의한 해방이 가져올 폐해를 독립혁명가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남한의 군정을 맡았던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은 임정과 좌파 계열 인사들의 신속한 귀국을 원하지 않았다. 어수선한 해방 공간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조국의 분단은 가속화됐다.

 

일제 강점기 숱한 독립인사들을 체포 고문해서 살해한 악질 친일경찰 마쓰우라 히로는 노덕술로 탈바꿈해서 측간에 있던 약산 선생을 체포해서 모욕한다. 중국 대륙에서 사선을 넘어가며 투쟁하던 시절에도 단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던 약산 선생이 해방 공간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노덕술에게 그런 대우를 받자, 삼일밤낮을 통곡했다고 했던가. 우파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건준의 여운형마저 암살당하고, 시시각각 백색 테러의 위협을 받던 약산 선생은 옛 동지들이 자리를 잡은 북으로 스님으로 위장해 월북한다.

 

허영만 선생은 논란의 핵심에 있는 약산 선생 월북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다. 얼마 전에도, 약산 선생의 서훈 문제로 논란이 됐던 게 생각났다. 그동안 역사에서 소외되어온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혁명가들이 속속 서훈을 받았지만, 유독 약산 선생만은 북한 정권 수립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다만 노덕술이 대한민국에서 세 개의 훈장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픽노블 <독립혁명가 김원봉>만으로 거인 약산의 삶을 조명해 보는 건 무리다. 한쪽에 치우쳐진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 독립운동의 실체에 대해 그만큼 보정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홍구 교수님의 말대로, 장지락과 김원봉 같이 널리 알려진 독립혁명가들 뿐 아니라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 없이 조국 해방에 투쟁한 이들을 찾아 기억하는 게 우리 후대의 임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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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0-11-25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현대사는 아직도 익숙치 않네요. 아직 읽지 읺은 책들을 모이봐야 겠군요^^; ‘노덕술이 훈장 세개’하는 대목이 헐~~ 안타까웠습니다~

레삭매냐 2020-11-25 21:57   좋아요 2 | URL
랑케 실증사학의 세례를 받은
주류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문헌이나 사료에 기록된 사실만
인정하려고 하는 게 문제가 아
닌가 싶습니다.

식민지 시절과 냉전, 전란을 거
치면서 소실된 사료의 부재로
근현대사를 제대로 조명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노덕술도 받는 서훈을 진짜 독립
혁명가들이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더 암담합니다.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45
윌라 캐더 지음, 윤명옥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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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나 버렸다. 네브래스카/버지니아 출신 작가 윌라 캐더의 <나의 안토니아>를 읽던 중에 주문한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가 도착했고, 도중에 갈아타 버렸다. 아직 <나의 안토니아>도 읽지 못했는데. 책을 주문하기 전에 이미 나는 미리보기로 30 몇쪽을 읽었다. 책은 너무 재밌었다. 자다가도 일어나 읽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싶다.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1848년의 뉴멕시코다. 이제 미국 땅이 얼마 되지 않은 올드 멕시코 시절의 향수를 지닌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나의 안토니아>의 배경이 프레리독과 방울뱀이 노니는 광활한 평원이라고 한다면,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는 뉴멕시코 땅의 사막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 뉴멕시코 땅에 대해 생각해 보았겠는가. 이 한 가지 점에서라도 나에게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는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책이었다. 모래사막은 나에게 이십대에 이루지 못한 로망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두 명의 신부들이다. 한 명은 주교 신부인 장 마리 라투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주교 대리 요셉 바일랑 신부다.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 퓌드돔 출신이라고 했던가. 아니 구대륙의 프랑스 신부들이 새롭게 미국령이 된 뉴멕시코에 어떻게 오게 되었단 말인가. 로마의 바티칸에서 페랑 신부와 몇 명의 추기경들이 선교를 위해 선택한 개척자들이 바로 라투르와 바일랑이었다. 이미 오하이오에서 선교 중이던 그들은 목적지를 바꾸어 산타페로 이동하게 된다.

 

라투르 신부는 주교답게 진중하면서 사려가 깊은 그런 구시대에 어울리는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반면, 못생기고 작달막하며 허약 체질의 바일랑 신부는 쾌활하면서도 눙치는 데 선수며, 질 좋은 포도주에 탐닉한 그런 세속적인 인물이었다. 예상을 깨고 이 콤비들은 미신을 믿는 인디언들로 넘실거리는 이국땅에 성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성공했다.

 

임지인 산타페로 가는 길도 쉽지 않았으며, 현지의 멕시코 사제들은 바티칸에서 파견한 그들의 주교를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지? 라투르 신부는 정식으로 인가를 받기 위해 엄청난 길을 다시 떠나야 했다. 그리고 친화력과 추진력에 있어 누구보다 탁월한 바일랑 신부의 조력으로 적폐를 타파하고,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개혁에 나선다.

 

예나지금이나 적폐 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는데 전력을 다하기 마련이다. , 사제 콤비는 그전에 시리얼 킬러 같은 작가에게 살해당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던가. 그의 부인이었던 막달레나 발데즈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말만 뉴멕시코이지 올드 멕시코에 가까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현지 멕시코 사제들은 인디언들의 노동력을 아낌없이 착취했고, 심지어 사제로서 지켜야 하는 순결 서약 대신 부인을 두기도 했다. 반란에 나선 인디언들을 살려 준다고 꼬셔서 그들의 토지를 빼앗는 건 양반이었다. 사제들은 지주계급 못지 않은 기득권층으로 민중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선교 의지에 불타는 라투르와 바일랑의 눈앞에 그런 이들이야말로 척결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신대륙에 구대륙에서 갈고 닦은 신앙을 수호하는 사제들의 정신으로 복음을 전파하겠노라고 마음먹은 사제 콤비에게 온갖 사이비 신앙인들이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이 가는가. 복음의 전파는 단숨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 쯤은 노련한 수도자들은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개혁을 시도한다. 서두른다고 해서 적폐들이 단박에 바로 잡히지 않는다는 것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현지인들에게 무시로 적응해 가는 두 사제들의 모습을 윌라 캐더 작가는 마치 바로 옆에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중계하듯 그렇게 놀라운 솜씨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아마 작가가 요즘 살았더라면, 현장에서 뛰어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에 젖기도 했을 정도다.

 

라투르와 바일랑은 때때로 자신이 원주민 선교에 있어 원하는 바가 달라서 갈등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지로서 사반세기를 함께 한 그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사제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인디언들이 사는 곳을 방문하기 위해 허약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선교여행에 나서는 바일랑 신부를 라투르는 마뜩치 않은 눈길로 쳐다본다. 뉴멕시코 교구가 대교구로 확대 편성되면서 자질구레한 행정업무부터 시작해서,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아니 종교가 해결해야 하는 부분들이 엄청 늘어났는데 말라리아에 걸려 해롱대면서도 어린 양들을 돌보겠다고 나서는 바일랑 신부가 라투르로서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신앙인들에게 신에게 봉사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른 법이다. 인디언 천막과 산타페의 주교 관저에서 라투르 신부는 과거를 회상하며 바일랑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동지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설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를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만난 2020년의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외에도 소설을 아름답고 빛나는 만드는 이야기들은 차고 넘친다. 자신의 나이를 어떻게 해서라도 감추려는 부유한 미망인 도나 이사벨라는 올리바레스 씨가 남긴 막대한 재산(당시 돈으로 20만 달러)을 그놈의 허영심에 날리 위기에 처한다. 이 때 등장한 바일랑 신부가 미래의 성당 건립을 위한 종잣돈을 그렇게 허공에 날리고 싶냐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물질주의자 신부는 선교여행을 위해 꼭 필요한 노새 두 마리인 콘텐토와 안젤리카를 확보하기 위해 그 녀석들을 내놓지 않으려는 불쌍한 농장주 협박을 마다하지 않는다. 바일랑 신부의 이런 행동은 물론 신부라기 보다 악당에 가까운 마티네즈(타오스의 늙은 망나니라고 표현된다)나 구두쇠 루체로 신부의 축재(2만 달러를 남겼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윌라 캐더 작가는 신대륙의 가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신랄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대신, 개혁적인 두 명의 사제를 대리인으로 삼아 서서히 고쳐 나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종교와 사제들을 핍박하는 악당들이 처벌받는 방식도 아무래도 구식이다. 사제들을 죽이고 그들의 물건을 강탈하려던 노상강도 버크 스케일스는 살인죄로 교수형을 당했다. 라투르 주교의 징계에 불복하고 독립한 마티네즈 신부와 루체로 신부의 말로를 보라. 좀 빤했지만 이런 결말이 난 좋더라. 현실에서 그러지 못하니, 소설에서라도 못된 놈들은 벌을 받아야지.


대주교가 된 라투르 신부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눈물샘을 자극하는 갬성은 폭발한다. 나이가 드니 주책없게도 눈물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금광에 미친 죄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진 산타페 교구를 떠나는 클레르몽 신학교 시절 이래 동지이자 친구였던 바일랑 신부를 콜로라도 체리크리크로 떠나보내며 서로의 앞날을 위해 축복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우리의 바일랑 신부는 콜로라도의 주님의 집인 성당을 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악당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빚에 허덕이다가 바티칸의 소환을 당하기도 했다. 노다지를 얻은 부유한 이들은 바일랑 신부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멕시코 사람들은 바일랑 신부의 절절한 구걸에 가까운 읍소에 자신의 장화 속에 감춰둔 돈을 서슴지 않고 꺼냈다. 가난한 자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선교여행에 나섰다가 절름발이가 된 신부를 후원했다.

 

그랬던 죽음을 야유하는 자라는 별명을 가진 흰둥이 바일랑 신부가 결국 세상에서 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떠난다. 그를 기리기 위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산 밑으로 구름같이 몰려든 인파는 바일랑 신부의 인품을 설명해 주는 장면이었다. 바일랑 신부의 동지였던 르바르디 신부는 프랑스에 파견되었다가 자신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상사에게 보고 하고 나서 죽기 위해 콜로라도로 달려간다. 빈사의 상태로 장례식에 도착해서 선종하신 바일랑 신부에 관에 머리를 맞대는 장면... 감정이 벅차서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 먹먹하구나.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뉴멕시코의 오지에서 빛도 없이, 영광도 없이 선교에 전념하던 사제들의 이야기에 이렇게 몰입했을까. 자신의 신념에 따라 누에바 메히코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이들의 삶을 읽으면서 그들에게 내 자신의 삶을 투영했기 때문이 아닐까. 더디지만 내 존재에 대한 깨달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문학을 읽는 진짜 이유다. 별점 천 개를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작품이었다.


오늘 어느 신문을 보니 <힐링팔이 스님>이란 제목의 칼럼이 다 등장했더라. 이제 더 이상 종교가 그리고 종교인들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마음의 힐링이 되지 못하게 되어 버린 시절에,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에서 만난 라투르와 바일랑 사제의 잔잔한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도 물질적 보상을 바라지 않는 참 힐링의 전범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생각해 봐도, 보기에 참으로 아름다웠다.

 

[뱀다리] 소설의 제목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는 한스 홀바인의 판화 그림에서 따왔다고 한다. 홀바인의 판화는 살벌해서 패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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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1-23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힐링팔이 스님 ㅋㅋ최상위 01% 캐더작품은 셜리작품 만큼 미국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질리도록 읽혀요. 학교 밖에서는 텍스트에 숨겨진 동성애를 찾는걸로 장난치기도 ㅎㅎ 레삭매냐님 율리체에서 캐더로 열정이 옮겨졌어요. ^.^

레삭매냐 2020-11-23 21:09   좋아요 1 | URL
동성애 코드를 언급해 주시니...
문득 영화 <카사블랑카>를 동성애
영화의 클래식으로 본다는 글이
생각나네요.

역시나 고전은 고전인가 봅니다.

chika 2020-11-23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겠습니다. 천주교신자라 더 관심이 갑니다요 ^^
홀바인의 판화가 얼마나 살벌하길래? 라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레삭매냐 2020-11-24 09:25   좋아요 1 | URL
소설은 정말 후반으로 갈수록
감동의 도가니탕이었습니다...

지인들에게 꼭 한 번 추천해
주고픈 그런 책이네요.

han22598 2020-11-24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의 소설이라고까지 지칭하시다니...! 나바호 원주민을 만나러 뉴멕시코에 두번 간적이 있어요. 쉽게 잊혀지지 않은 그 땅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뉴멕시코 땅을 배경으로 한다니...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겠네요. ㅠ

레삭매냐 2020-11-24 09:26   좋아요 1 | URL
정말 별점을 천 개를 주어도
모자랄 만한 그런 책이었습니다.

인생책으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네요.

저라도 책을 읽고 나면 벌떡
일어나서 나바호 인디언들을
만나러 가지 않을까 싶네요.

blanca 2021-01-10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저 지금 <나의 안토니아> 아껴 읽는 중인데... 당장 주문해야겠네요.

레삭매냐 2021-01-10 12:31   좋아요 2 | URL
<나의 안토니아>도 좋지만,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가 훨씬 더 좋았습니다.
<안토니아>가 마음에 드신다면
이 책 역시 후회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박건웅 지음, 님 웨일즈 외 원작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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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김산이라는 혁명가의 삶을 다룬 <아리랑>이란 책을 알게 됐다. 되짚어 보니 정말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런데 책은 다 읽지 못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호기롭게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그렇게 <아리랑><중국의 붉은 별>과 더불어 나의 숙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미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즈 여사가 저술한 <아리랑>의 그래픽노블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마음이 다급했는지 차 안에서 50쪽을 훌쩍 넘겨 버렸다.

 

202011월의 을씨년스러운 날에 내가 만난 님 웨일즈가 기술한 조선 출신의 비운의 혁명가 김산, 아니 장지락에 대한 전기는 제목만큼이나 슬픈 그런 이야기였다.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동안의 휴지기에 과연 서구 출신 저널리스트로 님 웨일즈가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저자는 편견이나 왜곡 없이 일제의 프로파간다가 배제된 진실에 과연 얼마나 도달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아리랑>1937년 중국의 옌안에서 저자가 조선공산당에서 파견한 극비 대표 김산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비밀에 쌓인 조선 출신의 혁명가를 음모가라고 처음에는 판단한 모양이다. 아니 장명이라는 가명으로 숱한 책들을 빌린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했던가. 님 웨일즈가 저술한 <Song of Arirang>1941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신천지라는 잡지를 통해 소개됐다당시 부제는 '조선인 반항자의 일대기'였다. 그후, 1984년에 다시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러일전쟁 중이던 1905, 평북 용천에서 빈농의 세 번째 아들로 출생한 장지락은 유년 시절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193·1운동을 체험하면서 비폭력 평화운동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제하에서 신음하던 조선 민중이 하나님에게 죄의 보상을 치르고 있다는 외국 선교사의 말은 어이가 없었다. 죄의 보상이 치러지고 나면 독립하게 될 거라는 말에 소년 장지락은 아연실색한다.

 

소년 장지락은 일제 치하에서 조선 민족이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자각하면서 민족주의자로 출발한다. 하지만 3·1운동의 실패를 보고서, 무정부주의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것은 정교한 운동 이론과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정부주의자들은 다음 단계에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하게 된다.

 

이후 둘째 형님의 후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배달과 인력거꾼으로 고학을 하면서 도쿄 제국대학 진학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운동이 활발했던 모양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장지락은 미래의 혁명가로서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알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700리 길을 걸어 어린 나이에 만주 신흥무관학교에 최연소 입학한 장지락의 일화는 거의 전설이 되었다. 그 다음 단계인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의 교정을 맡기도 했다. 이 시절에 만난 안창호 선생과 독립신문의 편집을 맡았던 이광수와도 교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의열단 출신의 김약산과 오성륜과 교류하면서 아나키스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곧 테러에 의한 항일운동이 이상적이라는 사실과 그 한계를 느끼고, 대중혁명운동인 마르크시즘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921년 중국 베이징으로 간 장지락은 당대 중국 최고의 의료기관이었던 베이징 협화의학원에서 의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5·4운동의 영향으로 중국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마르크스 학술활동이 활발하던 베이징에서 그는 공산주의에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공산청년동맹에도 가입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승려 출신 김충창(김성숙)과 만나 본격적인 마르크시즘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1차 국공합작과 쑨원의 사망 그리고 국민당이 주도한 북벌의 소용돌이 속에 장지락은 당시 중국 최고의 대학이었던 중산대학의 의대 본과생(나중에 정치학 전공으로 바꾸었다)으로 김충창과 함께 활발한 정치활동에 나섰다.

 

장지락은 조선 출신으로 광둥 코뮌이나 하이루펑 소비에트 활동에 참가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기도 하다. 당시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목표는 조국 조선의 독립이었다. 하지만 임정에 도움을 주었던 장제스 정권이나 중국공산당 모두 자국을 침략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싸우느라 타국의 독립까지 후원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조선의 혁명가들은 그들에게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것이 결국 훗날 장지락의 운명에 비극적 결말을 가져오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조선 출신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이런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일단 장제스의 국민당이나 공산당에 일단 협력한 다음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기로 결정했다. 1927412, 장제스의 주도로 상하이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것은 국민당 우파에 의한 혁명세력과 노동자 학살로 1차 국공합작이 결렬되고 호기롭게 시작한 광둥 코뮌마저 백군에게 격파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상부로부터 후퇴 명령을 전달받지 못하고 적군과 맞서 싸운 박진 부대 최후에 대한 증언은 광둥 코뮌의 실체를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광둥 코뮌이 분쇄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퇴각에 성공한 장지락을 비롯한 혁명 세력들은 하이루펑 소비에트로 이동한다.

 

그 다음 무대였던 홍군이 장악한 하이루펑 소비에트에서 장지락을 비롯한 혁명 동지들에게 미래의 조국의 희망찬 모습을 엿보기도 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집요한 국민당군의 공격 앞에 패퇴한 장지락과 혁명 동지들은 사경을 헤매면서 적군의 추격을 피해 도주했다. 굶주림과 말라리아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수많은 동지들이 노상에서 죽어갔다. 이런 잇달은 실패의 체험과 혁명 과정에서 벌어진 반동 계급에 대한 숙청에 대해 장지락은 인간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계급투쟁과 인간해방이라는 거대한 대의를 위해 싸웠지만, 그에 따른 부차적 피해와 피에 피를 부르는 복수는 피할 수가 없는 숙명이라는 사실이었다. 휴머니스트로서 실패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박건웅 저자가 밝힌 대로, 혁명 와중에 피어나는 연애 스토리도 빼놓을 수가 없다. 혁명가 장지락은 철저하게 조국 독립과 혁명에 모든 것을 바쳤노라고 수없이 천명했다. 그러나 혁명가에도 덧없는 사랑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혁명 동지 류링의 적극적 구애와 결혼까지 한 역시 다른 혁명 동지와의 사랑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혁명가의 삶을 비춘 한 줄기 빛이 아니었을까.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으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지기도 했지만, 혁명 열사의 의기는 꺾을 수가 없었다. 중국 혁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옌안에 조선혁명가 극비대표로 파견되어 님 웨일즈를 만나면서, 서구의 저널리스트가 남긴 기록을 통해 잊혀진 혁명가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숱한 투쟁의 사선을 뛰어 넘은 이 걸출한 혁명가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이 아닌, 리리산주의자 혹은 트로츠키주의자 그리고 일본 특무(스파이)라는 모함을 받아 19381019일 처형된 점은 비극의 전형이다.

 

박건웅 저자가 아무래도 장지락이라는 개인에 집중하다 보니, 어떻게 해서 조선 출신의 독립운동가가 남의 나라인 중국혁명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1920-30년대 한국 독립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인 중국혁명사를 동일선상에서 고찰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중국혁명 참여는 어쩌면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와 트로츠키의 세계혁명론이 충돌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냉전적 사고로 본다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부분이겠지만 말이다.

 

아울러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사회주의자로 계속해서 변신을 거듭하는 혁명가들의 정체성 문제도 생각해 볼 문제다. 조국의 광복이라는 대의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민족주의 계열 운동가들과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들의 운동의 방법과 각론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런 디테일들이 조금 아쉬웠다.

 

오늘 읽은 그래픽노블 <아리랑>으로 일부분이나마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를 마친 것 같이 조금이나마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중국의 1920-30년대 혁명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혁명가 장지락이 중국에서 투쟁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상당 부분 해소된 기분이다. 아무래도 그래픽노블로는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는다. 님 웨일즈의 원작에 다시 도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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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0-11-22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두 부부가 쓴 <아리랑>과 <중국의 붉은별> 만만치 않은 책이었어요.
중국의 붉은 별은 3분의 2정도에서 대장정을 끝내지 못했고 아리랑도 읽다 말았네요^^
숙제로 여겨진 2권의 책 공감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 책이 엄청 반가웠네요.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반공의 이데올로기속에서 아예 존재조차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가 시대가 변해 우리에게 다가오니 넘 뿌듯합니다^^;

레삭매냐 2020-11-23 11:40   좋아요 0 | URL
저도 계속해서 읽다 말다를 거듭하고
있네요...

이참에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설까
봅니다.

아무래도 냉전시대에는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평가
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선 <아리랑>부터 읽는 것으로.

페넬로페 2020-11-23 0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시대가 시대인 만큼 ‘중국의 붉은 별‘과 ‘아리랑‘ 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혁명의 꽃이 만발하길 기대했지만
나중에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는 그들의 행동들이 실망만을 안겨줬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리랑‘ 은 사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네요~~
기회되면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레삭매냐 2020-11-23 11:42   좋아요 0 | URL
장지락 선생의 일대기를 살펴 보다
보니 서구 저널리스트가 쓴 <아리랑>
보다 이원규 선생이 썼다는 <김산
평전>에 눈길이 가더라구요.

다만 책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는
게 흠이네요.

작고하신 김준엽 선생의 <장정>도
다시 만나야지 싶습니다. 읽을 책들
이 너무 많네요 증맬루.
 
침묵
돈 드릴로 지음, 송은주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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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완벽하게 디지털 네트워크에 종속되었다. 인별그램에 들어가 보면, 회사에서 구입한 커블 체어 광고가 뜬다. 아니 나는 주로 책에 대한 콘텐츠를 인별그램에 올리는데 왜 회사에서 산 커블 체어 광고가 나의 인별그램에 침입한단 말인가. 어디 그 뿐이랴. 커블 체어는 단적인 하나의 예일 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모바일폰에서 빠져 나간 정보들이, 아니 허상의 무언가가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의 실존은 어디에 존재한다는 걸까. 내가 아닌 내가 검색한 정보로 이루어진 것이 나를 역으로 규정하는 건 아닐까.

 

돈 드릴로의 신작 <침묵>에서 다루고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 블랙아웃에 대한 단상을 생각하다 또 엄한 데까지 사유가 흘러간 모양이다. 앞으로 2년 뒤인 20222월의 첫 번째 주, 일요일이 시간적 배경이다. 파리에서 떠나 뉴어크로 향하는 짐 크립스와 테사 베런스가 탄 비행기 속에서 <침묵>은 시작한다.

 

거의 미국인들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볼 선데이다. 일 년에 달랑 16번만 하는 정규시즌의 미식축구가 끝나고, 플레이오프를 거쳐 AFCNFC 리그에서 각각 올라온 두 팀이 맞붙는 슈퍼볼 경기의 희귀성만큼이나 세계 광고회사들의 각축이 벌어지는 디지털 공간이기도 하다.

 

예의 슈퍼볼 경기를 보기 위해 맨해튼 어느 아파트에 5명의 지인들이 모이기로 했다. 짐과 테사는 추락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고, 나머지 3명인 맥스와 다이앤 그리고 마틴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소설의 짧은 분량만큼이나 돈 드릴로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 역시 심플하다. 거대한 세계적(아니 어쩌면 미국인들만의) 이벤트를 앞두고 디지털 네트워크가 먹통이 된다. 어쩔 것인가?

 

게다가 한 팀은 지금 이런 소동 속에서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 갇혀 있다. 화끈한 설정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심정적으로 추락하는 비행기보다 먹거리며 판돈까지 모든 걸 준비한 상태에서 킥오프를 앞두고 대형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대기하던 수천만명의 허탈함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슈퍼볼이라는 이벤트는 전기로 바뀐 신호를 타고 위성이나 케이블을 타고 전 미국의 가정으로 배달된다. , 슈퍼볼은 공중파에서 방송을 했던가? 어쨌든 다른 나라 사람들은 거의 관심이 없는, 잘쳐 줘봐야 고작 땅따먹기 게임에 불과한 단판승부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홀리는 건 연구의 대상이 아닐까. 오랜 세월을 거쳐 쌓아온 업셋과 치명적 실수들 그리고 명승부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되었고, 예의 관심은 곧 돈으로 연결되었다.

 

하긴 그런 신나는 경기를 앞두고 아인슈타인이나 하이젠베르크 혹은 괴델 같은 이들이 등장해서 상대성 이론에 대해 운운하는 건 아무래도 쌩뚱 맞지 않았을까. 이런 거에 비하면, 셀시우스나 패런하이트는 양반이지 싶다.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살아 남은 짐과 테사는 자신들의 생존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부상 치료도 미룬 채 화장실에서 격렬한 정사를 나눈다. 놀랍군. 그리고 이어지는 타인을 배려하는 핀잔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런 위기상황은 그런 일탈의 발생에도 관대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처음에 맨해튼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20년 전, 미국을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9-11 테러사건이 떠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공간적 배경이 같은 맨해튼이 아니던가. 다만 시간은 계절적으로 가을과 겨울이라는 점이 달랐지만. 예상하지 못한 가공할만한 테러는 물리적으로 쌍둥이 빌딩만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거대한 심리적 타격을 가했었다. 그 때와 달리 소설 <침묵>에서는 모든 통신이 두절되고, 정보의 교류가 차단된 상황에서도 기이하게 침착함을 유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차단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인간들은 디지털 네트워크가 먹통이 되더라도 곧바로 일상을 되찾는다. 추락한 비행기에서 생존하는데 성공한 짐과 테사는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걸어서 도착한다. 슈퍼볼 홈파티의 호스트인 맥스는 오크통에서 십년 동안 숙성시킨 버번을 들이킨다. 그리고 맥스가 꺼진 텔레비전을 응시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01로 이루어진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소설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점점 좀비가 되어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신문이나 뉴스 혹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정보를 취합해서 나만의 고유한 사고를 형성했다. 하지만 너튜브라는 동영상 매체가 모든 것을 잡아 삼키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는 선동으로 점철된 포스트트루스(post-truth)만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이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아니 이제 진실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도서관에서 막 빌린 따끈따끈한 책을 읽긴 했으나, 번잡스러운 속에서 과연 내가 읽은 게 맞는지 그리고 제대로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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