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박건웅 지음, 님 웨일즈 외 원작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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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김산이라는 혁명가의 삶을 다룬 <아리랑>이란 책을 알게 됐다. 되짚어 보니 정말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런데 책은 다 읽지 못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호기롭게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그렇게 <아리랑><중국의 붉은 별>과 더불어 나의 숙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미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즈 여사가 저술한 <아리랑>의 그래픽노블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마음이 다급했는지 차 안에서 50쪽을 훌쩍 넘겨 버렸다.

 

202011월의 을씨년스러운 날에 내가 만난 님 웨일즈가 기술한 조선 출신의 비운의 혁명가 김산, 아니 장지락에 대한 전기는 제목만큼이나 슬픈 그런 이야기였다.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동안의 휴지기에 과연 서구 출신 저널리스트로 님 웨일즈가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저자는 편견이나 왜곡 없이 일제의 프로파간다가 배제된 진실에 과연 얼마나 도달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아리랑>1937년 중국의 옌안에서 저자가 조선공산당에서 파견한 극비 대표 김산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비밀에 쌓인 조선 출신의 혁명가를 음모가라고 처음에는 판단한 모양이다. 아니 장명이라는 가명으로 숱한 책들을 빌린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했던가. 님 웨일즈가 저술한 <Song of Arirang>1941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신천지라는 잡지를 통해 소개됐다당시 부제는 '조선인 반항자의 일대기'였다. 그후, 1984년에 다시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러일전쟁 중이던 1905, 평북 용천에서 빈농의 세 번째 아들로 출생한 장지락은 유년 시절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193·1운동을 체험하면서 비폭력 평화운동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제하에서 신음하던 조선 민중이 하나님에게 죄의 보상을 치르고 있다는 외국 선교사의 말은 어이가 없었다. 죄의 보상이 치러지고 나면 독립하게 될 거라는 말에 소년 장지락은 아연실색한다.

 

소년 장지락은 일제 치하에서 조선 민족이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자각하면서 민족주의자로 출발한다. 하지만 3·1운동의 실패를 보고서, 무정부주의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것은 정교한 운동 이론과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정부주의자들은 다음 단계에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하게 된다.

 

이후 둘째 형님의 후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배달과 인력거꾼으로 고학을 하면서 도쿄 제국대학 진학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운동이 활발했던 모양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장지락은 미래의 혁명가로서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알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700리 길을 걸어 어린 나이에 만주 신흥무관학교에 최연소 입학한 장지락의 일화는 거의 전설이 되었다. 그 다음 단계인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의 교정을 맡기도 했다. 이 시절에 만난 안창호 선생과 독립신문의 편집을 맡았던 이광수와도 교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의열단 출신의 김약산과 오성륜과 교류하면서 아나키스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곧 테러에 의한 항일운동이 이상적이라는 사실과 그 한계를 느끼고, 대중혁명운동인 마르크시즘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921년 중국 베이징으로 간 장지락은 당대 중국 최고의 의료기관이었던 베이징 협화의학원에서 의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5·4운동의 영향으로 중국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마르크스 학술활동이 활발하던 베이징에서 그는 공산주의에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공산청년동맹에도 가입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승려 출신 김충창(김성숙)과 만나 본격적인 마르크시즘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1차 국공합작과 쑨원의 사망 그리고 국민당이 주도한 북벌의 소용돌이 속에 장지락은 당시 중국 최고의 대학이었던 중산대학의 의대 본과생(나중에 정치학 전공으로 바꾸었다)으로 김충창과 함께 활발한 정치활동에 나섰다.

 

장지락은 조선 출신으로 광둥 코뮌이나 하이루펑 소비에트 활동에 참가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기도 하다. 당시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목표는 조국 조선의 독립이었다. 하지만 임정에 도움을 주었던 장제스 정권이나 중국공산당 모두 자국을 침략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싸우느라 타국의 독립까지 후원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조선의 혁명가들은 그들에게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것이 결국 훗날 장지락의 운명에 비극적 결말을 가져오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조선 출신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이런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일단 장제스의 국민당이나 공산당에 일단 협력한 다음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기로 결정했다. 1927412, 장제스의 주도로 상하이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것은 국민당 우파에 의한 혁명세력과 노동자 학살로 1차 국공합작이 결렬되고 호기롭게 시작한 광둥 코뮌마저 백군에게 격파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상부로부터 후퇴 명령을 전달받지 못하고 적군과 맞서 싸운 박진 부대 최후에 대한 증언은 광둥 코뮌의 실체를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광둥 코뮌이 분쇄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퇴각에 성공한 장지락을 비롯한 혁명 세력들은 하이루펑 소비에트로 이동한다.

 

그 다음 무대였던 홍군이 장악한 하이루펑 소비에트에서 장지락을 비롯한 혁명 동지들에게 미래의 조국의 희망찬 모습을 엿보기도 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집요한 국민당군의 공격 앞에 패퇴한 장지락과 혁명 동지들은 사경을 헤매면서 적군의 추격을 피해 도주했다. 굶주림과 말라리아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수많은 동지들이 노상에서 죽어갔다. 이런 잇달은 실패의 체험과 혁명 과정에서 벌어진 반동 계급에 대한 숙청에 대해 장지락은 인간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계급투쟁과 인간해방이라는 거대한 대의를 위해 싸웠지만, 그에 따른 부차적 피해와 피에 피를 부르는 복수는 피할 수가 없는 숙명이라는 사실이었다. 휴머니스트로서 실패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박건웅 저자가 밝힌 대로, 혁명 와중에 피어나는 연애 스토리도 빼놓을 수가 없다. 혁명가 장지락은 철저하게 조국 독립과 혁명에 모든 것을 바쳤노라고 수없이 천명했다. 그러나 혁명가에도 덧없는 사랑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혁명 동지 류링의 적극적 구애와 결혼까지 한 역시 다른 혁명 동지와의 사랑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혁명가의 삶을 비춘 한 줄기 빛이 아니었을까.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으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지기도 했지만, 혁명 열사의 의기는 꺾을 수가 없었다. 중국 혁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옌안에 조선혁명가 극비대표로 파견되어 님 웨일즈를 만나면서, 서구의 저널리스트가 남긴 기록을 통해 잊혀진 혁명가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숱한 투쟁의 사선을 뛰어 넘은 이 걸출한 혁명가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이 아닌, 리리산주의자 혹은 트로츠키주의자 그리고 일본 특무(스파이)라는 모함을 받아 19381019일 처형된 점은 비극의 전형이다.

 

박건웅 저자가 아무래도 장지락이라는 개인에 집중하다 보니, 어떻게 해서 조선 출신의 독립운동가가 남의 나라인 중국혁명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1920-30년대 한국 독립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인 중국혁명사를 동일선상에서 고찰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중국혁명 참여는 어쩌면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와 트로츠키의 세계혁명론이 충돌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냉전적 사고로 본다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부분이겠지만 말이다.

 

아울러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사회주의자로 계속해서 변신을 거듭하는 혁명가들의 정체성 문제도 생각해 볼 문제다. 조국의 광복이라는 대의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민족주의 계열 운동가들과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들의 운동의 방법과 각론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런 디테일들이 조금 아쉬웠다.

 

오늘 읽은 그래픽노블 <아리랑>으로 일부분이나마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를 마친 것 같이 조금이나마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중국의 1920-30년대 혁명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혁명가 장지락이 중국에서 투쟁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상당 부분 해소된 기분이다. 아무래도 그래픽노블로는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는다. 님 웨일즈의 원작에 다시 도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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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0-11-22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두 부부가 쓴 <아리랑>과 <중국의 붉은별> 만만치 않은 책이었어요.
중국의 붉은 별은 3분의 2정도에서 대장정을 끝내지 못했고 아리랑도 읽다 말았네요^^
숙제로 여겨진 2권의 책 공감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 책이 엄청 반가웠네요.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반공의 이데올로기속에서 아예 존재조차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가 시대가 변해 우리에게 다가오니 넘 뿌듯합니다^^;

레삭매냐 2020-11-23 11:40   좋아요 0 | URL
저도 계속해서 읽다 말다를 거듭하고
있네요...

이참에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설까
봅니다.

아무래도 냉전시대에는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평가
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선 <아리랑>부터 읽는 것으로.

페넬로페 2020-11-23 0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시대가 시대인 만큼 ‘중국의 붉은 별‘과 ‘아리랑‘ 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혁명의 꽃이 만발하길 기대했지만
나중에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는 그들의 행동들이 실망만을 안겨줬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리랑‘ 은 사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네요~~
기회되면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레삭매냐 2020-11-23 11:42   좋아요 0 | URL
장지락 선생의 일대기를 살펴 보다
보니 서구 저널리스트가 쓴 <아리랑>
보다 이원규 선생이 썼다는 <김산
평전>에 눈길이 가더라구요.

다만 책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는
게 흠이네요.

작고하신 김준엽 선생의 <장정>도
다시 만나야지 싶습니다. 읽을 책들
이 너무 많네요 증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