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혁명가 김원봉
허영만 지음 / 가디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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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락의 <아리랑>으로 시작된 독립운동 추적은 신출귀몰했다던 의열단 의백 약산 김원봉을 다룬 그래픽노블에까지 도달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요즘엔 도서관 출입도 상당히 번거롭다. 체온을 재야 하며, 도서관 대출증으로 본인 인증을 통과해야만 서가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우리나라 최고의 데생 전문가라는 허영만 선생은 정말 통달한 실력으로 붓가는 대로 쓱쓱 그렇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캐릭터에 생명감을 불어 넣어준다. 밀양 출신이라는 김원봉의 이력을 출생이 아닌 그가 본격적으로 의열단 활동을 시작한 청년기로부터 출발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약산 선생은 망국의 슬픔을 겪으며서 자랐다. 거의 모든 독립혁명가들에게 공통된 사항이지만 19193·1운동은 독립운동에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조선 민중은 독립을 외치는 비무장 평화시위에 나섰지만, 일제의 대항은 간악했다. 시위에 나선 민중들을 법적으로 구속할 근거가 없기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결국 3·1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실패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대다수 민족주의 운동가들은 극적인 방향의 전환을 도모하게 된다. 말로 해서는 도저히 조국의 독립이 불가능하는 간단한 결론이었다. 그 결과,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에 나서게 된다. 만주에서는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의 전투가 있었다면, 약산 선생을 필두로 한 일단의 청년들은 아나키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일제에 대한 테러에 나서게 된다. 의열단 공약 1조에 등장하는 정의를 맹렬히 실행한다가 그들의 신념을 대변한다.

 

임정의 김구 선생(60만원)을 능가하는 현상금이 걸린 약산 선생의 활약을 대단했다. 하시모토 부산경철 서장 저격을 비롯해서, 조선총독부 폭파와 조선총독 암살 기도 등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의열단에 투신한 청년들은 자신들이 먼저 거사에 나서겠다면 제비뽑기를 하며,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에 청춘을 바쳤다.

 

모든 활동이 그렇듯 의열단 활동에도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다. 무기 구입을 비롯해서, 폭탄 제조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게다가 의열단 추적에 혈안이 된 일제는 마쓰우라 히로(친일경찰 노덕술의 일본명) 같은 밀정을 동원해서 숱한 독립혁명가들을 체포해 고문했다. 거사를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사살당하거나 죽는 건 불가피했다. 옥고를 치르다 죽은 인사도 상당했고, 김익상 의사처럼 긴 세월의 옥고를 치르고 나서 행방불명된 이들도 있었다.

 

의열단 활동은 조선 민중이 지닌 저항의 기백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들 운동의 한계 역시 뚜렷했다. 소수 엘리트주의 활동으로 중국대륙까지 침략에 나선 일본 제국주의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차에, 국민당 주석 쑨원이 김원봉과 회합을 추진했다. 같은 혁명가 쑨원은 약산 선생에게 돌아오지 않는 화살의 비유를 들어 중국대혁명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이에 결단을 내린 의백 약산은 일단의 동지들을 이끌고 황푸군관학교에 정식으로 입교해서, 국민군 소위로 변신한다.

 

물론 유자명 같은 인사는 의열단원의 황푸군관학교 입교에 반대하기도 했다. 조선 혁명가들의 목표는 조선의 독립이지, 중국 혁명의 성공이 아니란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냉철한 판단을 내린 약산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는 우선 중국 혁명을 성공시켜,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하는 길이 첩경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머지 부분들은 장지락의 황푸군관학교 시절과 광둥 코뮌 그리고 하이루펑 소비에트 붕괴에 이르는 과정과 유사했다.

 

소위 장제스의 반공 쿠데타인 청당운동으로 국민당이 좌우로 갈리면서, 중국대혁명에 가담했던 조선 독립혁명가들도 분열하게 됐다. 국민당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장제스를 암살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약산 선생은 예의 제안을 뿌리치고 훗날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어디까지나 중국혁명은 부차적인 문제이자, 방법이었을 뿐이고 목표는 조선의 독립이었다.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는 좌파 계열과 합작을 거부했다. 약산이 시도한 좌우합작 민족혁명당의 합류도 난망했다. 한편, 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두 번째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이 본격화되면서 19381010일 조선의용대를 발족시키면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전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조선 독립혁명이라는 대의는 좌우 모두에게 공통의 지향점이었지만, 각론의 방법론에서 상이한 차이가 단일대오를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게다가 일제의 교활한 책동으로 기존의 의열단 동지인 김천수 같은 인사가 변절하기도 했다. 장지락의 동지였던 오성륜 역시 일본에 체포되어 변절했다.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에도 나오는 것처럼, 친일매국노와 배신자는 끝까지 추적해서 처단한다는 의열단 공약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 <밀정>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황옥경부사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애국과 친일 사이의 혼란스러운 시대상 만큼이나 복잡한 인물이 바로 황옥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는 송강호가 이정출 역으로 등장해서 열연했다. 원래 독립운동을 하던 인사가 변절해서,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최고 경찰직인 경부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의백 약산 선생과 접촉하고 개심(?)하여 의열단 활동 지원에 나섰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약산 선생은 그런 황옥을 끝까지 믿었다고 한다.

 

조국의 광복을 얻기 위해 국내진공작전까지 구상했으나, 미국의 원폭투하로 일본이 갑작스럽게 해방되면서 약산과 김구 선생은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주권자로서 당당한 해방이 아니라, 외세에 의한 해방이 가져올 폐해를 독립혁명가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남한의 군정을 맡았던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은 임정과 좌파 계열 인사들의 신속한 귀국을 원하지 않았다. 어수선한 해방 공간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조국의 분단은 가속화됐다.

 

일제 강점기 숱한 독립인사들을 체포 고문해서 살해한 악질 친일경찰 마쓰우라 히로는 노덕술로 탈바꿈해서 측간에 있던 약산 선생을 체포해서 모욕한다. 중국 대륙에서 사선을 넘어가며 투쟁하던 시절에도 단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던 약산 선생이 해방 공간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노덕술에게 그런 대우를 받자, 삼일밤낮을 통곡했다고 했던가. 우파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건준의 여운형마저 암살당하고, 시시각각 백색 테러의 위협을 받던 약산 선생은 옛 동지들이 자리를 잡은 북으로 스님으로 위장해 월북한다.

 

허영만 선생은 논란의 핵심에 있는 약산 선생 월북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다. 얼마 전에도, 약산 선생의 서훈 문제로 논란이 됐던 게 생각났다. 그동안 역사에서 소외되어온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혁명가들이 속속 서훈을 받았지만, 유독 약산 선생만은 북한 정권 수립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다만 노덕술이 대한민국에서 세 개의 훈장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픽노블 <독립혁명가 김원봉>만으로 거인 약산의 삶을 조명해 보는 건 무리다. 한쪽에 치우쳐진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 독립운동의 실체에 대해 그만큼 보정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홍구 교수님의 말대로, 장지락과 김원봉 같이 널리 알려진 독립혁명가들 뿐 아니라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 없이 조국 해방에 투쟁한 이들을 찾아 기억하는 게 우리 후대의 임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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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0-11-25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현대사는 아직도 익숙치 않네요. 아직 읽지 읺은 책들을 모이봐야 겠군요^^; ‘노덕술이 훈장 세개’하는 대목이 헐~~ 안타까웠습니다~

레삭매냐 2020-11-25 21:57   좋아요 2 | URL
랑케 실증사학의 세례를 받은
주류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문헌이나 사료에 기록된 사실만
인정하려고 하는 게 문제가 아
닌가 싶습니다.

식민지 시절과 냉전, 전란을 거
치면서 소실된 사료의 부재로
근현대사를 제대로 조명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노덕술도 받는 서훈을 진짜 독립
혁명가들이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더 암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