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미리 계산하지 마라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은 '자살론’에서 자살을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에 통합되지 못했기 때문에 소외감이나 우울증으로 하게 되는 자살(이기적 자살), 자신이 속한 집단에 지나치게 융합 결속되어 집단을 위해 희생적으로 하는 자살(이타적 자살), 개인이 사회에 대한 적응이 갑자기 차단, 와해되면서 삶의 기준을 상실할 때 발생하는 자살(아노미anomy 자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살은 아마도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 자살이 혼합된 것인 듯 싶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로 꺼낸 것은 내가 20대 초에 그런 경험이 세 번 있기 때문이다. 약을 먹기도 했지만 며칠 후 깨어난 적도 있고 손목에 면도칼을 깊게 긋기도 했는데 깨어보니 병원 응급실이었고 그 덕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보내지기도 했다( 혹시라도 세이노 행세를 하며 사기치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왼쪽 팔목에 길이 6 cm , 4 cm 짜리 칼 자국 두개가 나란히 있다. 면도칼로 그었더니 피가 졸졸 흘러 다시 팍 그었기에 칼 자국이 2개가 되었다. 그걸 확인하면 된다. ㅎㅎ )

우울증에 걸렸던 것 아니냐고?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극단적으로 우울해진 사건은 군 제대후 압구정동에서 일어났다. 우연히 그곳을 부자집 여자 친구와 지나가다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결혼 후 어떤 곳에서 살고 싶으냐고 말이다. 그녀의 대답은 “얼마 전 결혼 한 막내 언니가 20 몇 평에서 사는데 좀 좁게 느껴지므로 자기는 30 평 정도가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동네 아파트 가격을 알아 보았더니 30평형은 커녕 가장 작다는 20 몇평형 아파트의 전세 조차도 나로서는 평생 못 가질 것이었다. 남산 꼭대기에서 바라다 볼 때 수없이 널려 있는 그 아파트들 중 정말 단 하나도 내 것이 된다는 것은 정말 영원히 불가능해 보였다.그게 벌써 근 30년 전 이야기이다.

십 몇 년 전 음향기기 사업을 했을 때,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아 출신의 한 젊은 직원을 고층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밤거리를 보여 주면서, “저기 저 성냑곽 같은 수많은 아파트들 중 네가 들어가 쉴 곳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내가 과거에 그랬듯이 그 역시 같은 생각에 절망하고 있었다(어쩌면 당신도 강남의 수많은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절망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내 밑에서 3년 정도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배웠고, 그 뒤 독립하여 줄곧 용산에서 1인 비즈니스를 하여 왔는데 5,6년 전 결혼도 하고 아파트도 장만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직도 용산 전자상가에 있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이야기는 건물 옥상에서 수많은 아파트 불빛들을 바라보며 바로 그 직원에게 내가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하면 된다”고 말하였지만 나는 도대체 할 것이 없었다. 뭘 하면 된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군 제대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며 대학생도 아니었고 홀로 세상에 던져진 가난한 청년에게 “하면 된다”는 말은 정말 사기나 다름 없었다. 아침 햇살을 가슴 벅차게 안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는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라면 살 돈도 없어서 라면 스프만을 얻어다가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연탄불 위에 끓인 뒤 거기에 다 식어 빠진 밥을 김치도 없이 계속 먹어 보아라. 무슨 희망이 있다고 살 맛이 나겠는가.

그 시절의 나에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는 뜬 구름 잡는 책들을 책방에서 선 채로 다리 아프도록 읽는 것과 마스터베이션 뿐이었다. 그나마 미스터베이션이라도 되었으니 다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발기가 안 되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결국 절망감,고독감,외로움,열등감,상황도피,삶의 기준 상실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살을 생각하였고 그것이 거듭 실패하자 "이 좃 같은 세상에서 이왕에 살아야 한다면, 내 팔목에서 쏟아진 피보다 더 진하게 살아보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은연 중에 "피보다 진하게 살자"가 나의 좌우명 비슷하게 자리잡았다.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에 걸려 자살충동을 느끼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중증의 우울증 환자인 경우 머리에 강한 전기 쇼크를 주어 잠시 죽였다가 실험실 개구리 뒷다리 처럼 온 몸에 발작이 일어나면서 얼굴이 보라빛으로 변하면 다시 살려내는 그런 치료법이 종종 사용되었다(그런 장면을 본 나는 정신과 의사 앞에서는 명랑한 척 하여 풀려났다.ㅋㅋ).

23살의 어느 우울한 봄날이었다. 다시 봄이 왔을 때 나는 남의 집 차고에서 살면서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미군 부대 물건 판매 등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그리고 28살의 어느 여름날 나는 허름하지만 마당까지 있는 집과 자가용을 처음 샀다. 융자를 낀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나 불가능하게 여겼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하지만 1년 후 나는 그 재산을 사업상의 이유가 아닌 개인적인 이유로 몽땅 날렸고 빚을 졌지만 3년 후 다시 일어섰다.)

살다 보면, 해도 해도 아무것도 안될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어떠한 대안도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때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실망,좌절이 절망 속에서 계속 쌓이면 자살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자살은 함부로 저지르는 의미가 없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처한 고통이나 위기상황, 상실감 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자살이 그런 탈출구였다.

그러나 로버트 슐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떨어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향해 날아 볼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떨어지던 중 비쩍 마른 두 팔로 온 힘을 향해 세상 속으로 날갯짓을 시작하였을 뿐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는 말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추락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날개짓을 할 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절망의 골짜기에는 밑바닥이 없다. 아무리 깊이 떨어져도 우리를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릴 절망이란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파괴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마약 중독자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 '트레인스포팅'에서 주인공 마크 렌튼은 이렇게 말한다. "삶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미래를 선택하라. 가족을 선택하라. 빌어먹게 큰 텔레비젼을 선택하라. 세탁기, 자동차, CD 플레이어, 전동식 깡통 따개를 골라라. DIY제품을 고르고,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 회개하는 삶을 선택하라, 빌어먹을…. 하지만, 내가 왜 그런 것을 원해야 하지?(But why would I want to do a thing like that?)"

렌튼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비웃는 듯 보이지만 그의 독백 속에는 학벌이나 돈,능력도 없으므로 평범하게 살래야 살 수도 없지 않느냐는 절망이 근저에 깔려있다. 그는 대안으로 마약을 선택하였을 뿐이다.

'트레인스포팅'은 영국에서 기차가 처음 생긴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생긴 말로, 사람들이 기차역 플랫폼에 모여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맞추는 게임을 뜻한다. 이 영화의 극작가 존 호지는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 즉 트레인스포터는 혼돈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행동 양태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것일 수 있으며 이는 영국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결국 '트레인스포팅'은, 삶은 우리에게 달려오지만 우리는 삶의 번호를 알지 못하며 다만 번호를 맞추는 게임을 할 뿐이라는 의미를 던져 준다.

우리는 왜 절망하는 것일까? 미래의 상황을 현재의 처지에 비추어 미리 계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류대를 못 다닌다고 해서10년 후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의 빚을 5년 후에도 못갚을 것이라고, 지금의 봉급으로는 평생 남들처럼 못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하여 체념한다. 지금 가난하므로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기를 두들겨 대면서 미래의 삶에 절망적인 번호를 매기고 만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이러저러하므로 5년후, 10년후에도 이러저러할 것이기에 희망이 없다고? 너무 계산이 빠른 것 아닌가? 점쟁이도 자기 미래는 모르는데 어떻게 감히 신의 영역인 미래를 스스로 투시하고 미리 계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려면 미래 방정식에 지금의 처지를 대입하면 절대,절대,절대,절대 안된다. 결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트레인스포팅 게임처럼 우리에게 달려오는 삶의 번호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논두렁에서 군사를 일으켜 일약 군왕이 된 자가 있는가 하면 시장 거리에서 춤추던 무희가 하루 아침에 황후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지 않은가. Don’t cry for me Argentina 의 주인공 에바 페론 역시 술집 종업원에서 아르젠티나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게나 절망적이었던 내가 부자로 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흔히 이야기 하듯 사람 팔자 시간 문제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절망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저 이 순간부터 당신의 미래 언젠가에 무슨 일인가가 새로 일어날 수 있도록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하라.

절대로 “내가 이걸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어?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는 따위의 생각은 추호도 갖지 말라. 그것 역시 미래 방정식에 현재의 시간을 대입시키는 어리석은 짓이며, 패자들이 즐겨 사용하였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단 조건이 있다. 뭘 배우던지 간에, 뭘 하던지 간에 미친 듯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하여라. 그렇게 할 때 미래는 그 암흑의 빗장을 서서히 열어주기 시작할 것이며 조만간 그 빗장 너머에서 비쳐지는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서 당신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몇 년째 살아 왔음에도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그저 삶의 번호를 잘못 찍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다. 그 잘못된 길에서 절망하지 말고 빨리 깜박이를 키고 길을 바꾸어라. 내 말을 믿어라. 거기서 새 삶이 무섭도록 빠르게 달려온다.

정말 정말 그렇게 되느냐고?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하나만 이야기 하자.

신문에 컬럼을 기고를 할 당시, 절망감이 가득찬 독자로부터 메일을 계속해서 받았다. 이른바 괞찮다는 대학의 인문학과를 나왔지만 이혼하여 혼자가 된 상태에서 뚜렷한 기술이나 직업도 없는 30대 초의 독자였다. 그저 막연한 생각으로 약대나 한의대에 다시 가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게다가 중고생을 부업 삼아 가르치며 모은 얼마 안 되는 돈 마저 주식투자로 다 날렸지만 몰락한 집안을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였다. 답변 메일에서 나는 생각의 방향전환을 강조하면서, 부업 삼아 하던 과외 일에 미칠 것을 권유하면서 프로가 되는 법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알려 주었고 그 독자는 내 지시대로 하겠다고 하였다(나는 내게 메일을 보내는 모든 독자에게 똑 같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절대로 나에게서 개인적인 친절함은 기대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즉각 내 말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머뭇거리면서 내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의 질문들은 정확히 표현하면 궁금한 점들이 아니라 안달이었고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과연 세이노 말처럼 과연 될까”하는 끊임없는 의심이었다.

왜 사람들은 내가 이미 실제로 경험한 것을 말해 주는데도 믿지를 못할까? 정말 이러한 의심은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승자는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유대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정말 진리이다).

미래를 미리 계산부터 해보려는 그의 태도에 나는 짜증을 엄청 냈으며 결국 그는 내가 제시한 방법론을 받아 들였다. 1년이 지나자 그의 예금액은 수 천만원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채 못 되서 그 금액은 2억원이 되었고 거기서 다시 6 몇 개월이 지나자 그가 내게 보고한 예금액은 3억원에 달하였다. 물론 내가 아주 약간의 재테크 조언을 해 주기도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내 조언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조언 중 하나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에서 나온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그 독자의 프라이버시와 세무서 때문에 안 된다. 내가 꾸며낸 이야기 아니냐고? 야, 이 닭대가리야!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두명인 줄 아느냐? 쯧쯧.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3월에 기고한 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협상 능력을 길러라.


책을 추천하여 달라고 하면 "나는 이런 것도 읽을 정도로 유식하다”고 자랑하려는 듯한 책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흉내는 내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면 주저 없이 권하는 책이 있다. 명사회자 래리 킹의 절친한 친구 허브 코헨( Herb Cohen )의 <협상의 비결>( You can negotiate anything)이다.

이 책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미국에서도 한때 베스트셀러 반열에 속했으나 뉴욕 같은 곳에서만 그랬다. 왜 그럴까? 책 중에는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스러운 책들이 있다. 읽고 나서 혼자서만 알고 있기를 바라는 심리가 생기는 책들 말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당연히 별로 소문이 나지 않는다.

어느 주한 대사관의 상무관에게 이 책의 원서를 선물했더니 “첫날은 그대로 읽었으나 그 다음날에는 책의 표지를 씌웠다”고 했다. 국내에서 이 책은 90년대초에는 '협상의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90년대 중기에는 '협상'이라는 제목으로, 90년대 말기에는 '협상만으로도 세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제목으로 제각기 다른 출판사들에 의하여 출간 되었으나 출판사가 계속 바뀔 정도로 잘 팔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동아일보에서 이 책을 소개하고 난 뒤 어느 출판사에서 “협상의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을 하였는데 오해하지 말라. 나는 그 출판사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이며 그들은 내 글이 신문에 나오기 수개월 전에 판권계약을 이미 했었다고 한다(내가 출판사와 짜고 책을 소개했다고 생각하는 웃기는 독자들도 있다. )

좀더 전문적인 내용은 김병국 변호사의 “비즈니스 협상론”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책 역시 훌륭한 책이다. (협상에 대한 책들 중 뜬구름 잡듯 두리 뭉실한 책들은 읽지 말아라.)

협상을 잘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2001년 1월 독일 지멘스 그룹의 하인리히 폰 피레 회장은 상하이와 인근 공항을 연결하는 자기부상열차 사업 수주를 위한 협상에서 주룽지 중국 총리에게 빈 양복 주머니를 뒤집어 내보인 뒤 일어나 두 팔을 벌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는 지멘스로서는 더 이상 양보하기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는 약 2분간 주머니를 뒤집어 보인 채 서 있었고 주 총리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 보다가 갑자기 악수를 청했다. 1조원이 넘는 계약이 하인리히 회장의 기가 막힌 협상력에 의하여 그렇게 체결된 것이다. 피레 회장은 "당시 협상에 진전이 없어 묘안을 짜내야 했다"면서 "빈 주머니를 내보이기로 작심하고 미리 주머니를 비워 두었다"고 한다.

나는 비행기를 10시간 이상 타고 외국에 가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미나 아프리카인 경우에는 비행기만 24시간 이상 타게 되는데 일등석이라고 해도 정신이 흐리멍텅한 상태로 도착하게 된다. 이런 경우 나는 현지 도착후 적어도 10시간은 지난 뒤에야 사람들을 만났다. 이때 상대방이 내가 도착한 즉시 미팅을 하자고 고집할 경우에는 상당한 경계심을 갖는다. 나의 흐리멍텅해진 정신상태를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이려는 의도이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잘못하면 엄청난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 직원들에게 협상에 대한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고 가르쳤었다. 하나는 오리엔탈식 스타일인데 유교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합리적으로 논리를 전개 시켜 나가는 웨스턴 스타일이다. 마지막 하나는 막무가내식의 형태인데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갱스터(조폭) 스타일이다. “배째라”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오리엔탈 스타일의 대표적인 접근 방식은 주로 연장자들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네 나이가 몇 살이냐, 너는 윗사람도 없느냐, 말투가 그게 뭐냐, 학교도 안 다녔냐, 부모도 안 계시느냐, 젊은 사람이 그게 뭐냐,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느냐" 등등의 말이 그 범주에 속한다.

이렇게 말하는 상대가 다시는 만나지 않을 상대라면 갱스터 스타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A 18, 내가 나이 좃같이 말아 쳐 먹어 오는 데 18놈(년) 뭐 보태 준거 있냐? ” “ 그래, 나 18 놈의 좃같은 호로새끼로 자랐다. 그래서 18, 네 에미 10같이 뭐가 어떻다는 거야.” 혹은 “ 네미 18, 나 못 배우고 가방 가벼워서 무식한데, 그래 좃나게 유식한 당신 , 18.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냐?" (나는 누구나 뻔히 다 아는 말을 x 자로 표시하면서 고고한 척 점잔 빼는 법을 모르므로 양해하라. 참, 나이 든 사람에게 욕을 할 때 주의사항이 있으므로 “개새끼들에게는 욕을 하자”항목을 참조하라. 잘못하면 콩밥 먹는다.)

이런 대응 방법은 오리엔탈식 논리의 근저가 되는 유교적 사고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기에 상대방은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을 즉각 깨닫게 된다. 이런 대응법은 주로 다시는 안 볼 사람을 상대로 할 때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나는 정부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서류를 어떻게 하여오라는 설명은 없이 그저 서류가 잘못되었다고 트집 잡으며 몇 번씩 헛걸음 치게 하는 공무원들에게 효과적으로 써 먹은 적도 몇 번 있다(공무원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따로 이야기 할 것이다.)

이런 갱스터 스타일은 아주 예전에 내가 버스를 타고 다녔던 시절에 배운 것이다. 만원 버스 안에서 문 앞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려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잠시 좀 비켜주세요."라고 정중히 말하면 사람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에이 18, 맨날 좃같네, 좀 나갑시다!" 라고 말하면 금방 공간이 생겼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주의: 막가파 수준의 애들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으므로 주의할 것).-- 그런데 하나 좀 물어 보자. 당신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똥 같은 인간들이 진짜 더러워서 피하는가? 사실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오리엔탈 스타일에 똑 같은 스타일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은 주로 얼굴을 자주 대면하여야 할 상대에게 사용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렇게 말한다. "제가 나이가 어려서 철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르신께서 지도 편달하여 주십시오. 제가 머리가 부족하여 말씀하신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을 뿐이지 웃어른을 공경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막 자란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어쩌구 저쩌구.." 일단은 상대방의 논리에 동조한 뒤 기회를 노리라는 말이다.

오리엔탈 스타일에 웨스턴 스타일로 접근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비즈니스 협상 중에 상대방이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오리엔탈 스타일인 경우가 있다. " 회사에서의 제 입장이 현재 이러 저러합니다. 인간적으로 저를 좀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상대를 만나게 되면 나는 직원들에게 웨스턴 스타일로 대응하라고 했다. 단, 조건이 있다. 우리 측이 문서나 계약 내용으로 보아 유리한 경우에만 그렇다. "저도 물론 당신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이 문제 자체에 초점을 두고 생각하여 보세요. 잘못된 것은 분명하고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오리엔탈 스타일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법은 상대방과 마찬가지로 오리엔탈 스타일을 취하되 좀 더 높은 유교적 가치에 호소하는 것이다. " 저라고 뭐 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 같이 봉급쟁이 아닙니까.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안다고 저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난 달 잘못을 범해 시말서를 썼습니다. 저도 부양하여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제 아내는 지금 임신 8개월이고 저의 부모님은 연로하신데 제가 부양하여야 합니다. 제가 시말서를 한번 더 쓰게 되면 그땐 회사를 그만두어야 합니다. 저희 사장새끼, 악질이라는 거 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저보다 못한 상황에서 사시는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쩌구 저쩌구….." 즉 상대방이 회사 내에서의 어려움을 인간적으로 호소한다면 가정 내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더 나아가 부모 부양 문제 까지 언급을 하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효도는 전통 가치 중 최고로 인식되는 것이기에 아무도 그것 보다 더 높은 가치를 끌어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측에도 잘못이 있을 때 사용된다.

상대의 논리가 오리엔탈과 웨스턴이 섞인 복합 스타일일 경우에는 우선은 말꼬리를 트집 잡아 낚아 채야 한다. 이를테면 상대가 연장자라면 "말씀하시는 내용이야 충분히 이해가 되고 선생님 입장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저야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입장 차이를 떠나 아까부터 제가 상당히 기분 나쁜 게 있는 데 도대체 내가 선생님 아들도 아닌데 어째서 반말을 하십니까? 말이라는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아닌가요?" 어차피 당신은 속으로는 논리 싸움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터이니 엉뚱하게도 상대의 말투로 시비를 잡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의를 갖추어 서로 존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오리엔탈 스타일에 사용되는 논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한 것으로 초점이 옮겨지는 효과를 갖게 된다.

웨스턴 스타일에 반드시 웨스턴 스타일로 대응하여야 하는 경우는 계약서 작성을 할 때 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 당신이 상대방으로부터 돈을 받는 입장이라면 뭔가 하나라도 잘못될 경우 돈을 받지 못하게 되는 수도 있고 상대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면서 대금 지불을 거절할 수도 있으므로 오리엔탈 스타일을 적절히 섞어나가는 것이, 즉 두리뭉실한 것이 유리하다. 이를테면 "이런 문구가 들어가게 되면 저는 우리 회사 악발이 사장에게 맞아 죽어요. 그러니 제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굳이 문서로 적어 넣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상대방에게 돈을 주는 입장이라면 상대방이 해야 할 모든 것을 정확하게 모든 것을 표기하라. (명심해라. 돈을 주는 입장이건 받는 입장이건 간에 아무리 문서로 철저하게 계약을 하고 도장 꽉꽉 눌러 찍었어도 계약 사항을 무시하고 배째라는 식의 갱스터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나는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우리가 불리하면 오리엔탈 스타일로 접근하고, 우리에게 유리하면 웨스턴 스타일로 접근하라고 했다. 즉 어떤 계약 내용을 지키지 못하였다면 여러 가지 인간적인 면들을 유교적 가치와 뒤섞어 상대에게 접근하여야 상대방의 양보와 이해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면 당연히 웨스턴 스타일로 끌고 가야 상대방이 항복하게 된다. 나는 양쪽 모두가 이기는 윈 윈 게임이라는 것도 실제로 해 본 경험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협상은 실제로는 우리가 이기고 상대방은 자기가 이긴 것으로 믿게끔 착각을 안겨 주는 협상이다.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당신이 불리하게 될 때 재협상할 구멍은 남겨 두는 것이 좋다. 특히 봉급생활자들은 협상에 임할 때 반드시 당신에게 90%의 결정권은 있지만 남은 10% 결정권은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함을 상대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당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윗사람이 지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그 어느 협상을 하건 간에 내가 공통적으로 주문한 말: "너희는 언제나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악역은 내게 맡기고 필요하다면 상대방에게 너희들 사장인 나를 개새끼로 욕을 해라. 너희는 상대방이 제시하는 조건을 다 들어 주고 싶은데 쌍놈의 사장 새끼가 결재를 안 해준다고 말해라. 그래야 너희들은 선량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으로 남게 되는 법이다. 그래야 너희들에게 유리하다."

한편,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이 악악 소리지르면서 윽박지르면 금방 기가 죽는 사람들이 있다. 협상 서적들에서 나왔던 주옥 같은 사례들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고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이런 경우를 당하지 않으려면 직원들끼리 역할분담을 하여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연습게임을 자주 해 보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우리측에서 잘못해서 고객이 대단히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잘못을 했으니 빠져 나갈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 절대 변명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효과적인 방법은 잘못을 저지른 직원을 그의 상급자가 고객이 있는 앞에서 서류판 같은 것으로 머리를 때리며 고객보다 더 크게 소리지르며 개새끼 소새끼 하면서 야단을 고래고래치고 당장 사표를 쓰라고 소리지르는 것이다. 이때 그 직원이 여자라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짜는 것도 효과적이다. 남자라면 그저 한 없이 슬픈 표정을 지어라. 이렇게 한 뒤 상급자가 그 고객을 조용한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면 대부분 그 고객은 오히려 담당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문제는 해결되게 된다. 이런 시나리오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미리 연습해 보라는 말이다.

나는 학연,지연,혈연,배경 없이 홀로서기를 하면서 무릎이 수없이 깨지는 가운데 협상력을 길렀다. 사람들 사이의 수많은 일들이 사실 모두 협상에 의한 것이다. 결국 인간에 대한 여러 간접 경험이 필요한데 나에게는 내가 존경하는 작가 최인훈의 관념적 소설들이 인간 군상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음도 알린다.

아울러 협상에 대한 여러 가지 책들을 모두 읽었다고 해서 협상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말라. 그 속성상 공개할 수 없기에 그 어떤 책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나 역시도 공개하기 어려운, 협상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3월에 기고한 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부처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세상의 이치를 아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첫째, 미루어 아는 것(比知;비지), 둘째, 그대로 아는 것(現知;현지), 셋째, 가르침에 의지하여 아는 것(約敎而知;약교이지)이 그것이다. 여기서 가장 높은 단계의 길이 '약교이지'이며 그 가르침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원천이 바로 책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그래서 진리이다.

나는 어떤 때는 1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을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비밀이 있다. 나는 100권의 소설을 그렇게 읽은 것이 아니다. 나는 부자,성공,경제,투자,일,경영 등에 대한 책들을 우선 읽으며 이런 책들에서는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읽는 시간이 단축된다.

물론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는데 도움을 주는 책들을 제대로 골라 많이 읽고 스스로를 변화시켰다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 역시 그런 책들을 읽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독서 습관을 가져라.

1.최대로 쉽게 되어 있는 책부터 읽어라. 예컨대 주식에 대해 배우려고 한다면 만화로 쉽게 되어 있는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 어려운 말만 늘어놓거나 이론적인 내용이 많은 책들은 멀리하라. 저자가 자신은 한번도 직접 실행한 경험도 없이 자기가 옛날에 배웠던 것들을 앵무새처럼 다시 풀어 놓으면서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책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실전을 다룬 책들을 먼저 읽어라. 예컨대 당신이 무역에 관심이 많다고 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우 무역학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역의 역사,개념,분류,의의부터 시작해서 별 걸 다 배우게 되는데 실용성이 약한 지식이나 이론은, 학자가 될 생각이 없다면,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 좋다. 샤냥꾼에게 필요한 지식은 사냥의 역사나 의미,종류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동물 생태와 총 잘 쏘는 법 아니겠는가.

3.같은 부류의 비슷한 책을 여러 권 읽어라. 이 세상에 완전한 책은 없다. 빠진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 빠진 부분은 다른 저자가 쓴 책에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점이 필요하지 않는 한, 대학교과서 같은 것은 읽지 마라. 대부분 그런 교과서 같은 책들은 가격도 비싸고 제목도 무슨 무슨 론(論), 무슨 무슨 학(學)으로 되어 있다. 그것을 쓴 사람들은 대개 실물경제 근처도 안가 본 사람들이다.

4.아는 내용은 넘어가라. 나는 웬만한 책들은 대단히 빨리 본다. 많은 부분이 이미 다른 책에서 보았기에 알고 있거나 실천하여 온 내용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원고지 매수를 늘리려고 늘어놓는 이야기나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건너 뛰어도 된다. 나는 속독법을 배운 적이 없지만 독서 속도가 매우 느린 사람은 그것을 배워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5.외우려고 하지 말라. 이해 하는데 만 신경을 써라. 시험을 치루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 어떤 박사라고 하여도 그가 외우고 있는 지식은 시디 롬 한 장의 절반 분량도 훨씬 안 된다. 암기가 되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실전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그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 적용만 시키면 된다. 정보라는 것은 당신이 원하는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6.책을 깨끗하게 다루지 말라. 중고 책으로 팔아 먹을 생각이 없는 한, 책은 지저분하게 읽어라. 중요한 부분은 줄을 치고 읽어나가면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으면 낙서도 하라. 그래야 나중에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여러가지 색깔의 포스트잇이나 색인지를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므로 종종 줄 친 부분들만 훑어 보아라. 핵심정리가 다시 된다. 별도로 노트 정리를 하는 것은 “내가 열심히 살고 있구나”하는 흐뭇한 심정을 줄 수는 있어도 내 경험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되었다.

7.반드시 의자에 앉아서 읽어라. 내가 읽으라는 책들은 재미가 별로 없는 딱딱한 내용들이 많으므로 누워서 읽게 되면 곧 잠이 솔솔 온다. 정 드러누워 읽고 싶다면 밥을 굶은 채로 그렇게 해라. 신문이나 잡지를 볼 때는 종종 일어나서 읽어라. 기사들 중 큰 글자들만 보기 위함인데 내일이면 잊어버릴 시시콜콜한 내용들은 전혀 읽을 필요가 없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TV, 심심해 하며 같이 놀자고 조르는 애인, 배우자, 친구들이다.

8.짧은 기간에 한 분야에 대한 책들을 몰아서 읽어라. 교과서가 아닌 이상 무슨 책이든 2-3일 안에 끝장을 내야 전체 맥락이 잡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경매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5권 정도를 단기간에 읽어나가야 경매가 뭔지를 알 수 있다. 그 2-3일 기간 동안에는 잠도 좀 줄이고 만사를 젖혀라. 외출도 하지 말라. 오직 그 책들에 집중하라. 시간이 없어서 6개월 동안에 찔끔 찔끔 나누어 하겠다고? 가장 미련한 독서법이다. 6개월 후 당신은 여전히 아마츄어로 남아 있을 것이다.

9.틈나는 대로 읽어라. 별도로 독서 시간을 정해 놓기 보다는 시간이 생길 때 마다 책을 펼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버스나 지하철 속에서 멍하니 앉아 있거나 휴대폰을 두드리며 게임에 몰두하지 말고 항상 책을 갖고 다녀라. 책이 없으면 차라리 잠이나 자라. 프랑스나 이탈리아 패션쇼에서 분장실을 가 보면 모델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글쎄다. 화장실에도 책 몇 권은 갖다 놓고 하다못해 뒤적거리기라도 해라. 하루 5분을 뒤적이면 1년이면 30시간이나 된다.

10.경제적 성공을 원한다면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어라. 나는 정치기사가 많은 잡지는 정기 구독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기껏해야 여행 중에 비행기 안에서 그런 잡지를 가끔 읽게 되는데 주간지는 5분, 월간지는 10분 정도만 본다. 제목이나 훑어 본다는 말이다. 나는 정치비사가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여 준다거나 교양있게 만들어 준다고는 단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으며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11.일 잘하는 법에 대한 책들을 최우선적으로 찾아 내 반드시 읽어라.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 받는 방법도 제대로 모른다. 이미 알고 있다고? 조직 내에서의 전화 응대법에 대한 내용을 읽게 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나는 수많은 e 메일들을 받는데 제대로 예의를 갖춰 쓴 것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편지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문서 하나 제대로 꾸밀 수 있겠는가. 당신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를 검증해 줄 만한 책들을 계속 찾아 읽고, 당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기초적인 것들부터 다시 배워라. 당신의 나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당장 '신입사원'(조용문,박윤영)이나 '입사 1년 이내에 일류 사원이 되자'(사카가와사키오) 같은 책을 읽어라. 내가 책을 읽어 온 이유는“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물어 볼 만한 사부가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12.고전을 너무 믿지는 말라. 옛날 것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효율을 중시하라는 말이다. 삼국지를 읽는 시간이면 다른 실용적인 책 10권을 더 볼 수 있다. 게다가 옛날 이야기들은 현실 적용이 상당히 어렵다. 동양 고전들을 억지로 현대의 상황에 끌어다가 이야기 하는 책들이 많은데(주로 번역서들이다) 내 경험으로는 연설을 할 때 인용할 만한 재료는 나오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큰 도움이 안되었다. 실용성 있는 현대적 내용들에 관심을 가져라.

13.청소년이 아니라면 역사 속 인물들의 위인전은 나중에 봐라.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 같은 것도 나는 나중에 읽으라고 한다. 왜 그럴까? 위인들의 상황이 당신과 틀리기 때문이다. 감동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감동은 한 달도 못 가며 실전에서 써먹을 기회가 별로 없다. 누구누구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라는 식의 책들 역시 대부분 숭고한 이상들만 나열하고 있기에 별로 도움을 못 받는다.

14.화끈한 책은 멀리 해라. 어느 대학교 도서관이건 막론하고 도서 대출 10위 권에서 절대다수는 환타지 소설이거나 무협지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런 책은 당신이 그런 책을 쓰는 유명 작가를 꿈꾸거나 게임 스토리 작가가 아닌 이상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직원을 면접할 때 그런 책들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고 그 쪽 분야의 독서 경험이 많으면 모조리 탈락시킨다. 정작 자기가 해야 할 것들은 등한시하였음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이 상상력을 증대시켜 준다고? 아니다. 중고생이 아니라면 망상력만 늘려준다).

15.서평을 읽을 때 주의하라. 서평에는 애들(대학생 포함)이 한 서평, 일반 성인들이 한 서평, 전문가가 한 서평, 기자가 한 서평, 경험자가 한 서평 등이 있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란에서 경영에 대하여 아무것도 직접 경험한 바 없는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어떤 경영 서적에 대하여 왈가왈부한 것을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한 적도 많다. 신문을 통해 접하게 되는 기자들의 서평은 주로 인문계 서적들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돈에 대한 책들은 오직 부자들만이 정확히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으며 경영이나 사업에 대한 책들 역시 경영자들과 사업가들만이 그 가치를 평할 수 있다. 그들만이 경험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자들과 경영자들, 그리고 사업가들은 자기 일이 바쁘다 보니까 귀찮아서, 혹은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음도 기억하라. 나 자신만 하더라도 귀찮아서 인터넷에 서평을 올린 적이 단 한번도 없다.

16.출판사의 농간에 속지 말아라. 수많은 출판사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책을 많이 팔려고 별 짓을 다한다. 먼저 제목을 엉뚱하게 붙여 놓고 제목으로 독자들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번역서라면 반드시 원어 제목부터 확인하라. 번역자가 유명인일 경우 그 사람 이름만 빌린 것일 수도 있다(그렇게 이름만 빌려주고 자기 유명세를 늘리려는 놈들은 다 돼져 버려라). 추천사는 책 내용하고는 상관없이 돈 주고 얻는 수도 있고 출판사와 아는 처지여서 좋게 써주는 경우도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은 못 된다. 국내 저술인 경우에는 전문 편집자들이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내놓는 알맹이 없는 책들도 적지 않다. 저자로 표기된 사람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대필 작가나 윤문 작가가 손을 많이 본 책들도 많다. 결국 쓰레기 같은 책들도 읽어나가면서 독자 스스로 안목을 높이는 수 밖에 없다.

17.자주 책방에 들려라. 읽고 싶은 책이 나타나면 읽을 시간이 당장은 없어도 우선은 구입하라. 한국에서는 책이 몇 만 권만 팔려 나가도 베스트셀러 축에 들어간다. 그러나 지독히도 책을 안 읽는 풍토 때문에 수많은 좋은 책들이 초판 3천부도 안 팔린 상태에서 사라져 간다. 자, 당신이 그렇게 사라지게 될 책의 3 천 권 중 한 권을 입수하여 읽었다고 치자.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대한민국 4천7백만 인구 중 3천명 가운데 한명이 되었다는 것이며 나머지 4천6백9십만 7천명과는 차별화 되었다는 말이다. 차별화는 경제 게임에서 최고의 선취점을 얻는 무기임을 명심하라.

18.때로는 돈 버는데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책들도 읽어라. 시집도 읽고 소설도 읽어라. 그래야 삶을 통찰하는 눈이 깊어진다. 인생은 돈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욕 좀 하자. 나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대형서점에 간다. 그때마다 나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열된 책들 위에 책을 펼쳐 놓고 읽는 연놈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투시안을 갖고 있지 않는 한 그곳에 무슨 책이 있는지 보일 리가 없다. 친구들끼리 아예 1미터 이상 진열대를 넓게 가로 막고 있는 잡년들도 있고(이런 경우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좀 비켜라 이 18년들아”라고 말하자) 몸을 ㄱ자 형태로 하고 턱까지 고이고 읽는 개새끼도 있다(이런 경우 그 새끼의 다리를 아주 기분 나쁘게 발로 툭툭 치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예 똥을 싸라 18놈아”라고 말하자). 자기 소지품을 진열된 다른 책들 위에 턱 하니 올려 놓고 읽는 18놈의 새끼들과 18년들도 부지기수이다(이런 경우 작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들릴 정도의 따듯한 음성으로 “에이 18 좃 같은 것들”이라고 말하면서 그 소지품을 손으로 거칠게 옆으로 밀어 버리자.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연놈들일 경우에는 친절한 손길로 한쪽 이어폰을 툭 빼내고 속삭여주는 세심함도 보여주자). 전문서적 코너에서는 책장을 가로 막은 채 편안히 앉아서 책을 읽는 웃기는 잡놈들과 잡년들도 하나 둘이 아니다(이런 경우 온화하고 친절한 음성으로 “닭대가리 좀 치워라”고 속삭이면서 상대의 머리를 아주 기분 나쁘게 밀어 내자). 구걸을 해도 턱주가리가 떨어져서 빌어먹지도 못할 이 닭대가리들아. 너희들이 책방을 전세 냈냐? 제발 서점에서 책은 손에 들고 서서 읽고 오래 읽을 것 같으면 책 진열대에서 30센티미터 이상 떨어져서 읽어라.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 교보문고에서 누군가로부터 아주 몰상식한 욕을 얻어 먹은 개 같은 경험이 있던 사람들에게 한 마디 더 해주마. 타인에 대해 그렇게 신경이 무딘 18연놈들이 도대체 책은 읽어 무엇하랴. 너희 같은 18연놈들이 꼭 교양인 행세는 도맡아 한다는 게 나는 웃긴다.)

이상은2001년 4월 동아일보에 실린 컬럼의 오리지널 원고이다. 그리고 5개월 후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접하였다. 경제분야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그가 소개하는 독서법이 있다. 괄호 속은 나의 의견이다.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맞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도서관에 가라)
2.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맞다)
3. 책 선택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맞다)
4. 수준에 맞지 않으면 무리해서 읽지 말라 (맞다)
5. 중도에 그만둔 책이라도 일단 끝까지 훑어 보라(책에 따라 다르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속독법을 알면 좋다)
7.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반대한다)
8. 책 안내서에 현혹되지 말라 (맞다)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글쎄다)
10. 읽으면서 끊임없이 의심하라(책에 따라 다르다)
11. 새로운 정보는 꼼꼼히 체크하라(맞다)
12. 의문이 생기면 원본 자료로 확인하라 (뭐, 이 정도까지야..)
13. 번역서가 난해하다면 오역을 의심하라(맞다)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맞다)

그의 조언 중에서 특히 "책 선택의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는 조언을 새겨 들어라. 나에게 독자들이 묻는 질문들 중 종종 “부동산 경매에 대하여 배우려는데 책방에 가보니 너무 많은 책이 있어서 고르지 못하겠습니다”고 하면서 “책을 추천하여 달라”는 내용이 있다. 나 역시 그들에게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좋은 책인 줄 알고 구입하였지만 읽어보니 내용이 부실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 구입 자체를 두려워 하면 안 된다. 그런 실패를 겪어야 비로서 책을 고를 줄 아는 능력이 생겨난다.

고전이 좋은 책이라는 통념을 부정하는 것도 아주 내 마음에 든다. 칸트, 헤겔, 뉴튼, 사르트르 등은 다치바나에 따르면 고전도 아닐 뿐더러 이미 시효가 다했다. 전문 연구자 외에는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철학자인 척, 유식한 척" 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의 조언들 중 메모를 하지 말라는 7번 항목에 대해서는 반대하며 주석에 대한 9번 항목, 의심하라는 10번 , 원본자료를 확인하라는 12번은 학문적 관련자들 이외에는 불필요할 것 같다.

(사족; 1.책값을 아끼고 다양한 지식을 갖추려고 20여년 전 나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회사에 엽서를 보내 귀사의 고객인데 사보를 받고 싶으니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하여 화장품회사,제약회사,은행,화재보험협회 등등 100개가 넘는 사보를 무료로 받았었다. 내가 사보를 받고 싶어 한 이유는 각 회사에서 적어도 한두 사람이 월급을 받으며 사보를 만들고자 애를 쓸 터이므로 적어도 한 두 페이지는 값진 지식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며 오만가지 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2.이진 기자의 ‘부자아빠의 진실게임’에서 출판사가 저자의 핵심 내용은 무시하고 표지띠에서 세이노의 원고만 강조하여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것을 나는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3월에 기고한 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학력이나 학벌이 빈약한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나.

1.학력(어느 수준 까지 공부했는가를 말한다)은 있는데 학벌(일류대를 나왔느냐를 따진다)이 떨어지는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학벌이 중시되는 집단은 가능한 멀리 해라. 한국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은 파벌을 만드는 구심점이 되며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 학벌이 신통치 않으면 학력이 아무리 좋아도 일단은 젖혀진다. 학벌 쟁쟁한 인사권자들이 2류대 졸업자들의 서류들을 거들떠 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모르면 2류 학벌을 갖고서 기 쓰고 1류 학벌 집단에 들어가려고 애쓰다가 좌절하거나, 그 집단에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여 들어간다고 해도 외톨이 신세가 되고 만다. 자기 자신은 스스로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신하여도 학벌로 인한 학연의 벽을 뚫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다니나 마나 한 대학을, 그것도 대학원까지, 기 쓰고 다니면서 취직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 그렇다면 학벌이 약한 사람이 취직을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1998년 초 ,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풍지박살 나면서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렸웠던 시절 내가 경영한 외국법인에서 신입 여직원들이 필요하여 이른 바 일류대 취업실에 공고를 부탁하였던 적이 있다. 자격은 영어와 컴퓨터 활용 능력이었다. 예상대로 수많은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제출된 이력서 중에는 내가 학교 이름 조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한 지방대 졸업자가 한명 있었는데 “영어나 컴퓨터 모두 상당한 실력을 객관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흥미를 느껴서 면접 대상자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면접에서 나는 그 지원자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이력서를 제출할 수 있었는지를. 그녀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저는 지방대 출신이지만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은 일류대 졸업자 보다 더 많이 갖추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에는 면접 기회 조차 안 주어집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서울로 밤기차를 타고 와 서울의 유명 대학교 취업 게시판들을 살펴보고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녀의 채용을 결정하였으며 다른 면접 대기자들은 만나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더 좋은 회사에 취직이 결정되어 내 회사에는 나오지도 않았다.

예를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 오래 전 무역학과 출신들을 신규로 공개 채용하였을 때의 일이다. 물론 일류대 무역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자들이 뽑혔다. 그리고 얼마 후 내게 소포 하나가 배달되었다.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던 어느 지방대 출신 학생이 보낸 것이었다. 열어보니 두껍고 낡은 노트 몇 권이 들어 있었다. 그 노트들에는 그 학생이 학창 시절에 수년 동안 무역 회사들을 발로 찾아 다니며 얻어 낸 무역 실례들과 각종 무역 서류들의 형태와 작성기법, 그리고 실무적 주의 사항들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동봉된 편지에는 “저는 정말 자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글과 900점 가까운 토익 점수 사본이 들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새로 이미 입사한 녀석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지만 어쩌랴. 결국 그 학생을 내가 알던 외국계 기업에 강력히 추천하였고 그는 당연히 채용되었는데 불과 7-8년 만에 부장이 되었다(그 뒤 회사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전공은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문학과였는데 학점은 전혀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 아무리 실업률이 높아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라 할지라도 막상 경영자들의 말을 들으면 “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공통된 고민이다. 대학 도서관들의 대출도서 목록에서 무협지나 환타지 소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면접기법은 학원에서 배우고 자기 소개서는 대행업소에서 맡기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학연,지연,혈연이 있어야 한다고 핑계를 댄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회장은 전산학과 출신을 채용할 때 일류대를 뽑지 않는다고 했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을 판매하기도 했던 내 경험으로도 그렇다. 전과목 모두 잘하는 사람은 정작 필요한 업무에서는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히려 일류대가 아닌 이류대에 전산에 미친 사람들이 많다. 일류대 출신을 선호하는 회사는 이미 일류대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더 많다.

2.학력이 없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코스닥 등록 기업들의 경영자들 중 대학 출신이 많은 이유는 그 기업들의 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고졸자들도 분명 있음을 기억하라. 학벌이나 학연이 보잘 것 없다면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 역시 그랬다. 분명히 말한다. 대졸자들이 대학에서 보내는 4년과 동일한 기간을 어떤 분야에 홀로 파고 든다면 그 어떤 분야에서건 대졸자 보다도 더 큰 실력을 갖추게 된다.

나의 경험담. 군 제대 후 우여 곡절 끝에 중학교 1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높은 보수를 받으려면 고등학생을 가르쳐야 했고 영어실력이 필요하였다. 당시 나는 대학생도 아니었고 영어도 못했다. 하지만, 영어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생들이 하루에 2시간씩 4년간 공부한다면 도사가 된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2시간씩 4년? 하루에 4시간을 하면 2년? 8시간이면 1년? 16시간이면 6개월? 18시간이면 6개월도 안걸린다는 말인데 …한번 미쳐보자.” 그 기간 동안 나는 몸을 움직이면 피곤해지고 밥도 많이 먹게 되어 졸음이 오게 되므로 외출이나 목욕도 하지 않고 오줌통에 소변을 보고 하루에 두끼를 최소량만 먹으며 혼자서 영어에 미쳤고 5개월 후 치룬 첫 토플(요즘의 토플과는 다르다)에서 570점 이상을 받았다. 얼마 후 나는 그 점수를 갖고서 미8군에 있는 미국대학 분교에 들어 갔고(누가 미8군 내에 있는 대학분교를 알아 준다는 말인가) 그 점수를 학부형들에게 보여주면서 고3 학생도 가르칠 수 있었고 토플 점수를 계속 올려 나갔으며 닥치는 대로 갖가지 분야를 공부하였다.

학력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일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쫓아 다닌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라. 예를 들어 대리운전이 제 아무리 수입이 좋아 보여도 그 일은 시간 당 인건비는 많이 챙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들다면, 빚이 많다면, 땡전 한푼 없다면, 그 일을 해라.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종자돈을 악착같이 모아라. 그리고 난 뒤에는 독립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배워라. 봉급이 적더라도 기 쓰고 그 일을 해라. 거기서 기회가 주어 질 것이다.

3.학력이나 학벌이 없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아라. 학벌이 신통치 않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이 사회에서 일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칼과 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갈고 닦아라. 이러한 과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결국 이 문제는 한가한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일상에 쫓겨 시간이 모자란다면 과감히 6개월 이상을 그 일상에서 벗어나라. 휴학도 좋고 휴직도 좋다. 백수라면 더 좋다. 어딘가에 틀어 박혀서 그 누구와도 만나지 말고 배우고자 하는 분야에 100% 미쳐라. 밥 먹는 시간도 아깝게 생각하라.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온다. 라면 1개도 많다. 그냥 씹어 먹어라.

그리고는 스스로 독립하거나 중소기업 같은 작은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알아 주는 “좋은 회사”라는 곳에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일 전체를 배우게 되며 “길거리지식”을 얻게 되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만이 중소기업의 천국인 이유는 직원들이 일을 배워 자꾸 독립하기 때문이다. 극복해야 하는 것은 체념과 게으름이다.

4. 학벌이 좋건 나쁘건 부자가 되려면 세상 사람들이 돈을 놓고 벌이는 게임(games people play)을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그 게임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아동도서 “팰릭스는 돈을 사랑해” 같은 쉬운 책부터 읽어보라. 하루에 3시간 이상 자기를 위한 투자에 사용하라. 학벌이나 학력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은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일 뿐이다.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3월에 기고한 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학벌 좋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일류 대학을 다닌다고? 외국 유명 대학에서 유학중 이라고? 최고의 학력과 학벌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축하한다. 고생 많았다.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일단은 “봉급생활자로서 달리기를 해 볼 수 있는”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선 위치에 주어지게 된다. 당신은 당연히 학력과 학벌을 중시하는 집단으로 가야 한다. 배경도 있다면 공기업에 들어가면 더욱 좋다.

아시아 지역에서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엘리트 의식이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교육 방식은 암기식 위주이다. 암기식은 암기능력이 우수한 사람들만을 우수한 엘리트로 대접하고 창의력이나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열등감 속에 빠뜨리는 아주 잘못된 교육 제도이지만 그 제도에서 승리자가 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단한 엘리트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국내 대기업들 중 상당수는 그들이 입사하면 엘리베이터 타는 법, 인사하는 법, 명함 주고받는 법 등과 같은 것을 반드시 가르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고시 합격자들을 보자. 고시 지상제일주의로 인해서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로 자부하고 민간의 조언을 열등하게 본다. 오죽이나 하면 KDI 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왜 그럴까? 암기 능력의 탁월함을 판단 능력이나 리더쉽 혹은 수익창조 능력의 탁월함으로 오인하기 때문이다.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일단은 이 사회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개인의 능력이 문제가 된다. 김지룡의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망해버린 야마이치 증권사 직원이 다른 외국계 증권회사에 입사하려고 인사부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야마이치 증권의 직원입니다.귀사에 취직하고 싶습니다.”“무슨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도쿄대학 출신입니다.”“학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무슨 일을 해 왔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묻는 겁니다.”“도쿄대학 법학부를 나왔습니다.”“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어회화에 자신 있습니까?”“영어는 못하지만 도쿄대 법대를 나왔습니다.”“파생 상품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도쿄대 법대를 나왔습니다.”“PC 는 다룰 수 있습니까?”“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도쿄대 법대를 나왔습니다.”“도쿄대 얘기는 빼고 이야기 합시다.”그 남자는 말이 없다가 전화를 끊었다고 하며, 신문에 실린 실화라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90년대 중반, 한국에서 어느 대학원 졸업자를 면접하였을 때 있었던 일이다. “컴퓨터는 어느 정도 하는가?” “잘하지 못합니다.” “외국어는?” “전공 공부하느라고 열심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지원하게 된 동기는?” “컴퓨터를 잘 활용하고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엘리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회사에서 직원으로 당장 써먹기는 좋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뭔데?” “저는 대학원을 다닌 것이지 학원을 다닌 것이 아닙니다. 정보화 시대에는 그런 기능적인 능력 보다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런 아이디어를 제기할 수 있는 소양을 닦았습니다. 저는 한명의 아이디어가 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O.K. 알았네. 그렇다면 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전공과 관련된 것이건 아니건 간에 하나만 이야기 해보게나.” “아직은 없습니다.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자네가 그런 아이디어를 낼 능력의 소지자라는 것을 입증하여 보게.” “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학점은 교수들에게 받았지?” “네.” “자네 교수들이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면 말하여 보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그 학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지?” “저는 정말 자신 있습니다. 그런 엘리트 사원이 될 것입니다.” “글쎄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믿어주십시오. 저는 일류대학과 일류대학원을 졸업하였지 않습니까.” “(속으로) 이런 닭대가리.”

좌우지간,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일부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사업화 시켜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홀로 활동하는 전문직이 아닌 한 99%는 이른 바 “좋은 직장”을 원하기 때문에 대기업 같은 조직의 일원이 된다. 능력별 연봉제를 실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학력과 학벌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 당신은 절대 유별난 존재가 아니기에 월급의 차이가 큰 것도 아니다.

특히 조직 내에서 일차적 기회는 학력과 학벌 게임에서 최고의 졸업장을 갖고 있는 자들이 거의 독식하거나 오우너의 친족들이 가져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배제 당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대조직일 수록 내부에 은연 중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술술 풀려나가지는 않으며 아부도 좀 하고 줄도 잘 서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국 조직 내에서 계속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면 탈출하여 “길거리”로 나와야 하는데 체면이나 안정에 대한 욕구가 커서 여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직장 내 파워 게임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필 포터가 쓴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먹힌다>를 반드시 몰래 읽어라.)

특히 제 아무리 유명한 경영대학원 출신이라고 할지라도 경영 관리 기술을 이론적으로 배웠을 뿐이지 돈 냄새를 맡는 후각을 훈련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중간 관리자급 정도가 되어야 개인별 능력의 차이가 혁혁히 드러나게 된다. 실제로 나는 미국 유명 MBA 소지자들 중 미국인이건 아니건 연봉을 더 주어야 한다고 판단되는 사람도 보았지만 처음 입사 당시의 연봉을 반으로 깎아도 여전히 돈이 아까운 사람들도 보았었다. 대조직에서는 일이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 속에 숨어있기가 쉽고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기에 능력 배양을 등한시 하는 경향도 많다. 가장 한심한 경우는 대조직에서 “얼마의 예산 혹은 매출을 주물렀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능력으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조직이 일을 하는 것이지 개인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전문 직업인들을 제외하고 학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부자로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연봉을 누가누가 더 받나” 게임에서는 학력과 학벌이 좋을수록 처음에는 일단은 유리하지만 불행하게도 “홀로 독립하여 누가 먼저 부자 되나” 게임에서는 그것들이 정말 별 의미를 주지 못한다. 부자가 되려면 미국인들이 “길거리 지식”(street knowledge)이라고 부르는 총체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대조직에서 배우기는 대단히 어렵다. 언제나 일 전체 보다는 일부분만 배우게 되고 맡은 분야 이외에는 관심을 잘 두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려면 실물 경제 속에서 돈 냄새를 잘 맡아야 하는데 학교 공부만 하였기에 실제 상황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지식들을 얼마나 자기 머리 속에 이전 시켰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창의력과 응용력이 얼마나 개발되어 있고 부가가치 창출의 능력이 어느 정도나 있는지가 결정 요인이다.

이런 능력을 기르려면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더 많은 대우를 찾아 다니는 것 보다는 일을 총괄적으로 좀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직장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평생을 직장인으로 살게 되는 빈도가 높고 소비 성향도 높다.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학벌 좋은 사람들이 내게 하여 온 말:”직장 때려 치고 빨리 사업해야 할 텐데…” 그 말을 나는 1,2년 들었던 것이 아니라 수 십년을 똑같은 사람들에게서 계속 들어 왔다.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3월에 기고한 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