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갖고 사람을 차별하면 안된다고?

은행에 가면 여러 가지 안내장이 붙어 있다. 평균 잔고 얼마 이하는 이자를 주지 않겠다, 창구에서 공과금을 받지 않겠다, 동전을 교환해주지 않겠다, 등의 내용이다. 반면에 거액 이용자들을 위해서는 프라이빗 뱅킹(PB) 코너라는 것을 만들고 극진한 정성을 쏟는다. 은행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어떤 기업이든 돈만 쫓는 기업은 고객의 외면을 당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은행의 공과금 수납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은행들의 거만한 태도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정말 은행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고액 예치자들에 대한 은행의 우대를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고급 인테리어에 대형 화분, 1 대 1 데스크 등 일반창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PB코너는 은행의 주고객인 일반 직장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점심시간에 직원이 식사 중이라 소수인원만 근무할 때 고객들이 밀려들어 대기하는 동안 PB코너는 한산해 파리 날리며 VIP를 기다린다. 돈 없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고객들이 홀대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이러쿵저러쿵.

어느 경제지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쓰기도 했다.

VIP고객들은 송금 액수와 상관없이 수수료가 면제된다. 부자도 아니고 인터넷 사용도 못하는 그야말로 서민들은 100만원 넘는 돈을 다른 은행에 보내려면 4,000원을 내야 한다. 부자고객에게 각종 무료 서비스와 선물을 제공하는 데 따른 손실을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보전하는 셈이다.

나는 은행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들도 당신처럼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인력으로 돈 벌고자 애쓰는 사람들일 뿐이다. 은행이 거만하다고? 돈 많이 벌어주는 고객들에게는 친절하다. 당신도 당신에게 이익을 많이 주는 손님에게는 그럴 것이다. 정말 은행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은행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다. 당신이 식당을 한다면 굶주린 사람들을 모두 먹이겠다는 말이냐. PB 코너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홀대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당신은 지금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믿는 것이며 “인간은 돈 앞에서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정말 골 때린다. 게다가 부자에게 무료 제공하는 서비스가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충당된다고? 정말 웃긴다. 그 서비스는 부자들로 인해 벌게 된 돈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당신이 저녁에 술을 파는데 단골손님이 와서 양주 몇 병과 안주 몇 개를 시켰다. 다른 손님은 맥주 몇 병에 팝콘 안주 뿐이다. 당신 같으면 누구에게 신경을 더 쓰겠는가. 물론 장사건 사업이건 친절이 기본이다. 은행이 참으로 미숙한 것은 거절하는데 있어서도 미소를 가득 띄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일본 선술집에서 저녁에 밥을 시키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우면서 “찬밥밖에 없는데 찬밥을 드릴 수는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속내는 “술집에 왔으면 술하고 안주를 먹어야지 바빠 죽겠는데 왜 돈도 얼마 남지 않는 밥을 시키느냐”는 뜻이다.)

공연장에서 무대가 잘 보이고 음향도 좋은 자리는 당연히 비싸다. 유독 한국에서는 불이 꺼지고 공연이 막 시작되려고 하면 재빨리 자기가 산 좌석보다 더 비싼 빈 좌석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예전에 우리나라 비행기에서 일등석이나 이등석 좌석에 미친 척하고 앉아 있는 3등석 손님들도 보았다. 승무원이 자리를 옮겨 줄 것을 요구하면 얼굴이 벌개져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지만 “비어 있는 좌석인데 좀 앉아 간다고 무슨 일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소. 그냥 앉아 갑시다”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디즈니가 직영하는 호텔에 투숙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입장을 1시간 이상 빨리 허용한다.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한다는 말이다. 내가 만일 용인 애버랜드의 사장이라면 1등석 입장권을 매우 비싼 값에 별도로 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줄서기에서 1등석 입장객과 일반 입장객을 구분할 것이다. 런던 국제공항에는 1등석 승객을 위한 별도의 출입구 까지 준비되어 있다. 파리에서도 뉴욕행 콩고드 비행기 승객들은 출발 이전부터 완전히 분리된 대우를 받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9.11 테러 이후 미국 공항에서도 1등석 승객은 검색대에서 우선권을 부여 받는다. 이게 자본주의다. 스키장에서도 회원들이 이용하는 리프트와 비회원 리프트는 구분되어 있지 않은가. 비회원이 비회원 전용 리프트를 타려고 길게 늘어 서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니 나 같으면, 줄이고 나발이고 없이 그냥 “원하시는 시간에 조금도 기다림 없이 타실 수 있으며 24시간 전담 요원이 따라 다니는 초특급 회원권”을 가입비 10억원에 연회비 1억원 정도에 팔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같은 인간인데 줄까지 차별하다니 너무 한다”, “돈 없다고 괄시하니 서러워 못살겠네” 따위의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평생 부자로는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하였을 때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해 본적이 없는데 왜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에서 돈을 지불하는 대상은 결국 “좀 더 편하고 좋은 것”을 얻기 위함이다. 당연히 그 질적인 면은 지불하는 돈의 크기와 비례할 수 밖에 없다.

백화점에서도 구매실적이 저조하면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우수고객들은 바겐세일 기간이 아니더라도 특정품목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대다수 일반 고객들은 어떤 행사가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연평균 5000만원 이상 쓰는 특별고객을 위한 VIP 전용 휴게실은 당연히 일반 고객들은 출입 금지 공간이다.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나라별로 호텔요금의 계산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값만 내면 투숙하는 인원 수는 상관 없는 경우도 많지만 같은 방이면서도 그 인원 수에 따라 방값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함께 투숙하는 자녀의 나이와 자녀 수를 제한하는 나라도 있다. 택시 요금 역시 짐을 얼마를 갖고 타든지 간에 미터 요금만 내면 되는 한국 같은 나라도 있고 홍콩처럼 가방 숫자에 따라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곳들도 있으며 심지어 승객의 숫자에 따라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나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식당 요금 역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좌석 위치에 따라 요금이 다르기도 하고(파리에서는 길가에 놓인 좌석이 비싸다) 음식을 싸 갖고 갈 경우에는 앉아서 먹는 요금 보다 할인이 되는 나라들도 꽤 있다. 서울의 몇몇 특급 호텔들에서는 도시락을 주문하여 가져 갈 경우 10%의 봉사료를 붙이지 않는다. 이게 자본주의에서의 합리성이다.

그래도 호텔에서 도어맨이 고급차를 우대시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느냐고? 알려면 제대로 알아라. 고급차이어서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오니까 우대하는 것이다. 나 부터만 하더라도 몇몇 호텔들에서는 도어맨들이 내 얼굴과 차를 기억한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선 호텔이나 신라 호텔 같은 곳에 어쩌다 가게 되었을 때 내 차가 좋다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았던 경험은 전혀 없다.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소형차를 타고 호텔에 들락날락하면서 발리 (valet) 파킹을 부탁하여 보아라. 한 두 달도 안되서 도어맨들이 알아서 모실 것이다. 특급호텔 앞에 고급차들만 주차하여 있는 이유는 발리 파킹 비용을 내거나 팁을 주기 때문이지 차가 좋아서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수고객에게는 특별 대접을 하고 불성실한 고객과는 의도적으로 거래를 줄이는 디마케팅(demarketing)은 당연한 현상이다. 부자 마케팅의 이면에는 부자고객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서민 고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차별적 구조가 감춰져 있다고? 아니 무슨 불이익?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는 이렇다. 더 편하고 더 좋은 것을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하라. 지불할 돈이 없다고? 그렇다면 덜 편하고 덜 좋은 것을 가지면 된다. 그게 불이익이냐? 입석과 좌석의 차이가 없이 먼저 뛰어가 타는 놈이 앉아 간다는 원칙이 통용되는 곳은 절대로 좋은 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그런 시스템을 "돈 앞에서 평등한 사회"로 믿을지 모른다. 기억해라. 그런 사회는 공산주의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정말 좋은 사회는 "대가를 많이 지불한 사람들"과 "이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 받을 수 없는" 장애인들이 먼저 앉는 사회이다(은행에서도 장애인들 만큼은 특별 대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족; 우리나라 항공사 직원들 중 탑승구 앞에서 표를 받는 직원들은 돈을 더 낸 승객들에 대한 차별적 서비스 제공에 아주 아주 둔감하고 미련하다. 탑승 순서에 대한 방송을 마이크 없이 하는 직원들도 많고 방송 멘트 역시 탑승 대기 줄은 하나이므로 1등석이나 비즈니스석 손님들은 아무때나 줄을 새치기하고 들어오면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심지어 그런 멘트 조차도 안 하는 닭대가리들도 부지기수이다. 도대체 일본 나리타 공항처럼 탑승로를 둘로 칼같이 나누어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의 오우너였다면 아마도 사장부터 재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미국의 어느 항공사 직원 휴게실에서 내가 본 글—"잊지마라, 우리들 월급의 절반은 일등석과 비지니스석 손님들이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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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대가는 질로 따져라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받는 돈 만큼만 일할 것이며 그 돈은 내가 일한 시간과 비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샐러리맨들을 위한 사이트들 (www.payopen.co.kr , www.sman.co.kr , www.9to6.com , www.kimdaeri.co.kr , www.386party.com , www. coollife.co.kr , www.cybernojo.org 등- 2001년 현재)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런 사고방식을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같은 직종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이 일한다고 믿기에 남들이 받는 보수에 대단히 민감하다.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 대우도 같아야 한다고 여기며 같은 자격증을 갖고 있으니 똑 같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동일노동, 동일 임금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사람들 간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산업화시대의 노동자들이 가졌던 생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그렇다. 피자 헛을 들여와 한 때 엄청난 성공을 한 성신제는 "창업자금 칠만 이천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써봤다. 이중에는 나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될꺼야, 공인 회계사가 될꺼야 하면서 이까짓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니까 대충 시간만 때우다 가자 라고 생각하면서 건성건성 일하는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 중에서 단 한명의 디자이너,단 한명의 공인 회계사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접시 닦는 일을 하더라도 이에 미치는 사람이 본업에 돌아가서도 그 일에 미치고 결국은 성공하게 된다."

나 역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 중에서 졸업 후 정식으로 채용을 하고 싶다고 사장이 말할만한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대부분은 돈주머니를 가진 입장에서 볼 때는 언제라도 즉시 다른 사람으로 대체시킬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일만 한다. 받는 대가가 얼마이므로 그 이상을 하게 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바로 그런 생각이 가난으로 가는 고속도로임을 명심하라.

스테이시 가델라는 대학 시절인 1994년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그녀는 접시를 하나 닦더라도 물기 없이 깨끗이 닦아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 등 남다른 열정과 헌신을 보였다. 그 자세가 매장 지배인의 눈에 들어 졸업 후 정식 입사했고 불과 5년 만에 본사의 마켓팅 이사가 되었는데 미국외식업계 4위인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다. 업계에서 신데렐라로 불리는 가델라는 끈기(Persistence),헌신(Commitment),열정(Passion)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였다.

199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용인의 에버랜드에서 티켓을 파는 등등의 평범한 직원으로 입사한 이은예는 고객 서비스에 투철하였다. 한가지 일화가 있다. 93년 추운 겨울 어느날 저녁 무렵 4명의 가족 중 5살쯤 돼보이는 어린아이가 매우 발이 시려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눈썰매장을 이용하느라 옷은 물론 신발이 모두 젖었기 때문이었다. 이은예는 어린이를 직원휴게실로 안내해 발을 녹이게 하고 자신의 신발을 기꺼이 벗어 주었다. "주위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를 듣긴 했죠. 하지만 가족이라면 추운데서 떨고 있는 그 아이를 그냥 두고보진 않았을 겁니다." 그녀는 입사후 1년만에 `베스트 서비스맨"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1호봉 특진혜택, 미소경진대회의 튜울립상, 역할연기 우수상, 삼성그룹의 품질 서비스 경진대회 회장상 등을 받았다. 그리고 입사 4년만에 서비스 아카데미 강사로 전격 발탁되었다( 그녀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동료들이 하나 둘이었을까?)

톰 피터스(경영에 관심이 있다면 이 사람의 모든 책을 반드시 읽어라: 내가 나의 글에서 인용만 하고 읽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 책들은 안 읽어도 되는 책들이라고 보면 된다)가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리츠칼튼 호텔의 한 여자청소부 버지니아 아주엘라(Vrginia Azuela). 하지만 그의 책에서는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박태호 새너제이 주립대 경영학교수가 그녀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뒤 98년 5월 12일 매일경제에 기고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리핀 출신의 그녀는 74년 당시 27세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다.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선택 가능한 직업은 호텔의 청소부였고 91년 리츠칼튼에 입사하면서 총괄품질경영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대다수 동료들은 청소라는 허드렛일에 무슨 품질경영이냐고 비웃었으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작은 메모수첩에 그녀가 서비스한 객실 고객들에 대한 특성과 습관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그 고객이 다시 왔을 때 그들이 원하는 객실서비스를 하였다.

심지어 침대보 작업까지 개선시켰다. 본래 호텔측에서는 침대보 교체작업을 과학적으로 연구 분석하여 2인1조의 작업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새 침대보를 침대 사이즈에 맞춰 침대보를 까는 순서의 역순으로 접어두면 작업속도를 더 높일 수 있음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녀는 고객만족과 관련된 문제해결에는 2,000달러를 임의로 쓸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 받았고 호텔직원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예로운 파이브 스타(Five Star)상은 물론 말콤 볼드리지 생산성 대상까지 받았다.

6.25 동란 당시 고아가 되어 구두를 닦다가 열입곱 나이에 미군 부대에서 세탁 같은 허드레 일을 하던 이 철호. 그는 미군들이 맡긴 옷가지들에서 때가 잘 빠지지 않으면 삶아 빨았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포격으로 파편을 맞아 그 수술 때문에 여차여차 노르웨이에서 살게 된 그는 배가 너무 고파 요리사가 되고자 하였고 주방에서 그릇 하나를 닦아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에게 2-3년씩 감자만 깎는 일이 주어졌을 때 그는 요리의 종류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여러 모양으로 깎아 놓았다. 그는 현재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백만장자이다(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성공시대 프로그램을 MBC인터넷사이트에서 반드시 찾아서 보라. 책으로도 나온 것으로 안다.)

내 경험 하나를 이야기 하자. 미군 부대에 있는 대학을 다녔을 때 먹고 살고자 부대에서 흘러 나오는 화장품이나 식료품들을 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며 부유층 아파트들을 돌아 다니며 팔았던 적이 있다. 대부분 그런 물건들은 아줌마들이 팔았고 나 같은 남자 대학생은 전혀 없었기에 경비실을 통과하기도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문을 열어 준 고객들에게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하였다. 우선 나는 모든 상품에 붙어있는 영문 라벨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모조리 외웠다. 바셀린 연고 하나를 팔더라도 눈 화장을 지울 때 사용하면 좋다는 내용도 잊지 않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눈 화장을 지울 때는 큐팁(면봉의 미국 상품명)을 사용하라고 하였고 큐팁도 팔았다. 스팸 햄을 팔 때는 새로운 요리법들도 알려 주었다.

결국 한 명의 고객을 만나게 되면 얼마 후 그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여 주었는데 정말 그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났으며 사전 주문도 생겨 났다. 그 당시 내가 알게 된 원칙 몇 개; 남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 절대 오늘의 이득에 눈이 멀면 안 된다는 것, 부자들은 끼리끼리 산다는 것, 한명의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그 주변의 모든 부자들도 언젠가는 내 고객이 된다는 것. 내가 나중에 누구까지 만나게 되었는지 아는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당시 최고의 연예인 몇몇 까지 내 고객이었다. (나는 이 일을 몇 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그 일은 관세법 위반으로 단속 대상이었기에 께름칙하였을 뿐 아니라 압구정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과 번역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수입을 챙길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 몸값은 그렇게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막노동을 하여도 최선을 다해 제대로 해라. 당신이 일한 대가에 대한 법칙 두 개가 있다.

첫째 당신이 먼저 보여주지 않는 한 국물도 없다. 대가를 더 많이 받는다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이 세상은, 당신이 열심히 성실히 일하겠다는 그 각오를 덥석 먼저 믿어 주는 세상이 전혀 아니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 홍당무가 적다고 징징거리는 말들 치고 제대로 달리는 놈이 없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고? 돈 몇 푼 벌겠다고 스테이시 가델라, 이은예, 버지니아 아주엘라, 이철호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도대체 있느냐고? 무슨 햄 쪼가리 하나 팔면서 요리법까지 알려 주느냐고? 그냥 편하게 일하고 조금 벌겠다고? 뭐 그렇게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좋다. 그렇다면 당신 생각대로 그냥 계속 살아라. 아무도 안 말린다. 단 조건이 있다. 절대로 부자들을 부러워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당신은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가난한 자들에게는 공통된 유전자가 있다.)

둘째, 보상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처음에는 천천히 돈다. 가속도가 붙기 까지 에는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겨우 몇 개월 열심히 하여 보고 대가가 즉시 주어지지 않으면 실망하여 곧 "일하는 본성"을 드러낸다. 나는 이런 얄팍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며칠 밤을 새워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월급이 그 다음 달로 인상되기를 바라는 이 조루증 환자들아. 세상은 이미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한 두 번 속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당신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신의 경륜의 수레바퀴도 천천히 도는 법 아닌가.

다 자란 한우 한마리의 가격은 300만원선이다. 그러나 건강하고 질병 없는 우수한 종자를 뭇 암소들에게 나눠주는 종우(種牛)는 최고 3억원 까지 한다. 사람도 몸값이 비싼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어떻게 짐승과 비교하느냐고? 나는 소를 소와 비교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그것을 믿는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일 뿐이며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희망의 표현일 뿐이다. 사람이 모두 평등한 경우는 생노병사와 신 앞에서 뿐이다. 내 말이 여전히 귀에 거슬린다면 사람은 모두 평등하지만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일의 결과들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하면 어떨까.

모든 중국 음식점의 주방장들이 평등한 인간이라고 해서 그들이 만드는 짜장면의 맛과 가격이 똑 같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당신도 맛없는 짜장면 보다는 맛있는 짜장면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동일노동,동일임금?’ 좋~아 하시네;비꼬는 말투로 읽어야 함.ㅎㅎ)

자. 이제 몇 시간을 일하고 얼마를 받는지는 잊어버려라. 일의 질적인 결과에만 관심을 두어라. 몇 년 후에 받게 될 대우에 걸 맞는 일 솜씨를 지금 먼저 보여주어라. 부자가 아니라면 가진 것은 몸과 시간 밖에 더 있겠는가. 그것들을 바쳐 일의 질을 높여라.

그렇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일을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생활을 잘하여야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직장생활 자체가 아니라 일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므로 대가를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투여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대가가 충분치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곧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을 것이며 당신의 몸값은 저절로 높아지게 되어있다. 그 몸값이 부자가 될 수 있는 투자의 종자돈이 된다. 동료들의 야유와 시기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할 것이다. 콩쥐를 시기하는 팥쥐는 언제나 있는 법이므로 철저하게 무시하라. 적어도 5년 후에는 그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사항; 1.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도 대가를 더 받기 힘든 일들이 있음을 명심하라. 2. 일하는 능력 보다는 아부가 더 우선인 집단들도 많다( 규모가 크고 안정적으로 보이고 좋게 보이는 곳들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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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어 일하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시 ‘귀천’을 쓴 천상병 시인의 소원은 "내 집 하나만 있었으면" 이었다. 심지어 그는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고도 했다. 그러나 1993년 그가 삶을 마감한 곳은 "주인 말고도 세가구가 있는 집”이었고 열 네 사람이 몸을 부딪히며 살던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까지 했다. 왜 그는 가난했던가. 시를 좋아하였기에 시만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을 다루는 상과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다. 돈은 그의 아내가 찻집을 하여 벌었다고 하며 그 찻집은 2001년 현재 아직도 영업중이다.

그가 가난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시집이 잘 팔리지도 않는 이 땅에서 시를 썼기 때문 아닌가. 시인으로서 시만 쓴다면 대부분 가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똑같은 시인이지만 많은 책들의 편자 혹은 역자로 등장하기도 하는 류시화는 내가 짐작하기에 전혀 가난한 시인이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무슨 글을 읽고 싶어하는지를 찾아 내 상품화 시키는 유능한 편집자이며 세상에서 대가를 얻어내는 마켓팅 기법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천 시인처럼 살 것인지 류 시인처럼 살 것인지는 당신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며 그 어느 쪽이 삶 자체로서 우월하다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직업을 가졌던지 간에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얻어내려면 그 대가를 결정하는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자기 최면에 빠져 살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실패와 좌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자들은 대부분 세상이 원하는 것은 무시하면서 실패의 책임과 원인을 세상에게로 돌린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느니 세상이 썩었다느니 세상이 학벌이나 인맥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느니 등등, 실패한 자들의 핑계는 길고 긴 레파토리를 이룬다. 명심해라. 성공한 자들은 어떤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과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절대 세상 속에서 핑계를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자가용 기사를 한 두명 겪어 본 사람이 아니다. 연봉 2천만원을 주건 3천만원을 주건 간에 보통의 자가용 기사의 경우 "목적지까지 잘 모셔다 드리고 차량관리 잘하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해"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잘 모신다는 기준은 순전히 자기들 기준이며 차량 관리 수준 역시 자기들 판단에 근거한다.

약 10수년 전 기사 한명을 새로 채용하였다.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보통의 직원들은 사장에게서 야단을 맞으면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는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불덩이 같이 화를 내었어도 5분 후에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약속 장소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길이어도 지도를 미리 보고 샛길들을 확인하였다. 그런 태도를 보고 "막히면 돌아가라"는 책을 사다 주었더니 그는 너무도 좋아하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길이 막혀 차가 꼼짝 달싹 못하면 "이게 내 탓이냐?"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장님, 저 옆 골목으로 한번 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나는 언제나 찬성이었다.

그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에도 "오후에 비가 안 올 수도 있다"고 하면서 차를 닦아 놓았다. 그것도 완벽하게 닦아 놓았다. 대부분의 자가용 기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내가 권하는 책들을 다 읽었고 심심하다고 기사 대기실에서 화투를 치지도 않았다. 우선은 차량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고 남은 시간에는 나이 어린 여직원들에게 도와 줄 일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돈으로 차량정비 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기사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1년 정도가 지난 후 나는 새로 기사를 구하고 대다수 임직원들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 당시 연매출 400억원 대 회사의 영업부 과장직에 앉혔다. 반대가 극심하였던 이유는 내가 왜 그를 영업부 과장직에 앉히려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내게 아부를 잘해서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가 너희들하고는 일하는 근본 자세가 다르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모든 거래처에서 그의 사람 됨됨이를 칭찬하는 말이 들려 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회사 내에서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1년 후 그는 사표를 들고 나를 찾아 왔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를 내보냈다. 몇 년 후 그가 업소용 김치 납품 공장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음을 들었다. 직원이 10여명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 이야기에는 후기가 있다. 내가 그를 영업부 과장에 앉혔을 때 입사한 새 기사는 자기 선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에 매우 신경을 씀은 물론 내 가족들에게도 아주 공손하게 처신하였다. 내게 종종 자신이 이미 예전에 영업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음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선임자가 영업부 과장직에서 사표를 내자 그는 내게 계속 조르기 시작했다. 자신도 영업부에서 일하여 보고 싶노라고. 하도 귀찮게 조르기에 그를 영업부 평직원으로 보내면서 영업부 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몇 개월만 데리고 있어라. 얼마 버티지 못할 테니까." 2개월 만에 그는 사표를 냈다.

왜 나는 선임자처럼 행동하고자 애를 무지 쓴 그를 무시하였을까? 세상이 원하는 자세로 일하는 태도는 뼈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며 눈 앞의 홍당무가 탐이 나서 나오게 되는 행동과는 그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임자가 모범을 미쳐 보이지 못한 분야에서는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수현상이 생기면서 탄로가 나기 마련이며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행동이기에 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고 내가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무슨 일을 하건 당신의 기준을 바꾸어라. 당신이 정한 기준으로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못한다. 부자들은 세상이 원하는 기준으로 일을 하여 온 사람들이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넓고 깊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일하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기준을 아무리,아무리 귀가 따갑도록 설명하여도 못 알아 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안다. 그들은 오히려 "덜 먹고 덜 싸겠다", "꼭 그렇게 까지 하면서 바둥 바둥거리며 살아야 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잘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얻게 된 결론: 역시 가난하게 살 사람들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6월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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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군대에서, 나는 모공업고등학교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썼던 이유는 이 마지막에 나오는 나의 눈물 때문에 처음부터 눈물의 이야기를 쓰려고 이 글을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1988년...

 나는 전북 이리에 있는 모 국립기계공업고등학교로 입학을 하게 된다.
모기계공고는 당시 우리나라에 국립으로 우리나라에서 3군데 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 학교를 오게 되었나?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그리 잘하지도 못하고 항상 딴 생각만하고 장난기많은 소년이었다.
공부보다는 소설책이 좋았고, 공부보다는 어머니 도와서 일하는 게 더 좋았다.
그런던 중 축구를 하다가 발이 부러저 3개월을 기브스하는 사고를 당하게되었다.
학교는 가야 했다.친구들 놀 때나 공부할 때 할 것이 뭐 있나?
그래서 공부를 했고 순전히 할 일 없어서 공부했다.
그러니 성적은 당연히 올라갔었고 다리가 거의 아물 무렵 또 개구장이가 되려나 했는 데 재수가 없어도 그렇게 없나...
또 부주의로 또 다리를 다쳐서 기브스하게 되어 도합 7개월을 목발로 절름발이로 살아야했다.    정말 폭폭하고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에 형이 동생아!  

 "우리 형편에 갈학교는 이리(지금은 익산)에있는 모국립공고밖에없다...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해라!  그 학교는 시험도아닌  철저한 내신성적이니까  전체학생등수 30등안에만 들어라"  

형은 절실한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그 학교는 국립이라, 수험료도 안내고 기숙사도 있으니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그곳이 딱이다. 넌 몸만 가면 되는거니까  한번 죽었다 하고 해봐라.
난 그말만 믿고 정말 열심히 했다. 아픈몸  할일이 없어 공부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형에게 처음으로 기쁨을 준것같아 참으로 기뻣다.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시골 촌놈!

눈이 휘둥그래지는것은 어쩔수없었다.

답답한 시골살다가 ,일만하는 시골에 있다가 도시에 올라왔으니 어쩌랴?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얼마나 좋았던지, 이리저리 많이도 돌아다녔다.그러니 시골촌놈..
세상이란 곳에서 시골때가 벗겨지고 ,머리가 조금크니 살짝은 겁이 상실해지지 않겠나?
형은 그렇게 고생하고,어렵게 신문배달하고 우유배달하면서 피와땀으로 살았는데 난 그생각은 추어도 못하고  하룻강아지 마냥 그렇게 살았다.
형에 반에 반만 이라도 열심히 살았으면...형의  처한 상황보다도 비하면 행복한 그시간을 난 허비했다...

 내 나름데로 공부한다고 햇었다.
야간에도 했었고 ,새벽에도 해었는데  그 학교 첫번째 중간고사에서 꼴등했다.
55명 중에서 55등했다.  꼴등...  
글쎄 나도 한다고 했는데..이럴수가?
이렇게 공부잘하는 학교였나?아버지께서 통신표를 받아보시더니  "야 이놈아 꼴에서 첫번째는 해야지 꼴등이뭐냐?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해라고해도 못하겠다....

 
그런던 중 시간은 쉼없이 흐러가서  2학년이 되어 2학기에 접어드는와중에 일요일 귀가시간을 20분어기는 일이 발생되었다.
시골집에서 막차를 타고 열심히 왔었는데도  늦은것이다.
그때가 2번제 늦은 귀가어기는 일이었는데  사감선생은 퇴사조치를 한다는것이었다.
남들은 4번도 5번도 봐주더구만...
이유는 너는 위험인물이라는것이었다.
지뢰같은 위험인물이었는데 이기회에  나가주었으면한다는것이었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소귀에 경읽기가 되엇다.
그때 나는 큰사고는 치지않았지만 얼굴은 아주 불량한,세상의 때에절은 반항기가득한
소년이었던것이다.

 

형이 왔다.

군대 하사관으로 잇던 형이와서 어머니와같이 방을 얻어주었다.
철부지녀석은 딴짓거리하기가 쉬운  방을 고르려했고 형은 주인아주머니가 굉장히좋고
자취방 옆집사람들이 성실하고좋은 아주 선한 자취방으로 삭월세를 구해주셨다.
그당시 24만원! 결코작은 돈이 아니다.  한달에 2만원, 1년치 선불이었으니...

형은 박봉일 그 힘든 군대생활하면서 모은 피같은 돈을 못난동생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꼭 한마디를 하였다.
"동생아  !   형이 좋아서 이러는게 절대 아니다.
내 너를 지금 귓뺨을 때리고싶고, 죽도록 패버리고 싶지만 난 너를 믿는다.
이제부터  새로이 시작하는 너를 믿는다.
이러고도 정신을 차리지못하면 너는 내동생이 아니다.
부디 잘살고 잘 생활해라 "

정말로 미안했다.
할말도없었다.. 참으로 못난 동생일 뿐이었다.
그때 느낀것이 아무리 어떤일을 해도 졸업하기전까지는 조용히 절대 형이나
가족들에게 피해나 걱정을 끼치지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몇달이 흐른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돌아왔다.
자취를 하자보니 내마음처럼 혼자만 잘살고싶은데 그게 잘안되는날이있다.
그전날 친구생일이라고 친구녀석들이 몰려와서 술마시고, 담배피우고
자취방이 아주난리 이런난리가없다.
나홀로 있을때는 정리정돈잘하고,항상 깔끔한 모습과, 형이 한번도 방 구해준이후
안와봤기에 언제올지모르는 형을 위해 준비를 해주고있었는데
이것이 무슨 전쟁터라는 말인가?
빨리 치우자.. 어서 치우자...팔을 걷어 붇이는순간
멀리서 당동딩동 ~~
누구람 ?
누구 손님인가하고  문을 열어주던 그순간 .
나는 얼어붙은줄 알았다.
세상에 형이다.
형이었다.

 

 

갑작스러운정도는 표현이 안되었다.

" 야 잘있었냐?

여기 근처 동기집이잇어 왔다가 들렸다.

잘살지  ㅎㅎㅎㅎ~~"

 

"형 ~~형 ~

잠깐만 ...

얼어붙은나는 말이 모기만하게나왔다.

 

"야 임마 !

네가 해주는 밥이나 먹고가자"하는 형은 내방문 가까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방문앞에 나뒹구는 술병들 ,,,문을 여는순간 , 담배피우다 얼른끄고 상황을 파악하는 친구들 ..
뿌연 담배연기속에서 전쟁터가 된 방과 부엌을 보는형은 눈빛은 카리스마적인 그런눈빛도
아니었고 촉촉히 젖은 눈빛은 차라리 슬퍼보였다.

 그어떤말로도 설명할수가없었다.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하는데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고 그저 이순간이 꿈이었으면...
형도 말이없었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그리곤 다시왓던 대문으로 걸어가는것이었다.

"형!   형!  나는 뒷쫒아 나가 형을 불렀다."
묵묵히 가던형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몇초간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마디만 했다.

"형   간다"

그말하는 눈빛을 지금도 잊을수없다.
그리고는 말없이 형은 걸어갔다.
조금씩 멀어지는 형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모른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길이 없었다.

 멀리 군복을 입고 쳐진 어깨를 가르며 걷는 형을 보며 눈물이 멈추질않았다.
우는 와중에도 형이 택시를 타주길바랬다.
기본요금이 600원, 이리역까지 형이 타고 가주길바랬다.

하지만 형은 걸어갔다.
나는 멀어지는 형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아마 형도 그당시 나처럼 울지않았을까?
차라리 몇대 맞고 욕이아 싫것먹었다면 그렇게 서럽지는않았을텐대....

 나는 형을 보면 언제나 

"내자신과의 싸움에 강해져라"


형이 나에게 하는말인것같다.
내자신에게 절대 지지않는 강한 내자신의 주인으로 나에게 살라고 이야기하는것같다.
힘들고 냉정한 이세상을 살아가매  다른이들에게는 지더라도 철저히 내자신에게만은
더욱더 냉정하고 강한 그 정신으로...

형에게는 항상 빛진느낌이다.
살아가면서 천천히 갚아야지 ...
형만한 아우는 없다고한다.
하지만 내마음속의 스승, 형에게 한마디 말하고 싶다.

 형만한 아우가 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이전쟁같은 삶에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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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2월23일   인생이라는 배를 항해하는 법.

내 인생의 커다란 배에 소중한 살갑고 수중한 사람들만 태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험한 풍랑과 산처럼 높은 파도를 맞서서 싸울 그런 사람과 같이 가고 싶었다. 바다가 잠잠해져 저 수평선 너머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여유있는 웃음과 잔잔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삶은 끈과 끈이 이어져 만들어진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다.

불을 밝히는 전기는 그 끈이 이어진 전선이 없으면 불을 밝힐 수 없다. 소켓만 있는 전구는 그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세상 그 무엇이든지 그 짝이라는 것이 있다. 젓가락은 두 개가 모여 한조를 이루어야 반찬이나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손뼉은 두 손바닥이 모여야 소리를 낼 수가 있다.
자전거의 패달은 양발을 사용해야 힘을 발휘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내 작은 아들과 놀아주고 싶어도 내 아들이 곁에 있어야 놀아 줄 수가 있는 것처럼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혼자서는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생각해보니 독서라는 읽음과 깨우침도 누군가 진실한 마음으로 집필을 하여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가 있고 또 책을 만들었다고 하여도 누군가 읽어줄 사람이 없다면 그 책은 가치가 없는 책과 같다.

전기불빛을 밝히고 손뼉을 치고 젓가락을 들고 저전거를 타고 아이와 놀아주는 그 모든 참된 행동도,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이어진 끈과 끈에서 만들어져 이루어낸 삶, 그래 그것이 인생이라는 크나큰 바다다.
그 크나 큰 바다에서 나는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선장이다. 대장이라는 말이다. 대장은 배를 책임지고 목표한 험난한 곳으로 가는 총 책임자다. 혼자서 그 커다란 배를 책임질 수는 없다. 그래서 같이 항해를 할 선원을 구해야 한다. 선원은 동반자이다. 동반자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부드러우면서 묵묵한 사람. 
 때로는 강하면서 능력있는 사람.
때로는 약하면서 베짱있는 사람.
때로는 적당히 풍류를 즐기면서 서두르지 않는 사람.
때로는 한없이 여린 마음으로 동료를 도우며 따뜻한 눈빛을 주는 사람.
때로는 말 술을 마시며 호탕하게 노래 부르더라도 때가 되면 몇 달도 마시지 않는 사람.

 이런 선원을 구하는 인연의 원칙에 대하여 알아보자.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이 인연이라는 맺음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된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외로우니까, 마음이 찹찹하니까, 소주 한잔 하고 싶으니까, 대인관계를 위하여, 사업상 친목을 위하여, 모임이다. 향우회다. 같은 업종의 친목회다.
가지 가지 여러 가지로 어쩌면 꺼리를 만들어서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우정과 의리를 빙자하여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진지하지 못함인가? 아니면 스쳐가는 인연인가?  내 주위에 사람이 그리 없다.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몇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많은 만남과 술 자리에서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야 나는 제대로 알 수가 있다. 어쩌면 채로 걸러진 것처럼 진짜 사람냄새나는 사람만 이제 남은 것이다.

  함부로 이제는 인연을 맺지를 않는다.  진실한 마음의 인연인지, 스쳐가는 인연인지를 알불 수 있는 안목을 길렀다. 옷깃을 스쳤다고 모두 내 인연이 된다고 믿었던 어린날의 허세를 이제 내 안에서 버린 후 찾아온 소중한 교훈이다. 사람냄새가 제대로 나는 사람에게만 손을 내밀어 내 배에 승선을 시켜야 한다. 수많은 선원이 다 탄다고 배가 항해를 잘하지는 않는다. 아무나 승선을 시키면 제대로  된 선원을 태우기 힘들고 나중에 자리가 없어 휼륭한 선원을 태우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항상 사람의 일이란 그 당장의 벌어진 일 때문에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에서의 사람 때문에 고통과 힘겨움을 동반한다. 사람, 이 사람 때문에 말이다...

나와 비숫한 사람들. 나와 마인드를 같이 나누려는 사람들. 그런 진실된 사람들만 태워야 한다. 그래야 배가 제대로 된 항해를 할 수가 있다.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아무리 몇 명이라도 외롭지 않다. 그들에게만 진실한 인연을 손에 잡으면 추호도 항해의 불편함이란 없다.
항해에서 좌초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진실없는 선원을 승선한 나의 판단의 댓가로 받는 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얼마전 10년 된 소중한 인연의 끈을 내가 잠시 놓아주었다.10년된 인연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서운하고 마음의 짐을 넘겨받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어쩌면 가장 안다고 자부했는데 서로 겉모습만 알고 있었나 보다. 그에게는 서운한 일일지 모르지만 더 굵고 힘찬 인연의 끈을 위하여 지금은 잠시 시간의 공간에서 잠시 멀어져 생각하는 것이니 서운할 일도 아니다.
이 일로 나는 인연의 맺음에 너무 헤프지 않기로 더 다짐하게 되었다. 진심어린 마음의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을 구분하였다고나 할까.

나는 최선을 다하는 인연을 맺는데 게을리 하지도 않겠지만 떠나가는 인연 또한 가슴의 한곁에서 스스로 놓아 줄 것이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의 눈동자를 한 번 보도록 하자. 

진실하고 진실한 선원만 내 인생의 커다란 배에 태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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