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윤정수의 꿈을 이루는 비법! 시간수첩

"TV에서 윤정수씨 이야기를 보고"

"가난은 불편하고 싫죠.

하지만 가난은 거름이예요.

거름이 있기 때문에 윤택한 삶을 만들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꿈이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꿈이 있기에 다들 행복한 인생이지만 꿈을 이루는 사람은 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본 개그맨 윤정수씨 이야기는 더 행복해 지는 비결 한가지를 던지고 있다.

 윤정수씨는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얼마전 20억짜리 집을 샀다고 한다. 단칸방에는 4명이 함께 살고 있었고 이웃 방에도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 4명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은 한 개였고, 자주 막혀서 골치거리였는데 이 골치거리를 처리하는 것을 주로 윤정수씨가 담당했다. 힘든 시간이었을것 같은데? 아니, 꿈이 있어서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윤정수의 꿈을 이루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윤정수씨는 20억짜리 집을 산다! 마음속에 분명한 꿈을 그렸다. 그리고 이미 나는 집을 샀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곤 했다. 나는 집을 샀다 야호~. 이런 꿈을 갖게 된 배경에 어머님에 대한 효심이 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 어려서 보면 며칠을 나가셨다가 돌아오시면 돈을 가져오시곤 했다고. 길거리, 식당등에서 온정에 호소해서 판매를 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면서 눈시울을 글썽거린다. 꼭 어머님을 좋은 집에 모셔야 겠다는 꿈을 언제나 마음속에 세겼다.

 

 

 둘째, 배수진을 친다.

 

끌어모으는 방법이 있으면 다 모은다. 저축을 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은행에서 보낸 대출 상환독촉장을 보면 힘이 난다. 야! 빚을 갚아야 겠다. 잠시 피곤해서 쉬고 싶은 마음을 싹 달아나게 하고 더 힘차게 일을 시작한다.

 

 

셋째, 능력이 되는한 모든것을 다 한다.

 

자기 우물을 파라? 아니다. 가능한 것은 다 한다. 현재 퓨전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식당에서 직접 봉사하고, 음식을 직접 맛을 보고, 가족분위기를 만들어 성공하고 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업을 또 준비하고 있다고. 시간이 되고 능력이 되는한 할수 있는 것은 다 한다. 그래서 만능맨이 되어버렸다.

 이런 꿈을 이루는 결정적 비법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 프로의 핵심이었다.

바로 '시간쪼개기'이다. 일분 일초를 아껴서 정확한 시갈활용은 꿈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십여년 전부터 쓰던 시간수첩을 보여준다. 몇시에 뭐하고 뭐하고 빽빽하게 짜여져 있는 하루 하루의 일과!

절대로 5분 10분을 헛되이 쓰는 것이 없다.  

정리하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행한다. 그 결정적 비법은 바로 1분 1초를 아껴서 최선을 다하는 '시간쪼개기'이다.

 어렵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가난속에서 꿈을 이루어가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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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어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이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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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대우 중공업 김규환 명장이 삼성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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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국민학교도 다녀보지 못했고 5대 독자 외아들에 일가 친척 하나없이 15살에 소년가장이 되었습니다.


- 기술 하나 없이 25년 전 대우 중공업에 사환으로 들어가 마당 쓸고 물 나르며 회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이런 제가 훈장 2개, 대통령 표창 4번,발명특허대상,장영실 상을 5번 받았고 1992년 초정밀 가공분야 名匠으로 추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제가 우리나라에서

상을 제일 많이 받고 명장이 되었는지 말씀 드릴까요?

사환에서 名匠이 되기 까지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굶지 않는다

- 제가 대우에 입사해서 현재 까지오는 과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 제가 대우에 입사할 때 입사자격이 고졸이상 군필자였습니다.


이력서를 제출하려는데 경비원이 막아 실강이 하다 당시 사장 이 우연히 이 광경을 보고 면접을 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 그러나 면접에서 떨어지고 사환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 사환으로 입사하여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하였습니다.


하루는 당시 사장님이 왜 일찍 오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선배들 위해 미리 나와 기계 워밍업을 한다고 대답했더니

다음날 정식기능공으로 승진시켜 주시더군요.


- 2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5시에 출근하였고, 또 사장님이 질문하시기에 똑같이 대답했더니 다음 날 반장으로 승진시켜 주시더군요.

내가 만든 제품에 혼을 싣지 않고 품질을 얘기하지 마십시오.

- 제가 어떻게 정밀기계 분야의 세계 최고가 됐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 가공 시 온도가 1℃ 변할 때 쇠가 얼마나 변하는지 아는 사람은 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걸 모를 경우 일을 모릅니다.
- 제가 이것을 알려고 국내 모든 자료실을 찾아봤지만 아무런 자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바닥에 모포깔고 2년 6개월 간 연구했습니다,
- 그래서 재질, 모형, 종류, 기종별로 X-bar값을 구해 1℃변할 때 얼마 변하는지

온도치수가공 조견표를 만들었습니다.
- 기술공유를 위해 이를 산업인력관리공단의 ‘기술시대’란 책에 기고했습니다. 그러나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3명의 공무원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 회사에서는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출한 자료가 기계가공의 대혁명 자료인 걸 알고 논문집에 실을 경우 일본에서 알게 될까 봐, 노동부장관이 직접 모셔오라고 했다는 군요.

장관 曰 '이것은 일본에서도 모르는 것이오.

'발간되면 일본에서 가지고 갈 지 모르는 엄청난 것입니다.'

=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일 없다

- 일은 어떻게 배웠냐? 어느 날 무서운 선배 한 분이 하이타이로 기계를 다 닦으라고 시키더라구요. 그래서 다 뜯고 닦았습니다.
모든 기계를 다 뜯고 하이타이로 닦았습니다 . 기계 2612개를 다 뜯었습니다.


- 6개월 지나니까 호칭이 ‘야 이 X끼 야’에서 ‘김군’으로 바뀌었습니다.

서로 기계 좀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실력이 좋아 대접 받고 함부로 하지 못하더군요.


- 그런데 어느 날 난생 처음 보는 컴퓨터도 뜯고 물로 닦았습니다. 사고 친 거죠.

그래서 그 때 알기 위해서는 책을 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저희 집 가훈은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일 없다’입니다.


- 저는 국가기술자격 학과에서 9번 낙방, 1급 국가기술자격에 6번 낙방, 2종 보통운전 5번 낙방하고 창피해 1종으로 전환하여 5번 만에 합격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새대가리라고 비웃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1급 자격증 최다보유자는 접니다.

새대가리라고 얘기 듣던 제가 이렇게 된 비결을 아십니까?
그것은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것 없다는 저의 생활신조 때문입니다.


- 저는 현재 5개 국어를 합니다.
저는 학원에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외국어를 배운 방법을 말씀 드릴까요?

저는 과욕없이 천천히 하루에 1문장씩 외었습니다. 하루에 1문장 외우기 위해 집 천장, 벽, 식탁, 화장실문, 사무실 책상 가는 곳마다 붙이고 봤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1문장씩 1년, 2년 꾸준히 하니 나중엔 회사에 외국인들 올 때 설명도 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 진급, 돈 버는 것은 자기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을 불평하기 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러면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배 아파 하지 말고 노력 하십시오. 의사, 박사,변호사 다 노력했습니다. 남 모르게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 하루 종일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 저는 제안 2만 4천 6백 12건, 국제발명특허 62개를 받았습니다.


- 저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이라도 개선합니다. 하루 종일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가공기계 개선을 위해 3달 동안 고민하다 꿈에서 해답을 얻어 해결하기도 했지요.


- 제가 얼마 전에는 새로운 자동차 윈도 브러시도 발명하였습니다. 유수의 자동차 회사에서도 이런 거 발명 못했습니다.


- 제가 발명하게 된 배경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회사에서 상품으로 받은 자동차가 윈도 브러시 작동으로 사고가 났습니다. 교통사고 후 자나 깨나 개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물을 가르는 것 보고 생각해 냈습니다. 대우자동차 김태구 사장에게 말씀 드렸더니 1개당 100원씩 로열티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약속하고 오는 길에 고속도로와 길가의 차를 보니 모두 돈으로 보입디다.
- 돈은 천지에 있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돈은 들어옵니다.

회사에 대한 나의 생각 저의 종교는 대우중공업敎입니다.

- 저는 여러분들 한테 반드시 종교를 가지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종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나 절에 다니지 않습니다. 제 종교는 대우중공업교입니다. 우리 집에는 대우 깃발이 있고 식구들 모두 아침 밥 먹고 그 깃발에 서서 기도합니다.


- 저는 하루에 두번 기도합니다. 아침에 기도하고 정문 앞에서 또 한번 기도합니다.

'나사못 하나를 만들어도 최소한 일본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지막 당부의 말

지금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

- 저는 심청가를 1000번 이상 듣고 완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청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 돈에 노예가 되지 마라!' 지금 하고 있는일이 너의 인생이다! 지금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

-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것 없습니다. 목숨 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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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후두암 아픔 딛고 제2의 전성기 맞는 개그만 배영만


레이디경향 | 입력 2009.04.20 10:27


 

1980년대 '맞다고요~!'로 일약 개그계의 스타로 떠올랐던 개그맨 배영만. 한동안 도박으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던 그가 최근 다시 개그맨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재치와 구수한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원조 약골 개그맨 배영만을 만나본다.

MBC 경비아저씨 "너 개그맨 하면 잘하겠다"


일산의 한 카페에서 오랜만에 만난 개그맨 배영만(49). 최근 SBS-TV '야심만만 2'에 출연하기 전까지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그다. 깡마른 몸에 끼가 넘치는 표정까지 옛날 그대로다.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내가 원래 늙어 보여서 스무 살 때도 할아버지 역할이 잘 어울렸어요"라면서 호탕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내가 11남매 중에 여섯째인데, 위 아래로 형제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얼굴이 이렇게 늙어 보인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개그의 끼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일까. 배영만은 분명히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긴 그의 개그계 입성 계기 역시 '웃긴 얼굴' 덕분인데 오죽했을까.

"제가 친구 김명덕을 기다리느라 MBC 개그맨 시험에 따라갔는데, 경비 아저씨가 저를 보고 피식 웃더니 '너 개그맨 하면 잘하겠다'면서 원서를 직접 써주시더라고요."

배영만은 그렇게 얼떨결에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에 한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재수 없으니 나가라"고 했다는 것. 이에 배영만은 '그러면 그렇지. 내가 붙을 리가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1차 시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그리고 2차 시험에서도 똑같은 심사위원이 그에게 또 "나가라"고 했다. 이번에는 진짜 떨어졌나 보다 했는데, 또 붙은 것.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심사위원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너무 웃겨서 더 테스트 해볼 필요가 없어 나가라고 했던 것이었다.

1983년, 그렇게 우연히 개그맨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89년 '맞다고요~!'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키면서 개그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쉽게 헤어나지 못할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바로 도박의 유혹에 빠지게 된 것. 배영만은 당시 잘나가던 개그맨 H씨와 함께 포커를 배웠고, 하우스를 전전하면서 약 10년 동안 도박의 늪에 빠져 살았다.

"도박에 미쳐서 일이 들어와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도박하다가 돈을 잃으면, 행사에 나가서 돈을 벌어 또 뛰어들었죠. 20년 전 1억원이면 정말 큰돈이었는데, 그때 현금 1억원을 잃고 당시 살던 집까지 모두 날렸어요."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도박에 탕진한 사채 빚 갚아

당시 그는 일곱 살 연하의 예쁜 아내와 결혼한 상태였지만, 가정은 이미 뒷전이었다. 돈은 계속해서 잃어만 가고, 결국은 2천5백만원의 사채까지 썼다. 하지만 원금을 갚기는커녕 사채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그가 계속해서 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들은 수시로 찾아와 그를 협박했고,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궁지에 몰렸던 배영만이 사채업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통사고 덕분이었다. 밤무대를 마치고 돌아오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합의금으로 2천5백만원을 받은 것. 병원까지 찾아온 사채업자들은 그가 받은 합의금 2천5백만원을 챙겨 갔고, 그는 사채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채업자들도 병원에 누워 있던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이자는 됐다'면서 원금만 받아가더라고요. 그때도 내 얼굴 덕을 톡톡히 봤다니까(웃음). 그러고 보면, 저는 참 얼굴 덕을 많이 보고 산 것 같아요. 심지어 어릴 때 아버지도 저를 혼내려다가 불쌍해 보여서 못 때리겠다며 웃고 마셨으니까요(웃음)."

그러나 배영만은 사채를 갚고 나서도 계속 하우스를 전전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돈 좀 빌려달라"고 사정하고 다녔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를 피했다. 친한 친구들이 "제발 그만 좀 하라"며 진심 어린 충고를 하며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다 못한 지인이 그의 앞에 전문 도박꾼인 '타짜'를 불러왔다.







 
"타짜가 나에게 갖고 싶은 패를 말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패를 섞어서 돌리는데, 내가 원하는 패를 모두 만들어주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이길 수 없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었죠. 모든 도박장은 타짜에 의해 각본이 짜여진 거더라구요. 그러니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요. 도박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도박을 끊으면서 그는 신앙을 갖게 됐고,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배영만이 도박에 빠졌다는 소문이 돈 후, 방송가에서는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다행히 '맞다고요~!'로 얼굴이 알려졌던 그는 전국의 행사장에 부름을 받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목이 터져라 최선을 다했다. 이 덕분에 '배영만이 뜨면,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전국의 바자회에서 너도 나도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는 바자회 행사의 1인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저도 정신을 차린 후에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아내가 하루에 용돈 2천원만 줬어요. 그럼 방송국구내식당에서 천원짜리 점심을 사먹었죠. 커피도 안 마시고, 담배도 끊었어요. 가끔 돈이 없으면 밥을 굶고 물만 마신 적도 있어요."

도박에 빠져 살 때 옆에서 묵묵히 그의 옆을 지켜줬던 아내. 그는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도 도박판에 있었다. 아내는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남편을 찾기 위해 도박판을 전전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어떻게 참았을까 참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아내는 남편이 도박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자 알뜰하게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던 아내 역시 한 푼도 쓰지 않고,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은 무조건 통장에 넣었다. 아이들의 옷도 바자회에서 주는 것을 얻어 입혔다.

"아내가 결혼 직후부터 항아리를 땅 속에 묻고 동전을 모았나 봐요. 그 동전을 모두 꺼내서 은행에 갖다 줬더니, 3천2백만원이나 되더라고요. 아내가 그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어요. 제 직업이 불안정했으니까 더욱 정신 차리고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두 살 된 딸의 죽음과 후두암 판정

아내와 돈을 모으고 열심히 살 때쯤, 그에게 또 감당 못할 시련이 닥쳤다. 바로 두 살 된 딸아이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것. 아침에만 해도 방긋방긋 웃던 딸이 저녁에 갑자기 숨을 거둔 것이다. 원인을 알 수도 없었다. 크나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그와 아내는 우울증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지금부터 11년 전이니까, 도박도 끊고 돈도 열심히 벌면서 행복하게 살 때였죠.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가 죽었으니 얼마나 허망해요. 죽음은 돌이킬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 이후 아이를 다시 가지면서 그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어요."

배영만은 현재 청주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중인 큰아들(20)과 1년 전 아내와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딸(15), 아들(11)까지 2남 1녀를 두었다. 특히 큰아들은 앞으로 연기자를 희망한다고 한다.

"사실 저는 아들이 연기하는 걸 반대했어요. 제가 이쪽 생활을 해봐서 얼마나 유혹도 많고 힘든지를 잘 알잖아요. 그런데 피는 속일 수 없는지, 끼가 있더라고요. 코믹 연기도 잘하고, 정극도 잘해서 대학도 수시 합격했어요(웃음)."

이어 그는 "키가 184cm인 아들이 나와 아내의 좋은 점만 빼닮아서 아주 잘생겼다"며 내심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에 언제 한번 부자(父子) 인터뷰를 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하고 싶다"면서 오히려 아버지와 함께 나오는 것을 싫어한단다.

굴곡 많고, 파란만장했던 배영만의 인생에 이제 좀 평온이 찾아오는가 싶었는데, 그가 감당해야 할 시련은 끝난 게 아니었다. 7년 전,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후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 그동안 행사장에서 목이 터져라 목을 너무 혹사시킨 탓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후두암 말기' 판정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다른 병원 2곳에서 다시 진찰을 받았고, 다행히 후두암 초기인 것을 알게 됐다. 이에 후두를 도려내는 수술을 한 차례 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재발되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한 번 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병이 진전되지 않았다며 기적 같다고 하더군요. 수술하고 나서 오히려 목소리도 더 허스키하고 개성 있게 변했어요(웃음)."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더라"


도박으로 방송에서 멀어진 배영만이 다시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0년 KBS-2TV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그 뒤 SBS-TV 드라마 '야인시대', '장길산' 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연기에 대한 매력을 느꼈고, 2005년 KBS-1TV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도 출연했다. 이때는 생애 처음 단독 주연을 맡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드라마 주인공이었는데, 생각 외로 시청자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덕분에 그는 드라마가 종영할 때까지 2년 6개월 동안 고정 배역을 따낼 수 있었다.

'장길산'의 PD가 저에게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얼굴이라며, 계속 연기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볼수록 묘하고 신비하게 생겼다면서, 캐릭터만 잘 찾으면 롱런할 얼굴이라고요(웃음)."

드라마가 끝나고, 한동안 휴식기를 갖고 있을 때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개그맨 선배 최양락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진행하는 '야심만만 2'에 출연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이 전화 한 통이 그의 인생을 확 바꾸어놓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하룻밤 만에 스타가 된다는 이야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제가 스타가 돼 있는 거예요. 주위에서 검색어 1위 했다고 하루 종일 전화가 왔어요. 연예계 생활 25년 만에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맞다고요~!'라는 유행어가 히트했을 때도 이런 열광적인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웃음)."

덕분에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야심만만 출연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방송에 출연했을 정도다. 방송 요청이 쇄도해서 잠잘 시간도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고,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사인 요청도 받았다.

"사실, 그동안 방송에 나가고 싶은 갈망과 일을 하고 싶었던 열정이 있었죠. 그게 한꺼번에 몰려오니까 조금 정신이 없는데, 피곤하면서도 정말 기쁜 거 있잖아요. 왠지 새로운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고, 요즘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요(웃음). 원래 경기가 어려울수록 우리같이 못생긴 사람들이 떠요. 부담도 없고, 불쌍하고, 억울한 느낌 때문에 공감대가 생기나 봐요."

이후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러 방송국에 갔는데, 자신은 어느새 후배들에게 어려운 선생님(?)이 되어 있더란다. "저는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해서 신인의 마음이나 다름없는데, 후배들이 제 앞에서 군대식으로 손을 모으고 서 있더라고요. '선생님 잘 모셔라'라고 말하면서요. 오히려 후배들과 융합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야심만만에 함께 출연했던 후배 한민관은 배영만을 만나자마자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따랐다. 배영만은 한민관을 두고, "연기도 잘하고 재치와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며 "분명히 성공할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를 '야심만만'에 출연할 수 있게 끌어준 최양락 선배에게 정말 고맙죠. 제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며 축하한다고 전화도 왔더라고요.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했더니 '만원만 줘~'라고 하고는 웃으면서 끊더군요."

과거 함께 개그를 했던 김정렬, 김명덕, 황기순, 이봉원, 최양락, 김보화, 심형래 등이 한꺼번에 활동을 접었기 때문에 지금은 기성세대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양락, 이봉원이 서서히 방송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잊혀져가던 기성 개그맨들이 하나 둘씩 다시 방송에 나오고 있는 것에 한껏 고무되어 있는 상태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잊혀질 뻔했던 과거의 개그맨들과 젊은 개그맨들이 함께 무대에 설 날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의 꿈은 '개그와 연기를 통해 오랫동안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한때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던 개그맨 배영만, 100% 재충전이 되어 있는 열정을 보니 그의 개그와 연기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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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지 않고도 강해지는 방법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젊은 세대들은 반드시 알아두길 바란다.-최배달(일본 가라테 창시자)





'바람의 파이터' 최 배달은 1923년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라테를 창시해 세계 곳곳에서 내로라하는 무인들과 한 판 시합을 벌여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맥주병을 반 토막 내고, 더는 싸울 인간이 없다며 황소와 격투를 벌였던 그의 매섭고 단단한 손은 '신의 손'이라 일컬어졌습니다. 생전에 가라테의 전승과 보급에 힘을 쏟고, 영문판 가라테 입문서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요.

위의 말은 그가 생전에 자주 한 말로, 일본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명언으로 꼽힙니다.

후루이치 유키오는 "학력 콤플렉스 약점은 하루 30분 공부로 간단히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자신 또한 '하루 30분'이라는 지속적인 공부 방법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쓴 책<무엇이든 아침 30분만 계속하면 성공한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난 사람들에게 자주 권합니다.'다른 사람이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을 하세요.' 그러면 대다수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알고는 있지만, 좀체 실행하기 어려워요.'"

즉, 실행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뜻이 됩니다. 실행이 어려우니까 차별화가 가능합니다. 거꾸로 말해, 쉬우면 차별화가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은 다달이 할부금만 조금 내면 휴대전화를 손에 쥘 수 있는 세상입니다. 당신에게 휴대전화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타인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을까요?어림도 없겠지요. 하지만 휴대전화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휴대전화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타인과 차별화가 분명히 생겼습니다.

휴대전화를 들고 술집 따위에 가면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지요. 매월 휴대전화를 유지하고 사용하는 비용이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가지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희소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비쌌던 휴대전화를 지금은 웬만한 사람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당신에게 휴대전화가 있다고 해서 주위 사람이 "휴대전화가 있다니, 대단하네요"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그럴 리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대학교 졸업자이기 때문에, 자가용이 있기 때문에, 액셀 프로그램을 다루기 때문에 차별화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간단히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생기는 법입니다. 가령 공인 회계사 자격증 혹은 의사 면허가 있거나, 영어에 능숙하거나, IT시스템 개발이 가능하다면 차별화가 됩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공인 회계사나 의사 면허를 쉽게 딴다면 부가가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일을 한다면 부가가치가 생깁니다.

매일 조금씩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해서 꾸준히 공부를 계속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사람과의 격차가 커집니다.

혹시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지 않고 차별화를 할 방법은 없을까?' 하고 말입니다. 단언하건대, 그런 방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벌써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겠지요.

그럼에도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지 않고 편하게 할 방법이 있을 터'라고 믿고 부지런히 그 방법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찾아다니면 됩니다. 그러십시오. 당신에게 주어진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 있지도 않은 방법을 찾는 데 전부 소모되고 말겠지요. 그러는 동안에 부지런한 길을 실천했다면 몇 가지 가능성은 열렸을 텐데 말이지요.

있지 않은 방법을 평생 찾아다니는 사람은, 불만족 100퍼센트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쪼록 당신이 선택한 길이니 당신의 자유입니다.

일본 기업인인 와타나베 미키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옆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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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아버지 "아들아, 밖에 나가 놀아라"
연합뉴스 | 입력 2009.06.22 11:48 | 누가 봤을까? 10대 여성, 제주

(서울=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그의 아버지의 부자관계는 분명히 독특하다.

역사상 최대의 부를 일궈낸 인물 중 한 사람인 빌 게이츠는 자선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고 그의 아버지는 275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자선기구인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올해 53세인 빌 게이츠는 작년 6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일상근무에서 물러났고 83세인 아버지 게이츠는 1998년 시애틀의 저명한 법률회사인 프레스톤 게이츠 & 엘리스(K & L게이츠)에서 은퇴했다. 자선재단 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제2의 인생인 셈.

두 사람은 요즘은 서로 상담하고 조언하는 사이지만 당연히 오랫동안 아버지가 아들에게 중요한 조언을 해왔다.

CNN머니는 21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츈이 두 사람과 동시에 파리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소개했다.

--아버지에게서 얻은 가장 훌륭한 조언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하도록 북돋워주는데 탁월했다. 그들은 내게 밖에 나가 수영이나 축구, 풋볼과 같은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하도록 격려했다. 나는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편하게 느끼는 일에만 매달리는 대신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지도력을 키울 기회에 노출시키는 결과가 됐다.

--아들에게 특별히 마음먹고 해준 조언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자연스럽게 자식을 양육하는 과정이었나요.

▲집사람이나 나나 그 문제에 관해 어느 정도 분명했다고 생각하지만 주로 무의식적이었다. 우리는 그냥 아들이 밖에 나가 이웃 소프트볼 팀이라든지 그런 데서 놀고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는 그게 아들에게 좋고 아들이 그걸 즐길 거라고 생각했고 나중에 보니 좋은 조언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빌 게이츠) 당시 내가 잘 하지 못했던 것도 결과적으로 좋았다.
--아주 쉬운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우리 부모들은 가족을 양육하는 게 늘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안다. 새 책에서 일요일 만찬과 성탄절에 같은 종류의 잠옷을 입는 것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런게 정말 효과가 있나요.

▲한 가족의 경험으로 볼 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함께 모이고 자신이 뭘 하려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족의 전통, 예컨대 여행을 함께하고 언제나 저녁자리에 같이 앉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 등이 정말 큰 차이를 만든다. 우리는 부모가 화합하는 방식으로 자발적으로 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배웠다.

--일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을 텐데 다른 아버지와 아들처럼 불편한 순간도 있었지요?
▲물론 그렇다. 나는 내가 키우기 쉬운 아이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는 완고하게 고집을 세우는 기운이 넘치는 애였다. 내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이었을 때 학교를 그만둬야 할 직업을 제의받은 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교장선생을 만나 사정을 알아보고 난 후 "그래. 가서 해볼만한 일"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몹시 놀랐다. 대부분의 불편한 일은 내가 아직 뭔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당신들은 훌륭한 업무관계는 물론 가까운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젊은 애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옳은 일을 북돋우는 것이다. 빌의 어머니와 나는 우리가 다니던 교회의 부모효율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거기서 그들이 가르치고 강조한 것은 자식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이 말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출발이 좋은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의 열렬한 팬이며 아들이 훌륭한 시민이요 탁월한 사업가라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 역할 분담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밀어붙이는 형이다. "이 모든 걸 못할 이유가 뭐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버지는 지혜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우리가 회의를 하고 일정과 비용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버지는 누구라도 멈춰 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논평을 한다.

--아들이 언제나 충고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들이 하버드대학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뭐라고 했나요.

▲처음에는 얼마간 떠났다가 돌아가겠다고 했다. 방점은 돌아가겠다는 데 있었다. 돌아온 후 두 번째는 회사가 있는 곳으로 가 거기서 일을 더 해야겠다고 했다. 두 번째가 훨씬 걱정스러웠다. 회사는 손이 달리고 있었고 빌이 도와야 할 폴 알렌이 바로 거기 있었다.

--당신의 또 한 명의 스승인 워렌 버핏에게서 얻은 가장 훌륭한 조언은.
▲많은 조언을 받았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일을 단순화하는 그의 솜씨다. 그의 일정표를 보면 정말이지 간단하다. 일을 요약해내는 그의 능력은 천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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