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 후두암 아픔 딛고 제2의 전성기 맞는 개그만 배영만
레이디경향 | 입력 2009.04.20 10:27
1980년대 '맞다고요~!'로 일약 개그계의 스타로 떠올랐던 개그맨 배영만. 한동안 도박으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던 그가 최근 다시 개그맨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재치와 구수한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원조 약골 개그맨 배영만을 만나본다.
MBC 경비아저씨 "너 개그맨 하면 잘하겠다"
일산의 한 카페에서 오랜만에 만난 개그맨 배영만(49). 최근 SBS-TV '야심만만 2'에 출연하기 전까지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그다. 깡마른 몸에 끼가 넘치는 표정까지 옛날 그대로다.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내가 원래 늙어 보여서 스무 살 때도 할아버지 역할이 잘 어울렸어요"라면서 호탕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내가 11남매 중에 여섯째인데, 위 아래로 형제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얼굴이 이렇게 늙어 보인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개그의 끼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일까. 배영만은 분명히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긴 그의 개그계 입성 계기 역시 '웃긴 얼굴' 덕분인데 오죽했을까.
"제가 친구 김명덕을 기다리느라 MBC 개그맨 시험에 따라갔는데, 경비 아저씨가 저를 보고 피식 웃더니 '너 개그맨 하면 잘하겠다'면서 원서를 직접 써주시더라고요."
배영만은 그렇게 얼떨결에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에 한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재수 없으니 나가라"고 했다는 것. 이에 배영만은 '그러면 그렇지. 내가 붙을 리가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1차 시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그리고 2차 시험에서도 똑같은 심사위원이 그에게 또 "나가라"고 했다. 이번에는 진짜 떨어졌나 보다 했는데, 또 붙은 것.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심사위원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너무 웃겨서 더 테스트 해볼 필요가 없어 나가라고 했던 것이었다.
1983년, 그렇게 우연히 개그맨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89년 '맞다고요~!'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키면서 개그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쉽게 헤어나지 못할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바로 도박의 유혹에 빠지게 된 것. 배영만은 당시 잘나가던 개그맨 H씨와 함께 포커를 배웠고, 하우스를 전전하면서 약 10년 동안 도박의 늪에 빠져 살았다.
"도박에 미쳐서 일이 들어와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도박하다가 돈을 잃으면, 행사에 나가서 돈을 벌어 또 뛰어들었죠. 20년 전 1억원이면 정말 큰돈이었는데, 그때 현금 1억원을 잃고 당시 살던 집까지 모두 날렸어요."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도박에 탕진한 사채 빚 갚아
당시 그는 일곱 살 연하의 예쁜 아내와 결혼한 상태였지만, 가정은 이미 뒷전이었다. 돈은 계속해서 잃어만 가고, 결국은 2천5백만원의 사채까지 썼다. 하지만 원금을 갚기는커녕 사채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그가 계속해서 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들은 수시로 찾아와 그를 협박했고,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궁지에 몰렸던 배영만이 사채업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통사고 덕분이었다. 밤무대를 마치고 돌아오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합의금으로 2천5백만원을 받은 것. 병원까지 찾아온 사채업자들은 그가 받은 합의금 2천5백만원을 챙겨 갔고, 그는 사채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채업자들도 병원에 누워 있던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이자는 됐다'면서 원금만 받아가더라고요. 그때도 내 얼굴 덕을 톡톡히 봤다니까(웃음). 그러고 보면, 저는 참 얼굴 덕을 많이 보고 산 것 같아요. 심지어 어릴 때 아버지도 저를 혼내려다가 불쌍해 보여서 못 때리겠다며 웃고 마셨으니까요(웃음)."
그러나 배영만은 사채를 갚고 나서도 계속 하우스를 전전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돈 좀 빌려달라"고 사정하고 다녔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를 피했다. 친한 친구들이 "제발 그만 좀 하라"며 진심 어린 충고를 하며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다 못한 지인이 그의 앞에 전문 도박꾼인 '타짜'를 불러왔다.
"타짜가 나에게 갖고 싶은 패를 말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패를 섞어서 돌리는데, 내가 원하는 패를 모두 만들어주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이길 수 없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었죠. 모든 도박장은 타짜에 의해 각본이 짜여진 거더라구요. 그러니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요. 도박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도박을 끊으면서 그는 신앙을 갖게 됐고,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배영만이 도박에 빠졌다는 소문이 돈 후, 방송가에서는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다행히 '맞다고요~!'로 얼굴이 알려졌던 그는 전국의 행사장에 부름을 받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목이 터져라 최선을 다했다. 이 덕분에 '배영만이 뜨면,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전국의 바자회에서 너도 나도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는 바자회 행사의 1인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저도 정신을 차린 후에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아내가 하루에 용돈 2천원만 줬어요. 그럼 방송국구내식당에서 천원짜리 점심을 사먹었죠. 커피도 안 마시고, 담배도 끊었어요. 가끔 돈이 없으면 밥을 굶고 물만 마신 적도 있어요."
도박에 빠져 살 때 옆에서 묵묵히 그의 옆을 지켜줬던 아내. 그는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도 도박판에 있었다. 아내는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남편을 찾기 위해 도박판을 전전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어떻게 참았을까 참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아내는 남편이 도박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자 알뜰하게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던 아내 역시 한 푼도 쓰지 않고,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은 무조건 통장에 넣었다. 아이들의 옷도 바자회에서 주는 것을 얻어 입혔다.
"아내가 결혼 직후부터 항아리를 땅 속에 묻고 동전을 모았나 봐요. 그 동전을 모두 꺼내서 은행에 갖다 줬더니, 3천2백만원이나 되더라고요. 아내가 그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어요. 제 직업이 불안정했으니까 더욱 정신 차리고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두 살 된 딸의 죽음과 후두암 판정
아내와 돈을 모으고 열심히 살 때쯤, 그에게 또 감당 못할 시련이 닥쳤다. 바로 두 살 된 딸아이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것. 아침에만 해도 방긋방긋 웃던 딸이 저녁에 갑자기 숨을 거둔 것이다. 원인을 알 수도 없었다. 크나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그와 아내는 우울증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지금부터 11년 전이니까, 도박도 끊고 돈도 열심히 벌면서 행복하게 살 때였죠.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가 죽었으니 얼마나 허망해요. 죽음은 돌이킬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 이후 아이를 다시 가지면서 그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어요."
배영만은 현재 청주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중인 큰아들(20)과 1년 전 아내와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딸(15), 아들(11)까지 2남 1녀를 두었다. 특히 큰아들은 앞으로 연기자를 희망한다고 한다.
"사실 저는 아들이 연기하는 걸 반대했어요. 제가 이쪽 생활을 해봐서 얼마나 유혹도 많고 힘든지를 잘 알잖아요. 그런데 피는 속일 수 없는지, 끼가 있더라고요. 코믹 연기도 잘하고, 정극도 잘해서 대학도 수시 합격했어요(웃음)."
이어 그는 "키가 184cm인 아들이 나와 아내의 좋은 점만 빼닮아서 아주 잘생겼다"며 내심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에 언제 한번 부자(父子) 인터뷰를 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하고 싶다"면서 오히려 아버지와 함께 나오는 것을 싫어한단다.
굴곡 많고, 파란만장했던 배영만의 인생에 이제 좀 평온이 찾아오는가 싶었는데, 그가 감당해야 할 시련은 끝난 게 아니었다. 7년 전,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후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 그동안 행사장에서 목이 터져라 목을 너무 혹사시킨 탓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후두암 말기' 판정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다른 병원 2곳에서 다시 진찰을 받았고, 다행히 후두암 초기인 것을 알게 됐다. 이에 후두를 도려내는 수술을 한 차례 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재발되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한 번 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병이 진전되지 않았다며 기적 같다고 하더군요. 수술하고 나서 오히려 목소리도 더 허스키하고 개성 있게 변했어요(웃음)."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더라"
도박으로 방송에서 멀어진 배영만이 다시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0년 KBS-2TV 부부클리닉 '
사랑과 전쟁'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그 뒤 SBS-TV 드라마 '야인시대', '장길산' 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연기에 대한 매력을 느꼈고, 2005년 KBS-1TV 드라마 '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도 출연했다. 이때는 생애 처음 단독 주연을 맡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드라마 주인공이었는데, 생각 외로 시청자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덕분에 그는 드라마가 종영할 때까지 2년 6개월 동안 고정 배역을 따낼 수 있었다.
'장길산'의 PD가 저에게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얼굴이라며, 계속 연기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볼수록 묘하고 신비하게 생겼다면서, 캐릭터만 잘 찾으면 롱런할 얼굴이라고요(웃음)."
드라마가 끝나고, 한동안 휴식기를 갖고 있을 때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개그맨 선배
최양락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진행하는 '야심만만 2'에 출연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이 전화 한 통이 그의 인생을 확 바꾸어놓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하룻밤 만에 스타가 된다는 이야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제가 스타가 돼 있는 거예요. 주위에서 검색어 1위 했다고 하루 종일 전화가 왔어요. 연예계 생활 25년 만에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맞다고요~!'라는 유행어가 히트했을 때도 이런 열광적인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웃음)."
덕분에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야심만만 출연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방송에 출연했을 정도다. 방송 요청이 쇄도해서 잠잘 시간도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고,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사인 요청도 받았다.
"사실, 그동안 방송에 나가고 싶은 갈망과 일을 하고 싶었던 열정이 있었죠. 그게 한꺼번에 몰려오니까 조금 정신이 없는데, 피곤하면서도 정말 기쁜 거 있잖아요. 왠지 새로운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고, 요즘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요(웃음). 원래 경기가 어려울수록 우리같이 못생긴 사람들이 떠요. 부담도 없고, 불쌍하고, 억울한 느낌 때문에 공감대가 생기나 봐요."
이후 '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러 방송국에 갔는데, 자신은 어느새 후배들에게 어려운 선생님(?)이 되어 있더란다. "저는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해서 신인의 마음이나 다름없는데, 후배들이 제 앞에서 군대식으로 손을 모으고 서 있더라고요. '선생님 잘 모셔라'라고 말하면서요. 오히려 후배들과 융합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야심만만에 함께 출연했던 후배
한민관은 배영만을 만나자마자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따랐다. 배영만은 한민관을 두고, "연기도 잘하고 재치와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며 "분명히 성공할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를 '야심만만'에 출연할 수 있게 끌어준 최양락 선배에게 정말 고맙죠. 제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며 축하한다고 전화도 왔더라고요.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했더니 '만원만 줘~'라고 하고는 웃으면서 끊더군요."
과거 함께 개그를 했던
김정렬, 김명덕,
황기순, 이봉원, 최양락,
김보화,
심형래 등이 한꺼번에 활동을 접었기 때문에 지금은 기성세대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양락, 이봉원이 서서히 방송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잊혀져가던 기성 개그맨들이 하나 둘씩 다시 방송에 나오고 있는 것에 한껏 고무되어 있는 상태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잊혀질 뻔했던 과거의 개그맨들과 젊은 개그맨들이 함께 무대에 설 날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의 꿈은 '개그와 연기를 통해 오랫동안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한때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던 개그맨 배영만, 100% 재충전이 되어 있는 열정을 보니 그의 개그와 연기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