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큼 새벽에 잘 일어나지 못하지만 오늘처럼 어쩌다 새벽에 일찍 눈이 떠져 운동을 한 날은 기분이 좋다. 묘한 성취감도 있고 무엇보다 하루가 넉넉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인 일이었는지 어제 저녁부터 일찍 잠이 와서 밤 여덟 시 무렵부터 누워 졸다가 눈을 뜨니 새벽 세 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조금 게으름을 부리긴 했으나 내 잠이 깬 것을 눈치챈 고양이가 달려와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잠이 완전히 깬것. 무슨 storm이 왔는지 비가 많이 와서 새벽에도 빗소리가 대단하여 잠시 재즈를 들으면서 책을 보려고 생각했으나 모처럼 일찍 일어난 새벽이 아까워서 이를 악물고 gym으로 갔다. 가는 것이 어렵지만 일단 가고 나면 공간과 시간에서 오는 에너지 같은 것이 있어서 몸에 힘이 나고 활기가 돈다. 천천히 강도를 잘 잡아가면서 등과 이두운동을 수행하고 돌아오니 고작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업무메일에 회신을 하고 이런 저런 처리를 하고 달걀과 아보카도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커피를 끓였는데도 오전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정도. 재택근무를 하기로 하여 출퇴근에 소요되는 준비와 운전시간이 빠지니 가뜩이나 slow한 금요일의 오전업무가 거의 끝나버렸다. 할 일은 언제나 많이 있지만 적당히 pace를 조절하는 편인데 금요일에는 무겁고 어려운 건 안 하려고 해서 아마 이런 식으로 오늘 하루가 흘러갈 것 같다.
어제 잠시 언급했던 'My Bookstore'에서 소개된 서점들 중에서 (좀더 읽었다) Alabama Booksmith란 특이한 서점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시기에도 책을 엄청나가 팔아댄다는 곳인데 Signed First Edition Club이란 회원제 도서구매를 이용해서 똑같은 책값으로 서점에서 curation한 엄선된 작가들의 First Edition에 사인을 받아서 판매하는 컨셉이다. 서점주인의 인맥과 영향력을 이용해서 2005년부터 운영해온 프로그램의 작가들을 보면 내가 아는 이름만 해도 무려 앤 라이스, 폴 오스터, 이사벨 아옌데, 할레드 호세이니, 이민진, 살만 류슈디, 필립 로스 등 후덜덜한 수준이다. 늦게나마 나도 이렇게 한 권씩 서명된 First Edition이 갖고 싶어져서 털컥 가입해버렸다. 연 500불 내외의 수준이니 한 달에 50불이 채 안되는 아주 합리적이고 부담이 없는 가격이니 괜찮을 것 같다. 우리 동네 물가로 말하자면 쌀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 팁과 세금까지 합쳐서 23-25불이 쉽게 나오니 쌀국수를 두 번만 안 먹으면 저자의 친필서명본으로 First Edition을 받아볼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개이득 아니겠는가.
이 서점의 주인양반은 원래 재단사로 오래 일했다고 하는데 좋은 재료로 잘 만든 양복을 제대로 된 값으로 파는 것이 영업방침이었다고 한다. 에너지가 넘치고 힘이 좋아서 50대를 넘긴 나이에도 직접 100kg 단위로 책을 옮기고 이벤트를 조직하여 성업 중이라고 하니 이런 어려운 시대에도 지역인구의 구매력과 지적 수준에 따라서 서점이 잘 굴러갈 수도 있는 것이다. 카페도 없고 WiFi나 charging station도 제공하지 않는 대신 하루 종일 매대를 서성거리면서 책을 보고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공간이라고 하는 이곳의 회원이 되어 뭔가 설레고 있다.
이따 일을 하면서 친해진 지인과 11시 정도에 만나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기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다가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정착하기로 하고 퇴사를 했는데 미리 계획하고 만든 여러 개의 쿠션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서 당분간은 까먹느라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별건 아니지만 가끔 안부를 묻고 만나서 점심이나 커피를 사주는 것으로 응원하고 있다.
연휴인데 계속 비가 오니 딱히 할 것도 없고 갈만한 곳도 없으니 밀린 책이나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