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나이든다는 것 - 민담, 전설, 신화로 들려주는 나이듦의 여섯 가지 여정
앤 G. 토머스 지음, 박은영 옮김 / 열대림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간접체험 혹은 치유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문득 가슴으로 느꼈었다. 솔직히 그 전까지만 해도 책이 좋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깨달음'의 기쁨을 맛본 뒤로는 전적으로, 진심으로 독서의 기능을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찬양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물론 아주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책을 여럿이 읽더라도 그것이 주는 느낌이나 영향은 다르다는 점이다. '적시에(right time)'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어찌보면 나에게 적시에 찾아온 책이 아닌가 싶다. 전반적인 내용이 적시라기 보다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의미의 적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내가 나이 든 여자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가족, 즉 원가족의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성격이 다시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고, 혹시 나에게도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예전에 소그룹으로 의사소통 수업을 받으며 내면의 심리가 의미하는 바와 원가족의 영향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변하면서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도 변하는데 나는 예전에 듣고 느꼈던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나 표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친 김에 심리학에 대한 다른 책도 찾아 읽어보았고 지금은 남편에 대해서도 다시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으니 하나의 계기가 된 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신화나 전설, 민담(즉 옛이야기)을 통해 그 안에서 여자의 말이나 행동을 읽어내며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잘 풀어주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옛이야기는 대부분 잘 모르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상징하는 바를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글을 읽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꼭 이렇게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꽤 있지만 어차피 모든 이야기는 해석하기 나름일 테니 저자의 해석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주는 내담자의 이야기가 더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몇 년 전에 엄마가 나에게 당신의 삶에 대해 한탄하셨던 적이 있다. 당시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그렇게 한탄할 필요가 없는 일을 가지고 괜히 그러신다고 생각해서 엄마의 마음을 읽어드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왜 그러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철이 덜 들었던 것도 그렇게 생각한 이유였을 테고. 지금은 나이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깨닫지만 당시만 해도 무엇을 하든 '나이'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가 그때 참 힘드셨겠구나 싶다. 힘들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중년 후반에 와 있는데 남은 것은 하나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고 '나'를 위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을 때의 허탈감과 허무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던 것과 엄마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던 게 참 죄송하다. 이제 깨달았으니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워낙 무뚝뚝한 딸이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역자와 이야기하던 도중 지금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이야기하시던데, 정말 그렇다. 이런 책을 통해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책이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적 환경이 이루어졌으나 그 분들은 이미 그것을 누릴 여건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종종 그러신다. 젊었을 때 생각하기로는 나이 들면 책이나 실컷 보며 여유있게 살려고 했는데 책을 조금만 보면 머리가 아파서 읽을 수가 없다고(그래서 드라마를 엄청 보시는 건가). 이런 책을 읽고 더 확장해서 다양한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독서로 치유가 가능할 텐데,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나보다는 엄마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 손자 손녀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할 나이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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