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나라 여우 이야기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데지마 게이자부로 지음, 정숙경 옮김 / 보림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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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그러니까 출간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모임에서 한 회원이 이 책을 들고 와서 읽어주는데 어찌나 감동이 밀려오던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할 정도다. 보통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아이들이 컸더라도 언젠가는 사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그러질 못했다. 그런 아쉬움이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었던지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자 그 책이 먼저 생각났다. 그리고, 결국 작년 2학기에 구비했다.

 

  아무리 구석진 곳에 꽂혀 있어도 용케 찾아 읽는 책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아무리 잘 보이는 곳에 놓아도 아이들이 외면하는 책이 있다. 솔직히 이 책은 아이들이 선뜻 빼내지 않는 책에 속한다. 내용은 참 좋은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도서관에 빔 프로젝터도 설치했으니 아이들에게 빛그림을 상영하고 싶어서 책을 열심히 스캔받았다(단,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한 용도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그리고 드디어 2학년에게 읽어주었는데, 웬걸 아이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이제 연초니까 아무리 2학년이라도 아직 1학년 티를 못 벗어서인지 그닥 몰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여우가 숲에서 본 엄마와의 추억을 뒤로 하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모르는 것이다. 아직 너무 어린 아이들한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일까. 다 읽어주고 나서도 나 혼자 감동해서 아이들에게 '감동적이지 않느냐, 슬프면서도 아름답지 않느냐' 등 여러 이야기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이 별로다.

 

  그래서 오늘 갑자기 3학년들이 도서관 수업을 한다기에 다른 책 한 권 읽어주고 아이들의 선택으로 이 책을 읽어주었다. 작년에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책을 읽어줬던 아이들이라 어떤 책을 안 읽어줬는지 기억하기도 힘들다. 몇몇은 읽어줬다 하고, 몇몇은 안 읽어줬다며 저희들끼리 언쟁하다 한 명이 결론을 냈다. 누구는 혼자 책을 읽은 것 뿐이지 선생님이 읽어준 것은 아니라고.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듯하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책이지만 아이들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서 미뤘던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나는 너무 감동했는데 아이들이 별로라고 하면 그 실망감이란 설명하기 힘들 정도니까. 그럴 땐 내가 쓴 책이 아닌데도 내가 뭘 잘못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기에 선뜻 집어들지 못했다. 작년에는 그토록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오늘은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신데도 아주 열심히 들었다. 게다가 커튼도 다 내리고 컴컴하게 하니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나 보다. 밖은 아주 화창한 봄날이지만 말이다.

 

  여하튼 분위기도 가라 앉았으니 목소리도 좀 가라 앉히고 읽어주었다. 의외로 아이들이 조용히 잘 듣는다. 언덕을 넘어가서 이상한 숲을 만나고, 거기서 여우의 눈으로 보는 아름다운 그림도 함께 만난다. 백조라느니 그냥 새라느니 싸워가면서. 엄마 여우와 아기 여우가 나오자 또 개와 여우 편으로 나뉘어 싸운다. 여기선 내가 한 마디 거든다. 여우라고. 주인공이 여우인데 어떻게 개가 나오겠어. 게다가 여우가 엄마와 형제들을 떠올리는 부분인데 말야. 

 

  무서움을 극복하고 추억을 뒤로 한 후 이제 한층 성장해서 아침을 맞는 장면은 어찌나 감동적인지 모른다. 부모로서 자식을 떠나 보낼 때의 감동이 그런 것 아닐까. 아직 경험하진 못했지만. 아니, 그보다는 여우에게 나를 대입하는 것이 더 공감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숲을 빠져나온 여우 앞에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아침을 맞아 푸른색과 연보라가 펼쳐지고 눈이 하얗게 뒤덮인 산에서 여우 두 마리가 막 새 출발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감동이다. 한 명은 재미없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 친구가 오늘 아침부터 안 좋은 일이 있어서(그래서 한바탕 눈물을 흘린 뒤였다.) 이야기에 푹 빠지지 못했기 때문이지 진짜 이야기가 재미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조용하게 있었던 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확실하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화가 하나도 없는데다가 전반적인 흐름이 잔잔하기 때문에 조용한 상태가 몰입하기 적합하겠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것이 좋다. 지난 번에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이 책은 빛그림으로 보여줬을 때보다 그냥 책으로 읽어주는 것이 더 전달이 잘된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약간 수정해도 되겠다. 너무 어린 아이들보다는 조금 큰 아이들에게 분위기 가라 앉히고 읽어주면 그런대로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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