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새는 울지 않는다 푸른도서관 46
박윤규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개념이 정말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예를 들면 세계사에 큰 사건으로 남을 구소련이 무너지던 해, 독일의 장벽이 무너지던 해 등 내가 살아있을 때, 그것도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게 되던 때에 일어난 일이라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역사에 기록될만한 사건이 일어난 것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경험을 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큰딸에게 신나서 이야기하면 그게 언제였냐고 묻는다. '1990년'이라고 답하면 딱 한 마디 한다. '에이, 내가 태어나기 전이잖아.' 이것으로 게임 끝이다. 그러니까 걔네들에게는 이것조차 옛날 일일 뿐이라는 것.

  그런데 1980년에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겠는가. 이건 완전 옛날이다. 내가 1950년대에 일어난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뭐라 할 것만도 못된다. 사실 어른들이 1950년대나 60년대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여겨져서 그닥 관심갖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런 것이 모여 역사가 되고 현재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게다가 아직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과거가 아니다.

  이 책의 배경이 된 광주민주화항쟁은 아이들도 분명 알아야 할 일이지만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용어 자체도 정권에 따라 왔다갔다 하기도 하니 현재진행형인 것만은 확실하다. 더우기 책임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심증이 가는 인물은 버젓이 잘 살고 있으니 완전히 끝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그나마 이번에 광주민주화항쟁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하긴 이 때도 말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도대체 그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정부에서 공식으로 인정한 사실을 자기들 기준대로 생각하다니. 그야말로 리플리 효과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책 얘기를 하다가 흥분해서 잠시 옆길로 샜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광주항쟁과 판소리를 절묘하게 접목시켰다. 국악 명창인 금방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눈높이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어른이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열세 살 방울이의 시각에서 보도록 한다. 그래서 대의니 민주화 시위니 하는 거창한 의미보다 방울이의 주변 인물을 들여다보며 진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나머지 방울이의 수준을 벗어나는 부분은 대학생인 민혁이를 통해 들려준다. 어차피 나머지 이야기야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므로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모든 진실이 밝혀질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모르긴 해도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 희생을 토대로 한 민주화보다 그 학살을 토대로 한 권력의 수명이 더 길어 보이니까. 어쨌든 나는 이 동화를 단순히 동화로 읽은 것이 아니라 오늘을 읽는 수단으로 읽었다. 그래서 아이들과는 시각이 전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책이 꼭 필요하긴 한데 지금의 아이들이 과연 좋아할지, 의문이자 걱정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5.18을 소재로 한 책을 찾는다면 거기에 보태져서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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