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심부름 국시꼬랭이 동네 17
이춘희 글, 김정선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신다. 일 년에 두어 번 온 식구가 모여서 일을 하는데 남편의 최대 불만이 막걸리를 안 준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술을 안 드셨기 때문에 엄마나 나는 술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매번 잊는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남편이 손수 준비해 간다. 남편에게 툭 하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막걸리 심부름하면서 홀짝홀짝 마셨다는 경험담이다. 동네에 있는 술도가에 가서 누런 양은 주전자에 술을 받아오는 심부름은 어린 아이들 몫이었다나. 그걸 받아 오는 도중 목이 말라 먹기도 하지만 때로는 먹고 싶어서고의적으로 마시기도 했단다. 물론 아버지에게 혼난 건 당연하고. 이 책을 읽으며 남편의 이야기가 절로 스쳤다. 책 얘기를 해줬더니 남편은 정색을 하고 '정말 그랬었다'고 강조한다.  

책을 펼치면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시골에는 아직도 이렇게 콩을 털지만 시골에 갈 일이 없는 아이들은 생소할 것이다. 마당에 널려 있는 누런 것. 언뜻 보면 벼 같지만 먼 들의 배경이 초록색인 걸 보면 그건 아닌가 보다. 만약 가을이라면 들도 누렇게 변해야 하니까. 이건 바로 보리다. 그야말로 보리타작 하는 날이다. 창근이는 동생에게 짖궂은 장난을 하고 화단에는 백일홍과 맨드라미가 피어있다.(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 바로 꽃이었다. 맨드라미는 한여름에 피는 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리타작을 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시기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뒤에 벌개미취가 피어있는 모습에서 더욱 의아했으나 알아보니 6월부터 핀단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림에서 따사로운 초여름의 평화로운 모습이 풍긴다. 비록 어른은 고된 농사철이지만 어린 남매는 마냥 신나 보인다. 강아지도 덩달아 신났다. 이 첫 장면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창근이는 혼자 심부름 가기 싫어서 동생 문희를 데리고 가지만 결국 그것이 창근이의 발목을 잡았다. 먼 길을 막걸리가 가득 찬 주전자를 들고 오려니 힘도 들고 덥기도 해서 조금 맛본다는 것이 그만 취할 정도로 마시고 말았다. 게다가 자기만 혼날까 두려워 동생을 공범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문희가 취해서 업고 가게 생겼다. 출렁이는 주전자를 들고 가는 것도 힘든데 동생까지 업었으니 얼마나 힘들까. 결국 미끄러지는 바람에 주전자는 저만치 굴러가 버렸다. 막걸리는? 당연히 모두 엎어졌고. 꼬불꼬불 흙길과 멀리 바다가 보이고 보리가 익은 누런 들판이 있는 그림은 화가 난 창근이와 상관없이 정말 아름답다. 보리밭 옆에는 일부러 심은 것처럼 꽃이 흐드러졌다(솔직히 이건 좀 과장이다. 이처럼 단정하게 피지 않는다. 구간별로 종류를 달리 해가며 피는 건 더더욱 아니다).  

기다리다 못한 아버지가 아이들을 찾으러 오던 중 텅 빈 주전자와 얼굴이 벌건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알아챈다. 야단을 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문희를 업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그렇다고 아버지가 마냥 화가 난 건 아니다. 혼자 빙그레 웃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이 귀여웠을 게다. 저 멀리 집이 보이는 곳을 향해 구부러진 흙길(요즘 왜 이리 흙길을 밟고 싶은지 모르겠다.)을 걸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은 한없이 평화롭다. 

요즘 막걸리가 한창 뜨고 있다. 예전에 막걸리가 텁텁한 맛이었던 것은 유통과정에서 맛이 변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그런 맛이 사라져서 젊은층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막걸리 종류가 많아졌다. 그런데 정작 시골의 양조장은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유통망을 잘 갖추고 포장이 잘 된 막걸리가 전국 곳곳으로 퍼져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이야 병 막걸리와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의 맛을 구별할 줄 모르지만 모두가 상생했으면 좋겠다. 

그림을 보고 '바로 이거다'라고 감탄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다(하지만 여전히 꽃은 걸린다). 글이야 국시꼬랭이 시리즈하면 이춘희 작가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러고 보니 이 시리즈의 글은 모두 이춘희 작가가 썼다.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가 더 이상 나올 게 없는 것 같은데도 여전히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전통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다음은 어떤 자투리 문화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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