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마을
다시마 세이조 지음,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난 지금도 가끔 중요한 약속에 늦는 꿈을 꾼다. 운전하기 전에는 버스가 안 온다던가 놓치는 꿈이었는데, 운전을 한 뒤로는 차를 안 가지고 한참 가다가 다시 차를 가지러 돌아오는 꿈이다. 꿈꾸는 중에 꿈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경우과 전혀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약속에 늦는 꿈은 대개 후자다. 그러니 깨고 나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찜찜함이 남는다.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문득 꿈 생각이 났다. 다 읽고 난 후에는 묘한 내용과 분위기 때문에 아이가 이상하다고 한다. 악몽을 꾸면 어쩌냐고 했더니 그런 건 아니란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일어난 아이가 악몽을 꿨단다.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악몽이었다지만 아무래도 모종의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소풍 전날이면 혹시라도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하는 판국에 버스를 놓칠 걱정은 단연 가장 큰 걱정일 것이다. 다만 요즘 도시 초등학교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버스를 놓친다는 걸 이해 못해서 그렇지. 어쨌든 주인공 남자 아이는 소풍날인데 버스를 놓쳤다. 그래서 급한 김에 다음에 금방 오는 버스를 탔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가는 방향이 아닌 것 같아 바로 내린 곳이 바로 민들레 아이들이 걷고 있는 '모르는 마을'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이상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암시하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책은 참 특이하게도 겉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만, 속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책은 봤어도 이처럼 겉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책은 본 기억이 없다. 역시 일본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어린이 책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다.  

처음에 무심코 겉표지의 제목만 보고 속표지의 글을 읽었다면 버스를 놓친 일이 그다지 애석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버스를 놓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다음 차를 타고 가면 되니까. 늦으면 선생님께 조금 혼나겠지. 그러나 나중에 겉표지에 있는 '오늘은 소풍'이라는 글을 읽고 버스를 놓쳤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내가 괜히 안타깝고 애석하다. 게다가 그림도 거무스름한 것이 분위기가 음울하다. 

모르는 마을은 온통 의문투성이들로 가득찼다. 밭에 소랑 돼지랑 물고기가 자라질 않나, 가로수가 개로 되어 있질 않나 물속에서 바나나랑 망고가 헤엄치는 그야말로 희안한 마을이다. 생물과 무생물의 위치가 바뀌었다고나 할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민들레는 생물이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니까. 아무튼 마지막 민들레 레스토랑에서의 일은 단연 압권이다. 그러니 어찌 악몽을 꾸지 않겠나. 

집으로 돌아오면 뭔가 해명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없다. 꿈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다행이다. 뒤에 있는 속표지를 보니 민들레가 길따라 총총히 줄지어 서있다. 아까 그? 가로수 나무들도 마치 모르는 마을에서 보았던 것들과 비슷하다. 작가의 의도가 뭘까 괜히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뭐, 거창한 의도를 모르더라도 이처럼 묘한 분위기의 책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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