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걸음 내딛다 보름달문고 33
은이정 글, 안희건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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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집이 많은가 보다. 어린이 책에서 많이 다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부모와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서로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하긴 그게 어디 한 가정에서만 그런가. 현재 모든 곳에서 소통 부재를 탄식하는 걸 보면 가정이 작은 단위의 사회라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가정에서부터 소통이 안되니 점차 단위가 큰 사회로 갈수록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리라. 이런 곳에서까지 이론을 확인하게 되다니 참 씁쓸하다. 

처음부터 소통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잠시 흥분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가족끼리 소통이 안된다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힘든 것이며 또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 절로 깨닫게 된다. 희영이네 가족은 겉으로 보면 그냥 보통의 가정이다. 두 남매를 키우며 맞벌이 하는 부모님. 엄마는 직장에 다니지만 집에 오면 가정일에 충실하다. 사실 희영이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 장을 봐와서 바로 옷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뭔가 올라왔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누구는 집에 오자마자 밥 먹고 휴식을 취하는데, 왜 누구는 밥 하고 집안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이건 뭐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과 똑같잖아. 하지만 현재 맞벌이 하는 집의 풍경이 대부분 이렇지 않을런지. 그나마 요즘은 남자들도 많이 깨달아서 함께 도와준다지만 아직도 남자는 '도와주는' 개념이지 '함께하는' 개념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본다. 왜 희영이 엄마는 남편에게 그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걸까. 여기서는 전의 상황은 나오지 않고 그저 둘이 냉랭한 상태부터 시작을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데 남편이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아예 시도도 하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희영이 엄마는 지금 몹시 불만이 가득찬 상태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엄마답게 아이들을 위해서 절대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이야기하고 웃다가도 아빠가 들어오면 표정이 싹 바뀌고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모르긴 해도 아이들도 어느 정도 눈치 채는 것은 물론이요, 불안해서 눈치만 볼 것이다. 

희영이도 그런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다가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보면서 소녀 시절 엄마를 만난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그동안 엄마에게 자신의 속마음 뿐만 아니라 의견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던 희영이가 갑자기 엄마를 위로하고 조언을 한다는 부분이 너무 앞서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소통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엄마가 딸에게 용기를 주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딸로 인해 엄마가 진정한 자신을 찾고 모두가 행복을 향해 가는 것을 보며 잠시 헷갈렸다. 대개 주인공에 대입하며 읽는데 이 책은 희영이에 대입하다가 잠깐 엄마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영이가 엄마를 보며 자신도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아이들은 줄곧 희영이에게 대입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른이기 때문에 희영이 엄마에게 대입했나 보다.  

어쨌든 소통은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두 가지 큰 줄기가 함께 간다. 하나는 재준이에 대한 희영이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와 아빠의 문제다. 두 가지가 별로 연결고리도 없는데 서로 섞이는 듯하다가 나중에 엄마 문제로 넘어가면서 재준이 문제는 뒤로 밀려난다. 그러다 마지막에 결국 엄마 문제가 해결되고 나자 다시 재준이 문제가 다시 떠오른다. 한편으론 한 가지 이야기에만 너무 매달리면 단조롭게 느껴지기에 이처럼 주제는 같지만 소재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있는 게 재미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야기가 분산되고 읽고 나면 어느 하나에 빠지기가 쉽지 않은 단점도 있는 듯하다.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작가의 몫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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