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행복한 날 시공 청소년 문학 29
앤 파인 지음, 이주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을 보며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났다. 과정으로 보면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는데 결론으로 치면 정반대였던 날. 의미상으로 보면 두 이야기가 전혀 다른데도 왜 그 책이 생각났을까. 어쩌면 현재 완변하게 행복하기 때문에 그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당장 죽어도 좋다는 말을 하는 스톨을 보며 <운수 좋은 날>에서의 행복과 죽음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분명 스톨이다. 이름도 참 특이하다.(긍정적인 의미의 특이함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의 특이함이다.) 스톨이라니. 설마 이런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가 있을까. 역시 원래 이름은 스튜어트 테런스 올리버의 첫 글자만 따서 손수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작가의)의도가 숨어있지 싶다. 책을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는 스톨의 친구인 이안이다.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성격을 가진 친구 스톨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둘은 어찌보면 전혀 반대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 이안은 입양되었고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가족의 따스함을 갖고 있는 대신, 스톨은 유능한 (친)부모 덕분에 물질적인 풍요는 갖추었지만 가족의 따스함은 누리지 못하니까. 그래서 스톨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안네 집에서 보내는 것일 게다. 

사실 주제도 무겁고 사건도 보통의 사건은 아니다. 이안은 믿고 싶지 않았지만 스톨이 청소년기 우울증인 것은 확실하고 사고가 아니라는 것 또한 확실한 상황에서도 작가는 시종일관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병원에 있는 학생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병실에 있는 기구의 이름과 기능을 상세한 그림과 함께 알아오고 처방된 약이나 상태를 적어보내라는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들이나, 그 숙제를 이안과 스톨의 아버지가 낑낑대며 해주는 장면 등은 웃지 않을 수 없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아들 옆에서 그림을 넣어야 된다는 둥 어디가 잘못 되었다는 둥 의논하는 두 남자 어른을 상상해 보라.  

어디 그 뿐인가. 이안과 스톨의 부모는 어찌 보면 정반대의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인데도 그것을 인정한다. 아들이 병원에 있어도 친구 부모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자신들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스톨의 부모다. 반면 이안의 부모는 서로에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의논하는 부모다. 때로는, 아니 자주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배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본다. 나 같으면 한 번 쏘아줄 법한데도 말이다. 오죽하면 이안의 엄마가 차라리 스톨을 자신이 키웠어야 했다고 말할까. 그러나 작가는 스톨의 엄마가 잘못되었다거나 변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대부분을 독자가 판단하도록 놓아준다는 것, 이 또한 우리 작품들과 다른 부분이다.

스톨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어디서나 거침없이 말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야유가 쏟아질 법한 이야기도 스톨이 말하면 진지하다. 스톨은 받아들이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다. 그러나 만약 우리 사회에서 스톨과 같은 아이가있다면 그렇게 다른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도록 내버려둘까. 아마 모르긴해도 애초에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부적응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 과연 우리의 방식이 옳은지 모두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조각조각 떨어져 있는 사건들이 나중에는 한데 모아지는 기분이다. 또 인물에 대한 시각이나 생각도 서로 연결되지 않는데 나중에는 묘하게도 모든 것이 드러난다. 참 정신없는 구성인 듯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가능하고 무겁고 침울한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경쾌하고 희망이 보이는 이야기다. 게다가 무거운 이야기 도중이라도 웃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 덕분에 시종일관 유쾌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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