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큰 놀이터다 -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들어 역사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역사에 재미를 붙여서 그쪽의 책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이 책도 지금까지 보았던 역사책이라는 생각으로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던 게 사실이다. 소설이라니 어느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리라 기대를 하며... 그러나 조금 읽어가니 내가 예상했던 그런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작가 소개글부터 서두를 봤다. 어디선가 역사 실용소설이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글쎄, 이 책의 형식이 선뜻 잡히질 않는다.

그렇게 조금 더 읽다보니 그제서야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화랑세기에서 배운다는 글을 보고 화랑세기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며 누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화랑이 무엇을 했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대개의 역사소설들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 책은 전혀 의외의 방식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셈이다. 화랑이라는 것은 국사 시간에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 단체라고 배웠기에 그들의 삶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위화랑이라는 말을 들어본 듯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화랑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있는 작은 이름일 뿐이었다. 알고 보니 화랑을 만든 인물이며 초대 풍월주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그가 화랑을 만들어서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왜 화랑이 만들어지게 되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마지막 부분까지 화랑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저 위화에 대한 일화를 간단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깊은 의미와 더불어. 그런데 그 의미가 단순히 그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 저자도 거기에 의미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위화라는 인물은 처음에는 깊은 생각을 하거나 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욕심이 없이 맑으며 남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다 어떤 계기에 의해 공부를 함으로써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만약 욕심이 많은 사람이 공부를 했다면 권력을 탐했겠으나 위화는 천성이 낙천적이고 욕심이 없었기에 풍류를 즐길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바탕으로 화랑이 만들어진 것이고. 어찌보면 위화는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소설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사실만을 다룬 책도 아닌 것 같아 헷갈리며 읽었는데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어떤 진리가 숨어있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마치 공자나 맹자로부터 지혜를 얻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특히 현대인들에게 가장 어렵다고 하는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현대인 중에서 진정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럼 나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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