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걸어오는 소리 창비아동문고 241
알키 지 지음, 한혜정 옮김, 이금희 그림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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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기는 쉽지 않다. 우리도 요즘은 그런 문제를 다룬 책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에게 알려진 특정한 사건을 주제로 한 것이지 전반적인 문제를 다룬 책은 보질 못했다(5.18이나 4.3사건을 다룬 책은 있으나 군부독재를 다룬 책은 아직 못 보았다. 하긴 아직도 독재를 했던 사람이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는 시점에서 그런 책이 나오리라고는 기대도 않는다). 참 민감한 부분이 바로 정치분야다. 그래서 현재 학생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에게 정치와 종교 문제는 절대로 다루지 말 것을 부탁받는다.

이 작가의 책 중 <니코 오빠의 비밀>이라는 책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갔으나(정치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고 하기에) 어찌어찌 하다보니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런데 혼자 생각컨대 그 책 못지 않게 이 책도 정치색을 띠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1890년대 러시아를 다루고 있는데 어떤 특정한 사건을 다룬다기 보다 부패한 권력자들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들의 모습과 그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어느 시대나 한 시대가 끝나갈 즈음의 모습은 비슷하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시기도 마찬가지다. 계층간 격차가 심해지고 권력자들은 사치를 일삼고 자신의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리하는 모습, 또한 의식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억압받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은 혁명을 일이키는 전형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읽는 내내 싸샤의 아버지가 혹시라도 혁명에 깊이 개입했다가 붙잡혀가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다. 아무래도 독자는 온 마음을 주인공이며 화자인 싸샤에게 대입하며 읽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솔직하다. 싸샤의 아버지는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료해 줄 수 있지만 권력에 대항해서 나설 만큼 용기 있지는 않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싸샤의 아버지가 비겁한 것은 아니다. 계급을 가리지 않고, 아니 어쩌면 오히려 계급이 높은 사람보다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혁명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변 분위기가 그래서였을까. 싸샤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에 불의에 저항하는 힘을 길러간다. 각각의 인물들이 개성이 강하지만 읽어내려가다 보면 모든 인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무네이 무네비치 선생님을 전과자라고 그토록 싫어했던 두냐가 나중에는 결국 그의 석방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미를 느낌과 동시에 위트가 느껴졌다. 일종의 반전이라고나 할까. 또한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열 살짜리 딸에게 진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멋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 주변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친구가 없으라는 법은 없다. 만약 싸샤의 아버지 주변에 모두 좋은 사람들만 있었다면 오히려 평면적인 지루함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바노비치와 같은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비록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언제나 유효한 이야기다. 그러기에 지금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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